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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acteristics of Kenneth Frampton’s Critical Regionalism shown in Jeju Island Museums
케네스 프램프톤의 비판적 지역주의 관점에서 본 제주도 뮤지엄의 공간해석과 표현방법
  • Eunju Shim : Department of Interior Architecture, Graduate School of Architecture, Konkuk University, Seoul, Korea
  • 심 은주 :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실내건축설계학과, 서울, 대한민국

Background The objective of this paper is to understand regional aspects of Jeju island from Kenneth Frampton's “critical regionalism” point of view. Moreover, this paper aims to define how theses aspects are incorporated in the modern museums of Jeju island balancing ethnic uniqueness and universalism in order to strengthen a sense of place.

Methods For the study, a literature review was conducted on Kenneth Frampton's critical regionalism and social, natural aspects of Jeju Island and their effects on both traditional and modern architecture. Then 6 museums built after 2000 that best reflect Frampton’s concepts: place-formed, tectonic, and tactile were analyzed.

Results First, the Dumoak and Chusa museums were defined as place-formed museums that provide cognitive sense of place but using different design methods. Second, Jeju Modern Art Museum using Jeju stonewalls and “Olle”, and Jeju Horse Museum using “Orum” were defined as tectonic oriented museums. Lastly, Water, Wind, Stone museum and Genius-Loci are considered as tactile museums that focus on multisensory space based on the feel, touch, and sound of Jeju Island.

Conclusions Through the study, Jeju basalt was found to still be the most popular signifier used to present sense of Jeju Island but other features such as Orum or even wind were used as interesting metaphors of nature. Historic figures and Olle seem to be significant social signifiers that serve as the foci of place formed museums and spatial organizations.

Abstract, Translated

연구배경 제주도는 그 동안 도시화 영향을 비교적 덜 받아 천혜의 자연 환경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지난 십여 년 동안 새롭게 불기 시작한 개발 열풍으로 다양한 변화를 겪고 있다. 관광 활성화라는 차원에서 고무적이기는 하지만 제주도의 지역적 특성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기도 전에 급격히 유입된 외국자본, 난개발로 인한 자연훼손, 장소성의 상실, 그리고 지역주민의 소외 등 작금의 제주도를 향한 우려의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이에 본 연구는 케네스 프램프톤(Kenneth Frampton)의 ‘비판적 지역주의를 향하여’에 기초하여 제주도의 지역성과 미술관의 공간특성 관계를 살펴보고 각기 서로 다른 성향을 지닌 건축가들이 제주도의 자연과 사회를 해석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분석하여 정리하고자 한다.

연구방법 우선 제주도의 자연환경과 역사에 대한 기초조사와 더불어 건축공간의 시대적 변화와 특성에 대한 문헌고찰을 진행하였다. 또한 분석의 이론적 틀이 되어줄 프램프톤의 비판적 지역주의와 그가 주장했었던 장소-형성(place-formed), 텍토닉성(tectonic), 그리고 촉각성(tactile)의 특성들을 살펴보았다. 이후 사례연구는 2000년도 이후 완공된 제주도의 뮤지엄 가운데 지역적 특성이 잘 반영되어 있는 공간들을 대상으로 각 특성별 두 곳씩 선정하여 기본 설계의도를 정리하고 각 특성이 어떠한 방식으로 해석되고 구현되었는지 그 방법들을 분석하였다.

