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s of Design Research
[ Article ]
Archives of Design Research - Vol. 34, No. 4, pp.257-283
ISSN: 1226-8046 (Print) 2288-298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0 Nov 2021
Received 13 Jul 2021 Revised 13 Aug 2021 Accepted 13 Aug 2021
DOI: https://doi.org/10.15187/adr.2021.11.34.4.257

1960~70년대 한글 문단짜기 혼용의 가치

Jieun Park박지은Byunghak Ahn안병학
Visual Design, College of Art & Design, Gachon University, Adjunct Professor, Seongnam, Korea 가천대학교 미술·디자인학부 시각디자인전공, 겸임교수, 경기, 대한민국 Visual Communication Design, School of Design, Professor, Hongik University, Seoul, Korea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학부 시각디자인전공, 교수, 서울, 대한민국
The Value of Hangeul Horizontal-Vertical Mixed Typesetting in the 1960s and 70s

Correspondence to: Byunghak Ahn ahn.hisd@hongik.ac.kr

초록

연구배경 가로와 세로 어느 방향으로도 부릴 수 있는 한글의 문단짜기는 한자문화권의 배경과 로마자의 표음성이 혼합된 한글이 태생적으로 가진 유연성이다. 현재 한글이 가로 한 방향으로만 쓰이는 것은 활용의 다양성과 확장성 측면에서 여러 가지 한계가 있다. 이러한 한글 문단짜기 다양성의 단서를 가로짜기 전면 전환 이전 1960~70년대의 문단짜기 혼용 사례를 통해 찾을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전후 건국 사업의 뚜렷한 목적을 갖고 인쇄·출판의 기술과 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기존 세로짜기 관습과 가로짜기 형식이 출판물 종류와 목적에 따라 유연하고 다양하게 혼용되었다. 연구자는 이 시기의 배경과 사례 분석을 통해 앞으로 한글을 가로로도, 세로로도 균형 있고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근거와 계기를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연구방법 그 가능성을 살피기 위해 사적 증거와 자료를 바탕으로 가로짜기로의 점진적 전환(1945~1999) 과정의 사회, 정치, 과학·기술, 문화, 예술의 배경을 파악하고, 특히 문단짜기 혼용기(1957~1979) 발간된 대표적인 출판물을 선정하여 지면에 드러난 문단짜기 혼용 사례의 특징을 분석했다.

연구결과 한글 전면 가로짜기로의 전환 배경을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검토했다. 첫째, 광복 후 문교부를 중심으로 추진된 한글 전용에 대한 학계의 각기 다른 논쟁, 둘째, 효율성을 목적으로 한 속도 중심의 가로쓰기 타자기 개발과 사회적 수요, 셋째, 산업 성장 속 급속도로 유입된 서구 디자인이 문자에 대한 우리의 관념과 인쇄·출판 산업의 지면 편집 방식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탐색했다. 가로짜기 전면 전환이 타이포그래피와 시지각 측면에서 어떤 구체적인 한계를 남겼는지를 짚어보았고, 가로짜기 전환기에 인쇄·출판 산업에서 나타난 문단짜기 혼용 현상의 특징을 사례를 통해 분석했다. 1950년대 중반 시작한 납활자 개발에서 가로짜기와 세로짜기를 동시에 고려한 사례를 발견했고, 독자층에 따라 출판물 지면 편집이 어떻게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으며, 그에 따라 문단짜기 혼용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살폈다. 문단짜기 혼용은 문고본, 단행본, 전집, 정기간행물 등 출판물 형식에 따라 지면에서 서로 다른 특징을 보였다. 끝으로 분석의 결과를 토대로 이 특징들이 한글 문단짜기의 다양성 측면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해석을 시도했다.

결론 1960~70년대 한글 문단짜기 혼용 사례와 그 특징은 급변하는 문자 사용 환경에서도 한글이 지닌 유연성을 우리 방식으로 지면 안에서 엮으려 한 노력과 그로 인한 다양한 지면 편집 방법을 고민한 흔적으로 규정할 수 있다. 가로 한 방향으로만 관습화된 지금의 획일적인 문단짜기에 시사하는 가치가 크다.

Abstract

Background Hangeul typesetting can be managed both in horizontal and vertical directions, and this is originally a flexible characteristic of Hangeul, one in which the cultural background of Chinese characters and the phonetic quality of the Roman alphabet are combined. The current use of Hangeul only in the horizontal direction causes many limitations in terms of diversity and expandability. The clue to the diversity of Hangeul typesetting can be found in the examples of horizontal-vertical mixed typesetting in the 1960s and 1970s before South Korean society's complete transition to horizontal typesetting. In this period, while printing and publishing technologies and industries began to grow in earnest with the clear purpose of post-war projects to reestablish the country, the conventional vertical typesetting and new horizontal typesetting were mixed flexibly and diversely depending on the types and purposes of publications. This study could help to find the basis and opportunity for the balanced and flexible use of Hangeul both horizontally and vertically by analyzing the backgrounds and typesetting cases of this time period.

Methods In order to examine the possibility of using Hangeul both horizontally and vertically, the time period was largely divided into the gradual transition period (1945-1999) and the mixed typesetting period (1957-1979) based on historical evidence and data, the backgrounds of society, politics, science, technology, culture, and art, all of which were examined in each period to analyze the characteristics of the mixed typesetting that emerged in publications at the time.

Results The background of the complete transition to horizontal Hangeul typesetting was examined largely through three aspects: the academic community’s different debates on the exclusive use of Hangeul in South Korean publications, which was promoted by the Ministry of Education after Korea’s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 rule; the development of speed-oriented horizontal typewriters for efficiency and social demand; and how Western design, which was rapidly introduced to South Korea in the midst of industrial growth, influenced the understanding of writing systems and the editing methods in the printing and publishing industries. This study examined what specific limitations the complete transition to horizontal typesetting left in terms of typography and visual perception, and analyzed through case studies the characteristics of horizontal-vertical mixed typesetting found in printing & publishing industries in the transitional period. In the development of lead type, which started in the mid-1950s, there were cases of considering both horizontal and vertical typesetting at the same time. This study specifically examined how the editing of publications was conducted for different groups of readers, and how mixed typesetting developed according to the editing. Mixed typesetting showed different characteristics depending on the forms of publications, such as books and periodicals. Finally, based on the results of the analysis, there was an attempt to interpret what these characteristics meant in terms of diversity.

Conclusions Cases of mixed typesetting in the 1960s and 1970s and their characteristics could be defined as small efforts to handle the flexibility of Hangeul in a more South Korean way on the pages of publications even in a time where the usage of writing systems was rapidly changing. Also, there were traces of how people carefully tried several editing methods. This provides significant insight into the conventionalized typesetting used today, which is only carried out horizontally.

Keywords:

Hangeul, Typesetting, Horizontal Typesetting, Vertical Typesetting, Horizontal-Vertical Mixed Typesetting, 1960s and 1970s, 한글, 문단짜기, 가로짜기, 세로짜기, 문단짜기 혼용, 1960~70년대

1. 서론

한글은 한자 문화권 환경에서 영향을 받음과 동시에 로마자처럼 표음 구조를 갖춘 복합적 문자다. 특히 가로와 세로 어느 특정 방향에 구애 없이 문자를 쓸 수 있는 유연함은 동아시아의 정방형 네모틀에 문자를 쓰는 방식에서 영향받은 것으로, 서구식 쓰기에서는 볼 수 없는 고유의 특징이다. 현재 가로짜기로 전환한 환경은 타이포그래피적 다양성과 시각적 표현의 확장성 측면에서도 매우 제한적인 한계를 드러내며, 태생적으로 유연한 이상과 글자 구조를 지닌 한글의 특성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글을 읽고 인지하는 습관과 방법에서도 속독 중심의 획일화된 경향으로 이어졌다. 이런 한계는 2000년대 이후 세로짜기에 대한 재조명이 글꼴 디자이너, 편집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제기되며 수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창제에서부터 글줄을 오랫동안 세로로 짜온 한글은 19세기 후반 서구의 기계식 활판 인쇄술과 외국어 가로짜기가 유입되며 문단을 짜는 방향에 큰 충돌을 겪었다. 대립된 두 방향 쓰기의 절충 지점을 찾으며 다양한 조판 방식이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특정 몇 가지 방법이 주로 시도되기도 했고, 결국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가로짜기 전용이 문단짜기의 주요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한글 가로짜기가 인쇄·출판 시장 전역에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는 한글 전용 정책, 한글 기계화, 서구권 해외 서적 유입, 산업화가 맞물리는 1945년 광복 직후 국가 재건의 시기였다. 이 연구에서 한글 문단짜기 다양성의 가능성을 1960~70년대 출판물 사례와 지면분석을 통해 주목하여 밝히고자 하는 이유는 이 시기는 가로짜기가 우리 문자 문화에 완전히 정착되기 전으로, 기존의 세로짜기 관습과 가로짜기 형식이 출판물의 종류와 목적에 따라 유연하고 다양하게 혼용되었고, 전후 산업 재건 분위기에 힘입어 인쇄·출판 산업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변화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후 1970년대와 80년대 서구 출판의 영향, 1980년대 후반 국가적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촉발했던 아시안게임(1986), 서울올림픽(1988) 등은 우리 문자 문화에도 지속적인 정체성 확립의 욕구를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세로짜기는 일제와 한자문화의 잔재 혹은 비효율적 문단짜기 관습으로 치부되며 배제되기 시작했고, 문단짜기 혼용 현상은 1980년대 전산사진식자시스템(CTS, computerized typesetting system)의 도입을 기점으로 가로짜기 사례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 1988년 전면 가로짜기로 창간된 『한겨레신문』에 이어 90년대 중반 『동아일보』, 『중앙일보』, 그리고 1999년 『조선일보』를 끝으로 세로짜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국내 일간지가 모두 전면 가로짜기로 전환할 때까지 혼용 방식이 이어졌다.

