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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1970년대 한국 신문 지면에서 정보 그래픽의 양상과 역할
Aspects and Roles of Information Graphics in South Korean Newspapers in the 1960s and 1970s
  • Hyungjae Kim : Department of Design, College of Art, Assistant Professor, DongYang University, Dongducheon, Korea
  • 김 형재 : 동양대학교 예술대학 디자인학부, 조교수, 동두천, 대한민국

연구배경 본 연구는 신문에 사용되는 정보 그래픽의 시각적, 저널리즘적 가치를 인지하면서 시작한다. 1960~1970년대 국내 신문에 등장하는 정보 그래픽을 분석하여 한국 초기 정보 그래픽의 역할과 양상을 알아보고자 한다. 해당 시기 신문이 상업적으로 성장하면서 신문사 내부에 독자에게 전문적인 지식을 제공하여 근대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세대가 등장했으며 대학에서 전문 디자인 교육을 받은 그래픽 디자이너 1세대가 활동했다.

연구방법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의 1960~1970년대 기사를 대상으로 정보 그래픽을 활용한 사례를 인터넷 뉴스라이브러리 서비스를 사용하여 살펴보았다. 발표된 시간 순서대로 1960년대부터 1970년대 말까지 초기, 중기, 완숙기의 세 단계로 구분하여 분석하고, 이를 다시 두드러지는 내용 및 형식적 특징으로 분류해 묶었다. 뚜렷한 의도와 목적 아래 시각적 구성과 표현이 체계적으로 제작된 사례를 주로 선정해 디자이너의 저자성이 더욱 심화되는 과정을 규명하려 했다.

연구결과 1950년대의 신문 지면에서는 정보 그래픽을 동반한 기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196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신문 지면상에서 구체적 정보를 통일성 있게 추상화하여 시각화한 도형 기호 형태의 정보 그래픽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후 다양한 기획과 실험적 시각화 등의 시도를 거듭하면서 1970년대 후반 즈음에는 완전히 현대적인 형태의 정보 그래픽이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신문별로 살펴보면 1960년대 중반 경향신문에서 정보 그래픽을 활용하는 경향이 도드라졌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서는 그보다 조금 늦은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결론 본 연구는 현대주의 디자인이 한국에 도입되는 시기를 조명하는 시도 중 하나이다. 1960~1970년대의 한국 신문에서 정보 그래픽은 정보를 잘 전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선전과 선동의 기능을 사용하여 한국의 근대화시기에 국민에 대한 교육과 계몽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각국의 사회, 경제, 문화적 상황에 따라 현대주의 디자인이 도입된 시차가 만들어지고, 그 시차에 대응했던 한국 디자이너들의 활동이 재조명되어야 한다.

Abstract, Translated

Background This study begins by recognizing the visual and journalistic value of information graphics used in Korean newspapers. By analyzing information graphics appearing in South Korean (hereafter, Korean) newspapers in the 1960s and 1970s,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early role and aspects of information graphics of South Korea (hereafter, Korea). During that time, as newspapers grew commercially, The first generation who wanted to contribute to modernization by providing specialized knowledge to readers appeared within the newspaper companies. The first generation of graphic designers who received professional design education at the university, were also active.

Methods Cases using information graphics were collected using the Internet news library service for articles in the 1960s and 1970s of Kyunghyang Shinmun, Donga Ilbo, and Chosun Ilbo. From the 1960s to the end of the 1970s, in the order of published time, the analysis was divided into three stages: early, middle, and full maturity, and then classified and grouped by prominent content and formal characteristics. By selecting cases in which visual composition and expression were systematically produced under a clear intention and purpose, We tried to clarify the process of further deepening the graphic designer's authorship.

Results It is difficult to find articles with information graphics in the newspapers of the 1950s. In the mid-1960s, information graphics in the form of graphic symbols, which were visualized by uniformly abstracting specific information on newspaper pages, began to appear. Since then, various attempts such as planning and experimental visualization have been conducted, and it can be seen that a completely modern information graphic appeared around the late 1970s. Looking at each newspaper, the tendency to use information graphics in the Kyunghyang Shinmun became prominent in the mid-1960s, and the Chosun Ilbo and Donga Ilbo started appearing in the late 1960s and early 1970s.

Conclusions This study is one of the attempts to illuminate the period when modernist design was introduced to Korea. In the Korean newspapers of the 1960s and 1970s, information graphics not only conveyed information well, but also used the functions of propaganda and agitation to educate and enlighten the people during the modernization period of Korea. Depending on the social, economic, and cultural situation of each country, a time difference in which modern design is introduced is created, and the activities of Korean designers who responded to the time difference should be re-examined.