연구결과 첫째, 장소형성의 뮤지엄으로는 두모악과 추사관을 들 수 있었다. 두모악은 버나큘러적 공간으로서 다양한 연상체들의 은유와 중첩을 통해 기존의 장소성을 강화시키고 있는 반면 추사관은 상징성이 강한 공간의 교차와 관입을 통해 장소성을 새롭게 구현해 내었다. 둘째, 텍토닉적 공간으로는 제주현대미술관과 조랑말박물관이 있다. 현대미술관은 제주의 강한 바람에 대응하기 위해 발전된 돌담, 올레 그리고 제주의 스케일 등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하고 있다. 반면, 조랑말 박물관은 오름을 단순화시킨 도상적 형태(iconic form), 순환적 동선과 시선의 구성을 통해 오름을 오르는 신체적 경험을 재현해냈다는데 의미가 있다. 셋째, 촉각적 공간으로 수풍석박물관과 지니어스 로사이를 들 수 있는데 두 뮤지엄 모두 제주도의 자연적 특성을 청각, 촉각 등 그 동안 시각에 비해 소외되었던 감각들을 통해 지각시키고 있다.

결론 이상과 같이 본고에서는 제주도의 뮤지엄에 나타난 프램프톤의 지역적 비판주의 특성을 살펴보았다. 이후에도 개발의 열풍 속에서도 지역성에 대한 깊은 고민을 놓지 않고 오늘의 시점에 적합한 창의적 해석들과 방법들이 더 많이 연구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Keywords:
Critical Regionalism, Jeju Island, Museum Design, Sense of Place, Tactile Space, 비판적 지역주의, 제주도 지역성, 뮤지엄, 장소성, 촉각적 공간.
pISSN: 1226-8046
eISSN: 2288-2987
Publisher: Korean Society of Design Science
Received: 06 Apr, 2017
Revised: 27 Apr, 2017
Accepted: 30 Apr, 2017
Printed: 31, May, 2017
Volume: 30 Issue: 2
Page: 169 ~ 181
DOI: https://doi.org/10.15187/adr.2017.05.30.2.169
Corresponding Author: Eunju Shim (eshim@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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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ation : Shim, E. (2017). Characteristics of Kenneth Frampton’s Critical Regionalism shown in Jeju Island Museums. Archives of Design Research, 30(2), 169-181.

This paper was written as part of Konkuk University’s research support program for its faculty on sabbatical leave in 2016.

Copyright :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educational and non-commercial use,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1. 연구 목적과 방법
1. 1. 배경과 목적

단절과 성장의 한국 사회 속에서 건축 또한 근대화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정체성 확립의 기회를 갖추지 못한 채 모더니즘의 세계적 흐름 속에서 빠르게 진행되어 왔다. 특히 서울에서부터 시작된 도시화는 빠른 시간 안에 전국의 도시들을 획일화시켰다. 포스트모던의 물결과 함께 지역성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마케팅에 성공한 해외 도시들을 벤치마킹하여 정부 주도로 지역 활성화 운동은 촉발되었으나 아직까지는 외국의 유명 건축가들에 의한 스펙타클(spectacle)한 도시경관 조성이나 공간의 건축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어서 지역성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한 시점이라 하겠다.

제주도는 그 동안 도시화 영향을 비교적 덜 받아 천혜의 자연 환경을 유지해 왔으나 지난 십여 년 동안 새롭게 불기 시작한 제주도 개발 열풍은 ‘광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강하게 일었다. 관광 활성화라는 차원에서 고무적이기는 하지만 제주도의 지역적 특성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기도 전에 급격히 유입된 외국자본, 난개발로 인한 자연훼손, 장소성의 상실, 그리고 지역주민의 소외 등 제주를 향한 우려의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이에 제주도 건축 가이드라인이 발표되고 제주를 근거로 둔 몇몇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지역적 특성에 관한 담론들이 논의되고 있으나 이제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의 접근과 폭 넓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본다.

