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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1960년대 한국 담배 포장디자인의 시각성
Visuality of South Korean Tobacco Packaging Designs from 1945 to the 1960s
  • Jooeun Oh : Design Studies, Graduate School of Techno Design, Kookmin University, Seoul, Korea
  • 오 주은 :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 디자인학, 서울, 대한민국

연구배경 이 연구의 목적은 1945년 이후 1960년대 담배 포장디자인이 나타낸 시각적 특징을 분석함으로써 해방 이후 한국의 시각디자인이 표출한 상업적 시각성의 주요 단면과 그 속성을 이해하는데 있다.

연구방법 전매 주체인 국가가 밝힌 디자인 의도를 중심으로 담배 포장디자인의 특징을 일별하는 서술이 아닌, 당대의 담배 포장디자인이 나타낸 조형적 양상에 집중하여 시대적 맥락을 공유하는 다양한 시각 자료와 관련된 문헌을 통해 고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연구결과 해방 이후 1960년대 담배 포장디자인의 시각성은 국가가 배타적 독점권을 갖는 전매제도에 기반한 것이었지만, 그 속성은 담배 시장의 상황과 맞물린 상업적 시각 기호로서의 기능에 충실한 것이었다. 조형적으로는 오래전 시장의 가치를 획득하였거나 국가적 상징으로 널리 유포되어 소비자들에게 이미 친숙하게 인식된 시각 이미지를 모방, 변주하는 양상을 나타냈다.

결론 이처럼, 새로움이 아니라 익숙함에 기댄 시각화 전략은 시대별 담배 포장디자인이 나타낸 특유의 관제적 시각성을 주조하는 조형 방식이었으며, 동시에 해방 이후 한국 담배 포장디자인의 상업적 시각성이 생성된 실질적인 기반이었다.

Abstract, Translated

Background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visual characteristics of tobacco packaging designs from 1945 to the 1960s to understand the main points and attributes of commercial visuality that had been presented in the South Korean visual designs since 1945.

Methods This study focuses on the formative aspect of tobacco packaging designs from 1945 to the 1960s on the basis of the design intentions of the state as the main entity of monopoly, rather than describe the characteristics of tobacco packaging designs, and analyzes it through a variety of visual materials and related literature that share the context of the times.

Results In the 1960s after independence from Japanese occupation, the visuality of tobacco packaging designs was based on the monopoly system of national exclusive right, but its attribute was to fulfill the designs as a commercial visual sign in line with the tobacco market situation. Although the value of the old market was obtained from a formative perspective, the designs had the aspect of copying or modifying the friendly visual image perceived by consumers through their wide distribution as a national symbol.

Conclusions The visualization strategy, which relied on familiarity rather than freshness, had the formative type with peculiar governmental visuality that appeared in tobacco packaging designs from 1945 to the 1960s and was the actual basis of the commercial visuality of South Korean tobacco packaging designs that had been created since 1945.

Keywords:
Tobacco Packaging Design, Governmental Visuality, Commercial Visuality, Visual Familiarity, Imitation, 담배 포장디자인, 관제적 시각성, 상업적 시각성, 시각적 친숙함, 모방.
pISSN: 1226-8046
eISSN: 2288-2987
Publisher: 한국디자인학회Publisher: Korean Society of Design Science
Received: 20 Mar, 2019
Revised: 06 May, 2019
Accepted: 13 May, 2019
Printed: 31, May, 2019
Volume: 32 Issue: 2
Page: 167 ~ 183
DOI: https://doi.org/10.15187/adr.2019.05.32.2.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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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ation: Oh, J. (2019). Visuality of South Korean Tobacco Packaging Designs from 1945 to the 1960s. Archives of Design Research, 32(2), 167-183.

Copyright :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educational and non-commercial use,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1. 서론
1. 1. 연구 목적

이 연구의 목적은 담배전매제도라는 추상적인 국가 제도가 시장의 형태로 구체화 되는 과정에서 담배 포장디자인이 나타낸 시각적 특징을 분석하는 것이다. 연구대상은 1945년부터 1960년대까지 생산된 전매 담배 포장디자인으로 한국 전매청이 발간한 <한국전매사>와 <한국담배의장>에 기록된 시각 자료에 근거한다.

공시적인 관점에서, '1945년 이후 1960년대' 담배 포장디자인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 시기에 생산된 담배 포장디자인의 시각성이 해방 이후 한국의 시각디자인이 표출한 상업적 시각성의 주요 단면과 그 속성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즉 한국 시각디자인의 특수성을 읽을 수 있는 하나의 텍스트로서 이 시기의 담배 포장디자인은 동시대의 시각 생산물과는 다른 시각적 접촉면을 발산한다. 그 접촉면은 '일제강점기에 소비된 담배 포장디자인의 시각성, 미 군정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경험된 양담배 포장디자인 시각문화, 1960년대 중반 필터 담배 설비구축에 따른 담배 포장디자인의 시각성'을 내재한 것으로, 이는 해방 이후 1960년대 담배 포장디자인이 나타낸 중층적 시각성이 생산된 환경과 소비된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논문에서 언급된 시각성은 단순히 표피적인 조형적 특징에 주목하는 개념이 아니라, 특정한 디자인이 생산되는데 영향을 미친 사회적 요인을 내포한 시각적 특징을 의미한다.

담배라는 기호품을 상품화하는 수단으로서 담배 포장디자인에 대한 경험은 개항기부터 시작되었지만 그 경험은 소비에 국한된 것이었다. 반면 해방 이후 1960년대 담배 포장디자인은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디자인 생산 주체의 자리에서 형성된 한국 시각디자인의 특수성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구대상으로서의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1. 2. 연구 방법

본 논문은 이러한 맥락에서 관련 기록물 및 선행연구에 기반하여 연구대상인 담배 포장디자인의 시각성을 분석하고 있다. 담배 포장디자인의 시각성 형성에 영향을 미친 사회적 요인은 <한국전매사>와 <한국담배의장>, <연초포갑지 도안집>에 기록된 생산 시기별 유통 양상과 도안에 대한 설명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들 자료는 국가 기관이 실행한 정책 목적과 그 성과를 기록한 백서(白書)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디자인에 대한 당대의 국가 인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해방 이후 담배 포장디자인의 시각적 특징이 형성된 요인을 가늠할 수 있는 주요 문헌으로 활용되었다. 또한 담배전매제도 시행 하에 나타난, 담배 포장을 매개로 한 담배 소비 양상을 살펴보기 위해 관련 신문 기사 및 흡연 문화를 기록한 1차 사료 등을 참조하였다. 이와 함께 일제강점기에 시행된 전매제도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전매사>, 해방 이전 한국에서 유통된 일본 담배 포장을 수록한 <일본 담배 포장디자인, 일본전매청 발행>, 서양 담배 포장디자인의 역사를 기록한 크리스 뮐렌의 <CIGARETTE PACK ART>를 살펴봄으로써 연구대상이 지닌 시대적 특수성과 관련된 조형적 특징을 분석하였다.