Keywords:
Information Graphics, Newspaper Graphics, Propaganda Graphics, Journalism, Isotype, 정보 그래픽, 신문 그래픽, 선전 그래픽, 저널리즘, 아이소타이프.
pISSN: 1226-8046
eISSN: 2288-2987
Publisher: 한국디자인학회Publisher: Korean Society of Design Science
Received: 12 May, 2021
Revised: 26 Jun, 2021
Accepted: 28 Jun, 2021
Printed: 31, Aug, 2021
Volume: 34 Issue: 3
Page: 259 ~ 277
DOI: https://doi.org/10.15187/adr.2021.08.34.3.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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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ation: Kim, H. (2021). Aspects and Roles of Information Graphics in South Korean Newspapers in the 1960s and 1970s. Archives of Design Research, 34(3), 259-277.

Copyright :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educational and non-commercial use,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1. 서론
1. 1. 연구의 배경

정보 그래픽은 주로 복잡한 정보를 명확하게 표현하여 수용자가 빠르게 인식하는 것을 돕기 위해 제작된 그래픽을 말한다. 이는 간단한 막대그래프나 표부터 다이어그램, 표, 흐름도, 아이콘 등이 복잡하게 활용된 이미지까지 모두 아울러 일컫는데, 이미지 자체가 구체적인 데이터를 독자에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사진이나 일러스트레이션과 다르다.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인쇄 기술이 쇄신되며 대중에 교양과 정보를 전달하고자 하는 욕구가 커졌고 통계와 관련된 그래픽이 다양하게 발달했다(Neurath & Kinross, 2009). 정보 디자인의 효시로서 흔히 언급되는 사례인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의 콕스콤(Coxcomb) 다이어그램(1857)과 스노우(John Snow), 체핀스(Charles Cheffins)의 콜레라 지도(1854) 등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처럼 정보 디자인은 태생부터 사회적 통계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여 대상을 설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시각 소통 모형으로써 개발되었다(Lee, 2007). 전자는 전시 위생 등과 관련해 정책 결정자를 설득하기 위한 시각적 장치로서, 후자는 전염병의 전염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가시적 정보를 구체적 역학 조사를 통해 지도 위에 가시화하여 지역 사회를 체계적으로 설득하기 위한 도구로서 의미가 있다.

1920년대부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까지 노이라트(Neurath) 부부가 정립한 아이소타이프(ISOTYPE)는 정보를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의사 전달의 측면뿐만 아니라 종합적인 교육 체계 구축을 위한 매개체로서 개발되었다는 점, 그리고 이를 위해 현대주의 디자인의 추상적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거나 새롭게 창안한 점에서 당시 가장 현대적인 정보 그래픽 제작 방법론이었다고 볼 수 있다(Kim, 2018).

다른 현대 그래픽 디자인 분야와 마찬가지로 20세기 초 급속도로 발전한 초기 정보 디자인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치중립적이고 추상적인 조형 언어로서의 성격이 강조되는 대규모 공공 정보 전달에 적합한 시각 도구(픽토그램 등)와, 사회적 통계 등을 시각화해 대상을 효과적으로 설득하기 위한 계몽적 시각 소통 도구(저널리즘 등)로 분화하여 발달하게 된다. 본 연구에서는 후자인 계몽적 시각 소통 도구로서의 정보 디자인에 더욱 집중하고자 한다.

유홍식(Yu, 2011)은 정보 그래픽이 뉴스의 텍스트, 보도사진 등에 비해 사용 빈도나 지면을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지만, 뉴스의 정확성과 중요성을 수용자들에게 인식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특히 이슈에 대한 예시 자료가 미비한 경우 정보 그래픽은 실제로 그 기사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했다. 이에 따르면 정보 그래픽은 편집 디자인의 아름다움과 효율을 넘어서는 독립적인 저널리즘적인 필요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한국 언론에서 정보 그래픽이 이 같은 저널리즘적 성격을 내포하며 제작된 초기 과정을 추적하고 관찰한다.

1. 2. 연구의 대상과 시기

연구의 대상은 1960~1970년대 국내 신문에 등장하는 정보 그래픽이다. 1950년대까지 신문 지면에서 정보 그래픽이 활용되는 방식은 통계나 목록 등이 표 형식 그대로 삽입되거나 단순한 통계 그래프가 보조적으로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편집진의 분명한 의도에 따라 세밀하게 복합적으로 제작된 정보 그래픽이 지면에 대규모로 사용된 사례는 주로 1960년대 중반 이후에 나타난다.

