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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정치성 개념 유추 : 1920-30년대 독일, 이탈리아, 미국의 디자인에 대한 해석 비교 분석
Inferring the Concept of Political Nature in Design : Comparing and Analyzing Interpretations to the 1920~30's Design of Germany, Italy and the United States
  • Yeoyong Kim : Department of Industrial Design,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Korea
  • 김 여용 : 서울대학교 디자인학부, 서울, 대한민국

연구배경 '디자인의 정치성' 개념은 이론화, 범주화가 되지 않은 채 모호하게 쓰이고 있다. 디자인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해석들을 통하여 '디자인의 정치성' 의 개략적 개념을 추정하고, 이러한 해석이 '1920-30년대 디자인의 정치성에 대한 다른 시각'의 의미를 넘어서 '현대 디자인의 정치성 형성'의 기반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할 것이다.

연구방법 1)1920-30년대 독일, 이탈리아, 미국의 디자인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디자인사가들의 해석들을 기술한다. 2)이를, 정치, 경제, 사회적 배경 및 관점으로 분석한다. 3)분석을 기반으로 전체주의 국가와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해석의 차이를 비교 및 분석 한다. 4)'디자인의 정치성' 개념을 유추한다.

연구결과 경제적, 사회적 연구를 기반으로 유추한 개념은 '상대적'이다. 정치 프로파간다는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국가 모두에서 발견할 수 있고, 특정 양식이 특정 이데올로기를 표방하지 않는다. 디자이너와 권력자의 정치적 의도, 추구하는 양식이 일치할 경우 극대화된 정치성을 나타낸다. 이러한 동질성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와 전체주의 프로파간다 사이에서 차이점을 찾을 수 있는데, 대중의 소비로 야기되는 정치성이 변화가 그러하다. 이는 디자인의 정치성을 해석하는 다른 관점이 필요함을 드러낸다.

결론 디자인의 정치성은 '권력자와 디자이너', '디자이너와 대중', '대중의 소비' 사이에서 변화한다. 특히, 디자이너의 정치적 의도와 이를 소비하는 대중의 관점은 과거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유효하다. 디자인의 범위가 공공의 영역으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정치성' 에 대한 디자이너의 이해, 대중의 정치적 사유와 행위, 비평가들의 해석이 수반된다면, '능동적인' 디자인 정치성 구축이 가능할 것이다.

Abstract, Translated

Background The concept of 'political nature in design' has been used vaguely without theorizing and categorizing. Interpreting the relation between design and politics, 'the political nature of design' would be conceptualized. This interpretation would reveal the base to construct 'contemporary design's political nature', exceeding the 'new viewpoint to 1920-30's design's political nature'.

Methods 1)Describing interpretations of design historians to the relationships between design and politics in 1920-30's Germany, Italy and the United States 2)Analyzing the descriptions by borrowing from political, economical and social viewpoints 3) Comparing and analyzing differences of interpretations to totalitarian and democratic states' designs 4) Presuming the concept of 'design's political nature'.

Results The inferred concept of political nature based on economical and social study is 'relative'. Political propaganda is discovered in both totalitarian and democratic states. A certain style does not propagate a certain ideology. If the designer and the ruler concur with each other in political intentions and styles, the political nature of design would be maximized. Despite this homogeneity, there are some differences between the propaganda of democratic and of totalitarian states. The difference is that public consumption creates a change of political nature. This reveals the need of other sights to interpret design's political nature.

Conclusions The political nature of design is changing 'between the ruler and designer', 'between designer and the public', and 'in public consumption'. The viewpoint regarding the political intention of designer and the consuming public is valid not only in the past but also in the present. With the range of design expanding, it would be possible to construct 'active' design's political nature when it is accompanied with designer's understanding of political nature, the public's political thought and action, and the critic's interpretations.

