Archives of Design Research
[ Article ]
Archives of Design Research - Vol. 31, No. 3, pp.179-191
ISSN: 1226-8046 (Print) 2288-298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1 Aug 2018
Received 11 Jun 2018 Revised 13 Jun 2018 Accepted 25 Jun 2018
DOI: https://doi.org/10.15187/adr.2018.08.31.3.179

The Historical Contexts of Isotype: Focusing on Early Development and Acceptance

KimHyungjae김형재
Department of Design, Dongyang University, Dongducheon, Korea 동양대학교 디자인학부, 동두천, 대한민국
아이소타이프의 역사적 맥락: 초기 개발과 수용 과정을 중심으로

Correspondence to: Hyungjae Kim personak@gmail.com

Background In general, Isotype is known as a pioneer of pictogram and information design, but its specific development and development process has recently been reexamined. This study examines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Isotype which was invented in Vienna, Austria in the 1920s and spread internationally until the end of World War II, which influenced the modernist design movement.

Methods In this study, I reviewed various references and case studies, and examined the initial production principles and historical background of Isotype. In order to examine the acceptance of Isotype according to time, I described the cases of the period not covered in the previous discussions by a method of analysis based on the initial principles of Isotype.

Results Before the widespread establishment of information designs such as pictograms in the 1960s after the Second World War, it could be seen that Isotype has influenced the acceptance of modernist design in early corporate design. This is because the characteristics of the rational and universal formative language coincided with the needs of the companies at the time.

Conclusions Through this study, I examined the process of the acceptance of Isotype by modern society. Especially, by aiming to discover the development of early modern design in the mass production system, I could find the possibilities of expanding the subject and scope of consideration and was able to look at the context of the times more integrally. I think we need to look more closely at the reasons why the value of Isotype has recently been reexamined and reevaluated.

초록

연구배경 일반적으로 아이소타이프는 픽토그램 시각 언어 체계와 정보 디자인 등의 효시로 알려져 있으나 그 구체적 개발과 전개 과정은 최근에야 재조명되고 있다. 본 논문은 1920년대 오스트리아 빈에서 창안되어 제 2차 세계 대전 직전까지 국제적으로 전개되어 이후 현대주의 디자인 운동에 영향을 준 아이소타이프의 역사적 의의를 고찰하려고 한다.

연구방법 이 연구는 문헌연구방법과 사례연구방법으로 진행하였다. 먼저 여러 저서와 문헌의 선행연구를 고찰해 아이소타이프의 초기 제작 원리와 역사적 배경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어 아이소타이프의 제작원리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양상을 살피기 위해 앞에서 살펴본 아이소타이프의 제작 원리를 바탕으로 기존 논의에서 다루지 않은 시기의 사례를 분석하였다.

연구결과 아이소타이프는 제 2차 세계 대전 후 1960년대 픽토그램 등의 정보 디자인이 광범위하게 확립되기 이전에 주로 기업의 초기 현대주의 디자인의 수용 과정에 영향을 미쳤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합리적, 보편적인 조형 언어로서의 특성이 당시 기업의 요구와 일치했기 때문이다.

결론 이 연구를 통해 아이소타이프를 비롯한 현대주의 디자인이 어떤 과정을 거쳐 전후 현대 사회에 수용되었는지 살펴보았다. 특히 대량생산된 디자인 산물에서 초기 현대주의 디자인의 전개를 발견하려는 노력을 통해 기존의 고찰 대상과 범위를 확장하고 시대적 맥락을 더 통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시각 소통 방법은 현재까지도 도시 생활에 핵심적인 정보 전달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기술적 환경 변화에 따라 더욱 활용 범위가 확산되고 있다. 본 연구는 최근 아이소타이프의 가치가 재조명되는 원인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Keywords:

Isotype, Design History, Pictogram, Modernist Design, 디자인 역사, 현대주의 디자인, 아이소타이프, 픽토그램

1. 서론

1920년대 오스트리아 빈(Wien)에서 철학자, 사회학자인 오토 노이라트(Otto Neurath)가 교육학자인 마리 라이데마이스터(Marie Reidemeister)와 미술가 게르트 아른츠(Gerd Arntz) 등과 함께 시민 교육을 통한 계층 간 통합을 목적으로 통계 자료를 시각화하는 그래픽 언어 체계를 만들어 이를 ‘빈(Wien)식 방법론의 그림 통계학(Bildstatisik nach Wiener Methode)’으로 소개했다. 이들은 ‘빈식 방법론’을 1930년대에 ‘아이소타이프’(ISOTYPE: International System of Typographic Picture Education)로 다시 명명했다.

일반적으로 아이소타이프는 대부분의 디자인 역사서에서 정보 디자인(information design)과 데이터 시각화(data visualization) 등의 현대주의 디자인의 선구적 시도로 꼽힌다. 많은 시각 디자인 역사서에서 아이소타이프는, 1960~70년대 올림픽이나 엑스포와 같은 대형 국제 이벤트, 전 세계 주요 국제공항과 공공장소 등에 도입되며 주목받은 공용 시각 상징체계로서의 픽토그램(pictogram)과 사인 심볼(sign symbol)을 디자인한 현대주의 디자인의 영웅들에 대한 소개와 함께 이에 대한 선구적 사례로 언급된다. 1960~1970년대 정립된 픽토그램과 아이소타이프가 인간의 형상을 모듈로 설정하고 단순화와 생략을 통해 기하학적 실루엣 형태로 디자인한 기호가로 시각언어 체계를 이루는 방식 등을 공유하고 있음을 볼 때 이와 같은 설명은 충분히 설득력을 지닌다.