이 연구는 문단짜기 측면에서 우리 출판문화를 시기별로 구분하고 문단짜기 혼용기의 배경, 상황과 사건을 사례를 통해 검토하여 그 시사점을 밝히는 데 목적을 두며, 한글 문단짜기의 다양성 확보 측면에서 한글을 가로로도, 세로로도 균형 있고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근거와 계기를 마련하는 데에 역할할 수 있다고 본다.

연구를 위해 먼저 조선교육심의회가 ‘교과서 한자폐지안’에서 글줄 가로쓰기를 가결한 1945년부터 『조선일보』를 마지막으로 국내 일간 신문이 전면 가로짜기로 전환한 1999년까지를 가로짜기 전환기(이하 전환기)로 규정한다. 그중 이 연구의 구체적인 분석 범위는 ‘동아출판사체’의 개발이 이루어진 1957년을 기점으로, 전산사진식자시스템이 도입된 1979년 직전까지의 문단짜기 혼용기(이하 혼용기)이다. 문단짜기 혼용의 방식에서 가로짜기는 로마자와 같은 좌횡형, 세로짜기는 한자문화권에서 전통적으로 써온 우종형을 기준으로 한다. 본문 가로짜기에서 세로짜기를 혼용할 때 좌종형으로 처리한 사례는 특수한 방식으로 판단하여 따로 중요하게 다룬다.

연구 방법은 크게 사적 연구와 사례 분석 연구로 나눈다. 사적 연구는 근·현대 역사 관련 문헌과 증언 등 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1945년부터 1999년까지 가로짜기 전환과 문단짜기 혼용 관련 사회, 정치, 과학·기술, 문화, 예술의 배경을 고찰한다. 이는 근대화 시기 사회적 사건을 검토하여 외부로부터 유입된 문화적 배경이 문자 사용에 대한 관념의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 배경을 짚고자 함이다. 이어 혼용기에 발간된 문고본, 단행본, 전집, 정기간행물 등 총 네 가지 범주로 사례를 수집하고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을 분류하여, 앞의 사적 연구에서 도출한 시기적 배경과 연관하여 정성적 방법으로 해석하고 의미 짓는다. 이는 가로짜기와 세로짜기를 혼용하는 혼란 속에서 보인 사건, 사례를 관찰하여 문단짜기 다양화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또한 5장에서 다루는 문단짜기 혼용 출판물* 지면 사례는 국내 인쇄·출판사와 관련된 문헌을 통해 대상 시기에 활발히 활동하며 기획과 조판의 질적 수준을 높인 특정 출판사와 인쇄소 등 출판물의 구체적인 판권 정보를 참조하여 선정했다. 이 과정에서 놓칠 수 있는 특별한 사례는 연구자의 주관적 판단으로 추가 선정하여 총 열 다섯 가지 사례를 최종 검토 대상으로 삼았다.


2. 가로짜기 전환기의 논쟁, 기술 환경, 산업 상황

2. 1. 한글 전용에 관한 논쟁과 기록

광복 직후 미 군정청은 조선어학회를 중심으로 문교부를 꾸리고 우리말 운용 방침을 정하기 위해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우리말 도로 찾기, 한자 폐지, 한글 전용, 한글 가로짜기 등의 여러 의제와 논의를 펼쳤다. 최현배(崔鉉培)를 문교부 편수국장으로 두 차례 위임(1945~1948, 1951~1954)했는데, 그는 『글자의 혁명』의 한글 가로글씨 제안(1947), 한글 전용에 관한 정무법률 제6호 공포(1948), 한글전용촉진회 창설(1949), 문맹 퇴치와 말 다듬기 등 어문 교육과 관련한 정책을 펼치며 한글세대와 가로쓰기 문화를 형성하는 데 힘을 쏟았다. 특히 교과서를 통해 공식적으로 가로짜기를 도입하며 일제강점기부터 꾸준히 주장한 가로쓰기의 필요성과 방법을 과감하게 적용했다. 그는 가로짜기를 통해 일본, 중국에 종속하던 문자 관습에서 벗어나 우리말을 자주적으로 쓰고 이끌어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보았으며, 무엇보다 공식적으로 한글을 공부하는 어린 세대가 가로짜기로 지식을 습득하여 그 방법을 체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여기에는 광복 직후 77.8%에 달한 국민 문맹률(Park, 2001)을 낮추고 차츰 우리의 방법으로 빠르게 조직적, 능률적인 교육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컸다. 문교부는 당장 공식적인 한글 교육이 시급한 상황에서 제도를 통해 학습 습관을 다지고 교육적 균질함을 구축하는 데 비중을 두었다. 아이들에게 좋은 버릇을 길들여 주어야 한다는 최현배의 교육관에 의해 한글 가로쓰기를 실현해야 하는 이유는 글을 읽는 버릇(상하좌우 등의 방향)을 한 가지로 통일하기 위함이었다(Lee, 2014). 다시 말해, 가로쓰기는 최현배 특유의 ‘길들임’의 교육관이 반영된 것으로, 이 주장에는 ‘과학적’으로 편리하고 ‘교육적’이라는 이유(Lee, 2014)가 뒤따른다. 결국, 청소년 시기부터 자연스럽게 언어 학습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아닌, 가로쓰기를 ‘길들임’으로써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향후 한글문화에도 영향력을 발휘하여 완전히 자리잡게 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이제 막 한글을 접하는 학생이 균형 있게 쓰기 방향을 접하는 것이 아닌, 가로 방향에만 치중한 편협된 쓰기 환경을 조성하여 ‘새것’과 ‘옛것’을 나누는 이분법적 인식을 심는 문제로 연결되었다.

조선어학회 모두가 한글 전용에 긍정적인 목소리를 낸 것은 아니었다. 문인 김기림(金起林)은 1945년 국정문교부의 한자 폐지에 관한 논의에 국어심의회의 임원으로 소집되었는데, 교과서에서 한자 폐지를 서둘러 결정한 상황을 비판했다. 김기림(Kim, 1988)은 “이처럼 중대한 문제가 주도면밀한 과학적 예비 공작 없이, 더군다나 학교 문밖에서 일어나는 언론, 출판의 무통제한 현상을 그대로 둔 채 교과서에서만 과감한 실험을 해가려는 것이 기정사실이 되어 있고, 국어심의회의 토론이 결국 사후승인으로서 요구될 것 밖에 아님”을 밝히며, 문교부가 사회적 상황 전반이나 시범적 단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 한글 전용을 시작한 점을 문제 삼았다. 그도 한자를 폐지하는 데에는 동의했지만, 광복 후 성급히 진행하고자 한 것에 강력히 반대 의사를 표명했고, 「새 문체의 확립을 위하여」(1948.10), 「새 문체의 갈 길」(1949.3), 「새 말 만들기」(1949.7), 「한자어의 실상」(1949.10)(Lee, 2014) 등을 발표하며, 한글 전용 추진의 문제를 비판했다.

문교부는 어문 생활의 균질적 환경을 조성하고자 반대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남아있는 문교부 언어 운용 관련 기록에 국어심의회, 또는 김기림을 포함한 반대 주장을 내세운 인물의 증언은 보이지 않는다. 문교부의 입장에서 언어 사용의 규격과 표준을 정하고자 한 일은 당연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바른 언어 환경을 하루빨리 조성하기 위하여 당시 제기된 내부의 강력한 비판적 견해를 뒤로하고 한글 전용과 가로짜기를 서둘러 시행하고자 한 배경이 깔려 있었다.