2. 해방 이후 1960년대 담배전매제도와 담배 포장디자인
2. 1. 해방 직후 : 가짜 담배 범람과 관제담배 포장디자인

1921년, 일제강점기에 단행된 연초 전매령은 한국에서 실시된 최초의 근대적 담배전매제도였다. 일본은 19세기 말 본국에서 시행된 담배전매제도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선 시대 후기 경제를 이끌었던 주요 상품 작물인 연초를 전매했고, 이를 기반으로 막대한 식민통치 자금을 수취했다. 상품의 특성상 본래는 기호품이지만 흡연자들에게 생필품처럼 소비된 담배는 국가가 전매하여 재정을 극대화하는, 안정적인 세수 확보를 위한 효율적인 수단이었다. 해방 이후 조선군정청 소속 전매국으로 이관된 담배전매제도는 이러한 식민지적 속성을 내재한 근대 제도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발휘된 국가 재정확보에 기여한 전매제도의 기능은 즉각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전 시대에 구축된 담배 생산시설을 가동할 전문인력이 부족했고, 관련 물자 공급도 충분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러한 요인은 관제담배보다 사제담배가 대량으로 유통되는 상황을 지속시켰다. 전매국에서는 해결책으로 담배 자유 판매제(1946)와 이전보다 강화된 배급제(1947)를 실시하고 담배 증산(1948)을 시도하는 등 전매제 중심의 담배 시장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였지만 사제담배 소비는 확대되었다.

당시 담배 시장에는 세 가지 형태의 사제담배가 유통되었다. 시장 바닥에 버려진 꽁초를 잘게 분해한 뒤 됫박에 담아 판매한 '됫박 담배', 낱개 혹은 고무줄 묶음으로 판매된 '알 담배', 불법 인쇄한 관제 담배 포장에 담은 '진짜 담배'가 음성적으로 거래되었다. '진짜 담배'는 실제로는 불법 제조된 가짜 담배였지만, 관제담배 포장과 구별이 어려울 만큼 유사한 포장에 담겨 '진짜 담배'로 유통되었다. 이는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 동안 경험된 고급 담배는 포장된 담배라는 인식에 따른 현상이었다. 담배 로고가 인쇄된 포장에 담긴 담배는 포장되지 않은 채 낱개로 판매된 알 담배와 질적으로 구분되는, 양질의 맛을 담보한 고급 담배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이렇듯 고급 담배로 인식된 전매국 출시 담배 대부분은 정치적 이념을 결부시킨 기념 담배를 표방했다. 국내 기술진에 의해 최초로 제조된 담배 승리(1945)는 민족 해방을 기념하여 생산되었으며, 계명(鷄鳴,1948)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3주년 축하기념 담배로 발매되었다. 백두산(1946), 공작(1946), 무궁화(1946), 백구(白鷗, 1948), 화랑(1949), 샛별(1949)도 해방 후 전개된 정치적 상황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에의 의지를 기념하기 위해 생산된 담배였다. 대규모의 음성적인 사제담배 시장을 가능하게 했던 알 담배와 진짜 담배는 전매국에서 생산한 이러한 관제담배의 맛과 이미지를 복제한 것이었다. 담배 맛이 좋아 대중적 선호도가 높았던 무궁화와 공작의 경우 비싼 가격으로 인해 누구나 살 수 없는 고급 담배였지만, "진짜 무궁화", "진짜 공작"으로 불리며 유통되었고, 이 과정에서 전매국 생산 담배 브랜드와 포장디자인은 진짜 관제담배임을 보증하는 시각적 표식으로 활용되었다.

2. 2. 1950년대 : 양담배 소비 확산과 담배 포장의 재활용

이처럼 해방 이후 담배 시장에서 사제담배는 관제담배를 압도했다. 그리고 1950년대는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이전 시기보다 양담배 소비가 증가하는 현상을 나타냈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연초재배지 손실과 담배 제조시설의 파괴는 관제담배 공급 부족을 가져왔고 이는 미국산 양담배 소비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물론 담배전매사업이 국가 재정확보를 위한 주요 정책이었기 때문에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피해가 적었던 대구를 거점으로 관제담배 생산은 이어졌다. 하지만 전쟁기에 팽창된 양담배 시장의 규모는 전쟁 이후 더욱 확대되었다. 한국에 주둔한 미군 부대의 규모만큼이나 대량으로 유입된 양담배는 전매 당국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사고 팔 수 있는 다양한 방식으로 거래되고 소비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초래된 요인은 단순히 열악한 생산 환경에 따른 공급 부족과 미국산 담배와의 질적인 차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는 당시 미군정 체제하에 확산된 미국산 제품에 대한 대중의 공통된 시선에 기인한 것이기도 했다. 그 시선은 피엑스 경제로 상징되는 미군 부대 매점(PX : Post Exchange)에서 흘러나온 제품들이 발산한 화려한 물질성에 부여된 신뢰와 동경, 최고의 사치품이라는 인식과 관련된 것이었다. 소설가 황석영은 이러한 인식의 근원지로서 PX를 베트남전에서의 경험을 투영하여,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밝히는 욕망의 "디즈니랜드"로 규정했고(김덕호, 2008) 박완서는 이러한 PX 물품들로 구성된 거리의 좌판을 "반짝반짝하고 알록달록한 즐거운 눈요기"로, "구질구질한 시장 속의 난데없는 꽃밭"으로 묘사했다.(박완서, 2003) 이성욱은 제대로 된 물건을 생산할 수도 소비할 수도 없었던 시대에 PX에서 쏟아진 미제(美製)들은 "우리의 자아성을 사라지게 만드는 신비한 마법의 손"이었다고 회상한다.(이성욱, 1999)

1950년대 중반 이후 한국전쟁을 계기로 급속히 확산된 양담배 소비는 이처럼 미국적 물질문화가 강렬하게 분사하는 이상화된 감각과 결부된 현상이었다. 특히 양담배 포장은 미국적 소비문화를 누리고자 하는 대중들에게 과시적 기호로 애용된 양상을 나타냈다. 당시 신문에는 양담배 소비와 관련된 담배갑 활용 백태가 자주 기사화되었다. 주로 양담배 흡연을 과시하기 위해 국산 담배를 양담배 포장에 넣어 다니기도 하고, 역으로 이러한 과시적 흡연의 멋보다는 이국적인 맛을 안전하게 누리기 위해 국산 담배 포장에 양담배를 휴대하는 방식으로 단속을 피한다는 내용이었다.(조선일보.1957.11.12.) <연초포갑지 도안집>에 따르면 이 시기의 전매 당국이 기대한 담배 포장의 기능은 "화려한 미술적 의장을 갖추고 판매증진에 기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러한 바람과는 상관없이 이처럼 전매 시장을 위협하는 소비 현상을 낳는 도구로 활용된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2. 3. 1960년대 : 필터 담배 증산 체제와 기념 담배 포장디자인

전매청이 공식적으로 유통한 관제담배와 이를 모방한 사제담배, 과시적 흡연의 맛을 자극했던 양담배가 1945년 이후 1950년대 담배 시장을 이끈 주요 품목이었다면, 1960년대 담배 시장을 주도한 품목은 국산 필터 담배였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주요 정책으로 1965년에 준공된 신탄진 연초 제조창은 기존 국산 필터 담배의 고급화와 양산화를 촉진했고 그 결과 1965년을 기점으로 이전 시기보다 전매이익이 급증하는 호황을 맞게 된다. 무엇보다 이러한 국산 필터 담배의 안정적인 수급은 해방 이후 전매제 중심의 담배 시장을 교란했던 각종 사제담배와 양담배 소비에 대한 욕구를 대체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규모의 국산 담배 증산 시설을 완공함으로써 기존 담배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한 전매청은 기념 담배 생산에 주력했다. 기념 담배는 당시 담배 생산과 관련된 각종 소식을 전하는 <전매보>와 같은 관보(官報) 책자 등에 홍보되었던 공식적인 제품군으로, 주로 국가 기념일이나 정책과 관련된 행사일 등을 앞두고 발매되었다. 기념 담배 생산은 해방 이후 지속된 신제품 개발전략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이전 시기와 비교할 때 기념의 내용 면에서 또한 이를 시각적으로 매개하는 포장디자인의 측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나타낸 것이었다. 1945년 9월에 출시된 최초의 국산 담배 '승리'가 일제강점기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기리는 것으로 기념 담배의 전형을 마련한 것이었다면, 1960년대 중반 이후에 양산된 기념 담배 생산은 군사정권의 정당성과 경제 정책 홍보를 위한 기념사업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기념 담배는 "특수의장 포갑지"로 분류된 포장디자인으로 발매되었는데 그 형식은 애국적 행동 강령과 같은 문구와 각종 국가 기념일을 도안한 이미지를 주요 시각 요소로 배치한 특징을 나타냈다.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전매청이 내세운 기념 담배의 "고급스러운 맛"은 국가적 정치이념을 반영한 수사적 표어와 삽화로 구성된 담배 포장디자인을 통해 매개되었다.

