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s of Design Research
[ Article ]
Archives of Design Research - Vol. 31, No. 3, pp.219-229
ISSN: 1226-8046 (Print) 2288-298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1 Aug 2018
Received 02 Mar 2018 Revised 08 Jul 2018 Accepted 22 Jul 2018
DOI: https://doi.org/10.15187/adr.2018.08.31.3.219

Useful, Beautiful, and Meaningful Design: Starting from John Heskett’s Notions of Utility and Significance

OhSehun오세헌
Department of Mechanical & System Design Engineering, Hongik University, Seoul, Korea 홍익대학교, 기계시스템디자인공학과, 서울, 대한민국
유용하고 아름다우며 의미 있는 디자인 : 존 헤스켓의 유용성과 유의성 개념을 출발점으로 하여

Correspondence to: Sehun Oh sehunoh@gmail.com

Background Utility and significance in design are the two concepts that John Heskett proposed as fundamental principles for explaining the various features of today’s design. Utility is a concept that explains the suitability for the use of design outcomes in terms of its efficiency and rationality, and significance is a concept to explain meaningful aspects of design outcomes such as expression or value. Heskett also described the rise of significance in the field of design in relation to the emergence of postmodernist design.

Methods In this study, I use Heskett's discussion of utility and significance as a starting point, and then take a closer look at the design topics related to utility and significance through additional reference materials, after which I examine the characteristics of modernist and postmodernist design from the perspective of utility and significance. In addition, I separated aesthetics, which was a subordinate element of significance according to Heskett, as the third essential keyword to understand and explain design, and reviewed various topics related to the aesthetic aspects of design.

Results Although Heskett’s utility and significance are very useful concepts as keywords to understand today’s design that claims to advocate diverse values, his significance is relatively obscure and overly comprehensive in contrast to utility, which is clearly linked to the concept of use. In particular, according to Heskett, aesthetics is a subordinate element of significance and, as a result, aesthetic aspects from the viewpoint of utility are excluded. Hence, I separated aesthetics as the third essential keyword to understand and explain design, and reviewed various topics related to the aesthetic aspects of design.

Conclusions Utility, significance and aesthetics have been presented as three keywords to understand the various design phenomena of today and to explain the most fundamental values that design provides. In addition, through the three concepts, I explained the difference between design and adjacent fields such as engineering and art, and attempted to explain the structural relationship among the three concepts.

초록

연구배경 디자인에 있어서 유용성과 유의성은 오늘날의 디자인이 보여주는 다양한 양상을 설명하기 위한 근본 원리로 존 헤스켓이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유용성이 사용상의 적절성을 정의하는 개념으로 효율이나 합리성과 관련이 있다면, 유의성은 디자인 결과물이 가지는 의미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표현이나 가치와 관련되어 있다. 헤스켓은 또한 디자인 분야에서 유의성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을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의 등장과 연결 지어 설명하고 있다.

연구방법 본 연구에서는 헤스켓의 유용성과 유의성 개념을 출발점으로 하여 추가적인 참고문헌들을 통해 디자인에 있어서 유용성, 유의성과 관련되는 이슈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았으며, 모더니즘 디자인과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의 특징을 유용성과 유의성의 관점에서 고찰하였다. 또한 헤스켓이 유의성에 포함시켜 다루었던 심미성의 개념을 분리하여 관련된 디자인 이슈들을 별도의 장에서 보다 심층적으로 살펴보았다.

연구결과 헤스켓의 유용성과 유의성이 다양한 가치를 표방하고 있는 오늘날의 디자인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인 키워드로 매우 유용한 개념이기는 하지만, 사용이라는 개념과 명확히 연결되는 유용성에 비해 유의성은 그 의미가 상대적으로 모호하고 지나치게 포괄적이다. 특히 심미성이 유의성에 포함되어 설명되면서 사용의 적절성에 부합하는 유용성 관점에서의 심미성이 배제되는 문제점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측면을 보완하기 위해 본 연구에서는 심미성의 개념을 유용성, 유의성과 더불어 디자인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한 세 번째 핵심 키워드로 분리하여 제시하였다.

결론 오늘날의 다양한 디자인 현상들을 이해하기위한, 그리고 디자인이 제공하는 가장 근본적인 가치를 설명하는 세 가지 핵심적인 키워드로 유용성, 유의성과 심미성을 제시하였다. 또한 그 세 가지 개념들을 통해 공학이나 예술과 같은 인접 분야와 디자인의 차이점을 설명하였으며, 그 세 가지 핵심 가치들 간의 관계를 보다 체계적으로 구조화하여 설명하고자 시도하였다.