2. 2. 속도 중심 가로쓰기 타자기 개발과 보급

이원익(李元翼), 송기주(宋基周) 등에 의해 일제강점기부터 처음 나타난 한글 타자기 개발은 후대 개발자에게 큰 영향을 준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1914년 재미교포 이원익은 영문 타자기 스미스 프리미어 10호를 원형으로 삼아 12키 7열 배열, 총 84개 키로 구성된 다섯벌식 한글 세로쓰기 타자기를 개발했다. 이 타자기는 타자를 칠 때 글자가 왼쪽으로 90도 회전한 꼴로 찍히고, 타자를 마친 지면을 오른쪽으로 돌려 보면 우종형 세로짜기 된 모습을 띤다. 가로짜기 영문 타자기를 당시 보편적으로 세로짜기한 한글의 쓰임을 고려하여 세로짜기 방식으로 제작한 점이 돋보인다. 이후 송기주는 언더우드 포터블 타자기를 개조하여 두벌식 가로 풀어쓰기 타자기(1927), 네벌식 세로 모아쓰기 타자기(1934)를 개발했으며, 1934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소개되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한글 사용이 제한된 환경에서 국내 천주교 또는 미국 한인 교회와 같은 극소수 단체에서만 쓰였다. 더구나 그는 광복 후 네벌식 가로 모아쓰기 타자기(1949) 개발을 끝으로 한국전쟁기(1950~1953)에 종적을 감췄다. 초기 타자기 개발은 정확한 통계 자료 없이 글쇠를 배열하여 속도와 능률면에서 한계를 보였지만, 한글 풀어쓰기와 가로, 세로 모아쓰기를 고루 시도하는 등 한글 고유의 유연성을 기계에 적용하고자 한 점에서 의의가 크다.

광복 후부터 타자기는 가로쓰기 전용으로만 개발되었다. 대표적으로 공병우(公炳禹)가 제작한 세벌식 타자기(1949)는 ‘속도 중심식’ 타자기로 불리었다. 한자 사용을 병행하고 문서 형식을 중요시한 이전 관습과 달리, 한국전쟁의 극한 상황에 놓인 군인에게는 능률과 속도가 매우 중요했으며, 세벌식 타자기는 남북한 군대에서 주목받으며 작전 지시와 공지를 전하는 문서에 널리 쓰였다. 전쟁 후, 5.16 군사 정변(1961)으로 사회 곳곳이 군사 문화로 물들고 공무원 사회 역시 군대식 업무 양상을 띠게 되면서 속도 중심 타자기가 더욱 주목받았다(Han, 2014). 정부에서 공기관에 한글 타자기를 보급하고, 문교부는 문자판 배열 표준화 법안을 마련하여 타자기 개발에 속도를 붙였다. 1968년 추진한 한글 전용정책의 주요 골자 중 하나는 ‘한글 타자기 개발 및 말단 기관까지의 보급’이었으며, 이후 개발된 모든 한글타자기는 가로쓰기 전용이 되었고, 타자기 개발 호황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Ryu, 2017).

한글 타자기 개발 초기는 서구 기계 문명을 우리 언어에 적용하는 기계화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광복 후에는 속도와 정확성을 추구하려는 목적이 강했다. 한글 전용 정책과 가로쓰기 타자기 개발은 시기적으로 맞물리며 효율 중심의 문자 문화를 만들어나갔다.

2. 3. 서구 디자인의 유입과 산업으로의 확산

서구의 모던 타이포그래피와 디자인은 국내의 인쇄·출판 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며, 1960~70년대 후반부터는 정기간행물을 중심으로 점차 한국의 문화를 해석, 반영한 스타일로 이끌었다. 이 시기 활동한 디자이너의 구술 기록에 따르면 다양한 서구 타이포그래피를 접할 수 있었던 여건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이상철은 한국산업은행에 다니던 시절 접한 서구 그래픽디자인은 유럽과 미국의 출판 인쇄물이었고, 자신의 1970년대 초반 디자인은 화보 위주 미국 정기간행물 디자인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고 말했다(Kang, 2019). 그는 『라이프(LIFE)』, 『내셔널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타임(Time)』 등의 정기간행물을 통해 스위스 국제 타이포그래피 양식과 보편적 그리드 시스템을 접했다. 이처럼 이 시기 디자이너들은 서적 전체에 시각적 질서와 형식을 적용하면서 한글 가로짜기의 실질적 기반을 세우게 된다. 그러나 좌횡형 가로짜기만 부릴 수 있는 로마자에는 세로짜기에 대한 개념이 없고, 한글 전용 법안의 영향으로 인쇄·출판 영역에서도 가로짜기 전환이 이루어진 시기적 여건과 맞물리면서 쓰이지 않는 세로짜기를 유지할 필요성은 점차 약화되어 갔다. 결과적으로 한글 전용과 가로짜기는 필연적이었다기보다는 제도적, 교육적, 기술적 환경 속에서 선택적으로 확산된 현상이었다.


3. 가로짜기 전면 전환에 따른 문제

3. 1. 타이포그래피적 측면에서 확장성의 한계

문화적 영향력의 관계 안에서 한글은 이전부터 영향받은 한자로부터 점차 로마자와 더 관계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글자 사이 조정(letter spacing), 장체(長體, compressed), 이탤릭(italic) 등 로마자 타이포그래피와의 관계에서 한글의 구조, 배열에 관련한 많은 이슈들이 촉발되었다. 초기에는 단순히 가로글줄로 글자를 배열하는 데 그쳤지만, 디자이너, 기술가의 가로짜기 연구와 시도를 통해 점차 가로글줄에 적합한 글자꼴, 지면 편집 방식을 찾아갔다. 그러나 급격한 변화로 인해 가로짜기에서 나타나는 부조화, 세로짜기 고유의 쓰임 상실도 동시에 대두되었다.

첫 번째로, 가로글줄에서 시각흐름선이 불분명해지기 시작했다. 시각흐름선은 배열된 글자가 시각적으로 형성하는 선이다. 옛 문헌의 세로쓰기 붓글씨나 본문 세로짜기 출판물에서는 홀자의 기둥이 오른쪽에 고르게 배열되어 무게중심을 형성했다. 그러나 가로짜기로 전환하며 글자 균형의 재분배를 고려한 서체 개량이 이루어졌고, 글자 조합에 따라 닿자 가로줄기와 홀자 보의 위치가 제각기 달라 기준선이 여러 갈래로 나뉘게 되었다.(Figure 1). 다시 말해, 무게중심은 남아있지만 시선 흐름은 세로짜기만큼 명확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고자 ‘그, 고, 누’ 같은 세로모임의 속공간과 글자의 기울기를 조정하여 가로 글줄의 흐름을 최대한 통일하거나, 탈네모틀 글꼴처럼 무게중심을 글자의 상단, 중앙, 하단 등 특정 위치에 두어 낱글자를 조합하는 방식을 고안했다.(Figure 2).

Figure 1

Comparison of the baseline between horizontal typesetting and vertical typesetting

Figure 2

Comparison of the baseline between the squared font and de-squared font

두 번째로, 마이너스 자간, 가짜 이탤릭, 가짜 장체(Figure 3) 등 사진식자가 보급되며 로마자 타이포그래피 용법이 한글에 부자연스럽게 적용된 문제다. 1970년대부터 모리사와사(モリサワ社), 샤켄사(写研社)의 사진식자기가 우리나라에 보급되며 1980년대부터 활발하게 쓰였으며, 글자의 형태를 자유롭게 부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글자 사이를 비좁게 조정하고, 가변폭 글자인 로마자처럼 한글도 가로모임의 너비를 조절하여 의도적으로 가로획이 서로 연결된 인상이 되도록 비좁게 처리하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글자의 형태와 배열을 물리적으로 변형할 수 없는 납활자 공정과 비교하자면 매우 복잡하고 손이 가는 일이 많아졌고, 세로짜기의 시각흐름선도 흐트러지게 되었다. 가짜 이탤릭 또한 가로쓰기 관습이 담긴 로마자 이탤릭체를 표면적으로 한글에 적용한 것이다.

Figure 3

Roman alphabet typography methods applied to Hangeul

세 번째로, 전각(全角, em) 비율의 한글과 가변폭인 로마자를 섞어짜며 세밀한 조판 공정이 많아졌다. 그동안 국한문 혼용으로 써온 방식은 광복 후부터 한자 폐지, 전자·디지털 디바이스의 증가, 국제화 교류가 늘어남에 따라 주로 로마자와 섞어짜고 있다. 한자와 섞어짤 때에는 같은 전각 비율끼리 조합되고, 한자 단어를 보조하는 역할로 한글이 쓰여 조판에서 회색도나 리듬 면에서 흐름의 강약이 느껴졌다. 반면, 로마자와 섞어짤 때 한글은 각기 다른 글자 비율 때문에 온전히 어울리지 못하여 한 쪽의 서체, 크기, 굵기, 글자사이 등 미세한 조정이 필요해졌다.