4·19 혁명 직후 도입된 신문 등록제와 함께 언론의 자유에 대한 기대감으로 신문의 신규 발행이 늘어나기도 했지만, 이후 들어선 군사정권의 탄압과 통제의 결과로 언론의 자유와 활동은 위축되고 만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정권친화적인 언론사에 대해 산업적, 기업적 혜택이 집중되면서 신문이 급속도로 상업화하며 객관성과 기능성, 전문성이 강조되게 된다.(Yoo, 1995). 박용규(Park, 2014)에 따르면 신문의 상업화와 함께 경쟁적 공채 출신의 대학 졸업자들이 1960년대 주요 신문사에 유입되며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저항적 지사로서의 언론인상이 희석되고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엘리트 의식이 발현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이들은 언론인이 전문지식을 갖춰 근대화에 기여해야 한다고 여겼으며 특히 한국 근대화를 위한 “문제 해결의 실천적 방도”로서 언론의 계몽적 성격을 강조했다. 이들의 태도는 해당 시기 신문에서 제작된 초기 정보 디자인의 계몽적 성격과 어느 정도 연관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시기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정보의 빠른 공유 및 습득에 대한 요구도 커졌다. 임남숙(Lim, 2015)에 따르면 이 시기에 활판인쇄용 대형 고속 윤전기가 인쇄업계에 정착되었으며, 언론의 사회적 역할과 산업적 환경 변화가 맞물리며 신문의 수요와 보급률이 함께 증가했다.

한편 한국디자인진흥원의 웹사이트는 주로 1960년대 즈음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서 디자이너로서 활동하기 시작한 이들을 “한국 그래픽 디자이너 1세대”라고 칭하고 있다. 패션, 텍스타일, 산업 디자이너가 주로 등장한 1950년대 신문 기사들에 비해 1960년대 초반부터 신문 지면을 통해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표현과 관련 행사, 전시 등에 대한 기사가 상대적으로 다수 등장하고, 1970년대에 이르면 정보 그래픽이 포함된 신문 기사에 담당 디자이너 이름을 표기하는 등 언론 내외부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자리잡기 시작했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신문에서 계몽적 시각 소통 도구, 그 중에서도 저널리즘, 혹은 프로파간다로서의 정보 그래픽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사례는 주로 1950년대 영미권 신문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영국의 대표적 일간지 데일리 익스프레스(Daily Express)에 1956년부터 1959년까지 발표된 ‘Expressograph’ 시리즈는 다양한 통계 정보를 강렬한 정보 그래픽으로 시각화했다(Dick, 2015). 이 시리즈는 당시 데일리 익스프레스의 소유주 비버브룩(Lord Beaverbrook)의 지휘에 따라 그의 정치적 이익을 고려한 편집 과정을 통해 정보를 왜곡, 발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으로 이 시리즈는 이를 실행하기 위해 아이소타이프의 시각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차용했다. 톰슨(Thompson, 2017)은 온라인 에세이에서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 아카이브에 보관된 1950년부터 1962년 사이 뉴욕타임스에 실린 정보 그래픽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이 스크랩에는 1960년대 우주 탐사와 달 착륙, 냉전과 관련한 세계정세, 미국 인종 갈등을 둘러싼 인구 분포 등을 시각화한 결과물이 포함되어 있다. 이 정보 그래픽은 기사와 함께 혹은 기사와 독립적으로 읽힐 수 있도록 높은 밀도로 제작되었다. ‘Expressograph’ 시리즈가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정보 그래픽을 활용했다면, 뉴욕타임스의 정보 그래픽은 고도의 지식 체계를 직관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시도로서 제작되었다. 이러한 해외의 흐름이 직간접적으로 한국에 미친 영향은 이후 살펴볼 국내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종합하면, 1960년대 신문은 군사정권의 통제 아래서도 양적, 상업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으며 신문사에 새로 유입된 구성원을 중심으로 언론의 사회적 정체성을 재고하고 독자에게 전문적인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여 근대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세대가 등장했다. 같은 시기에 대학에서 전문적인 디자인 교육을 받은 그래픽 디자이너 1세대가 사회에 배출되고 있어 실질적인 디자인 수행을 담당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1950~1960년대에 걸쳐 영미권 대표적 대중 신문에서 저널리즘과 프로파간다로서의 정보 그래픽이 널리 생산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해 1960년대부터 한국 신문에 증가한 정보 그래픽의 생산 주체와 배경에 대해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 3. 연구의 목적과 방법