Keywords:
Design's Political Nature, Political Propaganda, Totalitarian Design, 디자인의 정치성, 정치 프로파간다, 전체주의 디자인.
pISSN: 1226-8046
eISSN: 2288-2987
Publisher: 한국디자인학회Publisher: Korean Society of Design Science
Received: 14 Dec, 2018
Revised: 14 Jan, 2019
Accepted: 18 Jan, 2019
Printed: 28, Feb, 2019
Volume: 32 Issue: 1
Page: 177 ~ 185
DOI: https://doi.org/10.15187/adr.2019.02.32.1.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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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ation : Kim, Y. (2019). Inferring the Concept of Political Nature in Design : Comparing and Analyzing Interpretations to the 1920~30's Design of Germany, Italy and the United States. Archives of Design Research, 32 (1), 177-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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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그에 관련된 많은 개념들이 생성된다. 공공 영역의 건축물이나 조형물들에 대한 '정치성을 띤다' 혹은, '정치적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등의 표현도 디자인과 정치의 관계 사이에서 생성된 개념 중 하나이다. 디자인의 정치성, 정치적 성격에 대한 표현들이 그다지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오랜 시간을 거쳐 일반화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섣부르게 정확한 뜻을 개념화할 수 없는 까닭은 이 두 단어의 심리적 거리가 멀고, 그 조합이 표출하는 생각이 범주화와 이론화가 되지 않은 채 부유하기 때문이다.

이 '디자인의 정치성' 대한 의미를 선명하게 다듬기 위해 먼저 디자인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인 디자인사 시각을 얻기 위해, 인용 횟수가 높은 디자인사 서적인 페니 스파크(Penny Sparke)의 『20세기 디자인과 문화(An Introduction to Design & Culture in the Twentieth)』 (1986) 와 조나단 우드햄(Jonathan M. Woodham)의 『20세기 디자인 : 디자인의 역사와 문화를 읽는 새로운 시각(Twentieth century design)』 (1997), 그리고 일부 정시화의 『산업 디자인 150년』 (1991)을 기준으로 디자인과 정치의 관계가 극명히 드러났던 1920-30년대 전체주의시기에 대한 디자인사가들의 해석들을 살펴볼 것이다. 특히, 이 시기 전체주의 국가였던 독일과 이탈리아, 민주주의 국가였던 미국의 디자인과 정치에 대한 디자인사가들의 시각을 기술할 것이며, 범위는 주로 공공 영역에 한할 것이다. 이러한 디자인사가들의 시각을 다시 동시대에 대한 정치, 경제, 사회적인 외부 학문의 관점을 빌어 해체하고, 이렇게 해체된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국가의 디자인 정치성을 비교, 분석할 것이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모호하고 편향적인 기존 디자인의 정치적 이미지에서 한 걸음 나아간 '디자인의 정치성'에 대한 개략적인 개념을 추정할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해석이 '1920-30년대 디자인에 대한 다른 시각'의 의미를 넘어서 '현대 디자인의 정치성 형성'의 기반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할 것이다.

2. 전체주의 국가의 디자인-정치에 대한 디자인사가들의 해석과 정치, 경제, 사회적 관점 분석
2. 1. 디자인사가들의 해석

1920-30년대 전체주의 시기의 디자인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디자인사가들의 관점은 다음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는 전체주의 정권이 산업 근대화를 창출하였고, 이것이 현대 디자인에 영향을 미쳤다는 관점이다. 스파크(Sparke, 1986/2003: 135-139)는 독일 전체주의 시기의 도로 시스템 구축과 그에 대응하는 운송 수단의 개발을 산업 근대화에 대한 나치의 공약을 대표하는 사업으로 꼽았으며,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산업을 진흥시켜 현대 디자인 프로그램을 후원했다고 주장했다. 우드햄(Woodham, 1997/2006: 114-121)은 히틀러와 무솔리니 정권이 "기술의 아름다움", "기술적 성취"로 진보적인 특성을 홍보하였고, 그에 관련되었던 자동차, 기차 등이 전체주의 정권의 상징이 되었음을 지적했다.

이 시기 건축 양식을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이용하였다는 주장들은 디자인과 정치의 관계를 이야기 할 때 빠지지 않는다. 스파크(Sparke, 1986/2003: 139)는 "무솔리니는 아주 노골적으로 권위적이고 제국적인 특성을 드러내는 고전주의(Classical style)를 좋아했던 히틀러와 달랐다 ... 그의 집권 기간 동안 다수의 건물들이 사실상 타협책으로서 합리주의와 신고전주의를 혼합한 스타일로 지어졌는데, 이는 노베첸토 양식(Novecento style) 이라고 분류되었다" 라고 쓰며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고전주의 스타일에 대한 선호를 지적했다.1 정시화(Jung, 2003: 159-161) 역시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졌던 독일의 공공건물과 정부기관 건축물, 노베첸토 양식으로 건축된 이탈리아 공공건물의 사례를 들어 이들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었음을 적시했다. 우드햄(Woodham, 1997/2006: 112-113)은 이 시기 독일의 공식적인 건축 양식이 신고전주의(Neo-Classicism)이었음을 주지하였지만, 앞의 두 디자인사가와 달리 "민예적, 향토적 이념"을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이용한 사례에 더 주목했다.

