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s of Design Research
[ Article ]
Archives of Design Research - Vol. 32, No. 1, pp.163-175
ISSN: 1226-8046 (Print) 2288-298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28 Feb 2019
Received 28 Aug 2018 Revised 19 Nov 2018 Accepted 19 Nov 2018
DOI: https://doi.org/10.15187/adr.2019.02.32.1.163

고샤 루브친스키의 패션 이미지와 내러티브

Selee Lee이세리
Fashion Design, Ewha Womans University, Seoul, Korea 이화여자대학교 패션디자인전공, 서울, 대한민국
The Fashion Images and Narratives of Gosha Rubchinskiy

Correspondence to: Selee Lee ciaoselee@gmail.com

연구배경 최근 패션계에 새로운 미학을 전달하는 대표 주자이자 다학제적 스토리텔러로 알려진 패션디자이너 고샤 루브친스키는 남다른 감성의 패션 컬렉션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사진집의 출판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본 연구는 그의 사진 작업이 보여주는 내러티브에 집중하여 그 근원과 양상을 검토함으로써 오늘날 주목받고 있는 패션디자이너 루브친스키의 이미지 작업에 대한 근본적 이해를 구하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

연구방법 패션 이미지가 전하는 내러티브의 근본을 밝히고자 내러티브에 대한 개념과 관점을 살펴보았고, 이를 루브친스키의 패션 이미지와 내러티브 분석의 기반으로 삼았다. 본 연구의 주요 연구대상은 많은 기사문에서 공통적으로 루브친스키의 주요 출판물로 언급되고 있는 3권의 매거진과 5권의 포토북이다. 이들 사진자료와 관련 인터뷰들을 대상으로 그가 형상화해온 패션 이미지와 내러티브의 근원이 어떠한 주제로부터 시작되었는지 추출하고 그 내러티브의 양상을 관찰하였다.

연구결과 2009년부터 루브친스키가 일관되게 전하고자 했던 내러티브의 근원을 정리한 결과 1990년대 반사회주의 에너지, 유스제너레이션과 서브컬처, 뉴러시아 글로벌리즘 등의 세 가지 주제를 도출할 수 있었다. 세 가지 내러티브 전체를 관통하는 차원에서 루브친스키는 러시아 젊은이들의 실제 삶을 꾸준하게 전달하고 있다. 내러티브에 대한 광의의 개념 및 범주화에 기반을 두고 루브친스키의 패션 이미지에 나타난 내러티브의 양상을 관찰해 볼 때, 사실 기반의 내러티브, 감각경험 지향의 내러티브, 담화 창출의 내러티브 등 세 가지 양상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결론 창의적 패션디자인의 세계에서 패션 이미지의 표현은 매우 적극적으로 새로운 미감의 발굴을 요구한다. 루브친스키는 패션 이미지를 통해 일관된 내러티브로 자신의 독특한 정체성을 표현한 디자이너이다. 그의 이미지와 내러티브는 청춘이라고 하는 찬란한 시기를 대상으로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문화적 담화를 일으켰다. 루브친스키가 보여준 것과 같은 새로운 패션 이미지와 내러티브의 등장 및 반향은 앞으로 패션계에 더욱 큰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며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사료된다.

Abstract

Background Gosha Rubchinskiy, who is known as a representative delivering new aesthetics in the field of fashion and a multidisciplinary storyteller, attracts attention because of not only his special fashion collection but also a series of photograph collections. This research focuses on his narratives of photographs and finds a fundamental understanding of his image works.

Methods This paper reviews the concepts and viewpoints of the basics of narrative in order to investigate his narratives of fashion images and develops these works to become the background of the analysis on Rubchinskiy’s fashion images and narratives. The major research objects are three magazines and five photo books, which are known as his representative publications by many news articles. Analyzing these materials, this research figures out a topic as a source of his fashion images and narratives and observes the aspect of his narratives.

Results As the results of the analysis on the origin of his narratives since 2009, there are three major topics: the energy of anti-socialism in the 1990s, youth generation and subculture, and new Russian globalism. Rubchinskiy continuously introduces the real lives of young Russians on the basis of these three narratives. In addition, his narratives represent three aspects: fact-based narratives, sensory experience-oriented narratives, and discourse-making narratives. These aspects derive an analysis on his fashion images and narratives in terms of concepts and classifications.

Conclusions The expression of fashion images in the world of creative fashion design requires the discovery of a new sense of beauty. Rubchinskiy is a designer who shows his distinctive identity by fashion images containing his constant narratives. His images and narratives talk about the beauty of splendid youth and evoke cultural discourses. The appearance of new fashion images and narratives like Rubchinskiy’s will create a greater wave of change and have a stronger effect on the world of fashion in the future.

Keywords:

Gosha Rubchinskiy, Fashion Photo, Fashion Image, Fashion Narrative, 고샤 루브친스키, 패션 사진, 패션 이미지, 패션 내러티브

1. 서론

최근 패션계의 큰 변화를 주도하는 패션디자이너로서 고샤 루브친스키(Gosha Rubchinskiy)를 빼놓을 수 없다. 각종 저널과 매거진에 등장하는 루브친스키는 과거의 전통적 틀을 깨는 방식을 통해 새로운 감성을 전달하는 존재로 인식된다. 코자레빅(Kozarevic, 2014)은 루브친스키에 대하여 오늘날의 현대적이며 다면적인 아티스트의 가장 좋은 본보기라 하였고, 퀵(Quick, 2017)은 소비에트 연방 몰락기를 경험한 젊은 디자이너들의 스타일 혁명을 소개하며 루브친스키를 창의적 에너지의 대표 주자라고 소개하였다. 한편 페도로바(Fedorova, 2014)는 루브친스키를 러시아 출신의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디자이너이자 매우 드문 다학제적 스토리텔러라 칭하였다.