3. 해방 이후 1960년대 담배 포장디자인의 시각성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에 근거할 때, 해방 이후 1960년대 담배 포장디자인은 담배 제품의 질적인 측면을 시각적으로 담보한 상업적 용기(用器)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매 주체에게는 관제적 시각성을 매개하기 위한 수단으로, 소비 주체에게는 특정한 담배의 맛과 질을 구별하기 위한 시각적 표식으로 수용된 양상을 나타낸다. 이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제품을 단순히 담는 용기가 아니라 제품의 이미지를 형상화함으로써 제품 그 자체가 되는 포장디자인의 시각적 물질성이, 담배전매제도라는 특수한 조건 속에서 생산되고 소비된 맥락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장에서는 해방 이후 1960년대 담배 포장디자인이 나타낸 조형적 특징을 분석함으로써, 담배전매제도 하에 생산된 담배 포장디자인의 시각성을 고찰한다. 이는 이 시기의 담배 포장디자인이 내재한 시각적 층위의 실질적인 조형적 토대와 외재적 요인을 추적하는 것이다.

3. 1. 해방 직후 : 일제강점기 시각문화와 관제적 시각성

1945년 이후의 상황에서 살펴보았듯이, 이 시기에 선보인 담배 포장디자인은 해방을 기점으로 더욱 강화된 민족공동체라는 연대의식을 자극할 수 있는 수사적 시각언어를 담배 포장디자인에 구체화시키려는 의도를 나타낸다. 이는 해방 이후 각종 사제담배가 음성적으로 유통되는 상황에서 국가가 생산한 관제담배 이미지를 정형화함으로써 시장에서의 차별을 공고히 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러한 디자인 의도는 이 시기에 생산된 담배 포장디자인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일부에 국한된다. 승리(1945), 백두산(1946), 무궁화(1946), 계명(鷄鳴, 1948), 화랑(1949)의 경우에는 민족, 해방, 독립의 이념을 연상할 수 있는 제품 명칭과 포장 도안이 두드러지지만, 공작(1946), 백구(白鷗,1948), 백합(1949), 샛별(1949)의 경우에는 자연물에서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를 전달한다. 오히려 정치적 이념으로 단일하게 수렴되지 않는 이러한 시각성은 담배 포장을 구성하는 시각 요소 및 조형 방식에서 포착되는 특징을 통해 이 시기의 담배 포장디자인이 내재한 시각성을 유추하게 한다. 그 특징은 일제강점기에 유통된 담배 포장디자인과 상품 로고디자인, 민족적 이념을 표상한 이미지와 관련된 것으로 조형적인 측면에서 유사한 특징을 나타낸다.

3. 1. 1. 일제강점기 담배 포장디자인과 장식 삽화

시각적 유사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일제강점기 담배 포장디자인의 영향은 담배 명칭과 연관된 소재와 조형 방식에서 감지된다. 일제강점기 담배 포장디자인에는 행복과 부귀를 상징하는 꽃과 새, 서정적인 자연 풍경을 연상하게 하는 담배 명칭과 이를 표현한 이미지가 형상화되었는데 해방 이후 담배 포장디자인에서도 동일한 특징이 발견된다. 담배 명칭의 경우, 백합과 같이 문자 표기만 다를 뿐 같거나(Figure 1,2) 공작(孔雀), 계명(鷄鳴), 샛별의 경우처럼 해방 이전에 발매된 담배 제품의 명칭과 유사한 범주의 담배 이름이 사용되고 있다.(Figure 3,4,5,6)


Figure 1 'LILY', the tobacco produced by Japanese Monopoly Bureau during Japanese occupation

Figure 2 'Baekhap', the tobacco produced by Joseon Monopoly Bureau in 1949

Figure 3 'PEACOCK', the tobacco produced by the Japanese tobacco company 'Murai' and distributed during Japanese occupation

Figure 4 'Gongjak', the tobacco produced by Joseon Monopoly Bureau in 1946

Figure 5 'Hyo(Dawn)', the tobacco produced by Japanese Monopoly Bureau during Japanese occupation

Figure 6 'Saetbyeol', the tobacco produced by Joseon Monopoly Bureau in 1949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이러한 담배 명칭을 시각적인 차원에서 강화하고 있는 장식 도안의 표현 방식이다. 담배 이름으로 호명된 대상의 이미지를 익숙한 형태로 묘사하는 방식은 일제강점기 담배 포장디자인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특징으로, 해방기 담배 포장디자인에도 이어진다. 담배 명칭과 연관된 표현 소재를 기하학적인 선이나 면으로 구성된 추상적 형태가 아니라, 대상이 가진 본래의 특징을 즉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구체적인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이외에도 특정한 담배 포장디자인의 경우에는 일제강점기에 유통된 상업적 시각물의 주요 이미지를 그대로 옮긴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기념하여 출시된 '계명(鷄鳴, 1948)' 담배 포장에 표현된 닭의 형상은(Figure 7) 일제강점기에 발매된 담배 '천계(天鷄)'와 'GLORY'에 표현된 닭의 형상과 중첩될 뿐만 아니라(Figure 9) 당시 흡연 문화의 필수품이었던 성냥갑에 그려진 '지구 위 닭'의 형상과는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Figure 8) 물론 상업적 표식으로서 기능하는 이러한 닭의 형상은 동시대의 신문 삽화 및 잡지 표지, 전통의 벽사 부적 등 여러 시각 매체에 흔하게 사용된 시각 기호라는 점에서 조형적 유사성의 토대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Figure 10,11) 그러나 계명 담배 포장디자인의 경우에는 시각 요소와 구성 방식에서 보이는 조형적 일치로 인해, 일본산 담배와 성냥갑 포장디자인의 표현 방식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담배 샛별(1949)의 경우에도 담배 포장 전면을 장식한 수평 괘선과 하단의 능선 이미지가 일본 전매국 제품인 '曉(새벽 효, 1926)' 담배 포장디자인의 이미지와 유사한 느낌을 전달한다.(Figure 5,6)


Figure 7 The packaging design of 'Gyemyeong', the tobacco produced for commemorating the establishment of Republic of Korea

Figure 8 The Japanese match packaging design distributed during Japanese occupation

Figure 9 The Japanese match packaging design distributed during Japanese occupation

Figure 10 The Korean traditional amulet with the shape of chicken

Figure 11 The cover design of the magazine 'Gaebyeok'
3. 1. 2. 일본 상품 로고디자인과 레터링 로고

해방기 담배 포장디자인에서 눈에 띄는 구성 요소인 한글 로고와 한자 로고의 경우에는 일제강점기 상품 로고디자인의 특징을 공유한다. 이들 로고의 공통된 특징은 레터링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레터링이란, 조형미를 고려하여 글자를 쓰는 행위로 언어적 표기에 충실한 '쓰기'이기보다는 특정한 목적의 글자를 시각적으로 강조하기 위한 '도안'의 성격을 갖는다. 대부분의 상품 로고는 이러한 레터링 과정을 통해 제품의 이미지를 시각화하는데 이 시기의 한글, 한자 로고 역시 이와 같은 특징을 나타낸다.