마지막으로, 문장부호에서도 양분화가 나타난다. 지금 한글 문장부호는 2014년에 개정된 규정에 따라 쓰고 있다. 이전 규정(1988)에서 가로쓰기는 로마자, 세로쓰기는 일본어 기준에 따랐으나, 고리점(。)과 모점(、), 겹낫표(『 』), 홑낫표(「 」) 등 세로쓰기 문장부호는 잘 쓰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외되거나 가로쓰기용으로 통합하여 개정되었다(Table 1). 2017년 한 차례 개정을 거친 다음에도 그 내용은 유효했다. 쓰기 방향에 따라 각기 다른 문장부호를 쓰는 것 자체도 문제라 볼 수 있지만, 문장부호를 가로쓰기 기준으로 규정하면서 세로쓰기 활용 범위는 대폭 줄어들게 되었다. 디지털 편집 프로그램에서도 세로짜기 지원이 미흡하다. 세로짜기에서 가로쓰기용 문장부호가 놓여 그 위치와 방향이 맞지 않고, 세로쓰기용 문장부호로 손수 바꾸는 공정이 필요하다.

Revision of Hangeul punctuation marks (1998, 2014)

종합하자면, 현재 한글 타이포그래피에서 속출하는 미세한 문제는 가로짜기 전용 서체를 개발해도 이전 문제를 개선하지 못하고, 세로짜기는 개발 조건에서 고려하지 않게 되며 지면에서 활용의 폭이 줄어들어 있다. 책등처럼 세로짜기를 활용하기 충분한 공간에도 가로 글줄을 90도 배열하는 습관(Figure 4)도 이러한 한계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여기에는 앞에서 살펴본 세로글줄의 흐트러짐, 문장부호의 번거로운 처리, 세로짜기 전용 서체의 부재 등 세로짜기 활용 측면에서 이질감이 느껴지는 문제로 직결된다.

Figure 4

Vertical arrangement of Hangeul lines by slanting them at 90 degrees in pages and book spines

3. 2. 시지각적 측면에서 다양성의 한계

자연과학서, 문학서, 잡지, 신문 등 글과 매체에 따라서 독서의 분위기는 상대적으로 다르다. 지면 편집은 성격이 각기 다른 정보에 시각적으로 분위기를 조성해주며 가로짜기, 세로짜기에 따라 그 역할과 방법에 차이가 나타난다. 현재 본문 세로짜기가 거의 보이지 않는 현황에서 가로짜기 전용은 문단짜기를 통해 글의 성격을 풍요롭게 조성하는 가능성을 제한한다.

1960년대부터 출판물의 종류와 양이 증가하며 책을 통해 광범위한 지식을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전자·디지털 매체가 증가함에 따라 정보의 양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포화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을 빠르게 읽고 다른 것으로 넘어가지 않으면 다른 수많은 정보를 접하기 어려워졌다. 즉, 속독을 통해 효율성을 전제로 글을 이해하게 되었고, 현재 지면 편집은 이에 최적화된 가로짜기로 획일화되었다. 학습 능률을 높이기 위하여 교과서, 사전 등에 가로짜기를 가장 먼저 도입한 데에도 “보기에 이롭다”(Choi, 1946)는 효율성이 전제되었다. 또한 눈의 시각 운동은 수평 방향의 시선 이동이 더 수월하고 글을 가로로 읽을 때 가독성과 효율 측면에서 우수하다(Seo & Lee, 1998)는 실증적 연구 결과도 많이 등장했다. 동일한 조건에서 세로짜기는 가로짜기보다 글줄이 더 길게 느껴지고 시선의 운동 범위가 넓어서 오랜 시간 글을 읽으면 피로도가 더 높게 느껴지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여기에 한자가 눈의 피로도를 더 높이는 연구 결과를 더하여 한자와 관계하는 세로짜기는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논리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전환기 세로짜기는 효율적인 글 읽기와는 거리가 먼 방식으로 여겨졌다.


4. 전환기 문단짜기 혼용 현상의 배경

4. 1. 가로·세로 방향 균형을 위한 납활자 개발

국내 납활자 개발은 설계자의 원도(原圖, Typeface Original Drawing)를 두고 자모조각기로 조각하는 방식이 국내에 도입되며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전의 납활자는 조각가가 같은 크기로 일일이 종자를 손으로 다듬어 제작한 전태자모(電鑄字母)였으며, 활자의 완성도 측면에서도, 지면에 활자를 찍어낸 모양도 고르지 못했다. 또한 일제강점기 ‘제3차 조선교육령’(1938)에 의해 한글 사용을 완전히 막으며 출판사, 인쇄소에서 보유한 납활자를 강제로 폐기한 영향으로, 광복 후 상황은 한글 납활자를 한 벌도 갖추지 못할 정도로 열악했다. 한국전쟁 중 해외에서 국가에 용지, 자모조각기, 주조기 등 책을 만들기 위한 기술과 재료를 지원하면서 재료난은 점차 해결되었고, 양질의 출판물을 만들기 위해 한글 납활자 개발은 매우 중요한 사항이 되었다. 기계조각 납활자는 국정교과서주식회사에서 첫 단추를 끼워 가로짜기 교과서용 ‘국정교과서체’(1954)를, 민간 업체에서는 동아출판사에서 명조계열 본문용 ‘동아출판사체’(1957)를 개발했다. 비슷한 시기 삼화인쇄소(1956), 평화당인쇄소(1956) 등 많은 출판사, 인쇄소는 최정순(崔貞淳), 최정호(崔正浩)와 같은 원도 설계자에게 원도를 의뢰하며 활자 개발에 힘을 쏟았다(Figure 5).

Figure 5

Lead types developed with a Benton matrix cutting machine in the 1950s

기계조각 납활자 개발 초기에는 세로짜기 균형에 우선을 두었는데, 자모원으로 참고할 완성도 높은 활자체가 매우 드물고, 극소수의 사료가 모두 세로짜기 균형이었던 영향이 컸다. 섣불리 가로짜기 균형으로 활자를 개발하기보다는 이전 시대의 세로짜기 활자 균형을 참고하여 활자 자체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박경서(朴慶緖), 백학성(한자 이름 불명), 이원모(李原模) 등이 제작한 완성도 높은 세로짜기용 활자체(Figure 6)는 기계조각 납활자 개발의 단서가 되었다. 현재 이에 관한 실증 자료는 구체적으로 남아있지 않지만, 최정순은 이용제(Lee, 2010), 류현국(Ryu, 2017)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평화당과 삼화인쇄의 활자 원도를 설계할 때 초전활판제조소(初田活版製造所)의 ‘백학성체’(1909~10 추정)를 참조했고, 계약 조건으로 여러 곳의 의뢰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최정호에게 백학성의 『한글 신체 조선문 5호 활자 견본장』(1909)을 건네주어 그도 이를 참고하여 원도를 그렸을 것이라고 증언한바, 과거 세로짜기 활자 균형이 기계조각 납활자 개발에 큰 영향을 미친 점을 알 수 있다.

Figure 6

Galvanic matrix fonts mad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또한 가로짜기에도 적절히 쓸 수 있는 균형을 고려한 면모도 보인다. 대표적으로 ‘동아출판사체’는 『국어새사전』(1958), 『국어학습사전』(1958) 등 자사 주력 출판물인 사전, 학습서에는 전면 가로짜기를 적용했다. 『세계문학전집』(1959)에서는 본문을 8포인트 활자로 세로짜기하고, 쪽 번호와 면주 등 보조문도 같은 크기로 가로짜기를 혼용하거나, 차례, 해설 연표 등 일부 구성을 전면 가로짜기 하는 등 한 권의 책에서 세로짜기와 가로짜기를 적극적으로 혼용했다(Figure 7). 이러한 ‘동아출판사체’의 쓰임에 대하여 노은유(Noh, 2012)는 “세로 방향의 시각흐름선이 정렬되도록 고안한 세로쓰기 글꼴인데, 닿자의 너비가 넓고 이음줄기가 완만하여 홀자의 곁줄기가 위쪽에 붙는 등 가로 방향의 시각흐름선을 의식한 구조적 변화를 통해 가로쓰기로 나아가는 시도를 했다”고 해석했다. 덧붙여 『두산그룹사 하권』(1989)의 ‘동아출판사체 미장특허출원서’(1957.1.21. 특허출원 제80호)에는 세로짜기와 가로짜기 균형을 모두 고려하여 개발한 구체적인 특징을 아래와 같이 담고 있으며, 1), 2), 5), 6)은 세로짜기, 4)는 가로짜기 균형에 해당한다.