루브친스키 단독에 대한 연구는 유독 패션 이외의 분야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특이하다. 프랑스에서 러시아학을 연구하는 학자 로버츠(Roberts, 2017a)는 루브친스키의 컬렉션을 비롯한 작품 전반을 통해 그가 러시아의 현대적 정체성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밝혔고, 또한 루브친스키의 패션필름 중 대표적인 세 편에 집중하여 그 내용을 소개하고 최근 패션디자인 분야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패션필름의 영향력 및 의의를 명시하는 연구를 하였다(Roberts, 2017b). 한편 스웨덴의 슬라브어 학자 잉스트롬(Engström, 2018)은 후기 소비에트 반문화에 대한 기고에서 루브친스키를 현대 러시아 반문화의 새로운 미학을 전달하는 대표 주자로 소개한 바 있다. 이와 같이 패션 분야를 넘어서 주목받는 루브친스키의 두드러진 활약은 시각적으로만 제한되는 단순 유행 이상이며 정치, 사회, 문화를 넘나드는 시대상의 반영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현재까지 루브친스키에 대한 연구가 위와 같이 그의 디자인 정체성과 사회문화적 영향력에 대한 주제로 집중되었다면, 본 연구는 루브친스키의 주요 창작 분야 중 특히 이미지 작업에 나타난 내러티브적 표현에 집중한 것이다. 루브친스키에게 있어 패션디자인은 필름, 사진, 책, 그리고 이벤트로 이어지는 보다 원대한 작업의 한 부분이다(Quick, 2017). 루브친스키는 한 시즌의 패션 컬렉션을 완성할 때에 필름, 포토북, 패션 퍼포밍 프레젠테이션으로 이루어진 세 부분의 통합을 구상하곤 하였다. 실제로 2010 S/S 컬렉션에 대한 인터뷰에서 루브친스키는 이러한 자신만의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확실하게 설명하기도 하였다(Oliver, 2010). 이에 본 연구는 그의 사진 작업이 보여주는 내러티브에 집중하여 그 근원과 양상을 검토함으로써 오늘날 주목받고 있는 패션디자이너 루브친스키의 이미지 작업에 대한 근본적 이해를 구하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

이를 위하여 패션 이미지가 전하는 내러티브의 근본을 밝히고자 내러티브에 대한 개념과 관점을 살펴보았고, 이를 루브친스키의 패션 이미지 분석의 기반으로 삼았다. 또한 루브친스키가 꾸준하게 발간해온 사진집과 해당 인터뷰들을 대상으로 그가 형상화해온 패션 이미지와 내러티브의 근원이 어떠한 주제로부터 시작되었는지 추출하고 그 내러티브의 양상을 관찰하였다. 본 연구의 주요 연구대상은 많은 기사문에서 공통적으로 루브친스키의 주요 출판물로 언급되고 있는 매거진과 포토북이다. 매거진과 포토북은 사진을 모은 책이라는 점에서 포토북으로 통칭하지만 관련 기사문들을 들여다볼 때 루브친스키의 촬영 여부에 따라 구분하기도 한다. 즉 매거진의 경우 루브친스키에게 영감이 되어준 사진과 텍스트들을 하나의 주제로 발간한 경우에 해당하며 포토북은 루브친스키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을 책으로 출판한 경우이다. 이러한 기준으로 「Aglec (2009)」을 대표로 하는 매거진들과 「Transfiguration (2012)」, 「Crimea/Kids (2014)」, 「Youth Hotel (2015)」, 「The Day Of My Death (2016)」, 「The Perfume Book (2016)」 등 총 5권의 포토북을 중심으로 루브친스키의 패션 이미지들을 살펴보았다.


2. 패션 이미지와 내러티브

존 버거(John Berger)는 그의 저서 「Ways of Seeing」을 통하여 이미지에 대한 개념과 특수성을 논한 바 있다. 인간에 의해 재창조되거나 재생산된 시각으로서 이미지를 제한하여 바라본 버거에 의하면, 이미지는 ‘특정 장소, 특정 순간에 사물의 어떤 모습 또는 모습들을 본래의 장소 및 시간에서 따로 분리해내 일정 기간 후까지 보존하기 위한 것’이다(Berger, 1972). 또한 이미지는 인간의 의도에 의해 하나의 보는 방식을 구현한다고 하였고 그 대표적인 예로서 사진을 거론하였다. 사진은 단지 기계적 기록이 아니며, 사진을 찍은 이의 무한히 많은 시각들 가운데서 특별히 선택된 순간이라는 사실을 의식해야 한다고 하였다. 버거는 이미지 외에 그 어떤 과거의 유물이나 문서도 다른 시대의 사람들이 살았던 세계에 대해 직접적으로 증언해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미지는 문학보다 더 정확하고 풍부하다고 강조하였다. 본 연구에서 바라보는 패션 이미지 역시도 존 버거의 인식과 같이 사진을 찍은 사람의 의도 및 정확하고 풍부한 재현의 특수성 안에서 논할 수 있는 대상이 될 것이다.