그러나 1920년대 처음 창안된 아이소타이프와 (많은 역사서에서 전후 현대주의 디자인이나 픽토그램의 가장 성공적인 초기 사례로 꼽히는) 1964년 도쿄 하계올림픽이나 1972년 뮌헨 하계올림픽에 사용된 종목 심볼과 여행자용 픽토그램 등을 시대적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제 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공백기를 감안하더라도 다소 비약적이다.

현대주의 디자인의 경전(Canon)으로 추앙받는 다른 디자인 이론이나 실천의 사례와 비교해볼 때 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데사우 바우하우스(Dessau Bauhaus)로부터 배태된 ‘새로운 타이포그래피(New Typography)’나 ‘타이포-포토(Typo-Photo)’ 등은 아이소타이프가 창안된 것과 거의 같은 시기, 192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처음 선보였다. 새로운 타이포그래피 운동과 타이포-포토의 주창자인 얀 치홀트(Jan Tschichold)나 라슬로 모호이너지(László Moholy-Nagy)는 제 2차 세계 대전을 피해 각각 영국과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이들이 해당 국가의 그래픽 디자인이나 디자인 교육 전반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와 저술을 통해 상세히 논의되었다. 예컨대 ‘새로운 타이포그래피’는 유럽과 미국으로 확산되어 제 2차 세계 대전을 이후 스위스 그래픽 디자인의 그리드 시스템과 국제주의 타이포그래피 양식으로 확장되어 가장 광범위하게 대중적으로 수용되는 보편적 시각 언어의 지위를 획득했다.(Kinross, 2002)

이 같은 현대주의 아방가르드 디자인의 주요 이론과 실천이 모두 독립적인 격리 상태에서 돌출한 것은 아니다. 아방가르드 디자인의 주창자들은 당시 중부 유럽을 중심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교류하고 있었다. 예컨대 버크(Burke, 2014)에 따르면 아이소타이프의 주창자 오토 노이라트는 1926년 데사우 바우하우스의 개교식에 참석하고 1929년에는 바우하우스에서 두 차례 강연하기도 했으며, 마찬가지로 얀 치홀트 등의 인물들이 빈의 아이소타이프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아이소타이프 활동이 짧은 시기에 국한된 것도 아니었다. 노이라트는 1920~1930년대에 걸친 빈에서의 초기 개발과 원숙기 단계를 거쳐 1930~1940년대 소련과 미국을 오가며 제 2차 대전 직전까지 적극적으로 아이소타이프를 전파했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는 영국에서 아이소타이프 연구소를 개설했다. 또 게르트 아른츠도 나치를 피해 함께 네덜란드로 피신했던 노이라트 부부가 이후 영국으로 이주하자 덴 하그(헤이그, Den Haag)에 남아 네덜란드 통계학 재단(Nederlandse Stichting voor de Statistiek)에서 아이소타이프의 방법론을 지속적으로 확장시켜 나갔다. 영국에서는 오토 노이라트의 사후에 마리 노이라트(라이데마이스터)가 위업을 이어받아 1970년대 초까지 아이소타이프의 방법론을 끊임없이 실천했다. 이처럼 상당한 기간 동안 아이소타이프의 방법론이 많은 프로젝트를 통해 수행되었음에도 아이소타이프의 구체적인 개발 과정과 참여자들의 상세한 활동상은 최근에야 활발히 재조명되고 있다.

본 논문의 목적은 아이소타이프의 개발과 전개 과정을 디자인과 관련한 시대적, 사회적 변화상에 따라 이해하려는 것이다. 특히 아이소타이프가 다른 현대주의 디자인과 유사한 수용 과정을 거쳤음을 확인하려 한다. 이를 위해 먼저 1920년대 오스트리아 빈의 사회적 배경을 고찰하고, 아이소타이프의 구체적인 제작 원리를 주요 작업 사례를 통해 파악할 것이다. 이어서 새로운 시각 언어로서의 아이콘 개발 원리에 대해 서술하고, 교육 도구로서의 목적을 위해 통계를 시각화는 과정에서 확립한 정보 디자인 방법론의 의의와 영향에 대해 평가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현대주의 디자인의 확산 과정에 있어 아이소타이프의 제작 원리가 수용, 확산된 구체적 사례를 찾아 기존 연구의 빈 공백을 잇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2. 아이소타이프의 개발 배경과 제작 원리

2. 1. 아이소타이프의 개발 배경

20세기 초 빈은 흔히 말러(Mahler), 프로이드(Freud), 클림트(Klimt) 등으로 대변되는 부르주아 문화 엘리트들이 활약하는 세기말의 데카당스 이미지로 재현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1918년에서 1934년 사이의 빈은 ‘붉은 빈(Rotes Wien)’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세계에서 유래 없는 “유럽 사회주의 실험”이 펼쳐진 도시이기도 했다. 정현백(Chung, 2007)에 따르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오스트리아 제국의 중심으로서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었던 빈에서 대다수 노동 계층은 열악한 주거와 생활환경에 놓여 있었으며, 이것이 원인이 되어 폐결핵 등의 질병이 도시 전반에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시민이 비좁은 방에서 몇 명이 함께 생활하며 상하수도, 전기 등의 기초적인 인프라도 제공받지 못하고 있었다. 사회민주노동자당은 주택문제 해결이 ‘사회주의로의 길’과 연계되어 있다고 인식했다. 이들의 주도로 1923년부터 1934년까지 빈에 9만여 가구의 공동주택이 건설되었으며 강력한 세입자 보호 정책을 펼쳤다.