본 연구는 정보 그래픽의 디자인적인 발전 양상과 저널리즘적 가치가 1960~1970년대의 한국 신문의 정보 그래픽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사례 분석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뉴스라이브러리 서비스를 사용하여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의 1960~1970년대 기사 중 정보 그래픽을 활용한 사례를 수집하였다. 수집한 사례는 기본적으로 발표된 시간 순서대로 1960년대부터 1970년대 말까지 초기, 중기, 완숙기의 세 단계로 구분하고, 이를 다시 두드러지는 내용 및 형식적 특징으로 분류해 최종적으로 네 부분으로 묶었다. 내용을 처리하는 방식에 따라 정보 그래픽의 심화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내용과 형식을 분리하지 않고 함께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사례 연구의 후반부에는 이 중에서도 단순한 정보 전달에 그치지 않고 뚜렷한 의도와 목적 아래 시각적 구성과 표현이 체계적으로 제작된 사례를 통해 정보 디자인에 있어 디자이너의 역할 변화에 따라 시각적 표현 결과가 달라지는 과정을 확인하였다. 이를 구체적으로 서술하기 위해 노이라트와 킨로스가 제시한 ‘변형자’ 개념과 그 발전 과정을 분석 기준으로 사용했고, 형식적 분류를 위해서는 오병근 등(Oh & Kang, 2008)이 제시한 체계를 보조적으로 활용했다.

2. 1960~1970년대 한국 신문의 정보 그래픽 활용 양상
2. 1. 국가적 역량 과시: 통계 다이어그램의 집합적 활용

1960년대 초반부터 정보를 표 형태로 나열하지 않고 막대그래프, 꺾은선 그래프, 파이형 그래프 등 통계 기반의 다이어그램을 통해 제시하는 경우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특히 지면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 다량의 그래프를 기사의 주된 내용으로 제시하는 사례가 처음으로 나타난다. 주로 전후 한국의 발전상에 대해 독자에게 홍보하고자 하는 특집 기사가 대다수다. 다만 집합적으로 사용된 정보 그래픽의 형식이 통일되지 못하는 등 아직 시각적 통제가 면밀하지 못했다.

<1945~1965 한국의 자화상>은 경향신문에서 해방 20주년을 맞아 기획한 특집 기사다. 해방 이후 한국의 발전상을 풍부하고 다양한 형식의 그래프와 다이어그램을 통해 시각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통계의 항목은 농산물, 전력, 무역, 어획고, 자동차, 전화와 우체국, 학교, 의사, 통화량, 인구, 국민총생산, 물가와 환율로 각각 다른 시각화 방법을 사용했다. 예컨대 어획고는 완전히 추상화된 아이콘을 반복적, 정량적으로 제시하는 아이소타이프의 전형적 형태이지만 전화와 우체국은 상대적으로 덜 추상화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표현되었다. 남녀를 한자로 쓴 도표가 있지만 남녀를 아이콘으로 만들어 제시하기도 한다. 시각물의 전체 형식과 인상을 통일하는 역할이 부재함을 알 수 있다(Figure 1).


Figure 1 1945~1965 Self-portrait of Korea. Kyunghyang Shinmun. 1965.8.14.

경향신문의 <요람에서 자립 성장으로>는 정부 수립 20주년을 맞아 기획한 특집 기사이다. 초대 국무총리와 1968년 현재 국무총리의 인터뷰를 지면의 양쪽 끝에 배치하고 그 사이 마치 둘을 잇는 다리처럼 도표들이 채웠다.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의 양이 늘어나면서 앞의 도표와 달리 여러 형식이 겹겹이 쌓인 상태로 배치되었다. 도표에 그려진 항목 중 몇몇은 시각화에 실패해 연도와 수량을 기재한 통계표를 함께 제시했다(Figure 2).


figure 2 From cradle to independent growth. Kyunghyang Shinmun. 1968.8.14.

경향신문은 1971년 1월 1일부터 3월 20일까지 12회에 걸쳐 연재된 <한국의 젊은이>라는 기획 기사를 통해 해방 후 국민학교 교육을 받은 청년 세대와 그 특징에 대해서 직업군을 통해 분석한다. 대부분 파이형 그래프를 통해 응답 비율을 보여주고 있지만(Figure 3), 필요에 따라 특별한 형태의 도표가 제작되었다. 가령 <사무원> 편은 이전까지 파이형 그래프 형식이던 설문 응답 비율을 동심원으로 그렸다. 기존 파이형 그래프의 360도가 100%라면 이 동심원 그래프는 360도가 40%로 설정되어 상대적으로 응답 비율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Figure. 4). 또 다른 직업군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청년 전체를 대상으로 한 데이터와 비교하는 그래프가 추가되어 사무원 집단의 특수성을 부각했다(Figure 5). <광부> 편에서는 답변을 의미하는 막대그래프의 모든 항목이 술병을 들고 있는 광부의 형태로 그려져 있어 언뜻 보기에 “모든 광부가 폭음한다.”처럼 읽힌다는 점에서 왜곡의 가능성이 크다(Figure 6).


figure 3 Korean youth (5) Teachers. Kyunghyang Shinmun. 1971.1.30.

Figure 4 Korean youth (8) White collar. Kyunghyang Shinmun. 1971.2.20.