마지막으로, 디자이너의 정치적 의도를 지적한 관점이 있다. 우드햄(Woodham, 1997/2006: 63)은 미래파와 파시스트 정권과의 유연한 관계와 일부 합리주의 디자이너들이 파시스트 정권 홍보에 직접 참여했던 사실 등을 지적하며 디자이너의 정치적 동조가 있었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근대적(modern), 국제적 미학과 프로파간다적 요구의 화합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1930년대에는 디자이너들과 정치의 협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았다. 스파크(Sparke, 1986/2003: 141) 역시, "혁신적인 디자인의 급진적인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었던 사례" 로 미래주의자들의 파시즘 참여를 꼽았지만,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작업했던 디자이너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두 주장 모두 디자이너의 정치적 의도가 일부 존재했지만, 근대 디자인과 전체주의와의 관계를 공고히 하지는 못했음을 드러낸다.

2. 2. 정치, 경제, 사회적 관점의 분석

앞서, 스파크와 우드햄이 전체주의 정권, 산업과 근대 디자인 발달에 대해 각기 상이한 주장을 펼쳤지만, 그들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서는 같은 입장을 표명했다. 전체주의 정권이 산업의 근대화를 이끌었다는 이러한 전제는 전체주의 정권이 근대화를 의식적으로 지향하고 추진하였다는 역사가들의 의견에 기인한다(Kim, 2002: 142-143). 하지만, 권형진(Kwon, 2003: 209-210)은 제3공화국 시기의 주요 업적인 아우토반을 나치의 업적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하였고, 김학이(Kim, 2002: 164-171) 역시 나치가 그들의 대표적인 업적인 자동차 산업의 근대화에 기여하지 않았음을 밝혔다. 이탈리아의 자동차 회사인 피아트(Fiat)와 무솔리니의 관계에 대해 장문석(Jang, 2009: 250)은 시기별로 '밀월'과 '위기'를 반복하다가 종국에 '이혼'을 맞이하였다고 해석하였고, 같은 시기 타자기로 유명한 올리베티(Olivetti) 역시 소유주의 반파시스트 성향에도 불구하고 파시스트 정권과 전략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Kim, 2008: 139). 이러한 주장들은 '전체주의 정권이 산업의 근대화를 이끌었다' 에서 '그렇지 않다' 로 해석의 경향이 변화했음을 드러낸다. 이를 근거로, 전체주의 정권이 현대 디자인을 견인했다는 스파크의 주장은 '기존의 역사 해석'에 의지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전체주의 정권과 근대 산업의 관계를 비관적으로 보는 후기의 주장들에 의거하면, 이 과정에서 기술의 근대적 이미지(modernist image)로서 디자인이 프로파간다적인 형태로 비춰질 수 있었다는 우드햄의 해석이 더 타당하다.2

히틀러의 신고전주의, 무솔리니의 노베첸토 양식의 공공 건축물들이 정치적 프로파간다를 표방했다는 해석은 익숙하다. 이에 대해, 쉬벨부쉬(Schivelbusch, 2006/2009: 26-29)는 수십 년 동안 비평가들이 신고전주의적, 혹은 기념비적 건축(monumental architecture)3과 전체주의 정권을 동일시하고, 근대 건축(modern architecture)은 자유민주주의 및 사회 복지 국가를 연상시키는 대립 구조에 기반한 가정을 1970년대까지 고수하였음을 지적했다. 연이어, 1930년대 워싱턴, 파리, 런던, 제네바 등에 세워진 신고전적, 기념비적 건축물과 대공황 시기 등장한 강력한 국가의 관계를 주목했는데, 이를 근거로 신고전주의가 "국가의 권력과 권위를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보여주는 건축 양식" 임을 추정했다. 그에 따르면, 신고전주의-전체주의 패러다임은 1970년대까지 지속되었지만, 실제로는 국가의 체제와 별개로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필요한 어느 곳에서든 존재했다. 이는, 디자인사가들이 주장했던 바와 같이, 당시 만연했던 신고전주의 양식이 온전히 전체주의 정권의 프로파간다를 위해 존재했던 것이라 단언할 수 없게 한다. 별개로, 건축 양식과 더불어, 혹은 대비되어 존재했던 요소들이 신고전적인 기념비적 건축물이 가지는 '국가의 권력과 권위의 시각화'를 증폭시켰을 가능성은 찾을 수 있다. 이 시기에 대해 "외양이 본질만큼 중요한 시기였다" 라고 말한 게이(Gay, 2008/2015: 677-678)의 주장은 이를 뒷받침 한다. 그는 제복 입은 민간인들의 도열, 히틀러 연설 시 동원되는 연극적인 요소들, 기념비적 신고전주의 양식의 공공 건축물(monumental neoclassicism of Nazi public architecture) 모두 선동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그의 주장에 의하면, 신고전주의 양식은 히틀러의 정치 프로파간다적 연극의 한 요소로 해석이 가능하다.