Figure 7

Dong-A Publishing font used for mixed typesetting: World Literature Series 3 (1959)

  • “1) 중성 ‘ㅏ’의 점이 중간보다 약간 아래쪽에 붙었다.
  • 2) 중성 ‘ㅏ, ㅑ, ㅓ, ㅣ’가 모두 수직이며 붓맺음이 간결, 미려하다.
  • 4) 첫닿자 ‘ㄴ, ㄷ, ㄹ, ㅌ, ㅍ’와 홀자가 만나는 이음줄기 기울기가 구체(舊體)보다 완만하다.
  • 5) 줄기가 가늘고 과학적 통일 체계를 이루어 시각적으로 미려하고 선명해 독서 능률을 높인다.
  • 6) 글자의 간가결구(間架結構)가 정확하고 균형이 잡혀서 안정감을 준다.”(Doosan Group, 1989, Noh, 2012)

이러한 해석과 사료를 종합하여 추측하자면, 초기 기계조각 납활자 개발에는 기술적, 학문적 기반이 없던 시대 상황 속에서 물리적으로 두 방향을 분리하여 활자를 개발하는 일은 어려웠을 것이며, 세로짜기 균형을 우선하되, 가로짜기로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균형을 고려하고자 한 면모가 보인다.

4. 2. 책에 대한 접근성 향상과 독자층의 분리

1960년대 초부터 경제성장을 통해 높은 교육열과 대학에 진학하는 국민의 급격한 증가로 학술연구, 사회, 기술·과학, 문화, 예술 등 분야별 전문 도서와 문학, 사상, 여성, 만화 등 오락과 교양 목적의 정기간행물 수요 또한 높아졌다. 광복 후 처음으로 창간된 『조선주보』(1945)로부터 1950년까지, 정기간행물은 231종으로 기록되었고, 1960년대에 이르러 매우 다양한 분야의 정기간행물이 나오면서 그 수가 1,400여 종으로 늘었다(Jung, 1996). 특히 1970년대에 들어서며 전집류보다는 문고본과 단행본 출판이 활성화되었고, 발행종수는 1970년에 2,591종에서 1979년에 7,151종으로 월등히 늘어나며(Korean Publishers Association, 1998), 시기적으로 책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진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경제성장률이 높아짐에 따라 대중의 지식 수요가 높아지고, 교양, 시사, 문화 향유를 위한 독서 환경이 조성된 것과 연관된다. 물론 수요와 공급의 급증으로 유사 작품 모방, 중복 출판 등의 문제도 보였지만, 1950년대부터 단계적으로 다져온 활자 개발, 인쇄 기술 충족, 출판물 기획의 성과가 이 시기 빛을 발하게 되면서 과거 ‘장식품’, ‘신분 상징’으로서의 책은 비로소 대중의 학문적, 문화적 지식을 수용하여 대중성을 확보한 것이다.

한글 전용 5개년 계획이 1968년부터 공문서와 교과서를 중심으로 시행되며 한자의 점층적 폐지, 지면 편집의 가로짜기 전환을 거치면서, 출판물은 독자층에 따라 문단짜기 방식이 양분화되기 시작했다. 한글 전용이 사회 곳곳에 완전히 정착되지 않은 영향으로 대중은 출판물을 통해 가로짜기와 세로짜기를 경계 없이 접하며, 두 방향에 유연한 시각 환경이 형성되었다. 이 시기의 문고본, 단행본, 정기간행물, 신문 등 특정 연령 구분이 없는 일반 도서는 보통 문단짜기를 혼용하는 일이 잦았다(Figure 8). 단, 교과서, 학습참고서, 사전 등 교육 관련 출판물 또는 어린이, 청소년 등 특정 연령층을 대상으로 삼은 출판물은 전면 가로짜기로 발행했다(Figure 9). 이는 책에 대한 세로짜기로 한글을 접해온 기성세대와 가로짜기로 교육받는 새로운 세대 간의 글 읽기 관습이 공존하며 나타난 현상으로 본다.

Figure 8

General publications in the 1960s and 1970s

Figure 9

Children’s books in the 1960s and 1970s

정부와 일부 민간 업체의 주력 출판물은 어린이·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사전과 교과서, 참고서 등의 학습서였다. 출판물의 판형은 국판(A5, 148x210mm) 정도로 일반 출판물보다 다소 크고, 본문도 10~14포인트 정도의 큰 활자를 썼다. 아동도서 전문 출판사인 계몽사의 『소년소녀 과학전집1 우주의 모습』(1967)(Figure 10)에서는 본문은 10포인트, 그림 설명과 해설은 9포인트로 배열했는데, 일반 성인 대상 출판물 본문에 쓰인 8포인트 활자보다 크다. 당시 교과서 본문도 14포인트 이상 크기의 활자를 썼는데, 어린 독자의 판독성을 높이는 배열을 통해 학습 능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보인다.

Figure 10

Horizontal typesetting in the children’s book Look of the Universe (1967)

반면, 성인층이 접하는 전문지식서와 교양서, 다양한 범주의 정기간행물에서는 문단짜기 혼용이 두드러졌고, 36판(103x182mm), 46판(127x188mm) 등 어린 독자층을 대상으로 한 출판물보다 작은 판형이 주를 이뤘다(Figure 11). 세계문학전집은 국배판(A4, 210x297mm)의 큰 판형으로도 출간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방문판매를 통한 인테리어 소품 또는 장식을 위한 목적을 띠었다. 이와 달리 읽기 위한 출판물은 휴대성을 고려한 작은 판형이 주를 이루었다. 본문 조판은 촘촘한 우종형 세로짜기를 취하고, 보조문은 본문 가독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으로 지면 여백에 가로짜기했으며, 판형이 커질수록 2~4단까지 문단을 나눴다. 정기간행물은 판형이 매우 유동적이고 기사의 수와 내용에 따라 지면 편집이 매우 다채로웠다. 유흥 목적의 여성·오락지는 그림을 부각하고, 본문 중심의 시사, 교양, 문예지는 기사를 단편적으로 알아볼 수 있도록 제목과 서문을 강조하거나 장식하는 방법으로 배열했다.

Figure 11

Mixed typesetting in general publications: My Theater Class (1974) and Contemporary Literature, no. 164 (1968)

단계별 가로짜기 적용이 점차 자리를 잡고 사진식자를 본격적으로 보급한 1980년대부터 출판물은 이러한 구별 없이 가로짜기가 급속도로 확산하였다. 그전까지는 출판물의 판형과 종류에 따라 문단짜기를 다양하게 활용하며 다채롭게 글을 보고 읽는 환경이 조성된 점을 알 수 있다.

4. 3. 다양한 문단짜기 혼용 유형

이 시기 보인 문단짜기 혼용은 특별한 고유 편집 스타일을 시도하기 어려운 기술적, 사회적 상황 속에서 일본식, 서구식 등 외래에서 유입된 지면 편집 방식을 차용, 적용하는 과정을 겪으며 몇 가지 유형(Figure 12)으로 나타났다.

Figure 12

Types of mixed typesetting in the 1960s and 1970s

첫 번째로, 우종형 세로짜기를 본문으로 두고, 좌횡형 가로짜기를 보조문으로 혼용하는 방식이다. 이는 가로짜기가 유입된 시점부터 1950년대 이전까지 한국, 중국, 일본에서 가로짜기 시작 방향에 혼란을 겪다가 좌횡형으로 통일되면서 나타났다. 특히 일본에서는 태평양전쟁(太平洋戰爭, 1941~1945) 패전을 기점으로 우종-좌횡 짜기 혼용으로 통일되는 조짐이 보였는데, 이미 갖춰진 양질의 인쇄·출판 기술에 힘입어 안정적으로 문단짜기 혼용을 출판물에 적용할 수 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광복 후 공식적으로 가로짜기를 좌횡형으로 지정하며 일제강점기까지 자주 보인 전면 세로짜기나 우종-우횡 짜기 혼용은 줄어들고, 우종-좌횡 짜기 혼용 방식이 자리잡았다. 또한, 부족한 한글 활자를 일본에서 사들이는 과정과 1960년대부터 일본에 대한 수입 규제가 점차 완화되며 일본 출판물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고, 이것을 한글 출판물에 반영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특히 을유문화사의 『을유문고』, 삼중당의 『삼중당문고』, 범우사의 『범우소설문고』 등 대다수의 문고본(Figure 13)은 이와나미신서(岩波新書, 1938~현재)(Figure 14)의 36판 지면 편집과 흡사하다. 차이점이라면, 이와나미신서는 본문 활자 9포인트, 16항 배열이고, 한글 문고본은 본문 활자 크기가 7~8포인트, 16~20항 사이의 촘촘한 배열이다. 회색도가 진한 한자와 관계하며 리듬감을 형성하는 일본어와는 달리, 한글은 획 수의 편차가 크지 않고 상대적으로 회색도가 옅어서 작은 활자를 배열하여 밀도를 더해주고 띄어쓰기를 통해 어절을 덩어리로 느끼도록 유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세로짜기에서 기둥선에 잡힌 시각흐름선에 의해 가독을 조성하는 점에서도 차이가 보인다.