Keywords:

Utility, Significance, Aesthetics, Modernist Design, Postmodernist Design, Product Design, Industrial Design, 유용성, 유의성, 심미성, 모더니즘 디자인,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 제품 디자인, 산업 디자인

1. 서론

1.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2013년, 본 연구자가 영국에서 제품 디자인 석사과정을 시작하고 첫 번째 프로젝트를 위해 튜토리얼을 받던 당시 튜터 한 분이 기존의 디자인 접근방법에서 탈피해 보라면서 그 전년도에 직접 지도했던 학생이 디자인한 키친 타이머 사례를 예로 들었다. 튜터의 설명에 의하면 그 타이머는 부엌 한쪽 벽면 전체를 덮는 본체에 구슬이 구르면서 시간을 알려주도록 디자인된 제품이었는데, 작고 사용하기 편리하고 가격까지 저렴한 주방용 타이머가 넘쳐나는 시대에 벽 전체를 덮는 타이머를 디자인한다는 것이 그 당시의 본 연구자로써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주방 타이머는 당시까지 본 연구자가 디자인에 있어서 필수적인 고려 요소라고 생각했던 제작 및 사용의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게 여겨졌으며 대량 생산을 위한 제품 디자인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공예나 예술작품에 더 가깝다고 생각되었다. 우리나라에서의 제품 디자인 실무 경력 이후 뒤늦게 간 유학 초기의 그 경험을 통해, 디자인에 대해 보다 넓은 정의를 가진 또 다른 세계를 맞닥뜨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또한 차츰 주변 동료 학생들의 디자인 관심사나 작업 방식, 런던의 다양한 디자인 전시 등 현지 디자인을 접하게 되면서 유럽에서는 디자이너의 개성적 자기표현 혹은 주장으로서의 디자인이나 대량생산에 대한 강박을 떨쳐버린 보다 실험적인 접근까지도 디자인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한 계기를 통해 점차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오늘날의 디자인이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들을 좀 더 체계적으로 이해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고 당시까지 본 연구자가 가지고 있던 디자인에 대한 정의를 재검토할 필요 또한 느끼게 되었다. 이와 같은 경험으로 인해 본 연구의 초기 단계를 시작하게 되었으며, 자료 조사 과정에서 혼란스러워 보이는 오늘날의 디자인 현상들을 상당 부분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존 헤스켓의 유용성(utility)과 유의성(significance)1 개념을 접하게 되었다(Heskett, 2005). 본 연구는 헤스켓의 이 두 가지 개념을 출발점으로 하여 예술이나 공학 등의 인접 분야와 구분되는 디자인만의 핵심 가치를 디자인사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례들과 함께 고찰하면서 구체화하고 또한 그 핵심 가치들 간의 관계를 보다 체계화 하는데 목적이 있다.

1. 2. 연구의 방법

디자인에 있어서 유용성과 유의성은 헤스켓이 디자인의 다양한 양상을 설명하기 위해 그의 책 『로고와 이쑤시개, 우리 삶을 엿보는 디자인 이야기』에서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그는 디자인 분야에서 유의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을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의 등장과 연관 지어 설명하고 있다. 본 연구의 2장에서는 헤스켓의 유용성과 유의성 개념을 추가적인 참고 문헌들을 통해 보다 심도있게 살펴보고 그 두 가지 개념이 모더니즘 및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이 추구했던 가치들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설명해 보고자 하였다. 3장에서는 헤스켓이 유의성에 포함시켜 설명했던 심미적 측면을 독립된 별도의 주제로 분리하여 디자인 분야에서 심미성이 차지하는 위치와 의미를 여러 디자인 사례들을 통해 살펴보았다. 4장에서는 앞에서 살펴본 유용성, 유의성과 심미성의 세 가지 개념들이 오늘날 창작되고 있는 다양한 디자인 결과물들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핵심적인 키워드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펴보았으며 공학이나 예술과 같은 인접 분야와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설명해 보고자 하였다. 본 연구에서 언급되는 내용들은 상당 부분 다양한 디자인 분야에 공통적으로 적용 가능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기본적으로 본 연구는 제품 디자인의 관점에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으며 일부 내용들은 다른 디자인 분야에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미리 밝힌다.


2. 디자인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

2. 1. 유용성과 유의성

유용성은 사용상의 적절성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는 제품을 원활하게 사용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는데, 디자인이 실용적인 목적에 봉사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렇게 디자인하지 않았을 때의 결과는 어떤지 등과 연관된다… 디자인 개념으로서 유의성은 사물의 형태가 그것을 사용하는데 있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혹은 그것에 부여된 역할과 의미는 무엇인지 설명하는 말이다. 이는 때때로 우리의 관습과 의식 속에서 중요한 상징이나 아이콘을 이룬다. 효율성을 강조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유의성은 표현이나 가치와 더 관련이 깊다. (Heskett, 2005, pp. 47-48)