디자이너의 정치적 의도에 관하여 '정치적 의도를 가진 디자이너의 프로파간다 표방' 여부는 신고전주의 디자이너와 전체주의 정권의 결합과 같이 명백한 사실들만 주로 언급된다. 히틀러의 건축가로 유명한 스피어(A. Speer)와 무솔리니 정권의 시각 홍보물을 제작했던 시로니(M. Sironi)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반면, 근대 양식(modern style)을 추구하는 디자이너와 전체주의 정권의 관계에 대한 해석은 명확하지 않다. 심지어, 스파크와 우드햄이 지적했던 미래주의자와 무솔리니와 같은 '인정된 관계'에 대한 해석조차 소극적이다. 이러한 경향은 "많은 예술사가들은 끊임없이 미래주의에 있어서 그것의 정치적 특질을 배제시키고 '진보적인' 형식만을 강조하려는 경향을 보여왔다" 라고 미래주의에 대한 기존 시각을 비판했던 신혜경(Shin, 2002: 151-153)의 해석에서도 찾을 수 있다. 더해서, 그는 이러한 경향이 미래주의 내의 정치적인 것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무시하거나 정치적 차원의 중요성을 배제시키는 방법으로 지속되었음을 부연하였다. 예술 안에서의 논란과 달리, 예술 밖에서 미래주의와 파시즘의 정치적 연관성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네오클레우스(Neocleous, 1997/2002: 145-146)는 "파시즘은 미래주의자에게서 기술과 폭력, 속도감의 미학을 채용했다" 라는 표현으로 영향 관계를 적시하기도 하였다. 미래주의자와 더불어, 이탈리아 근대 건축을 연 합리주의 건축가들4과 파시스트의 관계는 '이탈리아 근대 건축이 파시즘 건축에서 시작되었다' 라는 추정이 가능할 만큼 명백하다(Lee, 2004: 137). 그러한 주장의 한 가운데에 근대 건축 양식으로 파시즘을 표방한 떼라니(G. Terragni)의 '파시스트의 집(Casa del Fascio)'이 있다. 그의 건축물은 분명 파시스트 당을 위한 공간이었지만, 그의 정치적 의도가 정권의 그것과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떼라니가 '전통과의 단절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라는 추정을 가능케하는 다양한 해석들이 '역사와의 단절'을 외쳤던 미래주의자와 무솔리니의 이념과 상이하기 때문이다(Kim, 2018: 134). 위의 사례에서, 디자이너의 정치적 의도가 적극적으로 드러났던 스피어, 시로니 등 신고전주의자들과 다르게, 근대 디자인과 전체주의 정권과의 관계에서 디자이너의 정치적 의도와 그것의 외적 표현의 상관관계가 미비함을 보여준다. 이는 역설적으로 근대 디자이너들이 모두 반전체주의를 표방하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드러낸다. 1930년대 무솔리니에게 이데올로기적 공감을 느껴 그의 계획 도시 중 하나를 설계하고자 했던 르 꼬르뷔지에의 사례와, 미스 반 데에 로에가 나치 정권 집권 초기 몇 해 파시즘에 동조했던 사실을 근거로 이들의 극우적 성향을 적시했던 쉬벨부쉬의 지적이 이를 부연한다(Schivelbusch, 2006/2009: 27, 151, 188). 비등하게, 스피어가 실제로는 다양한 모더니스트 기법들을 전수 받아 이를 민족주의적 목적에 걸맞게 배치하려했다는 하비(Harvey, 1989/1994: 56)의 주장도 같은 인상을 준다. 이러한 지적들은 디자이너의 정치적 의도와 양식의 등식 관계를 구축했던 기존 패러다임을 전복시키고, 단지 추구 양식에 따라 디자이너의 정치적 의도가 극대화된 정치성을 나타내기도, 시의 적절하지 않은 양식에 이념만 살아 남기도 하였음을 드러낸다.