Figure 13

Mixed typesetting in a Korean paperback: History of Eastern Art (1971)

Figure 14

Mixed typesetting in a Japanese paperback: History of China, vol. 1 (1969)

두 번째로, 좌횡형 가로짜기를 본문, 우종형 또는 좌종형 세로짜기를 보조문으로 배열하는 혼용 방식이다. 교과서를 제외한 출판물에서 시도한 본문 가로짜기는 한국전쟁기부터 직접적으로 접한 해외 정기간행물의 지면 편집 방식을 국내 정기간행물에 적용하면서 늘어났다. 초반에는 단순히 이를 차용하는 정도로 머물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수 디자이너가 서구 가로짜기 그리드를 감각적으로 이해하고 출판물 아트디렉팅의 필요성을 인식하며 우리 방식으로 차츰 해석, 적용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이는 1970년대 후반부터 국내 대기업 사보나 한글 전용 정기간행물을 중심으로 나타났고, 문단짜기를 혼용하기보다는 전면 가로짜기 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 이러한 데에는 해외 타이포그래피 양식이 전면 가로짜기를 전제로 하여 이 방식을 직접적으로 시도하기 수월했고, 단계별로 도입된 가로짜기 전환이 교과서와 공문서를 넘어서 점차 일반 출판물에까지도 적용되는 상황이 동시에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본다. 이러한 적용 과정에서 가로짜기 지면 여백에 세로짜기를 보조문으로 활용한 예도 보였다. 전통적으로 쓰인 우종형을 적용한 좌횡-우종 짜기 혼용, 문단 시작 방향을 좌횡형 가로짜기에 맞춘 좌횡-좌종 짜기 혼용 두 가지다. 이러한 형식은 지면 편집에 자유도가 있는 정기간행물에서 주로 나타났다. 특히 국판(148x210mm) 정도 판형에서는 의도적으로 가로짜기 본문의 한 단을 제거하여 제목, 부제목, 서문 등의 보조문을 세로짜기로 활용한 양식이 주로 보였다(Figure 15, 16). 약 20~30년 동안 가로짜기로의 전환 과정을 겪으며 점차 대중의 독서 방식이 좌횡형 가로짜기에 익숙해져 갔지만, 그럼에도 세로짜기를 가로짜기 질서에 어떻게 반영할지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Figur 15

Mixed (left-side horizontal and right-side vertical) typesetting in magazines: Naeoechulpangye (1972), Dongseomunwha (1970)

Figure 16

Mixed (left-side horizontal and vertical) typesetting in a magazine: Naeoechulpangye (Dec. 1972)


5. 문단짜기 혼용 지면 사례 분석

5. 1. 본문 세로짜기의 시선 도약 보정

인간의 시각 운동 체계는 수평 방향의 시선 이동에 선호성을 보이며, 이러한 시각 및 안구 운동은 글을 읽는 행동에도 반영된다(Seo, 1998). 동일한 조건에서 세로짜기는 가로짜기보다 시선 이동의 범위가 더 넓어서 글줄이 길게 느껴지고 피로도가 더 높다. 따라서 본문 세로짜기는 글줄 길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따라 독서 피로도를 결정하기 때문에 이를 보정할 필요가 있다.

문고본, 전집, 정기간행물 등 본문 세로짜기 출판물(Figure 17)에서는 판형에 따라 단 구분과 글줄 길이를 다양하게 처리했다. 당시 문고본은 36판(103x182mm), 단행본은 46판(127x188mm) 정도의 작은 판형이었는데, 세로 폭이 가로짜기 단행본의 가로 폭과 비슷하거나 약간 작은 축에 속한다. 이러한 판형에서 세로짜기는 글자 크기, 글줄 길이, 여백 등 기본적인 판면 요소를 다양하게 조합할 수 있다(Sim, 2016). 또한 지면의 좌우 여백보다 상하 여백을 더 넓게 잡아서 다소 길게 느껴질 수 있는 글줄을 짧게 처리했다. 또한 이 시기 본문 세로짜기 정기간행물은 판형에 따라 단을 늘려 세로글줄의 길이를 줄이고, 시선 이동의 범위를 적절하게 조절하고자 한 방식이 보편적이었다. 『신동아』, 『현대문학』, 『사상계』, 『재정』 등 텍스트 중심의 문예, 시사교양물에서도 국판의 2~3단 처리의 편집을 이루었다. 이처럼 세로짜기에 최적화된 단처리는 1980년대에 들어서도 소수 정기간행물에서 지속되었는데, 『월간조선』은 1999년까지 본문 세로짜기에서 3단 그리드가 글줄의 길이를 적절하게 분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여겼다.

Figure 17

Different grid layout examples of vertical typesetting by book format: Sasanggye (Nov. 1965), Critique of Pure Reason (1976), The Old Man and the Sea (1969)

5. 2. 문단 방향에 따른 점선형 인식 활용

문단짜기 혼용 출판물에서의 세로 글줄과 가로 글줄은 글자를 인식하는 특성에서 다르게 느껴진다. 세로 글줄은 기둥선에 잡히는 시각흐름선을 통해 선형 인식이 뚜렷해진다. 한창기는 한글이 세로쓰기를 기준으로 창제되었기 때문에 세로 글줄의 기둥선에 의해 글자와 글자가 연결되어 덩어리로 읽히는 유기성이 나타난다(Lee, 1984)고 언급했다. 여기서 유기성은 글자와 글자가 긴밀히 연결된 인상, 곧 자연스러운 시각흐름이 조성되는 성질을 말하는 것으로, 로마자 가로짜기에서 글줄에 균일한 기준선이 형성되는 원리와 비슷하다. 한글에서는 이러한 유기성이 세로홀자에 나타난다. 세로홀자(ㅏ, ㅐ, ㅑ, ㅒ, ㅓ, ㅔ, ㅕ, ㅖ)와 섞임홀자(ㅘ, ㅙ, ㅚ, ㅝ, ㅞ)에는 반드시 기둥이 있고 닿자와 조합할 때 글자 오른쪽에 놓이며, 받침자가 더해져도 그 위치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같은 조건에 놓여도 세로 글줄에서 가로 글줄보다 상대적으로 글줄흐름선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고르게 형성된 세로 글줄흐름선의 영향으로 본문 세로짜기에서는 글자 사이가 좁고, 글자와 글자가 긴밀히 이어진 인상이다. 반면, 납활자 가로짜기는 글자 사이가 넓게 느껴진다. 이를 좁게 조정하여 인위적인 유기성을 조성하려 한 지금의 가로짜기와 달리 글자가 한자씩 인식되게끔 보인다. 이는 세로짜기처럼 분명한 시각흐름선이 나타나지는 않지만, 글자 중앙에 무게 중심이 잡히고 글자 사이에 충분한 백의 공간을 주어 한 자 한 자 명확한 인상으로 느껴진다.

종합하자면, 문단짜기 혼용 지면에서 세로짜기는 선형 인식이, 가로짜기는 점형 인식이 역할에 따라 적절히 반영되어 있다. 당시 문고본이나 전집에서 본문은 세로짜기로, 보조문은 가로짜기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본문 세로짜기는 글자가 수직으로 일정하게 연결되어 미감적으로 고르고, 글을 읽을 때 유려한 시각 흐름을 조성한다. 반대로 보조문 가로짜기는 상대적으로 글자 사이가 넓어 글자를 하나씩 한 자 한 자씩 읽으며, 본문 이외 보조문의 정보에도 주목성을 준다(Figure 18).