혁명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 집권한 당시 빈의 사회주의 지도자들은 극단적인 혁명으로 기존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역사 발전을 위해 “계급의 사회화 과정, 즉 교육(Bildung)을 통해서 개인이나 노동자가 보다 높은 의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 교육을 통해 “노동자를 시민계급의 지식수준으로 향상시키는 것 뿐 아니라 그들의 행동을 직접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Chung, 2007) 즉 빈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이들은 ‘교사’의 역할 뿐 아니라 ‘사회엔지니어’의 역할을 담당해야했는데, 이들이 의도한 것은 노동자를 일상적인 대중교육을 통해 새로운 체제의 새로운 시민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었다.

고인석(Ko, 2010)과 존스턴(Johnston, 2000)에 따르면 오토 노이라트는 “실천적 계몽운동가”로서 “물리학, 수학, 논리학, 경제학, 사회학, 고대사, 정치학 이론, 독일문학사, 건축, 응용 그래픽 영역에서 진정한 연구를 수행”할 능력을 지닌 르네상스적 인물이었다. 그는 1925년 빈 사회경제박물관(Gesellschafts- und Wirtschaftsmuseum in Wien)에서 아이소타이프 도표를 처음 발표하였다. 빈 사회경제박물관은 그 이름과 달리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전형적인 개념과는 거리가 있었다. 노이라트는 이념의 선전(propaganda)이 배제된, 그러나 잘 안배된 순수한 정보를 전달해 노동자 계층을 새로운 개혁의 주체로서 교육하는 도구로 사회경제박물관을 활용하는 콘셉트를 제시했다.(Burke, 2014) 새로운 박물관은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인 투쟁에 관한 내용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역사적, 지리적, 경제적 정보 등을 전달해야했다. 일방적인 선전만으로는 노동자 계층의 세계 인식이 변화할 수 없고, 정보를 해석할 수 있는 주체적인 사고 능력을 함양해야만 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노이라트가 제시하고 실천한 빈 사회경제박물관의 역할은 당시 빈 정부의 근본적 집권 목표와 정책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것이었다. 사회민주노동자당이 의도한 사회적 개혁의 궁극적 목적은 노동자 인민의 생활을 현대적으로 개선하면 이를 바탕으로 “노동운동의 문화의지가 전체 사회를 혁명화할 것”이기 때문에 “미래”는 “사회주의 문화운동과 노동자교육을 통해서 탄생할 ‘새로운 인간’의 비전”을 실현함에 있었다.(Chung, 2007) 따라서 노이라트는 빈 사회주의 정부의 가장 중요한 이상을 실천하는 계몽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이 계몽 교육의 성공을 위해 노이라트는 도표와 그림 문자를 활용해 통계적 사실을 전달하는 방법을 고안한다. 그는 스스로 왜 그림과 도표 같은 시각적 형식을 취했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Neurath, 1931)

“현대인은 무엇보다도 시각적인 인간이다. 광고, 계몽포스터, 극장, 삽화, 신문, 잡지 등은 대중을 교육시키는데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조차도 그림이나 삽화에서 보다 많은 자극을 받는다. 피로한 인간들은 읽어서는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그림으로는 쉽게 알아낸다. 이뿐만 아니라 그림교육학은 많이 교육받지 못했지만 시각적으로는 잘 수용하곤 하는 성인들이나 혜택 받지 못하고 별로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그가 말하는 현대인, 인간 등은 노동자 계층, 청소년 등 기존 교육체계에서 소외된 이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또한 광고나 영화, 신문, 잡지 등 대중 매체의 정보 전달 기능을 교육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2. 아이소타이프의 제작 원리

현대주의 디자인 운동의 선구적 사례로서 아이소타이프는 크게 시각 언어로서의 아이콘 디자인 방법론, 그리고 아이소타이프를 활용한 통계 차트, 이 두 가지로 나누어 그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제작 원리를 통합적으로 수행하는 ‘변형’과 ‘변형가’ 개념은 정보디자인과 디자이너의 역할에 영향을 준 특정적 요소라 할 수 있다. 이 제작 원리를 살피고 이해하는 일은 이후 아이소타이프가 어떤 방식으로 전파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1) 새로운 시각 언어로서의 아이소타이프

아이소타이프는 논리 실증주의를 바탕으로 한다. 아이소타이프 문자는 관찰에 근거하며 도식화된, 반복 기호의 세부적 경험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노이라트에게 아이소타이프에서 사용한 시각적 형태(그림)는 사진의 중립적인 표현 방법을 간결하고 반복 가능한 일반화된 체계로 확정하는 방법이었다.

크램픈(Krampen, 1960)에 따르면 노이라트가 이러한 시도를 한 이유는 시각 언어가 교육에 있어 대상의 문화적인 차이를 해소하고 평등한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노이라트는 과학과 기술 지식이 인간의 물질적 지적 생활을 향상시키고 계층 간 문화적 통합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즉 다수의 청중에게 과학과 기술 지식을 산업적으로 생산된 질서 정연한 아이콘의 투명한 매개체를 통해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Lupton, 1986) 아이소타이프가 특정 문화와 별개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각 언어라고 여긴 것이다. 이는 20세기 초 현대주의 디자인 운동의 참여자들이 공유한 신념이기도 했다. 예컨대 노이라트는 1927/28년에 파울 레너가 디자인한 산세리프 서체 푸투라(Futura)가 출시되자마자 아이소타이프 차트에 도입한다. 새로운 타이포그래피 운동의 주창자 얀 치홀트가 오토 노이라트에게 서체 사용에 대해 조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너의 푸투라는 “정적이고 기하학적 형태로 환원하고 차례로 반복하는 방법”을 시도함으로써 아이소타이프와 현대주의적 태도를 공유한다.(Burke, 2007) 이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한 축소를 통한 단순화와 반복적 형식은 보다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위한 의도적인 선택이었다.