한편 버거의 또 다른 저서 「Understanding a Photograph」에는 이미지 중에서도 사진에 대한 개념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는데, 사진은 연속성에서 떨어져 나온 하나의 순간을 따로 떼어 보존해서 제시한 것이라며 그 본성을 구별 지었다. 즉 사진이 다루는 언어는 ‘사건들의 언어’이고 사진이 언급하는 것은 바로 연속성이라 하였다(Berger, 2013). 이미지, 특히 사진에 대한 이와 같은 존 버거의 관점은 이내 사진을 내러티브의 관점으로 연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

내러티브를 바라보는 광의의 관점들에 있어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사건과 연속이다. 예컨대 주네트(Genette, 1979)는 내러티브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하여 내러티브의 종류를 명시하지 않은 채로 ‘사실적 혹은 허구적 사건들의 연속’이라 말하였고 프랭스(Prince, 1982)는 ‘현실 또는 허구의 사건과 상황들을 하나의 시간 연속을 통해 표현한 것’이라고 정의 내렸다. 존 버거가 사진 이미지에 대해 언급한 사건, 연속의 개념이 연결되는 지점이다. 내러티브를 인문과학 연구 전반과 연결시키고자 했던 폴킹혼(Polkinghorne, 1988) 역시도 내러티브를 ‘일련의 사건들을 말하거나 연결시키는 것’이라고 하면서도 이에 그치지 않고 인간이 매 순간 하는 경험과 개인적인 행위들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수단을 제공하는 하나의 도식이라 주장하였다. 폴킹혼은 우리의 삶이 끊임없이 내러티브, 우리가 말하는 스토리, 말한 것을 우리가 듣는 스토리, 우리가 꿈꾸거나 상상하고 또는 말하길 원했던 스토리 등으로 엮여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우리의 경험을 생성하고 구성하기 위한 내러티브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내러티브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내러티브의 개념을 함께 설명한 또 다른 학자로서 마틴(Martin, 1986)은 우리의 삶에 있어 내러티브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하며 우리들 개개인의 역사, 즉 우리들의 존재와 진로를 형성할 수 있는 개인 자신의 삶의 내러티브를 강조하였다. 폴킹혼과 마틴의 관점은 허구의 만들어진 서사 외에 개개인의 경험과 삶에 초점을 둔 내러티브가 강조된 경우이다.

이와 같이 광의의 개념을 확보하며 다양한 학문과 연계하게 된 오늘날의 내러티브는 여러 관점에 의거하여 그 범주가 분류되었다. 숄즈와 켈로그(Scholes & Kellogg, 1966)는 내러티브를 우선 경험적인 것과 허구적인 것으로 나누었고, 특히 현실에의 충실로 설명되는 경험적 내러티브를 다시 역사적인 것과 모방적인 것으로 구분하였다. 그중 역사적인 내러티브는 현실을 만들거나 실재했던 과거를 충실하게 서술하며 역사기록에서 제시된 시공간과 인과성을 그대로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에 비해 모방적 양식은 과거의 삶이든 당대의 삶이든 관계없이 삶의 단면을 드러내는 데 목표를 두는 것이다. 랜킨(Rankin, 2002)과 박민정(Park, 2006) 등은 내러티브를 그 개념의 본질에 비추어 이야기로서의 내러티브, 사고 양상으로서의 내러티브,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내러티브로 분류하였다. 즉 내러티브는 사건에 대한 허구적 재구성이며, 행위와 사건들을 파악하는 사고양식이자 그 결과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설명한 것이다. 이와 같은 분류들은 내러티브의 근본적 개념을 이해하고 연구대상으로서의 이미지 안에서 내러티브의 양상을 읽어내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세계에 내러티브는 무수히 많은 형태로 존재한다고 하며(Barthes & Duisit, 1975), 결국 오늘날의 내러티브는 전통적 연구로서 문학이나 민속학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는 통찰의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Mitchell, 1981). 패션디자인 분야에서 패션 이미지는 디자이너가 대중과 더불어 적극적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방법이자 목표가 되기도 한다. 내러티브의 연구는 궁극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기여한다고 했듯이(Prince, 1982), 패션 이미지를 통한 내러티브의 표출을 탐색하는 과정은 디자이너의 창작 의도 및 과정과 결과 전체에 대한 폭넓은 이해의 길이 될 것이다.


3. 고샤 루브친스키의 패션 이미지와 내러티브의 근원

대략 2009년부터 알려지기 시작한 루브친스키의 이미지 작업은 거의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관된 범위의 주제를 이어오고 있다. 그의 사진 작업은 주로 특정의 기간 동안 그의 동료들과 함께 만든 하나의 사건들을 담는다. 루브친스키가 사진 이미지를 만들고 이를 테마별로 출판하며 전하고자 한 내러티브의 근원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주제로 대표될 수 있다.

3. 1. 1990년대 반사회주의 에너지

루브친스키의 매거진과 포토북에는 과거에 있었던 사실에 대한 동경과 회고의 아름다움이 강하게 표현되곤 한다. 그가 특히 집중하는 시대는 1990년대인데, 이때는 러시아 태생의 1984년생 루브친스키 개인에게 가장 정서적으로 민감했던 십대의 시기이자 러시아의 사회주의가 붕괴되는 세계적 변화의 시기이기도 하다. 루브친스키에게 있어 1990년대는 러시아에 반사회주의 에너지가 가득한 시기로 기록된다. 특히 이러한 회고는 매거진 형식의 출판물에서 강하게 드러나는데, 2009년도에 출판된 「Aglec」이 대표적이다. 「Aglec」은 인물과 공간 중심의 사진 이미지와 키릴문자 텍스트로 이루어져 있는데, 과거 러시아의 엄숙한 사회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정교회십자가, 총을 들고 수십 명이 함께 선 군인들의 대형, 단체생활을 보여주는 텅 빈 기숙사 내부의 사진과 함께, 스케이트 보드, 블랙 메탈 티셔츠 및 학교 체육관을 포함하여 젊은이들을 둘러싼 자유 및 에너지의 상징 이미지들을 대조적으로 한 권에 묶은 매거진이다(Figure 1).