3. 미국의 디자인-정치에 대한 디자인사가들의 해석과 정치, 경제, 사회적 관점의 분석
3. 1. 디자인사가들의 해석

이 시기 미국 디자인에 대한 디자인사가들의 정치적 관점은 독일과 이탈리아에 대한 해석과는 다르게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스파크(Sparke, 1986/2003: 134, 140)는 "사회적인 의미를 중시하는 민주주의 국가들(socially oriented democracies)" 과는 다르게 "미국과 같이 선진 자본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들(democracies based on advanced capitalism)은 디자인을 철저하게 상업적인 것으로 간주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정부가 디자인에 관여하는 일은 무역 관세의 세율을 높이고 수입과 수출의 균형을 주의 깊게 관장하는 정도였다" 라며 작은 정부와 자유방임주의, 그 속에서 성장한 미국의 상업적 디자인이 가장 큰 특징임을 피력하였다.

미국의 1930년대의 디자인을 설명하는 또 다른 용어는 '기술적 유토피아'이다. 우드햄(Woodham, 1997/2006: 80-82, 123)은 "대공황 시기 테크노크라시 당이 창설되어 무능한 기업가와 재정가 대신에 과학자와 공학자들이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잠재적 행동가임을 강조했다" 라며 기술적 유토피아의 정치적 배경을 지적하였고, 동시에 이 사상이 미국의 국가 정체성을 대변한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지적했던 '국제박람회'와 '국가정체성 형성'과의 관계를 고려한다면, 기술적 유토피아를 표방했던 1933-34년 <시카고 진보의 세기 박람회>와 1939-40년 <뉴욕 세계 박람회>는 미국의 국가 정체성을 드러내기에 적절한 장소였을 것이다(Woodham, 1997/2006: 80-82, 90).

3. 2. 정치, 경제, 사회적 관점의 분석

미국의 정치와 경제의 관계는 1929년 대공황 전후로 극명하게 나뉜다. 1920년대에는 공화당의 친기업주의, 자유방임주의 등을 배경으로 대기업이 부를 독식하였으나, 대공황 이후 선출된 민주당의 루즈벨트는 강력한 정부를 표방하고, 뉴딜 정책을 추진하여 경제 위기에 맞섰다. 대공황 이후로 전환된 정치와 경제의 관계는 당연히 산업에 속해있던 디자인에도 영향을 주었다.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을 추진한 WPA(Works Progress Administration)의 지원으로 운영된 연방예술프로젝트(Federal Art Project)는 예술가, 디자이너들을 고용하여 벽화, 조각, 그래픽 아트, 포스터, 박물관과 무대 디자인, 미국 디자인 색인 문서화(Index of American Design documentation) 등의 작업을 의뢰하고 주급을 제공하는 형태였다(Federal Art Project, n.d.). 이러한 사실들은 대공황 이후 디자인을 위시한 예술계 전반에 직접적인 정치적 영향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앞서, 우드햄은 1930년대 박람회에서 드러났던 '기술적 유토피아' 가 국가 정체성을 표방했음을 추정했다. 박람회와 국가 정체성의 관계는 "박람회는 주체국가와 도시의 인종관, 국가관, 세계관, 진보관이 하나로 섞여서 나타나는 '이데올로기적 통일성'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라는 양홍석(Yang, 2010: 109)의 표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중, 특히 '미국의 진보관'에 대해 라이델은 "과학과 기술에 대한 발전은 진보의 노선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요소이다 ... 이것은 미국인이 이 시대 기술적인 진보를 통해서 예외적인 국가의 정체성을 다시 정립하는 놀라운 조정이라고 할 수 있다 ... 대통령을 비롯하여 미국의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로서 박람회를 후원하는 사람들에게 '진보'란 미국의 기술과 과학의 발전, 성장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Yang, 2010: 121 에서 재인용) 라고 지적하였다. 이는 당시 미국에서 '과학과 기술'이 점하는 위치가 단순히 산업적인 부분만이 아니었음을 드러내는데, 이러한 분위기는 대공황 시기에 더욱 증폭된다. "실업과 경제적 위기 속에서 많은 미국인들의 마음속에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감이, 소비주의에 대한 의심이, 나아가 민주주의에 대한 불안감이 자리 잡게 되었다. 따라서, 박람회 관계자들은 방문객들에게 과학과 기술을 통해 자본주의, 소비주의, 그리고 민주주의가 번성하는 미래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Kim, 2010: 143에서 재인용) 라는 킬스테트의 지적은 '과학과 기술'이 '진보'를 넘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까지 표방하였음을 드러낸다. 이들의 주장은 우드햄이 지적했던 바와 같이, '과학과 기술'을 전면에 내세웠던 대공황기의 박람회가 국가 정체성을 극명히 드러내는 장소였음을 피력하고 있다.