특히 한자 로고의 경우에는 일제강점기에 유통된 일본산 제품 포장과 상업 광고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었던 한자 로고디자인의 특징을 보인다.(Figure 12,13) 이는 일본 상품 로고디자인의 특징인 자획(字劃) 전체가 시각적으로 강조되는 효과를 차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광범위하게 자리한 상업적 시각문화를 소비함으로써 익숙해진 한자 로고의 조형적 특징이 해방 이후 담배 로고디자인에 자연스럽게 이입된 양상을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 시기에 생산된 담배 포장디자인이 내포한 중의적 시각성을 유추하게 한다. 즉 해방기 담배 포장에 표현된 한자 로고는 표면적으로는 장식적 특징이 돋보이는 시각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일제강점기에 경험된 일본 상품 로고디자인이 선점한 상업적 우위를 환기하는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Figure 12 Lettering logos of cosmetics, soaps and cigarette products distributed during Japanese occupation

Figure 13 The Korean tobacco lettering logo reflecting the features of the ‘Chinese character’ logo design of Japanese product

한자 로고에서 보이는 이러한 특징은 한글 로고에서도 발견된다. 담배 포장에 한글 표기가 등장한 것은 개항기부터지만 그 기능은 영문 로고의 의미나 발음을 한글로 치환하여 표기한 보조적 수단에 국한된 것이었다.(Figure 14) 또한 1921년에 전매제 시행을 기념하여 조선총독부가 발매한 국산 담배에 표기된 한글 로고의 경우에도 모두 통일된 붓글씨체였다.(Figure 15) 그러나 1945년에 발매된 담배 '승리'와 '샛별'에서 알 수 있듯이, 해방 이후 담배 포장에서 한글로 표기된 담배 이름과 로고는 담배 포장디자인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좌우하는 시각 요소의 위치를 점하게 된다.(Figure 16) 특히 이러한 맥락에서 담배 샛별 로고는 해방 이후 1950년대와 1960년대까지 이어진 한글 로고디자인의 조형적 특징을 나타낸다. 샛별의‘ㅅ’은 담배 포장에 표현된 별 이미지의 뾰족한 형상을 공유하면서 장식 도안의 이미지와 결합된 특징을 보인다. 한글 자획(字劃)에 특징적인 시각적 인상을 부여한 이러한 조형 방식은 1950년대 파랑새와 사슴, 아리랑, 1960년대 나비, 해바라기, 상록수, 금관, 희망, 개나리 담배 로고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더욱 강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Figure 14 The tobacco packaging design published in the tobacco advertisement of Maeil Shinbo (1907-1915)

Figure 15 Tobacco products with Korean names released by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during Japanese occupation

Figure 16 Korean logos of tobacco products released since 1945
3. 1. 3. 민족적 상징의 활용

해방 직후 담배 포장디자인에서 감지되는 또 다른 주요한 시각성은 민족을 연상하게 하는 이미지이다. 무궁화와 화랑 담배 포장은 이러한 특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디자인으로 해방 이후 담배 포장디자인에서 반복된, 민족을 상상하게 하는 조형 방식을 선보인다.

무궁화 담배 포장에 표현된 무궁화 장식의 한반도 이미지는(Figure 18) 꽃으로 장식된 일본산 담배 포장디자인을 연상하게 하지만(Figure 17) 직접적인 시각적 출처는 일제강점기에 확산된 한반도 지형의 무궁화 자수본 도안임을 알 수 있다.(Figure 19) 무궁화 자수본은 독립운동가 남궁억이 배화학당 교사 시절(1910.11~1918.12) 학생들에게 항일 투쟁 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작, 배포한 이념 교육용 시각물이었다. 남궁억은 1920년대 에 격화된, 무궁화를 민족의 꽃으로 보급하기 위한 운동을 이끌었으며 이 과정에서 무궁화 한반도 자수본은 독립을 위한 "생활 속의 작은 실천"이라는 차원에서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광범위하게 제작되고 소장되었다.(2012, 이순자) 대한제국기 이왕가의 오얏 꽃이 황제(帝國)의 나라, 제국의 꽃으로 인식되었다면 일제강점기 무궁화는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나라 대신 민족을 투영한 겨레의 꽃으로 인식"되어(목수현, 2008) 독립을 염원하는 정서적 휘발성을 지닌 시각물로 기능했다.


Figure 17 The tobacco produced by Japanese Monopoly Bureau and distributed during Japanese occupation

Figure 18 The packaging design of ‘Mugoonghwa’, the tobacco released in 1949

Figure 19 The Mugoonhwa Hanbando embroidery design made and distributed by Namgoong Eok

Figure 20 The visual object created with the application of the Mugoonhwa Hanbando embroidery design

이러한 내력을 가진 무궁화 자수본은 해방 이전에는 잃어버린 국토의 상징이었지만 해방 이후에는 주권을 회복한 독립 국가로서의 이미지를 표상하며 민족 해방을 서사로 한 다수의 시각물에 등장하게 된다.(Figure 21) 무궁화 담배 포장디자인 역시 동일한 맥락의 시각물이었다. <한국담배의장> 기록은 무궁화를 "한민족을 표상하는 국화(國花)"로 언급하고 무궁화 꽃의 생물학적인 특징인 오랜 개화 기간을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를 지닌 민족을 대변"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무궁화 담배 포장디자인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보다는 무궁화 꽃이 지닌 상징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담배 포장 도안에 대한 설명을 대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무궁화 담배 포장디자인은 대중적인 정치적 아이콘의 힘을 지닌 무궁화 한반도 이미지를 담배 포장의 전면에 배치함으로써, 전매 담배 제품의 관제적 특성을 민족주의적 정서에 기반하여 시각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Figure 21 The poster commemorating the Korean liberation from Japanese occupation, made in 1945

국군 창설 기념으로 1949년에 발매된 화랑의 경우에는 일본전매청이 태평양 전쟁기(1941 - 1945)에 생산한 군용 담배의 유형을 띠는 가운데 담배 명칭을 '화랑'으로 표기함으로써 민족적 정서를 자극하는 시각성을 나타냈다.(Figure 22,23) 담배 포장을 구성한 국군 문장(紋帳)과 한글 로고의 조합을 볼 때, 표면적으로는 군대 문장이 두드러지지만 시각적인 주목도는 담배 명칭인 화랑에 집중된다. 그러나 이때의 주목도는 조형적 특징보다는 대한제국기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이르기까지 누적된, '민족의 표상으로서 화랑'에 대한 역사적 담론과 관계한다고 볼 수 있다.