Figure 18

Different ways for a reader to recognize vertical typesetting and horizontal typesetting in a mixed typeset publication: Korean Culture (1969)

5. 3. 보조문의 규칙성과 유동성

문고본, 전집처럼 장편 서사를 다루는 출판물(Figure 19)에서는 본문에 집중하기 위한 문단짜기의 규칙성이 뚜렷이 보인다. 약 100~400쪽 분량을 1~2단 그리드로 항간을 비좁게 나열하여 본문 가독에 최대한 중점을 두고 보조문을 필요 이상 부각하지 않는다. 제목, 소제목, 등장인물 등 판면 속 보조문은 본문과 동일하게 세로짜기 하고, 항을 의도적으로 비워 소제목 정도만 가로짜기 하는 경우도 보인다. 면주, 쪽 번호, 사진 설명 등 판면 밖 보조문은 장식을 최대한 배제하고 본문보다 1~2포인트 작은 활자로 가로짜기했다. 이러한 규칙적 배열에서 보조문은 본문을 전적으로 보조하기 위해 개성을 감추지만, 반대 방향으로 배열한 영향으로 주목성이 나타나며, 독서 분량 또는 장 정보를 독자가 정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다.

Figure 19

Mixed typesetting in a paperback and a series book with vertically set main text and horizontally set additional text: Where the Wind Blows From (1975), The Story of Bible, vol. 5 (1971)

반대로, 정기간행물처럼 1~3쪽 분량의 기사의 수가 많은 출판물에서는 보조문을 본문과 반대방향으로 설정하여 유동적으로 활용하는 예가 많다. 이러한 경우는 독자가 원하는 쪽만 선택하여 보기 때문에, 지면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보조문을 강조하고 장식한다. 『사상계』(1965.11), 『신동아』(1979.8), 『재정』(1972.1), 『월간 세대』(1965.7)와 같은 문예, 시사교양지(Figure 20)는 제목, 서문 등 보조문의 크기를 크게 처리하고 광곽을 둘러 장식적 요소를 부각하여 흥미롭거나 읽고자 하는 기사에 시선이 먼저 가도록 한다. 또한 판면 공간을 의도적으로 비워서 서술형 보조문을 강조하는 방식도 보이며,『월간 세대』(1975.11)(Figure 21)와 같이 의도적으로 가로폭 공간을 확보한 방식도 보인다. 이는 문단짜기를 혼용할 때 가로 공간을 통해 보조문을 효과적으로 배열, 강조할 수 있는 편집 방식으로 볼 수 있다.

Figure 20

Emphasizing additional text through horizontal typesetting: Sasanggye (Nov. 1965), Shindonga (Jul. 1979), Jaejeong (Jan. 1972)

Figure 21

Use of horizontal margins in mixed typeset pages: The Monthly Sedae (Nov. 1975)

디지털 가로짜기 지면에서도 원고량이나 출판물의 종류에 따라 보조문을 표현하는 방식은 비슷하지만, 문단짜기 혼용에서는 보조문을 부리는 방법을 더욱 다채롭게, 본문과 보조문의 대립하는 방향성을 통해 상대적으로 지면에 역동감과 긴장감을 부여하는 점을 알 수 있다.

5. 4. 보조문의 좌종형 세로짜기 활용

드물지만, 본문 가로짜기 정기간행물에서 보조문 또는 보조기사를 세로로 짠 지면을 찾아볼 수 있다. 『월간디자인』은 창간호부터 10호(1976~77)까지 일부 지면에서 좌횡-좌종형 짜기 혼용을 시도했다. ‘건축·실내 디자인’, ‘한국의 미’, ‘가구 디자인’ 등의 지면(Figure 22)은 두 가지 기사를 배치하는데, 3분의 2가량의 주된 기사는 3단 가로짜기를, 3분의 1가량의 보조 기사는 1단 좌종형 세로짜기했다. 또한, 화보 중심 지면(Figure 23)에서도 그림 설명을 좌종형 세로짜기했다. 이렇게 좌종형으로 세로짜기를 활용한 데에는 공간 활용의 측면은 물론, 좌횡형 가로짜기의 본문에 맞춰 세로짜기의 흐름을 통일한 것으로 보인다.

Figure22

Mixed (left-side horizontal and vertical) typesetting in a magazine: Monthly Design, no. 7 (Jul.1977)

Figure 23

Left-side vertical typesetting of captions: Monthly Design, no. 5 (May 1977)

가로짜기 정기간행물에서 보조문을 좌종형 세로짜기한 사례는 1970년대 후반부터 주로 나타난다. 여기에는 이 시기부터 가로짜기 정책이 점차 안정적으로 자리잡히며 아트디렉팅, 서구식 가로짜기 그리드시스템을 체계적으로 적용한 완성도 높은 몇 가지 정기간행물이 보이면서 가로짜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것으로 본다. 이러한 가운데 좌종형 세로짜기 시도는 기존 세로짜기 체제를 가로짜기 출판물에서 적용하기 위한 고민과 활용 측면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5. 5. 제책 방향의 혼합

보통 출판물은 한 방향으로 획일된 흐름으로 전개되며, 제책 방식에 따라 우철은 우종형 세로짜기, 좌철은 좌종형 가로짜기로 본문을 짠다. 반면, 문단짜기 혼용 출판물에서는 책 한권에서 두 가지 제책 방향을 혼합하여, 차례 구성에 따라 상반된 방향으로 본문을 전개하기도 한다.

전문 용어를 담은 색인, 유명 작가의 일대기, 해설 등 본문 세로짜기 문고본, 전집에서 부록면은 전면 가로짜기 하여 좌철 방향으로 읽을 수 있다. 문고본 『동양미술사』(1971)(Figure 24)의 색인 지면은 상단에 좌철 기준으로, 하단은 우철 기준으로 쪽 번호를 기재했다. 전집 『세계문학전집3 모옴』(1959)(Figure 25)도 작품 해설과 작가 연표 등 부록을 전면 가로짜기했는데, 쪽 번호도 지면 하단에 오른쪽 제책 기준으로 기입하며 도입면, 본문면과 반대 방향으로 시작되는 점을 확실히 보여준다. 정기간행물 『계간미술 1』(1976)(Figure 26)에서도 약 25페이지 분량의 특집 기사를 종결부에 두고 본문을 전면 가로짜기했다.

Figure 24

Mixing left-to-right and right-to-left reading methods in a paperback: The History of Eastern Art (1971)

Figure 25

Mixing left-to-right and right-to-left reading methods in a series: World Literature Series, vol. 3 (1959)

Figure 26

Mixing left-to-right and right-to-left reading methods in a magazine: Quarterly Art, no. 1 (1976)

이처럼 제책 방향을 혼용한 출판물은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기존의 방식과는 달리 출판물 속에서 각기 다른 문단짜기를 통해 입체적인 독서 방법을 조성할 수 있다. 특히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부록면도 주목할 수 있기 때문에 차례 구성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6. 결론

1960~70년대 근대적 디자인의 구체적 기반이 잡혀있지 않은 시기, 서구식 그리드 시스템의 도입 등 한글 문단짜기를 둘러싼 복합적인 환경은 우리 인쇄·출판 환경에서 다양한 문단짜기 혼용 현상을 만들어 냈다. 더러는 이를 규칙 없이 혼란스럽게 문단을 부린 과도기적 현상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지금의 기준으로 그 방법의 거칠고 엉성함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이 시기 문단짜기 혼용 현상이 상반된 두 배열 방식을 결합하며 지면 형식의 체계화를 점차 갖추고자 한 일종의 다양한 실험이었음을 과소평가하는 일이라고 본다. 이를 위해 이 연구에서는 1960~70년대 문단짜기 혼용에 다양성과 확장성의 가치를 두고 그것이 어떤 양상과 특징으로 전개되었는지를 검토했고, 이것이 주는 가치를 다음의 단서로 정리하고자 한다.

연구를 통해 먼저 본문 세로짜기 편집 방식의 체계화 가능성을 보았다. 본문 세로글줄은 글자와 글자를 긴밀하게 연결하는 유기성을 드러내고 분명한 시각흐름선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지면에 고르고 정교한 인상을 준다. 당시 편집자들은 글이 수직으로 서 있는 강렬한 인상과 밀도 있는 편집을 통해 글이 지닌 권위와 신뢰에 힘을 싣고자 했으며, 이를 통해 독자가 교양과 지식을 접하는 풍요로운 독서 분위기를 조성하려 했다. 또한 세로글줄을 읽을 때 시선이 좁게 이동하는 한계도 단 처리를 통해 극복하고자 했고, 출판물의 종류와 관계없이 주된 디자인 형식으로 사용했다. 즉, 이 연구에서 살펴본 1960~70년대 출판물은 세로짜기가 지닌 특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세로짜기의 특성을 충분히 담은 그리드의 가능성 모색을 통해 지면 편집 디자인의 체계화를 시도하고자 했다.