디자인사가들은 주목하지 않았지만, 1930년대 미국의 공공 건축물 양식이 드러내는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대한 비평가들의 담론 또한 존재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쉬벨부쉬(Schivelbusch, 2006/2009: 14)는 1932년 건축된 뉴욕 현대 미술관을 민주주의 국가에 세워진 신고전적이고 기념비적인 건축물의 예로 들었다. 새비지(Savage, 2011: 7)는 워싱턴 내셔널 몰의 기념비들에 대해 "내셔널 몰 안 풍경의 기하학적 질서와 이집트식, 그리스식, 로마식 건물 타입의 '시간을 넘는' 건축은 아주 오래된 것이라는 인상을 강화한다" 라고 말하며, 이 공간이 1930년대 중반 루즈벨트 정부가 되어서야 오늘날의 웅장한 풍경이 되었음을 강조했다. 이 '웅장한' 워싱턴의 내셔널몰은 1791년에 계획된 피에르 앙팡의 바로크풍의 도시계획을 1902년에 확장하고 재편성한 것이다(Pierre Charles L'Enfant, n.d.). 새비지(Savage, 2011: 11,18)는 이 계획이 현실화 될 때 까지 고전과 모던 양식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던 건축가들, 그들의 신고전주의 양식에 반대하던 많은 비평가들, 19세기 풍경에 애착을 느끼는 워싱턴 주민들 등의 상이한 이해관계 속에 있었으며, 이렇게 세워진 내셔널 몰이 "사람들이 국가를 찾고 시민으로서 국가에 관여하기 위해 가는 장소"로서 그곳을 점유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변형되었다고 분석했다. 그의 해석에 기반하면, 워싱턴의 신고전주의 공공 건축물은 국가와 디자이너의 정치적 의도가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았고, 계획의 진행 과정에서 비평가와 대중의 입장이 고려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4.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국가의 디자인과 정치 관계 비교 및 분석

주지하듯이, 두 정치 체제에 대한 디자인사가들의 해석은 각기 다르지만, 체제에 대한 선입견을 차치한다면 이면의 행위들은 그리 다르지 않다. 앞서,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경제에 미친 영향과 그에 뒤따르는 디자인의 변화에 대한 디자인사가들의 해석은 정치, 경제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관점 전환에 따라 변화하였음을 확인하였다. 스파크는 미국 정부가 경제에 소극적이었다고 말했지만,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으로 운영된 예술 프로젝트들에 참여했던 많은 예술가, 디자이너들의 존재는 그러한 주장을 반박한다. 이러한 상반된 해석들이 공존하는 까닭은, 경제와 사회적 기반 연구에 기대어 유추한 디자인의 정치성 개념이 '상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술'을 정권의 상징, 국가의 정체성으로 이용했던 정황을 독일과 이탈리아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발견하였고, 디자인 역시 기술의 국가 정체성화에 관련되었던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독일과 이탈리아가 히틀러와 무솔리니 집권 시기에 '기술'을 이용하여 '근대적 이미지'를 창출하려는 목적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면, 미국의 경우, 1893년 시카고 박람회에서 이미 '진보'의 개념, 과학과 기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국가 정체성에 이르는 일련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구축하였고, 이러한 기조가 1940년까지 꾸준히 지속되었던 점이 상이하다(Yang, 2010). 미국의 이러한 국가 정체성 구축이 전체주의 체제에 비해 보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이었음은 그들의 박람회 건축 양식 변화에서 유추할 수 있다.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건축되었던 1893년 시카고 세계박람회와 달리, 모더니즘 양식의 1933년 시카고 박람회 전시관은 분명 '진보의 세기' 라는 박람회의 주제를 더욱 잘 담았을 것이다. 이는 동시대인 1937년 프랑스 박람회에서 고전주의 양식으로 건축된 주전시관들의 사례에 비추어볼 때 더욱 명확해진다(Kwon, 2011: 157, 159).