아이소타이프 방법론의 가장 중요한 디자인적 요소는 아이소타이프 문자였다. 이 아이소타이프 문자의 제작 원리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축소(reduction)’와 일관성(consistency)이었다. 럽튼(Lupton, 1986)에 따르면 축소는 개체의 가장 간단한 표현을 찾는 것으로, 이미지를 도식화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이고 기계적인 원리로 작동하는 것을 의미했다. 축소는 그림이 의미하는 대상과 그림 사이의 관계를 약화시킴으로써 상대적으로 객관성과 중립성을 높일 수 있었다. 실루엣 기법은 축소의 중심 기술이었다. 실루엣 드로잉은 그림을 지표(index)로 변환시켜주는 동시에 기하학적 평면성을 통해 일관성을 높여주었다. 이를 통해 왜곡과 오독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었다. 축소를 통해 세부 정보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대상에게 이입이 가능한 일반화가 진행되며 추상적 문자가 아닌 시각에 의존한 기호로서 독해되었다. 일관성 또한 아이소타이프 도표의 특징적인 개념이었다. 시각 기호는 같은 기하학적 시각적 원칙을 바탕으로 제작되어야만 언어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반복을 통해 학습될 수 있으며 항상 일정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일관성은 아이소타이프나 이후 픽토그램 디자인뿐만 아니라 기업의 아이덴티티 등에서도 필수적인 원칙으로서 작동한다. 아이소타이프를 통해 제시된, 심볼 기호의 축소와 일관성은 기존 연구에 주로 주목하는 아이소타이프 디자인의 가장 큰 미덕이며 중심 원리인 동시에 다음 세대의 픽토그램 디자인에 심대한 영향을 준 특성이기도 했다.

(2) 교육 도구로서의 그림 통계 도표

오토 노이라트에 따르면 아이소타이프 도표는 보는 이로 하여금 첫눈에 핵심 사항을 알 수 있도록 디자인되고 배열되어야 한다. 첫눈에 파악되지 않은 내용은 두 번째 시선에서 파악되어야 하며, 세 번째 시선에서는 앞서 놓쳤던 세부 사항들이 이해되어야 했다.(Krampen, 1960) 노이라트는 그래프, 다이어그램, 숫자표와 같은 사회통계학의 관습적 표현 기법이 교육 목적에 효과적이지 않다며 대신 정량의 제시를 강조했다. 양적인 비교가 선험적 지식에 의존하지 않고 매번 새롭게 정보를 파악하는 데 가장 용이하다고 여겼다. 모든 표현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 계층적 배경을 지닌 청중에게 평등하게 유효해야 했다.(Neurath & Kinross, 2009) 다음은 아이소타이프 제작진이 구체적으로 통계 도표를 제작한 과정에서 드러나는 가장 주요한 제작 원리이다.

  • ① 기호와 축의 활용: <빈 시내 출생자와 사망자 수> 도표 작업과 그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연 단위 출생자수와 사망자수에 대한 그래프(Figure 1)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수정해나가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축을 기준으로 출생자와 사망자를 단순하게 나열했지만(Figure 2) 점차 절대적인 총량과 상대적 비중을 함께 비교하는 것이 가능한 방식으로 발전해 나갔다.(Figure 4)
  • ② 심볼 기호 제작 방법: 축소를 통한 아이콘 형태와 이를 반복적인 형식으로 확정하는 심볼은 아이소타이프의 가장 중요한 시각적 특징이다. 1927년 목판화 전문가인 게르트 아른츠가 합류하면서 대량 복제에 적합한 뚜렷한 형태를 제작해낼 수 있는 단단한 고무판을 활용하는 판화 기법을 도입했다.(Figure 3)
  • ③ 정량적 제시: 아이소타이프의 핵심 원리 중 하나는 수량을 제시하는 방법이다. 기호 하나가 정해진 수량을 의미하고 전체 수량은 해당 기호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표현한다.
  • ④ 평행투영법: 이들은 작동방식을 설명할 때 실제의 형태를 묘사하는 것보다 일관적인 법칙을 가진 형태를 제공하는 방법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가령 지하철의 환승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두 노선이 교차하는 실제 각도를 투시도법으로 묘사하면 실제로 환승하기 위해 이동하는 과정을 보여줄 수 없으므로 공간 위의 좌표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늘 길이 비율과 평행을 유지했다.(Figure 6, Figure 7)
  • ⑤ 정적도법: 아이소타이프에서 수량을 제시할 때 가장 큰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개별 수량을 기호화하여 그것을 정량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노이라트는 아이소타이프에서 활용되는 여러 지도에 정적도법
Figure 1

Statistic Chart of Births and Deaths in Vienna, 1920s

Figure 2

Use of Axis and Presenting Quantity, Isotype Chart of Births and Deaths in Vienna, 1925

Figure 3

Change of Icon Design, Isotype Chart of Births and Deaths in Vienna, 1926

Figure 4

Isotype Chart of Births and Deaths in Germany, 1929

Figure 5

Use of Equal Area Projection Map, Isotype Chart of The Arab Empire and its Surrounding Population, 1930

Figure 6

Use of Parallel Projection in Isotype Chart, Railways under London, 1948

Figure 7

Use of Parallel Projection in Isotype Chart, Railways under London, 1948

(3) 변형과 변형가

아이소타이프는 여러 작업들 사이에 제작 원리를 규칙으로서 공유하지만 매번 도표를 통해서 대상에게 교육하고자 하는 목표를 새롭게 설정하고 그때마다 가장 효과적인 표현 방법 또한 새롭게 고안하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이 과정을 이들은 변형(transform)이라고 표현했다.