둘째, 이 시기의 보조문 문단짜기는 유연한 지면 활용의 가능성을 드러냈다. 문단짜기 혼용에서는 상반된 방향성에 따라 주 텍스트와 보조 텍스트의 관계에 긴밀한 환경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지면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면모가 나타났다. 이는 보조문에 서로 다른 방향성을 부여함으로써 지면의 모든 텍스트가 서로 다른 제 역할을 뚜렷이 갖고, 이를 통해 시각적 차이와 독서의 호흡을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을 동시에 담고자 한 특성을 보였다.

셋째, 1960~70년대 혼용기 출판물은 변화에 대처하는 유연한 자세를 드러냈다. 동아시아권에서는 전통적으로 활자를 오른쪽부터 배열하는 우종형 세로짜기만 써왔다. 가로짜기 유입 초기에는 우횡형과 좌횡형 사이에서 시작 방향의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로마자와 동일한 방식으로 정착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일본과 중국에서는 좌횡형 가로짜기와 우종형 세로짜기가 인쇄·출판물에 완전히 정착되었고 현재 우종-좌횡짜기 혼용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는 세로짜기의 시작 방향을 본문 가로짜기 흐름에 따라 매우 유동적으로 적용하고자 했다. 이러한 시도는 1970년대 가로짜기 전환 정책이 단계별로 적용되는 변화 속에서 세로짜기 활용에 대한 고민을 지면에 적극적으로 시도한 유연한 대처의 자세로 해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독서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제책 방식 다양화의 단서를 보았다. 문단짜기 혼용 출판물에서 본문면의 세로짜기는 우철 방향으로, 색인이나 해설, 특집 기사와 같은 종결부 부록면의 가로짜기는 좌철 방향으로 전개하며 한 책 안에서 제책방향을 혼합하여 각 차례 구성을 분명하게 구분함과 동시에 서사 흐름을 유동적으로 조성하고자 했다. 이는 문단짜기 방향의 차이에 따라 입체적으로 질서를 재구성하려는 면모를 보여준다.

문단짜기의 통일은 정보 유통의 측면에서 효율성을 갖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시각적인 인식과 그에 따른 표현의 상상력을 제한한다. 이 연구는 그러한 제한이 우리 문자 문화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전, 혼용 시기의 사례를 탐구함으로써 문단짜기 방향에 구애 없이 지면을 유연하게 활용하기 위한 단서를 찾고 그 표현의 폭을 넓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 이 연구가 현재 가로짜기 전용이 갖는 한계와 문단짜기의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하는 단초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럼에도 이 연구에서 설정한 범위와 자료수집의 한계는 문단짜기 혼용 사례의 특징 분석을 통해 그 시도의 의미와 가치를 짚는 것을 넘어서 이 연구의 결과가 문단짜기 혼용 방식을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실증 결과로 이어지도록 제안하는 데는 한계로 작용했다. 또한 문단짜기 혼용이라는 특수한 현상 속 사례를 집중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다양한 사례 유형을 현재의 디지털 조판 환경에서 실제로 적용할 수 있도록 구현하는 실증 연구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면밀하게 추가 사례 분석을 이어가야 한다. 비슷한 시기 문단짜기를 혼용한 중국과 일본, 한국의 사례를 비교하여 한글 문단짜기 혼용에서 보이는 구조적 특징을 분석하는 연구도 우리 문단짜기의 다양성을 현실화하는 후속 연구가 될 것이다.

Glossary

* 일러두기: 문단짜기 혼용의 정의가로짜기와 세로짜기를 혼용한 방식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용어를 정의한 연구는 매우 드물다. W3C(2012)는 “본문을 세로로 짤 경우 보조문을 가로로 혼합하여 짜는 경우가 많다”고 기술했고, 일본 온라인 데이터베이스에서는 ‘가로짜기와 세로짜기의 혼재’라는 현상적 묘사 정도가 등장한다. 이 연구에서는 조판 측면에서 문단 배치를 고려하여 가로짜기나 세로짜기를 다루고 있으므로 조판과 배치의 의미를 담아 ‘문단짜기’라는 용어를, 두 글줄 방향을 ‘섞어 쓴다’는 의미로서 ‘혼용’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또한 지면을 모두 한 방향으로 짤 경우 ‘전면 가로짜기’, ‘전면 세로짜기’로, 그림설명, 쪽 번호, 면주 등 사소한 보조문 배열에서라도 한 지면에 두 방향을 혼용하여 짤 경우 ‘문단짜기 혼용’으로 분류하여 다룬다.

Acknowledgments

For this study, part of the researcher’s 2021 doctoral thesis “A Critical Examination of Hangeul's Exclusive Use of Horizontal Typesetting” at Hongik University was revised and complemented.

이 연구는 연구자의 2021년 홍익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한글 가로짜기 전용에 대한 비판적 검토」의 내용 일부를 발췌하여 수정 보완한 것이다.

Notes

Citation: Park, J., & Ahn, B. (2021). The Value of Hangeul Horizontal-Vertical Mixed Typesetting in the 1960s and 70s. Archives of Design Research, 34(4), 257-283.

Copyright :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educational and non-commercial use,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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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

Figure 1
Comparison of the baseline between horizontal typesetting and vertical typesetting

Figure 2

Figure 2
Comparison of the baseline between the squared font and de-squared font

Figure 3

Figure 3
Roman alphabet typography methods applied to Hangeul

Figure 4

Figure 4
Vertical arrangement of Hangeul lines by slanting them at 90 degrees in pages and book spines

Figure 5

Figure 5
Lead types developed with a Benton matrix cutting machine in the 1950s

Figure 6

Figure 6
Galvanic matrix fonts mad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Figure 7

Figure 7
Dong-A Publishing font used for mixed typesetting: World Literature Series 3 (1959)

Figure 8

Figure 8
General publications in the 1960s and 1970s

Figure 9

Figure 9
Children’s books in the 1960s and 1970s

Figure 10

Figure 10
Horizontal typesetting in the children’s book Look of the Universe (1967)

Figure 11

Figure 11
Mixed typesetting in general publications: My Theater Class (1974) and Contemporary Literature, no. 164 (1968)

Figure 12

Figure 12
Types of mixed typesetting in the 1960s and 1970s

Figure 13

Figure 13
Mixed typesetting in a Korean paperback: History of Eastern Art (1971)

Figure 14

Figure 14
Mixed typesetting in a Japanese paperback: History of China, vol. 1 (1969)

Figur 15

Figur 15
Mixed (left-side horizontal and right-side vertical) typesetting in magazines: Naeoechulpangye (1972), Dongseomunwha (1970)

Figure 16

Figure 16
Mixed (left-side horizontal and vertical) typesetting in a magazine: Naeoechulpangye (Dec. 1972)

Figure 17

Figure 17
Different grid layout examples of vertical typesetting by book format: Sasanggye (Nov. 1965), Critique of Pure Reason (1976), The Old Man and the Sea (1969)

Figure 18

Figure 18
Different ways for a reader to recognize vertical typesetting and horizontal typesetting in a mixed typeset publication: Korean Culture (1969)

Figure 19

Figure 19
Mixed typesetting in a paperback and a series book with vertically set main text and horizontally set additional text: Where the Wind Blows From (1975), The Story of Bible, vol. 5 (1971)

Figure 20

Figure 20
Emphasizing additional text through horizontal typesetting: Sasanggye (Nov. 1965), Shindonga (Jul. 1979), Jaejeong (Jan. 1972)

Figure 21

Figure 21
Use of horizontal margins in mixed typeset pages: The Monthly Sedae (Nov. 1975)

Figure22

Figure22
Mixed (left-side horizontal and vertical) typesetting in a magazine: Monthly Design, no. 7 (Jul.1977)

Figure 23

Figure 23
Left-side vertical typesetting of captions: Monthly Design, no. 5 (May 1977)

Figure 24

Figure 24
Mixing left-to-right and right-to-left reading methods in a paperback: The History of Eastern Art (1971)

Figure 25

Figure 25
Mixing left-to-right and right-to-left reading methods in a series: World Literature Series, vol. 3 (1959)

Figure 26

Figure 26
Mixing left-to-right and right-to-left reading methods in a magazine: Quarterly Art, no. 1 (1976)

Table 1

Revision of Hangeul punctuation marks (1998, 2014)

이전규정(1998) 새규정(2014)
가로쓰기 세로쓰기 가로쓰기
온점(.) 고리점(。) 마침표(.)
반점(,) 모점(、) 쉼표(,)
큰따옴표(“”) 겹낫표(『』) 큰따옴표(“”), 겹낫표(『』)
작은따옴표(‘’) 홑낫표(「」) 작은따옴표(‘’), 홑낫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