포스트모던이 한창이었던 80년대 초 케네스 프램프톤(Kenneth Frampton)은 ‘비판적 지역주의를 향하여’라는 논문을 통해 현대미술의 맹점이었던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 sake)’과 같이 ‘수단’이 아닌 ‘존재이유’가 되어버린 국제적 문명 속의 도시화와 이로 인해 소외된 지역 문화를 대립하여 설명하며 건축의 장소-형태, 구축과 지역성의 관계, 촉각성 등의 관점으로의 전환을 주장하였다. 물론 30년도 더 지난 그의 비판적 지역주의에 대한 비판 또한 제기되기도 하지만 큰 맥락에서 그의 주장은 오늘까지도 유효한 논리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지역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우리의 경우에는 특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제주도의 지역성을 이해하고 각기 서로 다른 성향을 지닌 건축가들이 제주도의 자연과 사회를 해석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프램프톤의 이론에 근거해 정리하고자 한다. 이는 그 동안 해외 건축과 건축가에 집중되어 있던 시선을 국내로 돌려보고자 하는 의도와 함께 초가집이나 제주석의 사용 등 1차원적 차용을 벗어나 제주도라는 지역적 특수성을 국제적 건축문화의 보편성이라는 큰 틀에서 이해하기 위함이다.

1. 2. 범위 및 방법

본 연구의 방법은 크게 이론고찰과 사례연구로 구분된다. 우선 이론고찰을 통해 제주도의 자연환경과 역사에 대한 기초조사와 더불어 건축공간의 시대적 변화와 특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다. 또한 지역적 관점의 틀이 되어줄 프램프톤의 이론들과 끝없이 확장되는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와 무장소성의 대안으로 주장했었던 장소-형성(place-formed), 텍토닉성(tectonic), 그리고 촉각성(tactile)의 특성들을 살펴본다.

이후 사례연구는 2000년도 이후 완공된 제주도의 뮤지엄(museum) 가운데 지역적 특성이 반영되어 공간들로 한정하여 진행한다. 특히 세 가지 특성이 잘 표현되어 있는 대표 뮤지엄 두 곳씩 선정하여 기본 설계의도를 정리하고 지역적 특성이 어떠한 방식으로 구현되었는지 구체적 방법들을 도출한다. 물론 하나의 공간에 여러 가지 특성이 복합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에 유형으로 규정짓기 보다는 가장 큰 특성을 설명하고자 하였음을 밝히는 바이다.

2. 제주의 지역적 특성과 건축공간
2. 1. 자연환경적 특성

네 번의 화산 분출기를 지나면서 오늘의 모습으로 형성된 제주도는 8개의 유인도와 54개의 무인도로 이뤄져 있다. 몬순과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1월에도 평균기온이 영상 5도를 유지하면서 국내 최다우 지역이라는 특성 때문에 육지와는 사뭇 다른 다양한 식생과 수려한 경관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김태일 외 (Kim et al. 2007)에 의하면 투수성이 좋은 화산암 탓에 건천만 있어서 예로부터 물이 귀하고 일조량은 짧은 편이다.

특히 평균풍속은 육지의 세배 이상이고 동일한 풍속이라도 서울 등 다른 지역에 비해 2배 정도로 체감된다고 하니 사람들에게는 우호적인 환경이라 보기 어렵고 이러한 특성은 제주의 전통건축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곽혜영, 유재우, 겐지 오노미치(Kwak, Yoo and Kenji, 2007)에 의하면 전통 주거형태에서 길보다 낮게 위치한 집터, 구부러진 올래와 돌담이라는 환경 장치들이 있으며 2차적으로 둥근 지붕과 낮은 물매 좁은 처마 등의 건축적 장치가 바람에 대응한다. 마지막으로 풍채와 석벽이라는 공간적 장치가 더블스킨처럼 내외부공간의 완충 역할을 한다. 이처럼 제주의 전통적 건축공간의 기본은 불리한 자연환경 특히 바람에 대응하는 건축법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 2. 사회문화적 특성