마리 노이라트에 따르면 변형가(transformer)는 “자료를 이해하고 필요한 정보를 전문가에게 얻어내고 공공에 전파할 가치가 있는 내용을 결정하고 그것을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지 어떻게 다른 일반 상식이나 도표와 연결할 것인지를 결정한다.”(Neurath & Kinross, 2009, p78)

변형과 변형가의 개념은 현재 우리가 정보 디자인이라고 구분하는 분야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선택들, 정보를 취사선택해서 해석하며, 이를 바탕으로 전달할 메시지를 표현할 방법을 고안하는 행위를 일컫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이 행위를 디자인이나 디자이너라는 직능의 범위에 포함시키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는데, 이것은 사실 현재의 관점에서는 단순하게 바라볼 수 없는 문제이다. 변형가의 개념 안에 철학자의 역할, 사회학자의 역할, 통계학자의 역할, 디자이너의 역할 등 다양한 직능의 역할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전인적 지식을 갖춘 노이라트와 그의 동료들의 경우가 특별하게 취급되고, 이후에 이들과 같은 작업이 쉽게 시도되지 못하거나 유사한 시도가 실패하기 쉬웠던 이유는 이처럼 변형의 조건이 보편화되기에 지나치게 까다롭고 특정적인 조건들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한 아이소타이프는 빈의 사회주의 정부와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일종의 폐쇄 생태계 안에서 실행한 실험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전시장의 전시 콘텐츠와 교육용 도서 등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스태프로 통제할 수 있는 규모 안에서 생산, 발표한 작업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아이소타이프가 지닌 현대적 가치는 명확했고 ‘변형’ 과정과 ‘변형가’의 역할을 생략하고도 습득될 수 있었던 시각적 형태와 방법론 덕분에 이후 빠르고 광범위하게 수용될 수 있었다.


3. 아이소타이프의 수용과 확장

3. 1. 현대 픽토그램 디자인의 확립

서론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60-70년대 국가와 국력을 상징하는 국제 스포츠 행사와 국제공항 등의 거대 인프라에 필수적 시각 체계로 자리 잡은 심볼 사인과 픽토그램 시스템으로부터 아이소타이프의 영향력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버크(Burke, 2014)는 구체적으로 아이소타이프가 후세대의 픽토그램 디자인의 전임자임을 설명하면서 표준화, 모듈, 체계화의 세 가지 선구적 특성을 픽토그램 디자인과 공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트라가노우(Traganou, 2009)에 따르면 20세기 올림픽은 “국가 건설”과 함께하는 대명제였다. 즉 제 2차 세계 대전의 패전을 딛고 세계에 큰 영향력을 가진 국가로 복귀했음을 일본 국내외에 알리는 동시에 그 국가가 합리적이고 국제적인, 현대적 문화 소양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줘야 했다. 동아시아에서 열리는 대규모 국제 스포츠 행사에서 픽토그램과 같은 체계적 시각 언어는 이들이 성취 목표로 삼기에 알맞았다. 도쿄 올림픽의 디자인 디렉터인 카츠미 마사루(勝見勝)는 이 픽토그램 시스템을 가장 중요한 성취의 결과로 꼽았다.(Traganou, 2009) 일본의 도쿄 올림픽 디자인 팀은 종목 픽토그램을 아이소타이프의 디자인과 체계와 거리가 있는 새로운 기준을 바탕으로 디자인했다. 그러나 스기우라 고헤이(杉浦 康平) 등이 디자인한 올림픽 단지의 시설 식별 픽토그램은 좀 더 아이소타이프의 심볼 디자인과 유사한 형태적 원리를 따르고 있었다.

1972년에 뮌헨 하계 올림픽에서 많은 이들에게 일반적으로 최고의 올림픽 픽토그램이자, 현재까지도 가장 칭송받는 심볼 체계가 발표되었다. 이 디자인의 주인공 오틀 아이허(Otl Aicher)는 1971년 올림픽보다 앞서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사인 시스템과 픽토그램을 디자인한다. 1972년 뉴욕에서 마시모 비넬리(Massimo Vignelli)는 1933년 엔지니어 해리 벡(Harry Beck)이 디자인한 런던 언더그라운드의 노선도 다이어그램을 모델로 뉴욕 지하철 노선도를 디자인한다. 1974년 미국 교통부는 미국 그래픽 아트 학회(American Institute of Graphic Arts, AIGA)와 함께 개발한 (보행자/운전자용) 심볼 사인 시스템을 발표한다. 이 심볼 사인 시스템은 “현대 생활의 교차로, 즉 공항이나 기타 교통 허브 그리고 대규모의 국제 행사” 등에서 사용하기 위해 디자인되었다.

이 일련의 흐름을 살펴보면 마치 현대주의 디자인, 특히 아이소타이프를 계승한 심볼 사인과 픽토그램 시각 언어가 유럽과 미국, 일본을 중심으로 서구 세계를 독점적 영향권 안에 두게 되었음을 확인하는 과정과 같다. 이 시기에 발표된 심볼 사인과 픽토그램 시스템은 근본적인 디자인 원리와 기능 등이 거의 변화하지 않은 채로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공공장소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다.