Figure 1

「Aglec (2009)」 photo materials

루브친스키의 매거진은 그 안에 담긴 사진 이미지의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면에서도 반사회주의적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매체로 인정받는다. 특히 페르샤코바(Pershakova, 2014)는 소비에트 시절 반정부 자유인권운동의 바탕이 되었던 자가출판물 ‘사미즈다트(samizdat)’의 전통이 오늘날의 러시아에 널리 퍼져 광고나 정치적 규제로부터 독립적인 전시적 출판물로 정착했음을 밝혔는데, 루브친스키의 「Aglec」이 동종의 매거진 중 대표적인 한 예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즉 「Aglec」은 루브친스키의 컬렉션에 대한 사진이 일부 담겨 룩북의 일종이면서도 또 다른 청춘들에게 직접 자가출판물을 제작하는 데에 영감을 주는 역할을 하였으며 소비에트 시절의 사미즈다트가 가진 자유정신이 모스크바를 넘어 베를린과 런던에까지 널리 퍼지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소개하였다(Pershakova, 2014).

사미즈다트의 정신과 전통을 잇는 루브친스키의 매거진은 최근 2017년도에도 두 권이 더 출판되었다. 2017 F/W 컬렉션을 열면서 기획한 매거진이 「Kaliningrad (2017)」이고, 2018 S/S 컬렉션의 인스피레이션을 소개하기 위해 만들어진 매거진이 「St. Petersburg (2017)」이다. 특히 후자의 매거진은 루브친스키가 천착하는 1990년대 반사회주의 에너지가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된 매거진이다. 매거진의 제목이 되는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유럽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위치의 지역으로서 새로운 변화의 탄생을 볼 수 있는 도시이다. 매거진의 사진들은 철의 장막이 무너지고 소비에트 연방의 사회주의가 붕괴의 위기를 겪었을 무렵의 상황, 즉 새로운 국제적 움직임들이 도시를 휩쓸던 1990년대에 이전의 소비에트 사회에서 향유할 수 없었던 자유로운 언더그라운드 서브컬처의 호황을 설명하는 이미지들이 수집되었다(Figure 2). 흑백의 사진은 클럽 안에서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러시아 최초의 여성 DJ, 최초 테크노 클럽의 창시자 등 당대 러시아의 새로운 물결을 주도했던 인물들의 실제 인터뷰도 실려 있다. 당대의 이미지들과 직접적인 증언을 통해 사회주의를 거스르는 러시아 언더그라운드의 기원을 추적할 수 있으며 매우 개인적인 서사들이 생생하게 그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Figure 2

「St. Petersburg (2017)」 photo materials

루브친스키가 직접 사진을 찍고 제작한 포토북 중 「Youth Hotel」에도 사회주의의 붕괴 시절 겪었을 경험에 대한 회상이 연관된다. 「Youth Hotel」은 소비에트 연방의 독재자 스탈린을 풍자했다는 해석을 낳았던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에서 영감을 얻은 것인데 「Youth Hotel」에서 그는 소설 속 전체주의 감시사회와 현재 그의 고국을 비교하였으며(Stansfield, 2016a), 2016 S/S 컬렉션에서 역시 ‘1984’로 장식된 옷을 디자인함으로써 그의 시대적 고민과 회상이 단절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포토북 안에는 유스 호텔이라고 하는 실제 개인적 경험의 장소에서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촬영했던 루브친스키의 사진들이 좌우면 각 한 장 씩 배치되어 있다. 대부분 늘어지고 누운 자세에 담배를 피거나 스케이트 보드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모습, 그리고 황폐한 도시의 랜드마크들, 콘크리트나 철제를 사용한 거대한 브루털리즘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도시 곳곳의 사회주의 국가적 배경 사진이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인물과 공간 이미지들은 최근의 변화된 러시아와 과거 소비에트 러시아 모두를 드러낸다(Figure 3).

Figure 3

「Youth Hotel (2015)」 photo materials

3. 2. 유스제너레이션과 서브컬처

앞서 루브친스키의 포토북 「Youth Hotel」에 대해 반사회주의적 에너지의 주제를 언급했지만, 이 포토북은 또 한편 루브친스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인 ‘청춘’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루브친스키는 이 포토북의 제목을 설명하면서 ‘유스 호텔’은 곧 젊은이들의 문화에 관한 은유적 표현임을 설명하였다. 젊음이란 호텔처럼 잠시 머물 수 있는, 그러나 곧 떠나야만 하는 것, 누군가 자라고 에너지가 변하며 지속될 수 없는 그것이라고 서정적인 표현을 남겼다(Stansfield, 2016a).