Figure 5 Korean youth (8) White collar. Kyunghyang Shinmun. 1971.2.20.

Figure 6 Korean youth (7) Mining worker. Kyunghyang Shinmun. 1971.2.13.
2. 2. 효율적 정보 전달과 의제 설정: 아이소타이프의 정량화 기법

다음 사례들은 보도하고자 하는 내용의 요체를 정보 그래픽으로 간략하게 제시한다. 이를 위해 정량적 표현의 아이소타이프 형식이 다수 눈에 띈다. 간략화된 도표 안에서 모든 정보를 전달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 별도의 목록을 활용하여 구체적인 사항을 보충하기도 한다. 주로 한국의 정치, 사회 상황을 짚어 논하는 기사에서 많이 나타난다. 아직 여러 맥락을 복합적으로 구성하는 단계에 미치지 못하고 개별적인 의제가 빠르게 인식되도록 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연탄과 각종 연료의 단가비교>는 연탄, 프로판가스, 석유, 전력 네 가지 종류의 연료에 드는 비용을 1원짜리 동전을 쌓아 올린 그림으로 표현했다. 화폐의 형태를 입체적인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표현하여 가격의 차이를 쉽게 체감할 수 있도록 했다. 단, 각 연료 항목을 대표하는 아이콘은 평면적으로 조악하게 그려져 동전 일러스트레이션과 충돌하고 있다(Figure 7).


Figure 7 Will the fuel revolution come true?. Kyunghyang Shinmun. 1965.6.6.

원양어업 특집, 농림수산업 특집 등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구에 대응하여 실제 식량을 생산하는 산업에 대한 특집 기사가 많이 보이는데, 대부분 정보 그래픽을 포함하고 있었다. <주요국별 다랑어 생산량>에서 다랑어의 수량을 단일 아이콘의 크기 차이로 표현했으나 <어획고/양식고>는 아이소타이프의 정량적 표현을 사용하는 등 시각화의 원칙과 모듈이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Figure 8, Figure 9).


Figure 8 Challenges to deep-sea fishing. Kyunghyang Shinmun. 1965.6.7.

Figure 9 Economy of 1971 (2) Agriculture, forestry and fisheries. Kyunghyang Shinmun. 1966.7.27.

<양당 시대의 새 정계 지도>는 선거 결과에 관한 논평 기사에 함께 제시된 정보 그래픽이다. 여야의 당선 의석수를 아이소타이프 형식의 정량으로 표현해 차이를 직관적으로 비교하고, 간략화한 지도를 함께 사용하여 지방에서 여당을, 도시에서 야당을 지지하는 현상을 시각적으로 명확히 보여주었다. 각 지역을 실제 크기가 아니라 지역별 국회의원의 숫자와 비례한 크기로 분할하여 정치적인 영향력을 비교해 볼 수 있게 했다. 상단의 전국구 총합 아이콘과 지역구별 아이콘의 수량이 다르나 같은 형식으로 표현되어 있어 오독의 여지가 존재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선거 결과의 의미를 직관적으로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편집진 혹은 디자이너가 의도에 따라 섬세하게 시각화 방법을 조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례이다(Figure 10).


Figure 10 Analysis 6.8 General Election: Political Map of the Two Party Era. Kyunghyang Shinmun. 1967.6.10.

<한국 두뇌의 동태>는 고학력 한국인의 해외 이주를 “두뇌 유출”이라 명명하며 경고하고 있는 기사에 포함된 도표이다. 공학, 자연과학, 의학으로 나누어 정량적으로 표현된 도표를 보면 국가 중에서는 미국으로 이주한 사례가, 이공계 전체에서는 자연과학 계열의 연구자가 유출의 다수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이공계열의 인물과 기관의 목록을 발췌하듯 함께 제시하여 유출 인원의 구체적인 인적사항을 알 수 있게 했다(Figure 11).


Figure 11 Overseas Korean brain. Kyunghyang Shinmun. 1967.11.1.
2. 3. 냉전과 프로파간다: 복합적 시공간 내러티브 매핑

베트남전이나 동서 냉전 등의 세계정세를 전달하기 위한 정보 그래픽은 앞서 관찰한 사례와 달리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 디자이너가 정보 그래픽을 통해 이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사례이다. 역사적으로 긴 기간에 걸쳐 복잡하게 얽힌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한 화면 안에 요약 정리해 보여주기 위해 상대적으로 새로운 시도가 많이 등장한다. 상관 다이어그램과 시간 기반 다이어그램을 결합해 동시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때로 아이콘 등의 평면 그래픽과 사진 등의 이미지를 접목하기도 한다. 정보 그래픽을 지면에 적극적으로 사용한 초기 사례는 이전까지 대부분 경향신문에서 나타났으나 이처럼 심화한 형태의 정보 그래픽은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에 걸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도 다수 나타나고 있다.