헤스켓은 유용성과 유의성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노르웨이 이쑤시개와 일본 이쑤시개를 비교한다. 그는 노르웨이의 요르단 사에서 만든 매우 단순하고 기능적으로 디자인되어 있으며 형태적 측면에서 어떠한 과잉도 없는 덴탈 스틱이라는 이름의 이쑤시개를 디자인의 유용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소개한다. 반면,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본의 전통적인 이쑤시개는 손잡이 끝부분을 쉽게 부러뜨려 이쑤시개 받침대로 쓸 수 있도록 중첩된 홈이 파여 있는데 받침대의 용도를 모르고 보면 그 홈들이 장식처럼 보이기도 한다(Figure 1). 헤스켓은 이것을 젓가락도 받침대에 올려놓는 일본의 식문화가 이쑤시개의 형태에 영향을 미친, 디자인의 유의성 측면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설명하고 있다. 헤스켓은 이 일본 이쑤시개를 포함하여 많은 경우 디자인 결과물에 유용성과 유의성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설명하였으며, 어떤 경우에는 유용성과 유의성 중 어느 한쪽만 강조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주장하였다. 예를 들어 의료용 장비나 열차 시간표와 같은 대상물들의 경우 기능과 정보가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유용성이 강조되는 디자인 사례로 설명하고 있으며, 반면 보석이나 도자기 인형 같은 제품들의 경우 그 제품의 심미적, 혹은 사회 문화적 가치를 향유하기 위한 목적이 크므로 유의성이 중요시되는 디자인 사례로 분류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그는 분명히 디자인의 심미적 가치를 유의성에 포함시켜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헤스켓이 제시한 유용성, 유의성 개념에서 본 연구자가 가장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면서 2장의 소결부분에서부터 3장에 걸쳐 디자인의 심미성이라는 주제로 별도로 중요하게 다룰 내용이기도 하다.

Figure 1

Japanese-style toothpicks that Heskett introduced as an example of significance

유용성과 유의성에 대한 헤스켓의 설명을 요약하면 사용자의 이성적 기대를 충족시키는 디자인 가치를 유용성으로 감성적 기대를 충족시키는 디자인 가치를 유의성으로 구분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심미성은 수용자의 감성적 측면과 더 연관되어 있다고 받아들여지므로 심미성이 유의성에 포함되는 것이 일면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헤스켓은 또한 모든 기능적 측면이 세심하게 조화를 이루는 부엌칼을 예로 들면서 손에 딱 들어맞는 유용성이 매우 높은 수준에 이르면 단순한 기능 이상의 감성적 가치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유용성과 유의성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겹치는 영역이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유용성과 유의성은 출발점과 지향점에 있어서 분명히 서로 구별되는 주요 특징들이 별도로 있으므로 본 연구에서는 그 대별되는 측면들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진행하였다. 유용성과 유의성은 지난 세기를 관통한 두 개의 거대한 사조인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므로 우선 유용성과 유의성의 관점에서 그 두 가지 사조를 먼저 살펴보고, 그 다음으로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의 등장 이후 모호해진 디자인과 예술의 경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2. 2. 모더니즘 디자인의 실용주의적 출발

아돌프 로스는 1908년 선진 문화의 취향은 거추장스러운 장식을 거부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고 선언했다(Loos, 2006). 당시의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은 과거 수공업 시대에 손으로 만드는 것을 전제로 디자인된 제품의 형태를 기계 생산으로 흉내 내는데서 발생하는 불합리함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미학을 찾고자 노력했다(Heskett, 2004). 퓨리즘의 시대를 연 르 코르뷔지에는 “명확하고 모호함이 없는 위대한 단순 형태”(Corbusier, 1927, p. 31; Venturi, 2004, p. 34에서 재인용)를 주장했으며 장식을 배제하고 소재의 진실성을 부각시키는 기능을 따르는 형태가 새로운 시대를 대표하게 되었다(Sparke, 2013). 그렇게 그 시대의 모습을 만들어가던 20세기 초반의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은 조형적 변화와 더불어 평등주의적 신념도 추구하였는데, 그들은 기계화된 생산의 효율성을 바탕으로 잘 디자인된 집과 가구가 제공하는 혜택을 일반 대중들이 저렴한 가격에 누릴 수 있는 세상을 꿈꾸었다. 워렌 버거가 묘사한 당시의 모습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현대 디자인 태동기의 스타 디자이너 중 한사람이었던 윌리엄 모리스는 기계 생산에 회의적이기는 했지만 아름답게 디자인된 제품의 혜택을 일반 대중들도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회주의자였으며, 그 이후 바우하우스가 등장해 기계 생산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였으나 그들 역시 평등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적은 것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가장 많이 제공하는 것”(p. 300)이라고 그들의 사명을 정의했던,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던 찰스와 레이 이임즈 부부에게서도 그러한 모더니스트적 이상을 엿볼 수 있다(Berger, 2011). 합리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모더니즘 디자인의 이러한 이성적 접근 방식은 헤스켓이 설명한 디자인의 유용성 측면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모더니스트 건축가들의 신념과 열정은 20세기 초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만들어 나갔다. 하지만 때로는 그들의 과도한 기능주의적 접근이나 획일화된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계몽주의적 태도가 그들을 무표정하고 비인간적으로 만들기도 했다. 르 코르뷔지에와 발터 그로피우스가 창립 멤버였던 근대건축국제회의(CIAM) 의 이상에 의해 미국의 세인트 루이스에 1956년 조성된 대규모 공동주택단지였던 프루이트 이고우(Pruitt–Igoe)는 모더니즘 건축의 그러한 폐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알려져 있다. 빈곤층이 유입되고 슬럼화 되면서 반복되는 강력범죄로 인하여 이 단지는 결국 시 당국에 의해 철거되게 되었고, 그 철거를 위한 발파 시점인 1972년 7월 15일 오후 3시 32분은 포스트모더니즘 건축가인 찰스 젠크스에 의해 모더니즘 건축의 사망시각으로 기록되었다(Kim, 2013). 1966년 초판이 출간된 『건축의 복합성과 대립성』이라는 책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서막을 알린 로버트 벤투리는 그 책에서 모더니즘 건축이 추구하는 획일성과 단순성을 비판했으며 less is more라는 교의가 복합성을 한심하게 만들고 한 가지를 표현하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배제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부적 복합성을 결여한 얄팍한 단순함은 단조로움을 줄 뿐이라며 모더니즘의 경구를 비틀어 'less is bore’(p. 37)를 제시했고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시작을 선언했다(Venturi, 2004).