3. 2. 아이소타이프와 전후 현대주의 디자인의 전개

빈 사회경제박물관에서의 아이소타이프 제작 시스템이 완성되고 전쟁 직전까지 소련과 미국에 제작 스태프가 직접 해당 국가를 방문하며 아이소타이프 도표를 전파한 이후부터,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1960년대 도쿄 하계 올림픽에서 픽토그램 언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까지 위에서 정리한 아이소타이프의 여러 특성이 전파된 사례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기존 논의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구체적인 연결 지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술은 사실 착시에 가깝다. 아이소타이프와 바우하우스를 위시한 중부 유럽 현대주의 디자인 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던 인물들이 제 2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다른 유럽 국가와 미국으로 이동함에 따라, 일반적인 디자인 역사서는 이 인물들의 궤적을 주로 따라 서술한다. 그러나 이들의 인적 구성은 제한적이고 숫자도 적기 때문에 이들의 활동만으로 구체적 연결성을 확보하는 방식에는 보완이 필요하다. 특히 많은 경우 독일 바우하우스로 출신 인물들이 1940-50년대 미국 등에서 재구축한 교육 프로그램의 연속성을 논의의 중심으로 삼지만, 우리는 경험적으로 현대주의 디자인의 문법이 같은 시기 교육 분야 뿐만 아니라 이미 일상적 차원에서 당시 전후 산업 사회에 널리 적용되고 있었음을 알고 있다. 즉 아이소타이프의 역사적 연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올림픽과 같은 거대한 국가적 이벤트로 표출되기 이전에 드러난, 상대적으로 대중적이고 일상적인 -많은 경우 상업적인- 사례들을 통해서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시각 기호 언어 체계를 통합적으로 새로 디자인하는 것은 시간과 비용 등을 상당히 투입해야 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프로젝트에서 주로 가능하므로 완결적인 픽토그램 사례만을 찾는 것은 고찰 대상을 지나치게 좁힐 수 있다. 이때 버크가 강조한 아이소타이프와 픽토그램이 공유하는 표준화와 모듈을 통한 체계로서의 특성뿐만 아니라 그 체계를 이루기 위해 구체적으로 사용한 새로운 시각 언어로서의 특징, 즉 축소와 일관성 등의 시각성을 성취한 디자인 사례들을 살펴보는 것은 확정적이고 독립적인 근거에 집착하기보다 점진적이고 광범위한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논의의 폭을 넓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1) 기업 디자인과 아이소타이프의 시각 언어

아이소타이프의 현대적 디자인 방법론의 구체적 영향력을 확인하기 위해 1940년대부터 1950년대 기업들이 현대주의 디자인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살펴보자. 아이소타이프의 디자인 방법론은 기업에 현대주의 디자인을 도입한 선구적 사례로 널리 알려진 아이비엠(IBM)의 디자인 정책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아이비엠의 당시 디자인 프로그램 디렉터 엘리엇 노이에스(Eliot Noyes)는 당대 현대주의 디자인의 최선봉에 선 디자이너들을 아이비엠의 건축, 제품, 광고, 출판, 브랜드 전략 등의 전 영역에 영입했다. 그가 선임한 폴 랜드(Paul Rand)의 주도 하에 아이비엠 사는 195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시각 아이덴티티 체계를 개발하고 가이드라인을 작성했다. 이 가이드라인에는 지금까지도 잘 알려지고 있는 아이비엠의 로고와 더불어 시기상 본격적으로 도쿄 올림픽 등에서 쓰이기 훨씬 이전임에도 회사 시설 및 업무에 사용하도록 거의 완전한 형태-1970년대 미국 교통부에서 승인한 픽토그램과 유사한-의 픽토그램 체계가 고안되어 있었다.(Rand, 2018)(Figure 8) 내용은 소화전의 위치, (비)흡연구역, 공중전화, 레이저 주의 등 필수적인 사내 업무 환경과 관련된 것들이며 사용할 때는 되도록 단어를 병기하지 않고 그림 그 자체로만 인식이 가능하도록 활용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이는 작성하는 사람은 공을 들여 필요한 정보만 신중하게 배치하고 읽는 사람은 단숨에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각성을 추구하는 아이소타이프의 목표로부터 영향을 받은 결과였다.

Figure 8

Pictogram System included in the IBM Identity Guideline, 1950s

스위스 바젤의 가이기(Geigy) 사는 전후 대규모 제약회사로 발돋움하며 1950년대 디자인 리뉴얼을 단행했다. 디자인 디렉터 막스 슈미트(Max Schmid)의 지휘 아래 수많은 스위스 현대주의 디자이너들이 가이기 사의 디자인에 참여했다.(Museum für Gestaltung Zürich et al. Eds., 2009) 당시 협업하던 아티스트 중 하나인 고트프리트 호네거(Gottfried Honegger)의 제안에 따라 가이기 사는 컬러 팔레트를 시스템화 했다. 이 과정에서 베르트홀트 악치덴트 그로테스크(Berthold Akzident Grotesk) 서체로 통일된 로고와 함께 개별 약품을 의미하는 색상 띠의 체계가 제시되었다.(Figure 10) 패키지의 레이아웃과 서체는 현대주의 타이포그래피가 적극적으로 반영된 결과이고, 컬러 인덱스 시스템은 아이소타이프 제작 과정에서 주요하게 반복 제시된 바와 같이(Figure 9) 일반적인 수용자의 기억 용량과 인지상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특정하고 또렷한 색상의 제한된 계조 범위 안에서 구성되어 있다. 가이기 사는 이 컬러 인덱스 시스템이 가이기의 제품 종수가 사용자가 인지 가능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 판단되는 시점에서 색상과 제품을 1:1로 대응시키는 전략을 중지했는데, 이는 오토 노이라트가 아이소타이프 제작 원리에서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인지하고 기억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있는 색상 활용의 범위를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같은 맥락의 선택이었다.