1955년부터 1975년까지 지속된 베트남 전쟁은 내전이지만 한편으로는 전 세계 자유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을 대표하여 대립하는 전쟁이기도 했다. 결국 미국과 공산주의 진영이 점점 직접 부딪히는 상황으로 이어졌는데, 이 지도는 이 상황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 <눈으로 본 미국의 단계적 황전>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도표는 지도의 실제 위치 정보를 사용해 시간의 흐름에 따른 미군의 단계적 북진 상황을 요약하고, 베트남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수의 변화상과 증가 예상치를 요약하여 드러냈다(Figure 12).


Figure 12 Vietnam War in progress in stages by the United States. Kyunghyang Shinmun. 1966.7.2.

<미·중공 대결의 변형—월남전> 기사는 전쟁에 미국과 중국의 개입이 늘어날수록 아시아와 한국은 점점 불안정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우려를 표현한다. 특히 중국이 가지는 군사력에 대해 경고하는 도판이 눈에 띄는데, 지도 위에 구체적인 위치 정보를 묶어서 미사일 영향권에 대한 다이어그램을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무기 정보를 아이콘으로 제시한다. 수량에 대한 제시보다 종류와 지역의 다양함이 눈에 더 잘 띄게 표현되어 있어 중공의 여러 가지 형태의 군사력이 다양한 지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러 겹의 지정학적 층위, 정치적 맥락, 군사적 경합 등의 내용이 복합적으로 배치되어 있음에도 한눈에 대략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시각적인 처리가 뛰어나다(Figure 13).


Figure 13 A variant of the US-China confrontation-Vietnam War. Kyunghyang Shinmun. 1966.7.2.

<미소 가열된 핵전력 경쟁>에서는 미국과 소련 양국의 핵미사일 보유수를 도표로 보여준다. 미사일 아이콘 하나당 50발을 의미한다. 사정거리를 반영하여 대륙 간 탄도 미사일이 가장 크게, 중거리 탄도 미사일이 중간 크기로, 잠수함 발사 미사일이 가장 작게 그려져 있다. 미사일의 파괴력과 실질적인 크기를 반영한 아이콘을 사용해 양국 핵전력의 미묘한 차이를 직관적으로 드러내고 있다(Figure 14).


Figure 14 Nuclear power race between the US and the Soviet Union. Chosun Ilbo. 1967.11.16.
2. 4. 세계 속의 한국: 도드라지는 ‘변형자’의 역할

아이소타이프를 위시한 20세기 초 정보 디자인의 개발 과정을 통해 우리는 현대적 정보 디자인이 공공에 전파할 가치가 있는 내용을 집필자와 시각 디자이너가 함께 창안 과정을 거쳐 시각 형식으로 전환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Neurath & Kinross, 2009). 이 단계에서는 내용의 복잡도와 필요성에 따라 통계 다이어그램, 상관 다이어그램, 시간 기반 다이어그램, 일러스트레이션 다이어그램을 비롯한 대표적인 정보 시각화 형식이 복합적으로 등장하는데, 모든 요소가 편집진과 디자이너의 의도에 따라 주도면밀하게 설계된다. 때로 시각적 전달을 위해 내용에 대해 적정한 변형 및 재구성을 거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디자이너와 편집진의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마리 노이라트는 내용과 형식을 담당하는 주체들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고 새로운 형식을 제안하는 역할을 ‘변형자’로 명명했는데, 다음으로 살펴볼 사례들에서 이 ‘변형자’가 수행하는 역할이 잘 드러나고 있다.

5.16 군사 정변 이후 한국 정부는 예비역 장성들을 해외 대사로 대폭 기용하면서 군정 외교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해외 공관 실태>는 근래의 큰 인사이동이 그 이미지를 벗는 데 충분하지 못했다고 서술하는 기사에 삽입된 도표이다. 지도 형식이기 때문에 지도 위 아이콘의 크기가 해외 공관이나 외교관의 상황 혹은 중요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아이콘의 크기는 해외 교포의 수를 나타내는 것이고, 대사관과 주재원에 대한 정보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목적이나 내용과 완전히 상반된 정보를 표현하고 있는, 잘못 실행된 정보 그래픽의 용례이다. 디자이너의 선택에 따라 전달되는 내용의 맥락이 완전히 달라짐을 알 수 있다(Figure 15).


Figure 15 The actual situation of Korean diplomatic missions overseas. Kyunghyang Shinmun. 1964.10.8.