‘사람이야말로 도시를 다른 장소들로부터 구분시키는 요인이다’라는 말처럼 지역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제주도 통계연보(Jeju, 2016)에 의하면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 수는 13,664천명이고 그 가운데 외국인의 수는 2,624천 명 정도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260천명이었던 총 관광객 수는 불과 30여년 만에 50배로 폭발적 증가를 보였으며 외국인관광객 수 또한 지난 20여 년 동안 10배 이상 증가하였다. 관광객뿐만 아니라 도민의 수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데 전국평균 0.56%에 비해 월등히 높은 2.79% 증가율을 보여 관광지는 물론 거주지로서 제주도의 인기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지금의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국내 대표적 관광지의 이미지를 갖기 이전 제주도는 수탈과 항쟁 등 어두운 역사를 지니고 있었던 지역이기도 하다. 고동우, 김석윤, 김태일(Ko, Kim & Kim, 2013)에 의하면 제주도는 한중일 지역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서 일찍이 왜구가 중국으로 가는 길에 물과 식량을 조달하는 거점으로 삼아 방화와 약탈이 심했었다. 내부적으로는 고려시대 이후부터 중앙에서 관리가 파견되면서 수탈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당시 귀했던 감귤이나 해산물 등의 진상품을 조달하기 위해 전국에서 유일하게 여자도 관역하는 곳이었다.

또한 제주도는 숙련된 사공이 아니면 접근이 어려울 정도로 가파른 암석해안으로 이뤄져 있어서 조선시대 대표 유배지이기도 했는데 조선건국을 반대했던 한천을 시작으로 고종의 사위 박영효 등 구한말까지도 그 역사는 이어져 왔다고 한다. 이렇듯 여러 이유로 제주도민의 삶은 녹록치 않았었고 이에 따라 수많은 민란이 일어나기도 했으나 항몽, 항일운동 등 나라가 위기를 맞이할 때 끝까지 항거하는 강인함의 상징이기도 한 곳이 바로 제주이다.

지금의 이미지와 달리 척박한 삶과 아픔의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제주도에서 삶을 이어나갔던 제주도민들에게는 권위적인 위계가 뚜렷하게 구분되었던 육지의 형식과 격식보다는 실용적인 삶의 모습들이 배어 있다. 이희봉, 송병언(Lee and Song, 1999)에 의하면 제주도는 전통적으로 서부와 동부로 구분되어 발전하였는데 바람이 강하지만 비옥한 토양으로 보리농사가 잘 되는 서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척박한 자연환경의 동부지역 주거형태는 남녀유별보다는 하나의 공동체로서의 실용성을 중시하는 공간양식을 보인다. 자식이 결혼하면 분가를 하거나 별도의 거리(채)에서 살았다. 그런데 최재권 이현호(Choi & Lee, 2000)에 의하면 함께 사는 자식은 장남이어야 한다는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그 형편대로 했으며 한 울타리 안이라고는 하지만 부엌과 창고를 따로 두는 독립적 생활을 했고 자식의 식구 수가 많아지면 규모가 큰 안거리를 사용하고 부모가 작은 바깥거리로 이동하여 생활하는 등 육지의 주거문화와는 사뭇 다른 형식을 보인다.

3. 제주도 현대건축의 흐름과 지역성

현재 제주도의 건축물들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나 지역적 특성을 담으면서도 건축의 보편성을 드러내는 공간들은 지극히 적으며 이는 자본과 행정에 의한 건축의 침식이라고 김상언 외 (Kim et al. 2014)는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 극히 적은 사례들 가운데에도 건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공간들이 존재하고 있으니 그 시발은 1970년 완공되었던 고 김중업의 제주대학 구 본관이라 할 수 있다. 김태일(Kim, 2015)에 의하면 제주대학 구 본관은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의 기능주의적 규칙과 방법을 적용하면서도 바다라는 주변 경관과 장소성을 강조한 조형적 이미지를 담고 있었다. 1970년대 서귀포시 중문 지역 관광지화 계획의 일환으로 제주도 현대건축의 국제화는 대형 숙박 시설 중심으로 진행되었는데 제주도의 지역성 보다는 한국의 조형 요소나 외국 휴양지의 모티브 차용이 디자인의 주를 이루고 있었다.