2. 3. 획일적 유토피아주의에 대한 반작용

컬러플한 플라스틱 제품과 화려한 색상의 의상들로 대표되는 팝디자인이 1960년대에 등장하면서 장난스럽고 가벼운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하게 되었다. 팝디자인은 제품의 형태를 일시적인 유행의 표현으로 간주했으며 이것은 모더니즘의 가치에 도전하는 시도의 전주곡이기도 했다(Sparke, 2013). 페니 스파크가 덧붙여 설명한 1960~70년대의 시대적 분위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60년대에는 과장된 스타일의 자동차가 등장했고, 집적회로의 발명을 기반으로 소니가 워크맨을 출시했으며, 콩코드 여객기가 매일같이 대서양을 초음속으로 횡단했고,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하면서 사람들이 인류의 성취를 축하하던, 유토피아적 낙관주의가 퍼져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70년대에 접어들어 연이은 오일쇼크로 불경기가 찾아오면서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고 물질주의에 대한 의심을 품기 시작했으며 그러한 영향으로 채소를 직접 길러 먹거나 옷이나 가구를 직접 만들어서 사용하는 DIY 경향이 나타났다(Sparke, 2013). 이러한 변화의 시기에 벤투리는 모더니즘 건축의 형식주의적 한계에 대해서 비판했으며 건축의 의미와 완전성은 질서로부터 탈출하면서 강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배타적인 순수성과 명료함 대신 포괄적인 복합성과 모호함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나는 ‘순수한 것’보다는 혼성품이, ‘깨끗한 것’보다는 복합적인 것이, ‘정형’보다는 비정형이, ‘명확한 것’보다는 비개성적이며 뒤틀어지고 ‘흥미로운’동시에 지루함을 주는 모호한 것이 좋다. 그리고 나는 ‘디자인된 것’보다는 관습적인 것, 배타적이기보다는 수용적이고, 단순하기보다는 과다에 가까운 것, 직선적이고 명백한 것보다는 모순적이며 양의적인 것을 좋아한다. 또 명백한 통일감보다는 약간 너저분해도 생동감이 있는 쪽을 취한다. 나는 불합리성을 인정하고 이중성을 주장하려는 것이다. 나는 의미의 명료함보다 풍성함을, 밖으로 드러난 기능뿐만 아니라 내면에 숨은 기능을 택한다. 나는 ‘양자택일’보다 ‘양자공존’이, 흑 아니면 백보다는 흑과 백, 때로는 회색이 좋은 것이다. 가치있는 건축은 여러 차원에서 의미와 시점의 결합을 요구한다. (Venturi, 2004, p. 33)

켄야 하라는 그의 책 『디자인의 디자인』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한때의 소동”이 라고 평가 절하했다(Hara, 2011, p. 429). 기능을 따르는 형태나 소재의 진실성과 같은 모더니즘의 디자인 원칙들과는 거리가 먼 과장된 형태와 색상의 제품이나 건축물들을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2000년 전후의 시기가 지나고 그러한 시각적 과장의 경향들이 상대적으로 사그라들면서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이 유행처럼 잠깐 왔다가 사라진 것으로 보였고 그에 비해 모더니즘 디자인은 초기의 모습을 공고히 유지하면서 아직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본 연구자도 이해했었다. 하지만 그러한 이해가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 이후에 디자인을 접한 디자이너로서, 그 전과 후의 차이를 직접 체감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착각이었다는 점을 본 연구를 위해 여러 문헌들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깨닫게 되었다. 과거의 모더니즘 디자인은 획일적인 이상을 추구했으며 사람들 삶의 풍성하고 다양한 모습들을 포용할 의지도 능력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기 본지페가 지적했듯이 “모더니즘은 광범위하게 유토피아적 지향성을 표명했고, 이로 인해 파편화를 감내하지 못했다.”(Bonsiepe, 2003, p. 171)

2. 4. 모호해진 디자인과 예술의 경계

… 사용자의 생각보다 자신의 생각에 더 몰두한 디자이너들이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 같은 경향은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이 나타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여기에 속한 이론들은 기능적인 면보다 디자인의 의미론적인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하면 제품이 어디에 사용되는가보다 어떤 가치를 갖는가가 제품의 개념과 용도를 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초점이 사용자가 아닌 디자이너에게 맞춰지고, 기능과 무관하거나 관련이 적지만 ‘의미’라는 명목으로 정당화된 형태를 디자인할 수 있는 길이 디자이너에게 열린 것이다. (Heskett, 2005, pp. 65-66)