앞서, 신고전주의 양식의 공공 건물이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정치 프로파간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국가 정체성 확립에도 이용되었던 사실을 확인했다. 동시에, 시카고 박람회의 모더니즘 건축물, 스피어의 모더니즘 양식의 수용소, 이탈리아의 합리주의 건축가들의 건축물 등 모더니즘 양식이 신고전주의와 동시대에 '다른 의미'로 존재하였던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앞서, 우드햄은 "민예적, 향토적" 이념에 근거한 전통적인 형태가 주택 디자인뿐만 아니라 가정 관련 디자인에서 활용되었음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드러나지 않은 다양한 해석들을 고려하면, 어떤 특정 양식이 특정 이데올로기를 표방했다고 단언할 수 없다. 다만, 어떤 양식은 국가의 위상을 보여주고, 다른 양식은 국가의 진보적인 혹은 기능적인 이미지, 민족주의적인 이미지를 표방하는 데 일조하였을 뿐이다.

전체주의 국가에서 디자이너의 정치적 의도가 권력자의 의도, 추구하는 양식이 일치할 경우, '히틀러-신고전주의-스피어', '무솔리니-노베첸토-시로니' 의 사례와 같이 극대화된 정치성을 나타내었다. 반면 워싱턴 몰의 경우, 18세기 도시 계획에 기반한 워싱턴 건축 계획, 19세기 양식을 친근해 하는 대중, 신고전주의 공공건물에 대한 비평가들의 담론과 신고전주의와 모더니즘 양식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했던 건축가 등 다양한 관계에 대한 논의들이 있었다. 같은 양식의 공공 건축물이었지만, 전자는 권력자와 디자이너에 의해 계획되어 대중에 제공되었다면, 후자는 권력자, 건축가, 대중, 비평가 등 다양한 관계에서 형성되고, 대중이 완성된 건물에 지속적으로 새로운 정치성을 부여했다는 점이 상이하다.

이와 같이, 정치 프로파간다물 소비의 중심에는 대중의 입장이 있다. 홉스봄(Hobsbawm, 1983/2004: 504)은 1870년대 이후 대중정치가 출현하면서 통치자들이 사회조직과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데 '비합리적' 요소들의 중요성을 확인하였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이 '비합리적 요소'는 앞서 다루었던 공공 건축물과 기념물 등과 같은 '만들어진 전통' 을 의미하는데, 이를 생산하는 것은 체제와 별개로 '대중정치'가 출현한 근대 국가의 특징이었다. 이에 근거하면, 독일과 이탈리아, 미국의 정치 프로파간다는 대중을 통제하려는 동일한 목적을 추구하였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대중의 소비 관점에서 전자와 후자의 체제는 다른 입장을 보인다. 대중을 향했지만 그들과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한 미래주의자의 한계를 지적한 그람시의 평가(Shin, 2002: 189-190)와 20세기 대중의 능동적 위치를 예상하지 못한 19세기 독일 지식인들의 한계를 지적한 오순희(Oh, 2007: 86)의 주장은 전자의 한계를 드러낸다. 반면, 제작 의도와는 다르게 흑인 시민운동과 관련되어 새로운 상징으로 거듭난 링컨 기념관과 이러한 현상을 "공공 기념물이 만들어지면 그것들은 계획자, 디자이너의 궤도를 떠나 그들만의 삶과 방향을 가진다" 고 설명하여, 제작의 의도보다는 공간을 '점유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한 변형' 을 더 주목한 새비지(Savage, 2011: 11)의 해석은 후자를 대변한다. 이는, 독일과 이탈리아, 미국의 정치 프로파간다가 대중적으로 어떻게 다르게 소비되었는지 드러낸다.