Figure 22 The tobacco packaging design for military, released by Japanese Monopoly Bureau during the Pacific War

Figure 23 The packaging design of ‘Hwarang’, the tobacco released as the special tobacco for military

고대 왕국 신라에 존재했던 화랑은 20세기 전반기 한국 사회에서 이상적인 국민상의 원천으로 소환된 전통 표상이었다. 화랑은 대한제국기에 외세의 위협에 대항할 자주적인 민족정신의 본류로 상정된 이래,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무사 정신의 대응체로, 태평양 전쟁기에는 조선인 학도병 전시 동원을 위한 수사적 담론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고구려의 을지문덕, 조선의 이순신 등은 당대의 국가적 영웅이 아니라, 고대 신라에 존재했던 민족 본래의 자주적인 무사 정신이 발현된 불멸의 신화로 형상화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담론의 흐름 속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이후, 화랑의 이미지는 또 다시 변주된다. 공산주의에 대적할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군국(軍國)의 상징으로 호명되어 "화랑대(육군사관학교), 화랑 무공훈장, 육탄 10용사 기념사업(1949, 화랑정신 계승)"과 같은 군대와 관련된 이미지로 고착된다.(정종현, 2006)

1949년에 군(軍) 전용 특수 담배로 첫 발매된 화랑은 이와 같은 역사적 담론 위에 생산된 관제 담배였다. 32년의 생산 시기 동안 담배 포장에 선보인 충무공 이순신을 형상화한 도안(1963년)과 고구려의 고분 벽화 무용총에 그려진 기마 인물상(1981년)은, 민족적 연대의식을 고무시키는 시각적 매개물의 출처가 사회적 담론에 의해 구성된 텍스트와 맞닿아 있음을 방증한다.(Figure 23) 같은 맥락에서, 1958년에 디자인된 아리랑 담배 포장디자인의 경우에도 일제강점기에 촉발된 신라 시대 아랑 설화를 연원으로 한 아리랑 담론을 상업적인 차원에서 활용한 것이었다. 아리랑 담론은 민요, 잡지, 연극, 영화로 형상화되어 민족이라는 근대적 정서를 넓고 깊게 주조했고, 이는 해방 이후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최은숙, 2014)

그러나 이러한 역사성에 기댄 아리랑 담배 포장디자인은 일제강점기에 유통된 일본산 담배 포장의 시각 요소를 차용한 양상을 나타낸다. 아리랑 담배 포장디자인의 '전통무를 추는 여성 이미지'는(Figure 24) 일본산 담배 (동아연초주식회사 발매)포장에 표현된 활옷을 입은 조선 여성 이미지와 표현 소재가 동일하다.(Figure 25) 조선의 정체성을 전통 궁중 무용인 화관무(花冠舞)를 추는 여성으로 표현한 이와 같은 도상은 일본의 제국주의적인 시선이 낳은 결과물이었지만(Figure 26) 당시에는 각종 상표와 사진첩, 상업용 포스터를 장식한 가장 대중적인 시각물이었다.(Figure 27.28) 이러한 기원을 지닌 조선 여성의 이미지는 해방 이후에도 줄곧 복제되었고 1970년대부터는 국가적 관광 산업을 홍보하는 그래픽 이미지로 상정되어 다양한 시각물에 널리 활용되었다.(Figure 29,30) 1980년대에는 88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고조된 한국적 디자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더불어 이전보다 정제된 미감을 지닌 조선 여성의 이미지가 디자인되었고, 기념 담배 포장디자인에도 다시 등장했다.(Figure 31,32)


Figure 24 The packaging design of ‘Hwarang’, the tobacco released as the special tobacco for military

Figure 25 The tobacco packaging design reflecting the poster image of Chosun Mulsangongjinhye

Figure 26 The poster of Chosun Mulsangongjinhye in the 1920s

Figure 27 The cloth trademark and a photo postcard envelope

Figure 28 Performance advertisement of Jeogori Sisters carried in 『Modern Joseon』 in 1940

Figure 29 The matchbox designs in the 1970s

Figure 30 The Korean tourism poster in the 1970s

Figure 31 The posters with the theme ‘Rediscovery of Korea’ in the 1980s

Figure 32 The packaging design of the tobacco ‘88 Light’
3. 2. 1950년대 : 양담배 포장디자인의 확산과 미술적 시각성

1950년대 관제담배 포장디자인은 "미술적 가치를 담지한 화려한 의장 창안"을 목표로 했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군에 의해 대거 유입된 양담배와 각종 사제담배가 범람하는 상황에서 전매 당국이 주안점을 둔 것은 담배 포장디자인의 의장(意裝) 향상이었다. 1958년에 작성된 전매청 인쇄공장 도안집에는 "각종 외국 연초가 합법적으로 또는 불법적으로 국내에 유입되고 있는 상황에서 포갑지 도안의 참신미려가 특히 요청된다"는 당대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또한 <한국전매사>에는 "담배 수용층이 담배 품질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 명칭과 포장 의장에 따라 소비 여하를 판단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통해 미술적으로 창안된 담배 포장"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당시 인기리에 소비된 미국산 담배 제품의 포장디자인에 대한 대중의 시선을 의식한 것으로, 이 때 전매 당국이 선결 과제로 제시한 '미술적 가치를 지닌 담배 포장 개발'은 양담배 포장디자인에서 감각되는 미적인 특징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당시 신문에 기사화된 국산 관제담배 포장디자인에 대한 평가는 양담배 포장디자인과의 비교를 통해, 담배 맛뿐만 아니라 담배 포장 도안의 질적 향상이 요구된다는 주장이 일관되게 제기되었다.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빈번하게 기사화되었던 일본산 담배 포장디자인의 모방에 대해서도 그 이유를 '담배사업을 관영 독점으로 운영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담배 애호가들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비난을 쏟아냈다. 즉 국제적 인기를 누렸던 미국산 담배 포장디자인과 비교할 때, 일제강점기 담배 포장디자인을 닮은 관제담배 포장은 미술적 창안이 필요한 대상이었다. 그러나 극복의 양상은 시장의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해방 이후 고착된 일제강점기 담배 포장의 양식을 고수하는 가운데 양담배 포장디자인의 이미지가 혼합되는 특징을 나타냈다. 1955년에 기존 포장을 변경하고 재출시 된 백양(白羊) 담배 포장디자인은 이러한 양가적 조형 방식을 취함으로써, 1950년대 관제담배 포장디자인이 목표로 한 '미술적 가치를 지닌 포장 도안'의 사례를 제공했다.

3. 2. 1. 양담배 포장디자인과 상업적 미감

백양 담배 포장디자인에서 포착되는 양가성, 즉 상반되는 조형적 시각성의 병치는 한자로 표기된 담배 로고와 초록색 바탕의 중앙에 표현된 흰 양의 이미지에서 드러난다. 담배 제품명을 한자로 표기하고 레터링 한 백양(白羊) 로고는 전형적인 일제강점기 담배 로고디자인의 특징을 나타낸다. 반면 담배 이름 백양을 즉물적으로 표현한 흰 양의 이미지는 미국산 카멜 담배 포장디자인의 낙타를 연상하게 한다. 발매 전 홍보 단계에서부터 백양은 카멜과 비슷하다는 시선을 받았다.(동아일보 1955.5.28) 백양 담배 포장디자인의 전체적인 구성은 해방 이후 담배 포장디자인에서 고찰했듯이, 여전히 일제강점기 담배 포장디자인의 이미지가 지배적이었지만, 시장의 반응은 미국산 양담배를 대표했던 카멜 담배 포장디자인의 이미지를 백양 담배 포장디자인에 대입하는 양상을 나타냈다. 이는 카멜 담배 포장디자인이 함유한 미국적 물질성에 대한 한국적 시선의 반영으로 해석된다.