「Youth Hotel」을 출판하기 바로 1년 전 출판한 「Crimea/Kids」는 청춘과 그들이 펼치는 서브컬처에 대한 루브친스키의 관심을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한 포토북이다. 크림반도의 정치적 분쟁 이전 2014년에 촬영한 이 사진들은 크림반도 얄타 지역의 어린이와 젊은이들의 초상을 주로 담았다. 소년소녀들이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어슬렁거리며 담배를 피우고 또래끼리의 문화와 스타일을 공유하는 모습, 낡은 레닌의 동상을 타고앉아 쉬는 소년의 모습, 그리고 푸른 바다와 그래피티로 가득한 교각들, 곧은 사이프러스 나무들과 함께 보이는 높은 지대, 소비에트 시대의 잔영들 등이 호기심을 일으킬만한 풍경의 사진들로 이어진다(Figure 4). 페도로바(Fedorova, 2014)는 「Crimea/Kids」의 출판 소식을 전하면서 루브친스키의 소년 모델들은 다시 열네 살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항상 그대로인 채로 존재할 수 있다고 평하였다. 포토북 속의 소년은 항상 박물관의 동상처럼 영원한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일시적인 것을 영원한 것으로 바꾸는 것이 루브친스키가 가장 잘하는 일이라 하였다(Fedorova, 2014).

Figure 4

「Crimea/Kids (2014)」 photo materials

포토북 중에서 가장 최근에 출판된 「The Perfume Book」 역시 루브친스키가 줄곧 젊음에 대해 얼마나 큰 가치를 두었는가를 보여준다. 이 포토북은 고샤 루브친스키 브랜드가 첫 퍼퓸 제품을 기획하며 떠올렸던 일련의 이미지를 직접 사진으로 담아낸 결과물이다. 루브친스키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퍼퓸에 대한 이미지는 파란 바다, 바닷가에서 이름 모를 소년의 찬란한 순간을 촬영한 것으로 표현되었다(Figure 5). 여름, 신선함, 소년, 도시, 스케이트 보딩, 휴가 등이 주요 키워드이며 뜨거운 콘크리트 보도 위에서 달궈진 보드의 바퀴를 상기시키면서 고무와 타르의 희미한 냄새를 묘사하였다(Stansfield, 2016b). 바닷가를 배경으로 짧게 깎은 헤어스타일의 모델이자 동료인 사비뇨니(Louison Savignoni)가 단독으로 등장하는 이 장면들은 출판을 기획하던 해 여름동안 바르셀로나를 방문하여 실제 스케이트 보드를 한참 즐기고 교외의 거친 해변을 여행하면서 남긴 일련의 사진들이라고 설명하였다(Stansfield, 2016b).

Figure 5

「The Perfume Book (2016)」 photo materials

3. 3. 뉴러시아 글로벌리즘

포터(Porter, 2014)와의 인터뷰에서 루브친스키는 자신의 작업이 새로운 러시아를 규명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의도임을 밝힌 바 있다. 루브친스키는 러시아가 성장과 변화의 시작점에 있다고 믿고 있다. 인터넷과 국제적인 커뮤니티를 접하며 자란 러시아의 새로운 세대들이 일으킨 변화에 대한 기대가 크며 그는 새로운 방식으로 러시아를 소개하고 싶다고 하였다. ‘나는 러시아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그러나 그것을 국제적 언어로 말하고 싶다(Porter, 2014).’ 라고 했던 그의 인터뷰는 루브친스키를 소개할 때에 빈번히 등장하는 문구가 되었다.

뉴러시아에 대한 루브친스키의 희망은 그가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기 이전부터 적극적인 프로젝트로 드러나 있으며, 이로써 출판된 포토북이 바로 「Transfiguration」이다. 2011년 여름 루브친스키는 ‘Transfiguration 프로젝트’를 런칭했는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인공섬 노바야 골란디야(New Holland)에서 있었던 이 워크샵 프로젝트는 전시, 라이브쇼, 스케이트 보딩 대회 등을 포괄하였고 이와 관련하여 젊은 스케이트 보더들의 사진 및 주변 장소에 대한 두 달 간의 기록을 사진으로 찍어 「Transfiguration」 포토북으로 출판하게 되었다. 노바야 골란디야는 원래 러시아의 군항 역할을 하다가 300년 만에 문화적 색채로 재생되어 현대화되고 대중에게 최초 공개된 섬으로서, 루브친스키는 특히 이 프로젝트의 장소가 갖는 역사적 의의를 설명한 바 있다(Morris, 2012). 「Transfiguration」안에는 젊은 스케이트 보더들의 사진 뿐만 아니라 에르미타주(The State Hermitage Museum)와 루브르(Musée du Louvre)의 회화, 조각 등의 사진도 포함되어 있다(Figure 6).

Figure 6

「Transfiguration (2012)」 photo materials

과거와 전혀 다른 새로운 러시아와 글로벌리즘을 전제할 때 루브친스키의 포토북 중 「The Day of My Death」를 빼놓을 수 없다. 이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출판물 중 러시아 밖의 기록으로 최초의 사진집이다. 피렌체에서 열리는 90th Pitti Uomo 2017 S/S의 초대 디자이너로서 준비한 이 포토북은 전체 흑백이며 표지에 남성용 테일러드 자켓을 입고 담배를 피는 러시아 여배우 레나타 리트비노바(Renata Litvinova)가 등장한다(Figure 7). 루브친스키는 피렌체 행사를 준비하면서 이태리의 파시즘에 대한 모습을 떠올렸고 역사적 기억을 강조하며 ‘유럽은 지금 무엇인가? 이태리는 지금 무엇인가? 러시아는 지금 무엇인가? 나는 단지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단지 지도상의 개념이며, 나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만 집중할 것이다(Madsen, 2017).’ 라는 인터뷰를 통해 오늘날 과거에 갇혀있지 않은 새롭게 변화한 세계 인식을 강조한 바 있다. 이태리의 네오레알리스모(neorealismo)의 대가이자 카톨릭 종교 및 파시즘에 대항했던 인물로 알려진 시인이자 영화감독 파졸리니(Pier Paolo Pasolini)에 대한 헌정으로 만들어진 이 이미지들은 피렌체의 황폐화된 1930년대 담배공장을 배경으로 하나의 각본과 각각의 배역이 설정된 서사 속 모델들을 촬영한 결과물이다.