5. 결론

1920-30년대 디자인과 정치에 대해 디자인사가들은 전체주의 국가에서의 경제적, 사회적 영향, 권력자의 정치 프로파간다 행위를 지적하였지만, 디자이너의 정치적 의도를 논외로,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디자인과 정치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는 경향을 보였다. 마치 미래주의의 진보적인 미학적 의미는 강조하고 정치성은 암묵적으로 배제했던 예술사가들의 그것과 같은(Shin, 2002: 152) 이러한 주체적이지 않고 편향적인 해석들은 디자인의 정치성에 대한 그릇된 이미지를 산출했을 것이다.

주지하듯이, 디자인의 정치성이 전체주의 국가의 권력자와 그에 유착한 디자이너에 의해서만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형태와 별개로, '권력과 디자이너', '디자이너와 대중', '대중의 소비' 사이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디자인사가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디자이너의 정치적 의도와 이를 소비하는 대중의 입장에 대한 관점은 1920-30년대 뿐만아니라 현재에도 유효하다. 마일즈(Miles, 2008: 75)는 '질문을 던지고, 대중이 직접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작품' 으로 린(M. Lin)의 베트남 추모 조형물(Vietnam Veteran Memorial)이나 게르츠(J. & E. Gerz)의 할버그 반파시즘 기념비(Harburg Monument against Fascism)를 꼽으며, 대중을 사유하고 행위하게 하려는 작가의 '능동적인' 의도를 잘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이러한 그의 해석은 "전체주의는 근본적으로 정신적 차원에서의 '사유하지 않음'과 실천적 차원에서의 '정치적 행위능력의 상실'에 의해 야기되었다"(Lee, 1996: 39) 라고 지적하며 '사유'와 '정치적 행위'를 강조한 정치철학자 아렌트(H. Arendt)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 더불어, 정치성을 드러내는 작품들에 대한 해석에서 디자이너의 의도와 대중의 소비에 대한 관점의 중요성을 드러낸다.

이는, 공공의 영역으로 범주를 확대하고 있는 현대의 디자인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치성'에 대한 디자이너의 이해와 소비하는 대중의 사유와 행위, 이에 대한 비평가들의 해석이 수반된다면, '능동적인' 디자인의 정치성 구축이 가능할 것이다.

Acknowledgments

Research material about the design of Germany and Italy in this work borrows some base studies from part of Kim's Doctoral dissertation.

본 논문의 독일과 이탈리아 디자인에 대한 연구 자료는 김여용의 박사논문 일부를 차용하였습니다

Notes

1) 유럽의 신고전주의 (Neoclassicism)는 18세기 중반 당시 지배적이었던 로코코 양식(Rococo style)에 반대하여 발생하였으며, 예술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신고전주의 건축은 로마와 그리스 건축의 단순함, 대칭성의 원칙에 기반을 두고 있다. 1920-30년대 독일, 이탈리아, 미국의 신고전주의는 후기 신고전주의로 분류된다 (Neoclassicism, n.d.). 이탈리아의 노베첸토(Novecento) 는 1922년 미래주의에 반대하여 밀라노를 중심으로 일어난 예술 운동이다. '질서로의 회귀'를 주장한 이 운동은 단순화된 신고전주의(Neoclassicismo semplificato)로 불리기도 한다(Novecento, n.d.).

2) 우드햄(Woodham, 1997/2006: 114, 119)은 나치 정권이 '진보적 성향(progressive nature of the regime)'을 표명하고자 기술발전과 '근대적 미학(modernist aesthetic)'을 함께 표방하는 요소들을 곳곳에 적용하였고, 비등하게 무솔리니 정권에 역시 고대 로마에서 추출한 이미지와 근대성(modernity)이 담긴 신기술을 함께 드러낸 피아트의 자동차 광고에서 파시스트의 이중성을 드러냈다고 적시했다.

3) 역자인 차문석(Schivelbusch, 2009: 12-13)은 쉬벨부쉬의 저서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기념비적 건축'은 상징성을 이용해 공공을 위한 대규모 건축물과 시대정신이 반영된 것이라 규정하며, 동시대 모더니즘 건축의 대척점에 있었음을 적시하였다. 더해, 모뉴멘털리즘(monumentalism), 기념비성(monumentality)경향은 신고전주의적 건축을 지칭한다고 부연했다.

4) 이탈리아 합리주의 (Razionalismo italiano)는 1920년대 후반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근대 건축 운동(movimento moderno)이다(Razionalismo italiano, 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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