물론 그러한 가운데 제주도의 지역성에 대한 건축적 고민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으며 대표 사례로는 제주 현무암을 사용한 제주도 출신 건축가인 김석윤의 신제주 성당(1991)을 들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개관된 김인철의 씨에스 호텔(1991)은 예전에 존재했던 마을의 흔적 위에 제주 민가의 지붕형태를 조형적으로 재현해 놓음으로써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양상호와 박순관(2009)에 의하면 제주 민가에 대한 차용은 김기웅의 제주국립박물관(1992) 등을 통해서도 볼 수 있는데 작게 분절되고 수평성이 강조된 매스, 둥근 지붕형태와 제주석을 활용한 마감 등은 당시 제주도를 상징하는 아이콘과도 같이 사용되었다.

이렇게 재료와 형태의 직접적 차용 등 시각적 장치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던 90년대를 지나 제주도 지역성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가 2002년 개관된 고 유동룡(Itami Jun)의 포도호텔이다. 제주도 능선과 빛의 아름다움과 제주 민가의 공간구성 등을 그 만의 감성으로 잘 표현하여 관광객들은 물론 전문가들에게도 호평을 받았는데 은유적 방법에 의한 시적 공간으로 이전과 다른 지역성의 표현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2012년에는 다음사옥 스페이스닷원(Space.1)이 조민석 건축가에 의해 완공되었는데, 이 사옥은 마을개념을 도입하여 수평성이 강조된 건축공간과 다양한 스케일로 분절된 내부공간이 제주도의 지역성을 잘 반영했다고 건축계의 인정은 받았으나 IT 사옥으로서 중요한 공간 개방성과 유연성이 다소 부족하다는 사용자들의 비판도 있어서 사용자의 생활공간(lived space)과 건축적 추상공간 (abstract space)의 간극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준 사례이기도 하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제주도는 외국인 건축가들의 프로젝트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2009년 리조트 홍보관으로 개관되었던 리카르도 레고레타(Riccardo Legorreta)의 까사 델 아구아(Casa del Agua)는 작가 고유의 건축적 언어와 제주도의 빛과 물이 만나 국내에서 보기 드문 감각적 공간을 선보였다. 건축가의 유작이라는 점을 떠나서 제주도이기에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공간이었으나 결국 철거되어 사유자산으로서의 건축과 공공 문화로서의 건축 등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불러 일으켰는데 제주대학 구 본관 철거에 이어 국내 현대 건축사에 있어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2008년에는 안도 다다오(Ando Tadao)와 마리오 보타(Mario Botta)를 필두로 2012년에는 쿠마 겐코(Kuma Kengo),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 등의 리조트 공간들이 완공되었다. 이처럼 2000년대에 들어와서 제주도는 국내 건축가들은 물론 외국 건축가들의 참여가 두드러져 국제적 건축 장으로 부각되는 한편 관광객 유치를 위한 난개발 등의 문제도 대두되면서 지역적 특성에 대한 논의가 더욱 필요하게 되었다.