Figure 7

「The Day Of My Death (2016)」 photo materials


4. 고샤 루브친스키의 패션 이미지와 내러티브의 양상

사건과 연속, 경험의 키워드를 기반으로 형성된 내러티브에 대한 광의의 개념 및 범주화에 근거하여 루브친스키의 패션 이미지에 나타난 내러티브의 양상을 도출해보면 다음과 같다.

4. 1. 사실 기반의 내러티브

루브친스키의 패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작업이며, 이러한 이미지 작업은 그에게 사실적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실제로 그는 자신 스스로를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으로 칭하였고(Madsen, 2017), 특히 루브친스키를 발탁하여 세계적 브랜드 디자이너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했던 꼼데가르송(Comme des Garçons)의 최고 경영자인 아드리안 조프(Adrian Joffe)는 루브친스키를 패션디자이너로 인식하기보다는 포토그래퍼, ‘사물을 기록하는 사람’으로서 인정한다고 하였다(Kansara & Fedorova, 2016). 루브친스키가 기록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실제 우리의 삶을 연속적으로 채우고 있는 사건에 근거하며 그것이 현재의 순간일 수도 있고 과거 사실에 중점을 둔 기록일 수도 있다.

첫째, 루브친스키가 전하는 현재 중심의 내러티브는 숄즈와 켈로그(Scholes & Kellogg, 1966)가 분류했던 경험적 내러티브 중 모방적 양식의 내러티브에 가깝다. 그는 일상의 삶 속에 드러나는 현실적인 상황을 충실하게 전달하고자 하였다. 특히 이러한 의도는 그의 인터뷰 속에 직접적으로 드러나는데, 그에게 사진은 일기와 같은 개인적 사건의 기록과 같은 것이라 하였다. 그는 그가 보내는 시간 중 흥미를 느끼는 순간에 마주한 특별한 인물을 찍는 일, 그리고 그 순간의 에너지와 분위기를 기록하고 영감으로 되돌아보는 일들을 특별히 흥미롭다고 하였다(Markstein, 2016). 사진 속 소년과 청년들은 루브친스키에게 함께 성장하는 동료로 인식된다. 그는 큰 가족과 같은 관계라고도 표현하였는데, 어린 스케이터들이 성장해가고 그는 그 모습을 예정된 연출 없이 담는다고 하였다(Baker, 2014). 매거진 「Aglec」부터 「Transfiguration」, 「Crimea/Kids」, 「Youth Hotel」 등 까지 루브친스키의 포토북에 담긴 소년들의 모습은 개개인의 삶으로서의 사실이자 루브친스키가 자신의 과거 어린 시절이라고 생각하는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둘째, 루브친스키가 과거 사실에 중점을 둔 내러티브를 펼치기도 하는데, 이는 경험적 내러티브 중에서도 실제 있었던 시공간과 인과성을 따르는 역사적 내러티브에 가깝다. 그는 자신의 사진 작업을 다큐멘터리에 가깝다고 표현하기도 하였는데(Kozarevic, 2014), 특히 그는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장소를 정하여 시공간 중심의 역사적 내러티브를 전개하곤 하였다. 과거 사실에 중점을 둔 경우는 특히 매거진의 경우에 더욱 뚜렷하다. 2017년에 출판된 「Kaliningrad」와 「St. Petersburg」는 매거진의 제목 자체가 러시아의 도시명을 일컬으며 역사적 사실들을 떠올리게 하는 사진집들이다. 예컨대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의 가장 서부에 위치한 도시이자 한 때 독일의 영토였던 지역이다. 프로이센 공국의 수도로 건설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과 러시아군의 치열한 접전 지역으로서 현재 남겨진 건축물 등을 통해 도시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매거진에는 칼리닌그라드 과학도서관을 비롯하여 다양한 도시의 랜드마크들을 소개하고 역사적으로 과거 독일과 소비에트 문화가 융합된 독특한 건축물들의 사진을 담았다. 신비로운 흑백의 사진이 담긴 이 매거진은 역사적으로 풍요로운 의미를 담는 도시 가이드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정도로 오랜 시간 쌓인 도시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는 과거 사실에 중점을 둔 기록으로서의 내러티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4. 2. 감각경험 지향의 내러티브