카멜은 1914년 미국 본지에서 출시될 당시 광고 형식과 포장디자인에서 주목받았던 담배로, 한국에서는 해방을 전후하여 인기리에 판매된 대표적인 양담배였다. '카멜이 오고 있다'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광고 문구와 함께 등장한 카멜 담배 포장디자인은 미국 내 카멜의 판매량을 극적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성공적인 디자인으로 인식되었다.(Eric Burns, 2015)(Figure 33,34) 서구의 담배 포장디자인 역사를 기술한 크리스 뮐렌은 "먼 풍경을 배경으로 동물의 측면 형상을 대조적인 크기로 배치한 구성"을 카멜식 담배 포장디자인으로 정의하고, 이러한 시각적 구성의 명료함이 상업적 성공을 거둔 브랜드의 조형 어법으로 인식되어 '카멜식' 담배 포장의 유행을 가져왔다고 진단한다.(Chris Mullen, 1979) 상업적 가치를 증명한 이러한 조형 방식의 확산으로 낙타가 있던 자리에 기린과 산양, 당나귀와 타조 등이 등장했고(Figure 35)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신성한 기운을 가진 동물로 인식되어 온 백양(白羊)이 등장했다. 백양에 이어 1957년에 발매된 사슴 담배 포장디자인의 경우에도 카멜식 담배 포장의 조형 어법을 연상하게 한다.(Figure 36)


Figure 33 The teaser advertisement with the copy ‘the Camels are coming’

Figure 34 The packaging design of the tobacco ‘Camel’

Figure 35 The Camel-like tobacco packaging design in each country

Figure 36 The tobacco packaging designs of ‘Baekyang’ and ‘Saseum’ in Korea

이와 같이, 카멜 담배 포장디자인이 미국 내에서 성취한 상업적 미감에 대한 선호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 열기는 미국 본지에서와 같은 마케팅 차원의 전략에 따른 것이기보다는, 한국전쟁이 배태한 물질적인 빈곤함과 대조되는 미국적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시각이미지에 기인한 것이었다. "은박지"와 투명한 비닐 "세르팡지(셀로판지)"에 싸인 채 선명한 색채의 조형적 질감을 표출한 카멜 담배 포장디자인은 그 자체가 호사스러운 흡연을 자극하는 욕망의 기제였다. 카멜을 살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카멜 담배 포장은 낱개로 산 국산 알 담배를 보관하는 담배 케이스로 재활용될 만큼 상징적인 시각 기호로 소비되는 현상을 낳기도 했다.

1955년에 새롭게 발매된 '카멜식' 백양 담배 포장디자인에 대한 대중의 시선은 바로 이러한 정서를 내포한 것이었다. 따라서 맛은 전혀 달랐지만, 담배 포장디자인을 통해 카멜을 떠올리게 한 백양 담배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이는 백양 담배 포장용지가 불법으로 인쇄, 유통되거나 전매청에서 보관 중인 담배 용지가 대량으로 도난당하는 상황을 초래할 정도였다. "새로 나왔다는 녹색 백양의 태반이 위조품"이라는 고발성 기사는 이에 근거한다.(동아일보 1956.10.1.) 당시 신문 사회면에는 "백양 포장지 위조범 적발", "백양 포장지 절취범 소탕", "인쇄기를 설치하고 백양 담배 밀조" 등과 같은 내용의 전매법 위반 범죄가 빈번하게 등장했다.(경향신문 1956.8.29. - 1957.12.25.) 이는 두 포장디자인 간의 시각적 유사성이 발생시킨 현상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앞에서 살펴 본 크리스 뮐렌이 정의한 카멜식 담배 포장디자인의 조형적 특징과 그 영향력을 상기시킨다. 카멜의 낙타는 사막의 피라미드를 먼 배경으로, 백양의 흰 양은 어떠한 배경도 없이 진한 녹색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두 포장디자인이 시각적으로 유사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브랜드 네임을 즉각적으로 연상하게 하는 동물의 측면 형상인, 프로파일 이미지 표현 방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한국산 관제담배 백양은, 카멜 담배 포장디자인과 유사한 느낌의 담배 포장으로 카멜의 담배 맛을 시각적으로 매개했다. 1950년대 중반 이후 전매 당국이 의도한 담배 포장디자인의 "참신미려"한 미술적 시각성은 이처럼 음성적인 담배 시장의 주요 품목이었던 미국산 양담배 포장디자인의 조형적 미감을 의식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시각성은 완벽하게 미국적인 것도 일본적인 것도 아닌 양쪽의 시각성이 교묘하게 섞인 혼종적 조형성을 띤 것이었다.

3. 2. 2. 인쇄기기의 물성을 내재한 장식성

한편, 이러한 혼종적 조형성과 함께 1950년대 담배 포장디자인에서 주목되는 시각적 특징은 인쇄기기의 물성을 내재한 장식성이다. 그 대상은 단순히 담배 포장의 표면을 메운 패턴 무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담배 로고와 삽화를 표현한 색상과 형태가 발산하는 시각적 선명도를 포괄한다. 담배 포장의 입체적 물성을 돋보이게 하는 시각 요소들의 구성과 그러한 조합의 조형적 질감을 매끄럽게 완성하는 인쇄기기의 물적 양상을 내포하는 것이다.

당시 전매청 인쇄소에서 발간한 포장 도안집에는 이러한 장식성이 도출된 환경을 이해할 수 있는, 담배 포장 생산과 관련된 시대적 인식이 기술되어 있다. 전매제도의 시행이 무색할 정도로 양담배 소비가 만연한 상황에서, "한국전쟁 이후 수입된 선진 인쇄기기를 십분 활용하여 경쟁력 있는 포갑지 도안에 주력해야 한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구미 선진국의 인쇄기기를 도입함으로써 생산 환경의 면목을 일신하였으니, 이후의 사명은 이러한 인쇄기기의 기술을 연마하여 더욱 미려(美麗, 아름답고 고운)한 포갑지 생산에 주력하는데 있다"고 강조한다. 한국전쟁 이후를 분기점으로 하는 이러한 인식은 당대의 관제담배 포장디자인이 도모해야 할 미술적 가치 향상의 한 축이, 인쇄 기술의 쇄신에 있음을 전제한 것으로 이는 다음과 같은 특징의 담배 포장디자인을 출현시켰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 이전의 담배 포장디자인과 비교할 때, 손으로 그린 듯한 수공예적인 표현을 벗어나 도구를 이용하여 작도되고 인쇄된, 전체적으로 기계적 물성을 지닌 미감을 나타냈다.(Figure 38) 195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담배 포장디자인의 수공예적인 미감은 일제강점기에 대거 유입된 선진 인쇄 기술이 해방 이후 단절된 채, 어떠한 대안도 시도해 볼 수 없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재래식 수공제판에 의존해 온 결과였다. 인쇄판을 손으로 직접 그려서 완성해야 하는 수공제판은 원도안(原圖案)을 옮기는 과정에서 정밀도가 떨어지는 한계를 보였고, 이는 하나의 도안을 반복해서 베껴 그린 것 같은 이미지를 나타냈다. 동종의 담배 포장이지만, 생산 연도에 따라 미묘한 조형적 차이를 보이는 결과물은 이에 근거한다.(Figure 37)


Figure 37 The tobacco packaging design by manual plate making

반면 1950년대 후반에 상용화된 동판 원색 인쇄술은 선명한 색감과 정교한 형상의 담배 포장디자인을 선보였다. 직선과 곡선의 기하학적인 패턴을 전면화하고 이를 배경으로 담배 로고와 삽화를 간결하게 구성한 방식은 동판 인쇄의 날카로운 물성이 더해지면서 기계적 미감의 장식성을 구체화 시키고 있다. 특히 인쇄기기의 물성에 기반한 이러한 시각성은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담배 포장디자인의 표준화된 미적 요소로 자리하게 된다. 1950년대 전매 시장을 지배한 양담배 포장 디자인과의 경쟁에서 해결해야 할 조형적 과제가 아니라, 거듭된 인쇄 기술의 쇄신에 따른 일반화된 미적 결과물로서의 전형을 띄게 된 것이다. 1960년대 담배 포장디자인의 특징인 단순하게 분할된 면과 반복되는 괘선, 인쇄 망점으로 조합된 표면 질감은 1950년대에 전개된 이와 같은 인쇄 환경의 내력을 기반으로 한다.(Figure 38)