2장의 앞부분에서 획일화를 통한 효율성이나 기능적 고려와 같은 이성적 측면의 가치만을 추구하던 모더니즘 디자인이 어떻게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반작용을 통해 다양한 삶의 모습이나 문화적, 감성적 가치를 수용하는 오늘날의 디자인으로 변화해 왔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았고, 바로 위에 인용된 헤스켓의 글을 통해 실용적 가치나 사용자에 대한 관심 대신 디자이너 자신의 생각이나 제품이 표방하는 의미에 더욱 관심을 가지는 디자이너들이 등장하면서 디자인과 예술의 경계가 모호해지게 되는 상황도 살펴보았다. 아무리 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 졌다고 할지라도 두 분야를 완전히 동일시할 수 없다면 디자인과 예술을 구분하는 근본적인 기준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국의 제품 디자이너인 샘 핵트는 이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예술은 당신을 생각하게 만드는 사고의 제시이며, 디자인은 당신이 사용하도록 하는 사고의 소통이다. 간단히 말해서, 예술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지만 디자인은 타협되지 않을 수 없다”(Colin & Hecht, 2010, p. 15). 예술은 작품을 통해 일방적으로 생각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성립될 수 있지만 디자인 결과물은 누군가가 사용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디자이너들이 디자인 과정에서 여러가지 의사결정을 할 때 타겟 사용자는 그 결정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대중들은 왜 무의식중에라도 디자인과 예술을 연관 짓는 것일까? 오늘날의 예술이 더 이상 아름다움만을 추구하지는 않지만 아직도 상당 부분의 예술은 아름다움을 다루고 있으며, 디자인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장식미술의 역할도 그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장식을 통해 제품과 환경에 아름다움을 더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반면 디자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 다수는 예술, 장식미술 혹은 공예로부터 디자인을 구분하고자 하는데 그 이유가 단순히 사용자보다 디자이너의 자기표현을 중요시하는 예술적 디자인에 대해 동의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디자인은 그 결과물의 시각적, 외형적 특징 뿐 아니라 사용자를 염두에 둔 더 근본적인 여러 기능적, 의미적 요소들까지 고려하는데 반해서 장식과 디자인을 동일시하는 사람들의 지나친 단순화가 디자인의 능력을 단지 표피적인 것을 다루는 것으로 과소평가하게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2. 5. 소결

유용성을 사용상의 적절성으로, 유의성을 디자인 결과물에 부여된 의미로 설명한 헤스켓의 두 개념에 대한 정의를 바꿀 필요까지는 없더라도, 헤스켓의 유의성 정의에 부연된 보석과 도자기 인형 사례 설명에서 드러나는 유의성의 모호함을 보다 심도 있고 엄밀하게 들여다 볼 필요는 있어 보인다. 헤스켓은 디자인에 있어서 효율성이나 합리성 측면을 대변하는 유용성의 개념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들을 설명하기 위해 그것과 대별되는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는 유의성 개념을 함께 제시했고 그 유의성을 통해 다소 모호하게 남아있던 다양한 디자인 현상들이 상당 부분 명쾌하게 설명된다. 하지만 사용이라는 개념과 명확히 연결되는 유용성에 비해 유의성은 그 의미가 여전히 상대적으로 모호하고, 실용적 측면 이외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생각될 정도로 지나치게 포괄적인 측면이 있다. 특히 형태를 다루는 디자인이 제공하는 가치 중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심미성의 개념을 유의성에 포함시켜 한꺼번에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헤스켓처럼 심미적 가치를 유의성에 포함시키게 되면, 유용성을 추구하면서 심미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경우를 설명하기가 어렵게 된다. 예를 들어 모더니스트 디자이너나 건축가들은 장식을 배제하고 기능과 효율성에 입각한 결과물을 만드는 것을 지향했지만 그렇다고 심미적 완성도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바우하우스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오히려 기계 생산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조형 양식을 개척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기본적으로 디자인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로 헤스켓의 유용성과 유의성 개념을 두 축으로 하면서, 형태를 다루는 디자인의 형식 측면을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로 심미성을 별도로 분리하여 다음 장에서 관련된 디자인 이슈들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3. 형태, 디자인의 내용을 담는 그릇