모리스(Morris, 2012)에 의하면 루브친스키는 그의 특별한 관점을 보여주기 위해 패션디자인, 사진, 필름메이킹 등을 제작함에 있어 매체에 제한을 두지 않는 아티스트이다. 내러티브를 중심으로 그가 제작한 패션 이미지들의 주요 특징을 관찰해보면 그의 이미지는 매체에 대한 제한뿐만 아니라 감각경험에 대한 제한을 뛰어넘는다. 즉 전달하고자 하는 이미지가 있을 때에 정해진 시각에 제한되지 않은 보다 자유롭고 적극적인 감각경험의 조화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다양하게 유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루브친스키가 지향하는 감각경험은 단지 시각적인 것만이 아니다. 그는 시각적 경험과 청각적 경험 및 후각적 경험을 넘나들며 내러티브를 이끌어내고 있다. 예를 들면 실제 모스크바에 존재하는 호텔에서 1년이 넘는시간동안 촬영한 「Youth Hotel」은 좌우면 각 1장씩 배치된 사진을 통해 시각적으로 모스크바의 공간적 분위기를 전달하고 있고 카메라를 무시하거나 혹은 카메라를 응시하는 젊은이들의 에너지가 가득한 모습들을 화면에 담아 포토북으로 제작하였는데 이와 함께 모스크바 출신의 테크노 프로듀서 벗테크노(Buttechno)가 제작한 테크노 음반이 함께 기획되어 한 셋트로 판매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기획은 시각적 경험뿐만 아니라 청각적 경험을 동원한 적극적 감각 지향의 내러티브라 할 수 있다. 「Youth Hotel」 발간 후 1년 뒤에 출판된 「The Perfume Book」은 시각 경험과 후각 경험을 넘나드는 내러티브에 해당한다. 바르셀로나의 해변가에서 실제 여행을 통해 남겨진 이미지 기록들은 색채의 특성이 유난히 강하다. 특히 공간적인 이미지에서는 채도 높은 블루가 강조되어 있고, 인물은 채도를 최대한 낮춰서 대부분 흑백의 이미지로 구현하였다. 강렬하게 색상을 드러내는 공간은 바다와 하늘뿐이다. 여기에 셋트로 함께 기획된 고샤 루브친스키 퍼퓸은 비비드 레드 컬러의 박스 안에 담겨있다. 색상의 대비가 뚜렷한 색채의 설정은 시각적 경험의 강도를 높이며 여기에 퍼퓸의 후각적 경험이 포토북의 사진과 연결된다. 여름, 신선함, 소년, 도시, 스케이트 보딩, 휴가 등의 주요 키워드는 강렬한 시각 경험과 퍼퓸의 후각 경험이 함께 조화를 이룬 내러티브로 전달된다.

둘째, 루브친스키의 포토북은 감각경험의 재배치를 통해 경험의 재해석을 이끌어내고 있다. 루브친스키의 포토북은 좌우면의 사진 배치에 있어 독특한 배열이 등장하곤 한다. 예를 들어 「Transfiguration」의 경우 루브친스키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경험의 포착이 좌우로 배열되곤 하는데, ‘Transfiguration 프로젝트’ 기간 동안 만났던 젊은이의 초상이 정교회 성화의 인물과 나란히 병치되는가 하면 맑은 눈동자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십대의 어린 소년의 얼굴이 고대의 철학자를 대상으로 만든 인물상과 나란히 배치되기도 한다. 논리적으로 연결될 수 없는 두 대상을 교묘하게 연결시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실마리는 화면의 구도나 등장인물의 포즈, 명암의 정도 등 시각 경험을 일으키는 정보들이다. 박민정(Park, 2006)은 앞서 내러티브의 범주를 나눌 때에 사고 양상으로서의 내러티브를 구분하면서, 내러티브의 구성은 사건에 대한 정보를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이해하는데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정보들을 선정하고 현재의 관심과 동기에 따라 과거의 경험을 재해석하면서 의미를 생성하는 인식과정을 포함한다고 하였다. 루브친스키는 사진의 촬영을 통해 사건의 언어를 선택한 뒤 사진의 배치를 통해 적극적으로 재해석된 경험을 생성하는 서사작업을 하고 있다.

4. 3. 담화 창출의 내러티브

랜킨(Rankin, 2002)과 박민정(Park, 2006) 등은 내러티브를 범주화함에 있어 가장 마지막으로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내러티브를 구분하였다. 특히 박민정(Park, 2006)은 ‘청중이 내러티브를 읽을 때 그 속의 이야기는 청중의 세계로 넘어 온다’는 표현을 쓰며 결국 내러티브를 읽는 것은 언어를 매개로 재현된 경험세상을 단순히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내러티브의 세상과 자신의 세상을 관계 짓는 작업이라 하였다. 루브친스키의 이미지들 역시 이미지를 바라보는 이에게 커뮤니케이션을 일으키고 이미지 안에 담긴 경험 정보들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일으키게 한다. 루브친스키의 사진 이미지에 담긴 내러티브가 어떻게 담화를 창출하는가의 방법은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보인다.

첫째, 루브친스키는 작은 이야기 중심의 일관된 내러티브로서 담화를 창출한다. 이는 여타의 일반적 패션 브랜드의 룩북이나 사진집들과는 확실하게 차별화된 점이다. 2009년부터 알려지기 시작한 그의 매거진과 포토북의 내러티브는 일관되게 러시아의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러시아의 젊은이들이 흔하게 가질 수 있는 삶, 사랑, 희망, 꿈, 가치, 새로운 생각 등과 같은 작은 이야기들이 일반 미디어에 의해 보편화되었던 거대 담화들을 덮어 오히려 그보다 더 큰 담화를 일으키게 한다. 페티(Petty, 2017)는 루브친스키의 사진에 대하여 과장도 드라마도 없이 이야기로 남겨진 포스트 소비에트의 청춘들의 삶에 대한 시적이며 아름다운 증거라 묘사하였다. 그리고 현 시점의 러시아 청춘들의 삶 속에서 각종 정치 성향의 서구 매체에 의해 주도되었던 러시아 관련의 프로파간다, 전형화, 악마적 묘사 뒤에 가려져 있었던 현실, 매우 낭만적인 현실들을 포착하게 한다고 하였다.