Figure 38 The tobacco packaging design by the etching printing
3. 3. 1960년대 : 국산 필터 담배 증산 체제 구축과 관제적 시각성

이미 고찰하였듯이, 해방 이후 1950년대까지 담배 시장의 소비 흐름을 주도한 제품은 사제담배와 양담배였다. 그러나 1965년에 완공된 신탄진 연초제조창의 본격적인 가동은 이러한 흐름을 전환시켰다. 신탄진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국산 필터 담배는 불법으로 유통되거나 제조된 각종 사제담배에 대한 시장의 욕구를 대체했다. 양적이고 질적인 측면에서 전매 시장을 이끄는 주요 상품으로 자리한 것이다. 이 시기의 담배 포장디자인이 나타낸 시각성은 이러한 변화된 담배 시장의 상황을 반영한다. 이는 1960년대식 담배 포장디자인으로 명명될 수 있는 전형성을 띤 것으로 이전 시기와는 구별되는 관제적 시각성을 표출한다.

해방 이후 1950년대 담배 포장디자인이 일제강점기 담배 포장디자인과 미국산 담배 포장디자인의 조형적 양식을 차용하여 관제 상품으로서의 경쟁력을 확보하려고 했다면, 1960년대 담배 포장디자인은 이러한 양식을 구조 삼아 생산, 유통, 판매를 국가가 통제하고 그 이익을 독점하는 전매 상품으로서의 속성을 시각적으로 부각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조형적으로 이는 단순한 면 분할과 눈에 띄는 여백을 특징으로 한 레이아웃 위에 국가적 이념과 정책을 홍보하는 시각 요소가 결합된 특징을 나타낸다. 새로운 상업적 미감을 가진 디자인이 아니라, 국가정책을 홍보하는 도구적 시각성을 우위에 둔 조형 방식이 시도되었음을 알 수 있다.

3. 3. 1. 여백 중심의 규격화된 레이아웃

담배 포장을 국가가 내세운 이념과 정책을 홍보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는 이와 같은 양상은 해방 이후 1960년대 중반까지 유통된 담배 포장 디자인에서도 흔하게 발견되는 특징이지만, 정형화된 조형적 구조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1965년에 준공된 신탄진 연초제조창의 필터 담배 대량생산을 기념하여 출시된 이후, 독립적인 제품군을 형성한 신탄진 담배 포장디자인에서는 1990년대까지 지속된 국가정책 홍보를 위한 규격화된 조형적 레이아웃이 마련된다. 이는 1965년에 도안된 신탄진 담배 포장디자인을 재디자인한, '1968년도 신탄진 담배 포장디자인'에서 구체화 된다.

1968년에 선보인 신탄진 담배 포장은 1965년과 1966년에 도안된 신탄진 담배 포장의 후속디자인이었다. 후속 디자인의 과제는 외국산 담배 포장디자인을 모방하지 않는 것이었다. 1965년도 신탄진 담배 포장디자인은 '미국산 담배 팔리아멘트(Parliament) 포장디자인과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1966년도 디자인은 일본 담배 포장의 주요 시각 요소인 욱일기 패턴을 연상하게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Figure 39,40) 당시 상업미술가 한홍택은 특히, 미국산 담배 포장디자인을 모방한 현상을 비판하며 국내산 필터 담배라는 위상에 맞는 창의적인 도안이 절실함을 피력했다.(동아일보. 1965.7.22)


Figure 39 The tobacco packaging design by the etching printing

Figure 40 The packaging design of ‘Shintanjin’ in 1966, reminding people of Japanese Rising Sun Flag

1968년도 신탄진 담배 포장디자인은 이러한 상황 속에 등장했고, 기존 신탄진 담배 포장디자인의 이미지와 유사하면서도 다른 특징을 나타냈다. 그 특징이란, 여백 중심의 공간 구성을 활용한 조형 방식으로 여기서 여백은 레이아웃의 중심 기능을 수행한다. 국가가 주조한 이념의 다양한 표상들은 이러한 여백을 일정한 공간으로 확보하고 등장한다. 빈 여백은 1950년대 담배 포장디자인의 목표였던 미술적 가치를 담지한 포장 도안의 시각 요소로 기능하는 대신, 1960년대 국가 이념을 반영한 각종 슬로건과 도안이 배치되는 기능적 조형 공간의 특징을 띄게 된다. 담배 포장디자인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좌우하는 미적 요소로 고려되어야 할 여백이 아니라,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어떤 내용이든 채워 넣을 수 있는 표준화된 빈칸으로 활용된 것이다.(Figure 41)


Figure 41 The original packaging design of ‘Shintanjin’ in 1968 and an example of margin application

첫 출시 때는 포장의 하단 부분은 금박 인쇄로, 상단 부분의 흰 여백에는 일체의 장식을 배제한 채 신탄진 로고와 심볼만 배치되었지만 이후 각종 국가 행사를 알리는 표어와 도식화된 삽화 및 엠블럼 등이 같은 위치에 규칙적으로 삽입되면서 정형화된 양식을 띄게 된다.(Figure 41) 시각적으로 짜임새 있는 구성을 시도하기보다는 이미 일정한 틀을 갖춘 포장 형식을 재활용하는 이와 같은 조형 방식으로 인해, 1960년대 담배 포장디자인은 단순한 면 분할로 구성된 추상적 양식 위에 구상적 시각 요소가 뒤섞인 이미지를 표출하게 된다. 신탄진 이후 대부분의 담배 포장디자인에 적용된 이러한 구성 방식은 국가 공익 광고뿐만 아니라, 미아 찾기 캠페인 광고, 각종 제품 광고 등을 담배 포장의 표면에 흡수하며 전매 담배 포장디자인의 도구적 시각성을 공고히 한다. 청자, 거북선, 새마을, 솔, 88라이트에 적용된 1960년대식 담배 포장디자인 양식은 각각의 담배 포장이 지닌 조형적 특징과 뚜렷한 시각적 차이를 발생시키며, 관제적 이미지를 생산하는데 작용한다.(Figure 42)


Figure 42 Various advertisements inserted in tobacco packaging after 'Shintanjin packaging design
3. 3. 2. 국가정책의 시각화

한편, 이처럼 1950년대 담배 포장디자인에 기반한 특정한 조형 양식이 1960년대 담배 포장디자인의 관제적 시각성을 일관되게 생산하는 틀이었다면, 그 속에 위치한 시각 요소들은 내용의 차원에서 이 시기에 생산된 담배 제품의 관제적 특성을 강화한다. 국가라는 이미지를 상기시키는 로고와 삽화, 계몽 표어 등은 일정한 여백을 확보한 레이아웃 위에 배치되면서 전매 담배라는 이미지를 강력하게 구축한다. 특히 이러한 시각성은 "특수의장 담배 포갑지"로 분류된 기념 담배 포장디자인에서 뚜렷하게 감지된다. 특수의장 담배 포갑지는 1960년대 이후 199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30여년 간 유지된 담배 포장 형식으로, 국가정책을 홍보하고 기념하는 시각적 구성을 특징으로 한다.(Figure 43,44)(한국담배의장, 1992)