3. 1. 장식과 디자인

켄야 하라가 지적했듯이 오늘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장식을 배제한 단순한 형태들에 대한 선호는 따지고 보면 모더니즘 건축과 디자인이 등장한 이후의 현상이며,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사실상 대부분의 시간 동안 정교하게 장식된 인공물들이 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어왔다. 왜냐하면 숙련된 장인이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만 만들 수 있는 정교한 장식의 결과물들은 문명의 시작부터 정치적, 종교적 혹은 경제적 권력을 가진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는 상징물이었기 때문이다(Hara, 2011). 헤스켓(2004) 역시 그의 또 다른 저서에서 사람들의 오랜 장식 선호 경향을 보여주는 몇 가지 사례를 들고 있는데, 그 첫 번째가 윌리엄 다이스의 다음과 같은 강연이다. “우리가 장식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천성이며, 우리는 기계적 고안품들이 우리에게 감각적인 기쁨을 줄 필수 성분이 빠진 채 껍데기 없는 해골이나 깃털 없는 새와 같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한 그와 같이 되는 것을 참을 수 없다”(p. 22). 헤스켓은 또한 1840년에 장인들과 기계공들을 위한 신문에 실린 다음과 같은 내용을 소개하면서 사람들에게 내재된 더 나은 삶에 대한 갈망이 장식이라는 형식으로 표현되었다고 설명한다. “실리주의자들과 그들의 훌륭한 이론, 그리고 세밀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회화나 그 유사한 예술행위에서 기쁨을 느낀다. 사람은 그 존재를 전적으로 ‘실리’라는 올가미 속에만 가둬 둘 수 없다”(p. 51). 이러한 뿌리 깊은 장식 선호의 역사를 뒤로 하고 기계 생산에 적합한 단순하고 효율적인 모더니즘 조형 언어를 확산시키기 위해 로스는 1908년 「장식과 범죄」라는 유명한 비평문까지 써가며 “장식을 지난 시대의 예술적 배설물의 징표”(p. 296)라고 비판하고 “문화의 진화는 일상용품에서 장식을 멀리 하는 것과 같은 의미”(p. 289)임을 주장했다(Loos, 2006).

3. 2. 심미성에 관한 다양한 취향들

다양한 시각적 양식이 공존하는 오늘날의 디자인에 있어서 심미성과 관련된 부분은 특별한 정답이 없는 주관적 취향과 개인적 선택의 영역으로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제임스 다이슨(1997)은 북유럽 취향의 단순한 디자인의 대유행이 1950년대 이후 영국 디자인의 침체기를 가져왔다고 단언하고 있다. 스파크는 1980~90년대에 일본식 미니멀리즘이 서구에서 널리 확산된 것은 피에르 부르디외가 그의 책 『구별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에서 미적 취향은 교육수준과 관련이 있으며 교육수준이 낮을수록 유형의 재화를 모으는 경향이 있고, “좋은 감각이란 되도록 최소한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Sparke, 2013, p. 210). 로버트 그루딘(2011)도 모든 종류의 소통에서 수사학적 과잉은 기만과 속임수의 징후라고 설명하면서, 좋은 디자이너는 진실을 말하고 사용자가 현실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주장했다. 제스퍼 모리슨은 그의 책 『슈퍼 노멀, 평범함 속에 숨겨진 감동』에서 보다 극단적으로 “디자인이라는 직업이 오염의 주된 원인”이 되었으며 “색상, 모양, 충격 요법 등을 동원하여 물건을 최대한 눈에 띄게 만드는 경쟁이 붙었다”고 단언했다(Fukasawa & Morrison, 2009, p. 28). 모리슨이 평범한 디자인의 미덕을 옹호하기 이전에, 디터 람스도 잘 디자인된 제품은 사용되지 않을 때 불필요한 주의를 끌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로 영국 집사의 비유를 사용했다(Heskett, 2005). 사실 무엇인가를 특별해 보이도록 만들 수 있는 능력은 분명히 재능이며, 오늘날처럼 무수한 제품들이 경쟁하는 시장에서 평범하기만 한 디자인으로는 살아남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모리슨이 노멀 앞에 슈퍼를 붙여 수식한 이유도 그가 추구하는 바가 그저 평범함이 아니라, 특별함을 위한 특별함을 지양하고 더욱 본질에 집중해 사람들의 기대를 넘어서려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3. 3. 단순함을 추구하는 이유들

유구한 장식의 역사 이후, 모더니스트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은 기계 생산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심미성을 찾는 과정에서 장식을 배제하면서 기능과 재료의 특성에도 부합하는 단순한 조형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조형적 단순성을 지향하는 우리 시대의 영향력있는 디자이너들의 글을 살펴보면서 그들이 단순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다양한 이유들도 찾을 수 있었다. 앞에서 소개했듯이 모리슨에게 단순함은 제품을 필요이상으로 특별하게 보이도록 노력하는 대신 제품의 본질적 목적에 초점을 맞추어 디자인한 결과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다. 타이포그래피 비평가였던 비어트리스 워드의 “투명한” 디자인 개념도 그와 비슷한 접근법으로 보인다. 워드는 그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포도주잔을 예로 들었는데, 호사스럽게 장식된 금으로 만들어진 포도주잔과 투명한 유리잔 두 가지 중에서 선택할 수 있을 때 포도주 자체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내용물을 드러내도록 만들어진 유리잔을 선택할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타이포그래피도 그 자체의 존재를 가급적 드러내지 않고 겸손한 모습으로 내용의 전달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Kang et al., 2004).