또한 아이소타이프 이전에는 눈에 드러나지 않아 추상적으로 인지되던 해부학적, 의학적 사실을 우화적·비유적으로 사람들에게 설명하던 것과 다르게 아이소타이프 개발진은 가급적 비유적 표현을 배제하고 실질적, 구체적 표현을 사용하되 그것을 양식화한 그래픽으로 함축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여겼다. 예컨대 폐렴을 설명하기 위해 실제 폐와 침입한 병소를 묘사하는 것이었다.(Figure 11) 가이기 사의 여행용 지사제 엔테로 비오폼(Entero-Vioform) 광고(Figure 12)와 류마티즘 진통 소염제인 부타졸리딘(Butazolidin) 패키지(Figure 13)는 사진을 주로 활용하는 기존의 관습적 표현과 달리 과감하게 해부학적 형태의 외곽선을 따라 양식화하여 실루엣 형태로 시각화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이를 통해 약품이 작용하는 대상과 의미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가이기 사의 사례는 구체적인 시각 언어의 세부 특징보다 정보를 전달할 때 취하는, 비유를 배제하고 구체적인 설명을 중요시하는 태도로서 아이소타이프 개발진의 현대적 기치를 계승한다고 할 수 있다.

Figure 9

Color Index in Isotype Chart, 1939

Figure 10

Color Index System of Gigey’s Product Package, 1950s

Figure 11

Abstract Expression, Isotype Chart of Tuberculosis: Basis Facts in Picture Language, 1931

Figure 12

Promotional Material of the Gigey’s Entero-Vioform, 1950s

Figure 13

Package Design of the Gigey’s Butazolidin, 1950s

(2) 교육을 위한 그림 도표 방법론의 영향

제 2차 세계 대전 후 중산층의 폭발적 증가와 함께 미국 가정의 자동차 보급률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며 자동차의 보급과 함께 수리 및 보수 등도 판매와 비례해 그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올즈모빌, 포드 제너럴 모터스 등 이 시기의 대표적 자동차 회사의 서비스 매뉴얼에 삽입된 도판들을 살펴보면 아이소타이프가 주창한 교육 도구로서의 정보 디자인 방법론의 영향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기계 등의 작동 방식을 설명할 때 3차원을 지면 위에 표현하기 위해 평행투영법을 사용하는 것이다.(Figure 14) 평행투영법은 원근법처럼 부품 등이 늘어서 있는 공간을 사실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축을 그리고 해당 좌표에 관련 내용이 들어간 상황을 그래프처럼 제시하는 방법이다.(Figure 6, Figure 7) 이는 원근법에 비해 시점 변화가 덜하고 늘 같은 방식으로 그려지므로 원리를 설명하기에 적합하다. 급증하는 자동차 판매에서 수리 보수 등의 서비스는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는데, 단기간 내에 고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각 서비스 숍의 수리 담당자가 부품과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당시 서비스 매뉴얼은 효율적인 교육과 균질한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그림과 다이어그램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앞에서 설명한 평행투영법 등의 도입은 정보를 가공하는 데 많은 노력을 집중하고 교육 효과의 극대화를 중요시하는 아이소타이프의 덕목을 따르는 선택이었다. 이 시기에 정착된 매뉴얼의 평행투영법 등의 기법은 현재까지도 가구 생산 유통 회사인 이케아(IKEA) 등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Figure 14

Parallel Projection in 1955 Model of General Motors Pontiac’s Service Manual

1960년 로마 하계올림픽은 정보 디자인 역사상의 관점에서는 중요하게 취급된 바가 없다. 1960년 로마 올림픽의 공식 보고서를 살펴보면 1964년 도쿄 올림픽의 사례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이미 아이소타이프의 영향을 받았음이 확실한 정보 디자인의 활용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로마 올림픽의 공식 보고서에서는 아이소타이프처럼 픽토그램 형식의 기호로 정보를 제시하고 숫자를 병기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아이소타이프에서는 기호 자체를 정량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이 다르지만, 이 보고서의 숫자 값의 낙차 폭이 크기 때문에 정량적 제시 대신 수를 활용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단어로 정보를 제시하는 대신 기호가 하나의 정보를 대표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아이소타이프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Figure 15)

Figure 15

Telephone Link in 1960 Rome Summer Olympic Official Report

위 사례들은 초기 아이소타이프와 픽토그램 디자인의 확립기 사이의 연결을 암시하고 있으나 사례에 따라 기존의 연결 공백이 비약적이라는 지적만큼이나 이 사례들이 제시하는 근거도 다소 비약적으로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우하우스 교육 프로그램 계승 중심의 논의나 기업 디자인의 영웅적 사례들처럼 기존에는 개별적으로만 주로 분석된 사례들을 서로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많은 대중이 대량 생산된 매체와 산물을 통해 현대주의를 받아들이는 20세기 중반의 과정을 살펴볼 수 있게 해 준다.