<세계의 키와 한국의 키>라는 제목으로 기획된 이 기사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통계를 통해 살펴보려고 한다. 전반적으로 도표 안에서 한국의 성장을 강조하기보다 세계정세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는 기사이다. 세계지도를 통해 지역 정보를 전달하면서 정치적 불안정성과 소득의 관계를 교집합 형태로 보여준다. 한국은 저소득국가지만 정치적으로는 안정적인 나라에 속한다. 승전국과 패전국의 경제 성장률을 비교하고 있는 그래프는 전 세계에서 미국이 경제적으로 탁월하게 앞서 나가고 있는 것과 패전국이 전후 시점에도 경제적으로 강세라는 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전쟁 이전의 성장률과 전후 성장률을 비슷한 형식과 분량으로 삽입했기 때문에 전쟁 이전에 급격히 성장한 패전국 쪽이 좀 더 눈에 띄는 그래프가 되었다(Figure 16).


Figure 16 World height and Korean height. Kyunghyang Shinmun. 1966.8.15.

공공에 전파할 가치가 있는 내용을 제작하고 종합적으로 도표와 함께 시각화하여 전달하는 방법 전반을 아이소타이프라고 일컫는다면 그것을 잘 적용한 가장 중요한 사례로는 1979년의 <세계의 맥박> 시리즈를 꼽을 수 있다(Figure 17, Figure 18, Figure 19, Figure 20). <세계의 맥박>은 동아일보에서 1979년에 진행한 특집 기사 시리즈로, 인구, 식량, 자원, 공해, 인권, 복지 등 여러 갈등 요소들을 전 세계적으로 취재하여 지도와 도표를 통해 설명하는 연재물이다. 총 47회에 걸쳐 연재되었는데 매번 해당 내용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지도, 그래프, 도표 등이 종합적으로 선택하여 디자인되었다.


Figure 17 World pulse (4) Population and food. Dong-A Ilbo. 1979.2.1.

Figure 18 World pulse (8) Arms race. Dong-A Ilbo. 1979.3.8.

Figure 19 World pulse (20) Elementary school education environment. Dong-A Ilbo. 1979.6.15.

Figure 20 World pulse (45) Catch of fish. Dong-A Ilbo. 1979.12.14.

예컨대 제4편 <인구와 식량>(Figure 17)에는 실제 면적 대신 인구수를 반영한 비례로 그려진 세계지도가 등장한다. 실제 대륙의 크기와 전혀 다른 비례로 왜곡되어 있으나 대략적인 위치로 국가를 파악할 수 있다. 곡물 생산량은 정량적으로 제시되어 지도의 면적(인구수)과 바로 비교가 가능하다. 또한 국가별로 회색도에 차이를 두어 영양 섭취 상황을 함께 파악할 수 있게 했다. 상대적으로 성격이 완연히 다른 여러 층위의 정보를 한 화면에 엮은 구성이 돋보인다. 중동 지역에 관한 특집에서는 컬러를 도표의 요소로 활용하는 실험을 하거나, 제8편 <군비경쟁>(Figure 18)부터 매회 디자이너1)의 이름을 지도, 도표, 도안 등의 용어와 함께 별도로 기재한 점도 특기할만한 사항이다. 총 군사비 지출의 절대량과 정부 예산과 대비한 상대량을 함께 보여주기 위해 막대그래프를 원통으로 변형하고 그 절단면에 그래프를 삽입했다. 그뿐만 아니라 포신을 연상하게 하는 그래프의 형상은 하단의 탱크, 항공모함 등의 일러스트레이션과 어울려 긴박한 인상을 함께 전달하고 있다. 제45편 <각국의 연간 어획량>(Figure 20)은 어획량을 물고기 모양의 회색 면의 크기로 표현했는데, 정량 표현을 통한 객관적 정보 전달보다 직관적인 이해를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즉 내용이 전달되는 최종적 효과에 따라 선택한 테마에 가깝다. 이 시리즈의 제작 과정에서 시각화를 담당한 디자이너와 내용을 담당하는 기자 사이에 어떤 논의 과정이 이루어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내용이 변형, 가공된 정도와 자율적인 시각적 형식 변주는 긴밀한 협업과 발상 과정이 필수적이었음을 시사한다.