나오토 후카사와는 일본식 단순성을, 주 기능을 제공하면서 부수적 기능에 대한 가능성도 허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기본적인 일본식 망치에는 미끄러짐 방지용 고무 그립이 없는데, 망치질을 시작할 때 못 위치를 잡기 위해서 손잡이를 짧게 잡았다가 이후 본격적으로 못질을 하기 위해 뒤로 옮겨 잡을 때 이 단순성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요즘의 제품들이 특정한 용도별로 지나치게 세분화되어 있으며 이는 판매를 늘리기 위한 얄팍한 상술에 기인한 측면이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Goto, Sasaki, & Fukasawa, 2005). 단순한 디자인에 대해 살펴보면서 우리 시대에 ‘위대한 단순 형태’를 가장 성공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애플의 사례도 빼놓을 수가 없는데, 스티브 잡스 전기에 소개된 내용에 의하면 최고 디자인 책임자인 조너선 아이브는 애플이 추구하는 단순성에는 심미적 목적뿐만 아니라 사용자 경험의 측면에서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장치를 통제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Isaacson, 2011). 아이브에 대한 별도의 책 Jony Ive에서 애플이 단순함을 추구하는 또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단순함이 제품의 수명을 보존해 주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브는 경험을 통해 디자인에 특정한 스타일이 개입되면 유행의 부침에 따라 디자인의 조로 현상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스타일에 연연하는 대신 제품의 본질에만 집중하게 되었다고 한다(Kahney, 2014).

3. 4. 소결

오늘날의 디자인은 과거에 비해 넓은 주제들을 다루기 때문에 그 최종 결과물이 시각적이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제품 디자인에 한정해서 보자면 심미성은 디자인을 향유하는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 디자인에 기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때로 디자이너가 결과물의 기능이나 의미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있기는 하더라도, 다른 디자인 분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품화에 큰 투자비용이 들어가고 시장에서 개개인의 소비자들로부터 선택받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제품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심미적 완성도의 중요성을 평가절하하기는 매우 어렵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자유분방한 표현적 조형 언어를 사용하며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허문 포스트모더니스트 디자이너들뿐만 아니라 합리적 유용성을 추구했던 모더니스트 건축가와 디자이너들도 기계 생산의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조형 언어를 구축하며 심미적 완성도를 추구하였다. 모더니스트 디자이너들이 유용성에 바탕을 두고 대량 생산에 적합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면, 포스트모더니스트 디자이너들은 사회 문화적 관점에서 디자인 결과물의 의미를 드러내는데 적합한 개성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사례들을 살펴보더라도 형태를 통해 결과물이 드러나는 디자인에서는 내용 측면에서 결과물이 유용성을 의도하느냐, 유의성을 의도하느냐를 구분하는 것과 무관하게 표현 형식의 측면에서 기본적으로 조형적인 미의식이 바탕에 전제된다고 볼 수 있다.


4. 유용하고 아름다우며 의미 있는 디자인

4. 1. 공학과 예술 그리고 디자인

최근 들어 디자인이 다루는 영역이 넓어지고 연관된 분야들과의 융합이 활성화되면서 디자인과 인접 분야들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제품 디자인의 관점에서 보면 대표적인 인접 분야 중 하나가 공학이며, 앞서 2장에서 살펴 보았듯이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의 등장 이후 예술이나 공예와의 경계도 명확하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은 분명히 예술이나 공학과는 다르다. 그렇다면 디자인을 다른 분야와 구분 짓는 핵심적인 기준은 무엇일까? 무엇이 디자인을 디자인이도록 하는 것일까? 사용자의 관점에서 제품 디자이너들은 안전하면서 사용하기에도 편리한 제품을 디자인해야한다. 또한 제작사의 입장에서는 필요이상의 비용이나 시간이 들지 않는 효율적인 방법으로 만들 수 있도록 디자인해야한다. 모리슨은 이러한 산업 디자이너의 역할을 “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봉사하며, 만들기 쉽고 생활에 편리한 물건을 고안하고자 하는 디자인의 역사적이고 이상적인 목적”이라고 요약하고 있다(Fukasawa & Morrison, 2009, p. 28). 유용함이나 효율, 안전과 같은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방법론을 적용한 이성적 접근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디자인에 기대하는 가치는 거기에 그치지 않으며 성공적인 디자인이 되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감성적 기대를 만족시키고 심미적인 완성도 또한 갖추어야 한다. 디자인의 인접 분야 중 공학이 전적으로 이성적, 효율적, 합리적 관점에서 유용성을 추구하는 분야라면, 예술은 그 결과물의 의미적, 심미적 측면을 실험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예술 작품을 접할 때 우리는 용도를 따지지 않으며, 어떤 면에서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모든 예술은 아무런 쓸모도 없다”(Forsey, 2016, p. 42). 디자인은 공학처럼 유용성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사용자의 사회 문화적 기대와 심미적 완성도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측면에서 공학과 차별화되며, 또한 디자인은 예술처럼 유의성과 심미성을 추구하면서도 추가적으로 사용과 관련된 최소한의 고려라도 포함된다는 측면에서 예술과 구분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만들어지고 있는 다양한 디자인 결과물들의 모습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키워드로 유용성, 유의성과 심미성을 들 수 있으며 이 키워드들은 또한 공학이나 예술과 같은 인접 분야들로부터 디자인을 구분 짓는 개념으로써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디자인과 인접 분야의 융합을 위해서도 타 분야와 구분되는 디자인만의 가치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판단된다.