아이소타이프의 개발진과 바우하우스의 주요 인물들은 다수가 사회주의 이론적 배경을 갖고 있었으며 사회주의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조형적인 혁신뿐만 아니라 사회 변혁을 의도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중 많은 수가 당시 중부 유럽을 장악한 전체주의 정권에 의해 발발한 전쟁을 피해 미국과 스위스, 영국 등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들이 주창한 현대주의 디자인은 역설적이게도 산업과 자본주의가 폭발적으로 발전한 전후의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수용되었다. 이들이 선구적인 조형 실험을 통해 도출한 합리성과 객관성, 보편성 등의 현대적 가치를 가장 필요로 하고 있었던 것이 전 세계를 상대로 영향력을 뻗어나가며 다양한 언어와 조건을 상대로 소통해야하는 당시의 기업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오토 노이라트를 위시한 아이소타이프 개발진이나 바우하우스의 주요 인물들이 상상한 현대주의 디자인을 생활 속에서 소비하며 스스로와 사회를 변화시켜나가는 “새로운 시민”의 모델은 전후 고도성장과 함께 경제적, 문화적 자원을 축적해나간 “중산층”이 주역이 된 시대에야 겨우 가능해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4. 결론

아이소타이프라는 현대주의 디자인 언어가 정립된 과정을 살펴보면 이것이 교조주의적인 선언과 급진적 변혁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그 개발과 전개가 사회주의적 이상에 따른 계몽과 교육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이뤄진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화와 생략/축소를 통해 시각 언어로서 추상성과 객관성을 추구했으며 그 목적이 일반 대중을 상대로 의도한 계몽을 효과적으로 성공시키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보편적 조형 언어로서의 가치를 획득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바우하우스의 조형 실험과 함께 전후 현대 기업 디자인을 필두로 다양한 경로로 현대 사회 전반에 급속도로 수용될 수 있었다.

아이소타이프의 개발 과정을 역사적 맥락으로 이해하는 일은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동반한다. 현대주의 디자인 운동이 시작된 시기는 이미 현재와 약 백여 년의 시차를 가지고 있다. 탈현대주의 디자인 운동마저 시의성을 상실하고 격리되어 역사의 한 장면으로 해석되는 현재 시점에서 현대주의 디자인 운동이 막 태동해 급진적인 혁신을 일으키던 시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일은 시효를 다한 것으로 여겨지는 사조가 여전히 현재 우리의 일상과 디자인 실천의 모든 순간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이소타이프를 고안한 창안자들의 교육과 사회 변혁 의도가 결합된 태도를 오스트리아의 붉은 빈 시기로부터 완전히 분리해낼 수 없듯이 이들의 당대 현대주의와 현대성에 대한 믿음에 의해 수행한 실험을 현재 시점에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역사적 이해를 포함하지 않고는 위험한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의 디자인 역사는 지금까지 오랜 기간 동안 우리가 무척 잘 알고 잘 이해하고 있다고 믿어온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20세기 전반에 걸쳐 현대 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현대주의 디자인은 그 파급력에 비해 기원과 확립 사이의 수용 과정이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부분이 아직 많다. 대량 생산을 기반으로 한 고도성장기의 디자인 산물은 실제로 그 양상이 너무나 방대해 개인이 전체를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 각 세부 분야별로 현대주의 디자인의 수용 과정을 더 세밀히 규명하고 통합적으로 파악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현재까지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디자인 가치인 보편적인 조형 언어를 해당 시대의 각 개인 디자이너가 어떤 이유로 선택했는지 그리고 그 총합의 결과로서 현대주의가 자리 잡았는지 명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연구를 통해 이와 같은 과정을 고찰할 연구 대상의 범위를 조정하고 세분화할 필요성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아이소타이프 개발진이 이뤄낸 조형적 성취는 현재까지 빛나고 있다. 아이소타이프와 오토 노이라트의 업적이 주로 조망되기 시작한 것은 1960-70년대 심볼 사인과 픽토그램이 전 세계적인 공용 시각 언어로 자리잡은 시기와, 스마트폰과 스마트폰에 의해 사람들의 일상이 완전히 재편되기 시작한 이후다. 스마트폰의 인터페이스 특성상 정보 디자인과 그림 문자 언어로서의 아이소타이프의 유산은 더욱 중요하게 인식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향후 연구에서는 변화된 기술적 환경에 대한 이해가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Notes

Citation: Kim, H. (2018). The Historical Contexts of Isotype: Focusing on Early Development and Acceptance. Archives of Design Research, 31 (3), 179-191.

Copyright :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educational and non-commercial use,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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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

Figure 1
Statistic Chart of Births and Deaths in Vienna, 1920s

Figure 2

Figure 2
Use of Axis and Presenting Quantity, Isotype Chart of Births and Deaths in Vienna, 1925

Figure 3

Figure 3
Change of Icon Design, Isotype Chart of Births and Deaths in Vienna, 1926

Figure 4

Figure 4
Isotype Chart of Births and Deaths in Germany, 1929

Figure 5

Figure 5
Use of Equal Area Projection Map, Isotype Chart of The Arab Empire and its Surrounding Population, 1930

Figure 6

Figure 6
Use of Parallel Projection in Isotype Chart, Railways under London, 1948

Figure 7

Figure 7
Use of Parallel Projection in Isotype Chart, Railways under London, 1948

Figure 8

Figure 8
Pictogram System included in the IBM Identity Guideline, 1950s

Figure 9

Figure 9
Color Index in Isotype Chart, 1939

Figure 10

Figure 10
Color Index System of Gigey’s Product Package, 1950s

Figure 11

Figure 11
Abstract Expression, Isotype Chart of Tuberculosis: Basis Facts in Picture Language, 1931

Figure 12

Figure 12
Promotional Material of the Gigey’s Entero-Vioform, 1950s

Figure 13

Figure 13
Package Design of the Gigey’s Butazolidin, 1950s

Figure 14

Figure 14
Parallel Projection in 1955 Model of General Motors Pontiac’s Service Manual

Figure 15

Figure 15
Telephone Link in 1960 Rome Summer Olympic Official Repo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