둘째, 루브친스키의 내러티브는 적극적 관계 맺기에 의해 담화 창출을 일으킨다. 우리의 삶이 끊임없는 자아와 타인의 내러티브로 엮여 있다고 했던 폴킹혼(Polkinghorne, 1988)은 내러티브를 일컬어 단순한 이야기 혹은 아무런 유기적 연결성이 없는 사건들의 모음집이 아닌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영역을 가능성으로 연결함으로써 상호를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의 원초적인 표현양식이라 하였다. 루브친스키의 이미지 작업에는 러시아 젊은이들 혹은 오늘날 동시대의 서브컬처를 향유하는 각 젊은이들의 결속이 있으며 그 결속의 범위 안에 사진을 찍은 루브친스키와 그 이미지를 소비하는 대중들까지 함께 속한다. 루브친스키는 동료와 더불어 하나의 사건을 만들며 그 사건 안에 있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사진의 장면을 포착한다. 또한 자신의 이미지 출판물이 실용품이 아니라 대중에게 하나의 연대감을 충족시킬 수 있는 특별한 소장품이 되는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적극적 관계 맺기는 서로간의 이해에 기반한 소통을 일으키며 이에 코자레빅(Kozarevic, 2014)은 루브친스키를 일컬어 새 시대의 문화적 비젼을 이끄는 문화평론가라 칭하기도 하였다.


5. 결론

패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기획하며 패션계에 새로운 미학을 전달하고 있는 패션디자이너 고샤 루브친스키의 이미지와 내러티브 작업에 대해 근본적 이해를 구하고자 시작한 본 연구의 결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패션 이미지와 내러티브의 관계에서 존 버거의 이미지에 대한 개념과 특히 사진에 대한 관점이 중요한 실마리로 포착되었다. 사진은 사건의 언어를 다루는 매체로서 연속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내러티브를 이야기할 수 있는 이미지의 중요한 한 형태가 될 것이다.

둘째, 내러티브는 광의의 개념에서 사실적 혹은 허구적 사건들의 연속으로 정의되지만 오늘날 다양한 학문과 연계하며 인간이 매 순간 하는 경험과 개인적인 행위들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수단을 제공하는 하나의 도식으로도 받아들여진다. 특히 인문과학과의 만남을 통해 내러티브는 경험적인 것과 허구적인 것으로 범주화되기도 하고, 이야기로서의 내러티브, 사고 양상으로서의 내러티브,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내러티브로 분류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분류들은 내러티브의 근본적 개념을 이해하고 연구대상으로서의 패션 이미지 안에서 내러티브의 양상을 읽어내는 데에 해석기반으로 사용될 수 있었다.

셋째, 2009년부터 지금까지 일관된 범위의 주제를 이어오고 있는 루브친스키의 이미지 작업은 주로 특정의 기간 동안 그의 동료들과 함께 만든 하나의 사건들을 담는다. 이에 루브친스키가 전하고자 했던 내러티브의 근원을 정리해 본 결과 1990년대 반사회주의 에너지, 유스제너레이션과 서브컬처, 뉴러시아 글로벌리즘 등의 세 가지 주제를 도출할 수 있었다. 세 가지 내러티브 전체를 관통하는 차원에서 루브친스키는 러시아 젊은이들의 실제 삶을 꾸준하게 전달하고 있다.

넷째, 내러티브에 대한 광의의 개념 및 범주화에 기반을 두고 루브친스키의 패션 이미지에 나타난 내러티브의 양상을 관찰해 볼 때, 사실 기반의 내러티브, 감각경험 지향의 내러티브, 담화 창출의 내러티브 등 세 가지 양상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루브친스키는 실제 우리의 삶을 연속적으로 채우고 있는 사건에 근거하여 현재와 과거의 사실에 근거한 내러티브를 펼치고 있었으며, 특히 감각경험의 경계를 넘나들며 적극적인 감각경험의 재배치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궁극적으로는 소통의 내러티브로서의 양상을 보이는데, 작은 이야기 중심의 일관된 내러티브로서 적극적 관계 맺기를 통해 담화를 창출하는 것으로 보인다.

변화와 차이를 추구하는 패션디자인의 세계에서 패션 이미지의 표현은 매우 적극적으로 새로운 미감의 발굴을 요구한다. 루브친스키는 패션 이미지를 통해 일관된 내러티브로 자신의 독특한 정체성을 표현한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이다. 루브친스키가 보여준 것과 같은 새로운 패션 이미지와 내러티브의 등장 및 반향은 앞으로 패션계에 더욱 큰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며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사료된다.

Notes

Citation : Lee, S. (2019). The Fashion Images and Narratives of Gosha Rubchinskiy. Archives of Design Research, 32(1), 163-175.

Copyright :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educational and non-commercial use,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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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

Figure 1
「Aglec (2009)」 photo materials

Figure 2

Figure 2
「St. Petersburg (2017)」 photo materials

Figure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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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h Hotel (2015)」 photo materials

Figure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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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mea/Kids (2014)」 photo materials

Figure 5

Figure 5
「The Perfume Book (2016)」 photo materials

Figure 6

Figure 6
「Transfiguration (2012)」 photo materials

Figure 7

Figure 7
「The Day Of My Death (2016)」 photo materia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