4. 2. 디자인의 가치를 설명하는 세 가지 키워드

앞에서 살펴본 유용성, 유의성과 심미성 세 가지 개념들 사이의 관계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용성과 유의성은 디자인의 내용적 측면에서 지향하는 방향성을 설명하는 키워드라고 볼 수 있다. 유용성 개념이 디자인에 대한 이성적 접근, 사용자에 대한 관심, 제작과 사용상의 효율성 등과 관련이 있다면, 유의성은 상대적으로 감성적 접근, 디자이너의 주장이나 개성의 표현, 디자인 결과물의 사회 문화적 의미 등과 관련이 있어 서로 대별되는 측면이 있다. 모더니즘 디자인에서 실용적 가치를 중시하고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 시기에 의미적 가치가 부각되었듯이 시대에 따라 그리고 경우에 따라 유용성과 유의성 중 어느 한쪽이 특별히 강조될 수도 있다. 하지만 예를 들어 자동차 디자인이 운송 수단이라는 기능적 측면과 함께 사용자의 취향이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의미적 측면과도 동시에 관련이 있듯이, 많은 경우 유용성과 유의성의 두 가치가 하나의 디자인 결과물에 적절히 섞여 균형을 이룬다. 유용성과 유의성이 디자인 결과물의 내용 및 방향성과 관계되는 것이라면 심미성은 형태를 통해 제시되는 디자인 결과물의 형식과 관련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기자나 작가가 글이라는 매체로 결과물을 만들고, 음악이라는 장르에서는 결과물이 소리로 드러나듯이, 제품 디자인을 포함한 많은 디자인 분야의 결과물들은 그 내용을 결국 형태라는 시각적 형식으로 표현하게 되며 이 형태의 독창성과 완성도가 심미성을 결정하게 된다.

Figure 2

Three values of design


5. 결론

본 연구자는 한 전자회사 소속의 제품 디자이너로 10년여간 일을 했었는데, 그렇게 조직에 소속되어 디자인을 할 당시에는 객관적인 디자인 프로세스에 따라 합리성이나 효율성에 초점을 맞춘 결과물을 만드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다가 영국에서 디자인을 다시 공부할 기회를 갖게 되어 효율성이나 합리성, 사용자나 대량생산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는 다양한 시도들이 디자인의 범주에 포함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접하면서 제품을 디자인하는데 여러가지 접근 방법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과연 어디까지를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혼란의 시기도 겪었는데 그러한 혼란을 상당부분 해소시켜 준 개념이 헤스켓이 설명한 유용성과 유의성이었다. 하지만 헤스켓이 디자인의 다양한 양상들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유용성과 유의성 개념에서, 특히 유의성이 너무 광범위한 의미를 포함하기 때문에 생기는 불명확성의 한계 또한 있다고 판단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다양한 참고 문헌들을 통해 유용성과 모더니즘, 유의성과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의 연관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았으며, 또한 헤스켓의 유의성 개념에서 심미성을 분리하여 디자인을 특징짓는 세 번째 핵심 키워드로 별도로 살펴보았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에서는 오늘날의 다양한 디자인 현상들을 이해하기 위한, 그리고 디자인이 제공하는 가장 근본적인 가치를 설명하는 세 가지 핵심적인 키워드로 유용성, 유의성과 심미성을 제시하였다. 또한 그 세 가지 개념들을 통해 공학이나 예술과 같은 인접 분야와 디자인의 차이점을 설명하였으며, 그 세 가지 핵심 가치들 간의 관계를 보다 체계적으로 구조화하여 설명하고자 시도하였다.

Glossary

1) 유용성(有用性)과 유의성(有意性)의 의미로 영어 원서 Toothpicks & Logos : Design in Everyday Life (2002)에서 사용된 단어는 각각 Utility와 Significance이며, 2005년 출판된 한국어 번역서에서 이를 유용성과 유의성으로 번역하였기에 본 논문에서도 같은 한국어 표현을 사용하였다.

Acknowledgments

본 논문은 저자의 석사학위 논문(Oh, S. 2015. A Voice of Design: Design Exploration in Search of a Voice as a Design Practitioner. Design Products, Royal College of Art, London, UK.)을 기초로 심화 연구를 진행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본 연구는 홍익대학교 신임교수 연구지원비에 의하여 지원되었습니다.

This work was supported by the Hongik University new faculty research support fund.

Notes

Citation: Oh, S. (2018). Useful, Beautiful, and Meaningful Design: Starting from John Heskett’s Notions of Utility and Significance. Archives of Design Research, 31(3), 219-229.

Copyright :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educational and non-commercial use,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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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

Figure 1
Japanese-style toothpicks that Heskett introduced as an example of significance

Figure 2

Figure 2
Three values of desig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