3. 결론

현재 한국 디자인 산업의 규모나 활발한 국제적 활동 양상에 비해, 아직 1980년대 이전의 디자인 역사에 대한 서술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급격한 근대화 과정을 경험하며 현대주의 디자인이 처음 뿌리내리는 과정은 아직 다른 국가와 비교해 풍부하고 명료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 이후 현대주의 디자인이 정착되는 과정이 점진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1960년대를 시작으로 197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한국 신문에서 정보 그래픽이 활용된 양상과 그 역할에 대해 개괄적으로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1950년대의 신문 지면에 활용되는 정보 그래픽은 기사의 내용을 정리해서 보여주는 조직도, 단편적인 그래프나 표가 대부분이다. 계획적으로 디자인한 시각물을 동반한 기사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196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신문에서 구체적 정보를 통일성 있게 추상화하여 시각화한 도형 기호 형태의 정보 그래픽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초기에는 시각화 방법의 기준이 없어 평행투영법을 통해 그린 아이콘과 투시도법을 통해 그린 아이콘이 한 기사 안에 동시에 등장하거나, 한 도표 안에서 반복을 통해 수량을 정량적으로 나타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크기 비례를 통해 직관적으로 표시하는 경우도 보인다. 하지만 통계와 정보 그래픽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다양한 기획, 동일한 형식의 그래프를 일부러 다른 방법으로 시각화하는 실험, 정보 표현에 있어 크기와 수량에 대한 기준점을 계속 변경하는 시도, 시간과 공간의 내러티브를 한 화면에 구성하려는 시도 등 실험이 거듭되면서 1970년대 후반에는 완전히 현대적인 형태의 정보 그래픽이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신문의 정보 그래픽 생산 과정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디자이너, 혹은 시각화 담당자의 역할이 내용을 생산하거나 편집하는 저자의 영역까지 보다 포괄적으로 맡게 된다는 점이다. 이 경우 디자이너의 의도와 선택에 따라 복합적 맥락의 동시적 표현이 가능해지며 때로는 내용이 잘못 전달되거나 왜곡되기도 한다. 이는 20세기 전반에 이루어진 정보 디자인의 태생 과정과 유사하며 마찬가지로 이후 디자이너의 저자성이 강조되는 시기에도 시사점을 제공한다. 즉, 현대 그래픽 디자이너의 자율성과 저자성을 획득하기 위한 보편적 노력이 가시화되는 초기 지점의 하나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신문별로 살펴보면 1960년대 중반 경향신문에서 정보 그래픽을 활용하는 경향이 도드라졌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서는 그보다 조금 늦은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후발 주자들의 정보 그래픽이 더 적극적이고 심화된 방식으로 정보 전달에 기여했으며 동아일보의 경우 1970년대 말 들어 디자이너의 크레디트를 명기하기도 했다. 10여 년에 걸친 시간 동안 점진적이면서도 유의미한 발전상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후속 연구에서는 추가적인 자료 확보를 통해 이 발전상에 대한 디자이너의 역할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수집한 여러 가지 정보 그래픽 중 형식상 유의미하게 언급할만한 사례는 내용상 주로 국가 경제와 사회 발전상, 한국 바깥의 세계에 대한 관심, 냉전 상황의 프로파간다 등에 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합리화하고 국민에게 자긍심을 부여하기 원한 당시 정권과, 교육과 계몽을 통해 전문가적인 정체성을 확립하려던 일부 언론 구성원, 그리고 현대주의 디자인 교육을 받은 디자이너 세대의 등장이 시기적으로 맞물리고 있었다.

강현주, 김상규, 김영철, 박해천(Kang, Kim, S., Kim, Y., & Park, 2005)은 그들의 공동 저서에서 해당 시기의 디자인에 대해 “산업부흥의 역군”이자 “수출 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포장”이고 “선전 선동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960~1970년대 한국 신문 지면상의 정보 그래픽이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선전과 선동의 기능을 사용하여 근대화시기에 국민에 대한 교육과 계몽을 담당하는 것은 같은 시기 디자인계 전반에 맡겨졌던 역할과 비교했을 때 꽤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실제로 우리는 본 연구의 대상에 해당하는 시기 직후부터 1980년대에 걸쳐 한국의 국제적 정체성 구축에 나섰던 디자이너들의 활동을 목격할 수 있었다.

앞서 정보 그래픽 제작의 가장 현대적인 방법론 중 하나로 제시했던 아이소타이프는 노이라트 부부가 1920~30년대의 사회주의 정부하의 노동자 교육을 위해 개발한 것이다(Kim, 2018). 약 50년 후의 한국에서 아이소타이프와 정보 그래픽 방법론이 국가와 체제를 선전하는 역할로 등장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물론 같은 시기 중부 유럽과 미국, 일본 등의 선진국에서는 마찬가지로 아이소타이프를 계승한 픽토그램 등이 현대 기업과 국가 기관 등을 중심으로 기초 조형 언어로서 확립되고 있었으며 약 10~20여 년 후 한국도 유사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향후 연구에서는 이러한 국가 간, 문화권 사이의 시차에 대응하는 한국 디자이너들의 인식과 행위에 대한 분석 또한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Notes

1) <세계의 맥박> 시리즈의 거의 모든 도판을 도맡아 작업한 디자이너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후 출판사 등을 거쳐 동아일보에 입사, 30여 년간 편집위원으로 재직한 배중근이다. 신문사 퇴사 이후는 서양화가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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