Figure 43 The packaging design structure of ‘Shintanjin’ visualizing a national policy

Figure 44 ‘Sol’ tobacco packaging design which laid out national memorial days as main visual elements

기념의 주요 내용은 1960년대 전매 시장의 상황에서 살펴보았듯이 애족(愛族)과 애국(愛國)을 위한 경제 정책과 관련된 것으로 이를 표현한 이미지들은 특수의장 담배 포장디자인의 핵심적인 시각 요소로 자리한다. 1960년대 이후 기념 담배 포장디자인의 전형을 제시한 신탄진 담배의 경우, 신탄진 로고는 조형적 특징이 아니라 '신탄진'이라는 장소가 갖는 상징성으로 인해 전매 담배로서의 존재감을 분명히 한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된 신탄진 연초 제조창의 준공은 표면적으로는 담배 애호가들을 위한 공급 확대를 목표로 한 것이었지만, 실질적인 의도는 안정적인 세수 확보를 위한 물리적 기반을 확고히 하는데 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담배 명칭 신탄진은 양질의 필터 담배를 기술적으로 규격화하고 이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최첨단 국가 산업 기지로서의 장소성을 내재한 것이었다.

마치 18세기 조선의 금광초, 상관초와 같은 담배 대부분이 재배 산지의 지역명을 상품명으로 취하여 소비자들에게 각각의 연초가 지닌 맛과 질을 지역에 따라 구별할 수 있도록 했던 것처럼(이영학, 2013) 신탄진 역시 이러한 지역성을 연상하게 한다. 더욱이 해방 이후 대부분의 담배 이름이 동물, 식물, 전통의 기물 등이었던 것과 비교할 때 생산지명을 담배 이름으로 시각화한 신탄진 로고는 또 다른 양상의 관제적 시각성을 발산한다. 이는 담배 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통제하는, 배타적 독점권을 갖는 전매 주체로서의 힘을 본격적으로 가시화한 관제적 시각성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이러한 특징은 국가정책과 기념일을 시각화한 삽화와 표어를 통해 구체화 된다.

삽화는 심볼 형식의 구상적 이미지로, 표어는 행동 강령과 같은 문장으로 국가적 기념의 내용과 의미를 시각화한다. 예를 들어 현충사 중건 기념 담배 포장에는 선 드로잉 기법의 현충사와 거북선 이미지가, 저축의 날 기념 담배 포장에는 복주머니가, 한국과학기술 연구소 준공 기념 담배 포장에는 연구소 건물이 표현된다.(Figure 43) 이외에도 담배 포장 전면을 지배하고 있는 단순한 구성 양식과 대별 되는 사실적인 묘사를 특징으로 한 양식화된 이미지가 주를 이룬다. 표어의 경우, 문장이 지시하는 직설적인 의미로 인해 담배 포장디자인의 관제적 이미지는 더욱 증폭된다. "시련을 이긴 민족이 위업을 남겼다.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자, 세금으로 밀어주자, 자립 경제 자주국방 등", 공동체적인 정신과 행동을 요구하는 구호가 삽입된다. 전매 담배의 특성을 부각하는 시각적 수사로서 이와 같은 표어와 삽화는 역설적으로, 간결한 구성을 특징으로 한 기존 담배 포장디자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질적인 이미지를 주조하며 1960년대 담배 포장디자인의 시각성을 부각시키는 조형 요소로 작용한다.

4. 결론

기존 한국 디자인사에서 담배 포장디자인은 특정한 거대 담론의 서술 속에 파편적인 사례로만 언급되어 왔다. 주로 1960년대 디자인 국부론과 국가에 의한 공공디자인을 고찰하는 과정에서 담론을 뒷받침할 유용한 증거 자료로 제시된다. 대표적인 예로 1960년대 담배 포장디자인은 당대의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반영된 결과물로 설명되고 결론은 정치적 도구로 활용된 디자인으로 요약된다. 고찰의 심층은, 디자인에 대한 국가적 인식이 어떠한 시각의 장(場)을 배태했는가에 대한 사실 확인과 국가 디자인에 대한 성찰적 반추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와 같은 유형의 반복된 서술은 개별 디자인이 사회 내에서 경험된 양상을 단순화시킬 수 있는 한계를 갖는다는 점에서 또 다른 서술을 필요로 한다. 다양한 사회적 욕구를 미적인 형상으로 수렴하고 발산하는 디자인의 내적 가치가 생산된 환경과 소비된 양상을 보다 복합적인 맥락에서 접근할 것을 요구한다. 해방 이후 1960년대 담배 포장디자인에 대한 고찰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근거한 것으로, 전매 담배 포장디자인의 관제적 시각성을 국가가 밝힌 디자인 의도를 쫓아 서술하기보다는, 당대의 담배 포장디자인이 나타낸 조형적 양상에 집중하여 분석한다.

그 결과 1945년 이후 1960년대 담배 포장디자인의 시각성 형성에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주목된 것은 모방 현상이다. 해방기 담배 포장디자인은 일제강점기에 유통된 담배 포장과 상품 로고디자인의 양식을 답습하고 있으며, 1950년대 담배 포장디자인은 미술적 가치를 지닌 디자인으로 규정된 양담배 포장 형식을 응용한다. 1960년대 담배 포장디자인은 1950년대 후반의 간결한 구성을 특징으로 한 담배 포장 양식을 재구성하며 전매 담배로서의 상품성을 시각화한다. 또한 해방 이후 1960년대까지 줄곧 등장한 전통 이미지와 관련된 시각 요소의 경우에도 민족주의 담론이 생산한 특정한 이미지를 형상화하거나 따르고 있다. 해방 이후 전매 시장을 위협했던 가짜 담배 포장디자인 역시, 이러한 관제담배 포장 형식을 모방한 것이었다.

사회학자 가브리엘 드 타르드(Gabriel de Tarde, 2012)는 이러한 사회 현상으로서의 모방 행위는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며 그 이유는 모방 대상이 역사적으로 또는 동시대의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획득한 믿음과 욕망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즉 이와 같은 개념을 대입할 때, 해방 이후 1960년대 담배 포장디자인에서 포착되는 이전 시대와 동시대의 담배 포장디자인을 모방한 근저에는 상업적 시각 도구로서의 가치가 검증된 양식이라는 믿음이 작용했음을 유추하게 한다. 소비자들에게 이미 특별한 가치를 지닌 상품 기호로 소비된 담배 포장디자인뿐만 아니라 민족적 이념을 표상한 이미지 또한, 동일한 상업적 신뢰의 대상으로 모방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방은 원본과의 동일성을 보장하는 기계적 복제 이미지가 아니라, 혼종적 조형성을 띤 이미지를 유발함으로써 특유의 관제적 시각성을 주조하는 조형 방식으로 기능한다. 해방 이후 1960년대 담배 포장디자인이 나타낸 시각성은 상업적 가치가 검증된 담배 포장디자인의 양식이 시장의 상황과 맞물리며 조형적으로 차용되고 변형된 과정이었음을 증명한다. 결국 해방 이후 1960년대 담배 포장디자인은 새로운 시각이미지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관습화된 익숙한 시각 이미지를 모방하는 것으로 관제적 시각성을 형성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새로움이 아니라 익숙함에 기댄 시각화 전략이 관제담배 포장디자인의 상업적 시각성이 생성된 기반이었다. 본 연구의 이러한 분석은 디자인의 내적 가치가 생산된 실질적인 조형적 토대를 추적, 제시함으로써 한국 시각디자인의 특수성이 생성된 맥락과 작동된 방식을 읽을 수 있는 텍스트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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