4. 비판적 지역주의와 제주도 뮤지엄
4. 1. 비판적 지역주의 형성을 위한 케네스 프램턴(Kenneth Franpton)의 세 가지 대안

주변과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솟아오른 고층건물들이 고속도로들로 끝없이 연결된 메갈로폴리탄적 개발로 인해 말살된 지역성을 비판하던 프램프톤은 1983년 문명과 문화의 변증법적 관계 속에서 도시맥락을 통제해야 하며 공간에서 장소로의 전환을 주장한 두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가 주장했던 비판적 지역주의는 폐쇄적이 아닌 융합적이고 유연한 지역주의 개념이었는데 이미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 1916-2006) 등과 같이 미국 도시화 방향에 대해 자성과 비판의 큰 울림들이 있었기에 건축계에 공감과 파급력이 컸다. 프램프톤(Frampton, 1983)은 문화와 문명, 아방가르드의 몰락 그리고 지역주의와 세계문화의 세 단락을 통해 비판적 지역주의의 개념을 설명하고 단순히 지역의 정체성을 잃은 세계화 현상뿐만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미디어 사회와 연결되어 무가치한 이미지들이 생산되는 비판적 문화의 부재를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장소형성, 텍토닉성, 촉각성의 세 가지 대안을 이외른 우촌(Jorn Utzon), 알바 알토(Alva Alto) 등의 프로젝트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비판적 지역주의라는 개념은 이미 알렉산더 초니스(Alexander Tzonis)에 의해 발표되었으며 공간과는 분리된 개념으로서의 장소는 이푸 투안(Yi-Fu Tuan)의 포스트모던 지리학으로 1970년대에 발의되었기에 아주 생소한 개념은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오늘날 개발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대규모 집합주거나 쇼핑몰과 같은 가짜 공공공간(psuedo-public realms)들에 대한 프램프톤의 비판은 이푸 투안의 제자인 에드워드 랠프(Edward Relph, 2005)의 무장소성의 이론과도 연결될 수 있다.

그러나 김승범과 김광현(Kim & Kim 2011)에 의하면 프램프톤은 하이데거(Heidegger)의 ‘라움(raum)’을 들어 장소성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다른 연구자들과 차별화된다고 주장한다. 즉, 장소는 라움과 같이 어떠한 존재의 시작을 의미하는 경계가 명확한 곳을 의미하며 존재와 거주의 개념들은 이처럼 영역의 경계가 명확한 곳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경계 개념은 폐쇄적 성질이 해체된 개방된 경계로서 거대도시화에 대항할 수 있는 개념이며 공공 영역으로 들어올 경우 아렌트(Hannah Arendt)의 ‘공공성(public realm)’과 같이 커뮤니티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종합하면 비판적 지역주의적 관점에서 제주도의 건축공간들은 제주도라는 명확한 경계에서 출발해야 비로소 존재와 거주의 개념들이 발생하는 진정한 장소로 거듭날 수 있으며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에 비판적 지역주의를 위한 세 가지 대안의 관점에서 제주도의 뮤지엄들을 살펴보고 장소형성의 뮤지엄, 텍토닉적 뮤지엄, 그리고 촉각적 뮤지엄으로 구분하여 각 특성에 대한 공간해석과 표현 방법들을 설명하고자 한다.

4. 2. 장소형성 뮤지엄(Place-formed Museum)

뮤지엄이란 일반적으로 고고학적, 역사적, 미술적 또는 학술적 자료들을 모아서 보관하고 전시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시의 대상체들을 기존의 공간에서 떼어내어 재배치하는 작업을 수반하기에 장소성과 대치되는 근본 속성이 존재하여 한 때 오히려 장소를 중요시하는 새로운 예술 운동의 시발점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뮤지엄의 개념이 단순히 전시물을 보여주는 공간이 아니라 관람자가 대상체의 의미를 온전히 경험하기 위한 장소로 거듭나고 있다. 때로는 뉴욕의 제로그라운드(Zero ground)처럼 장소 그 자체가 경험의 대상이 되고 관람자 각자의 개인적 경험으로 장소성의 의미가 다시 강화되는 그런 의미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는 에이드리언 포티(Forty, 2009)가 언급했던 것처럼 기념을 위한 건축공간을 통해 연상과 연계된 기억은 관람자 주체의 자유를 확립해 주며 단순한 유희가 아닌 정신적 만족, 더 나아가 미적 숭고함(sublime)의 경험까지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Figure 1 Secret Garden, Facade & Exhibition space of Domoak

제주도 뮤지엄 가운데 장소형성의 대표 사례들로는 두모악과 추사관을 들 수 있다. 두모악은 고 김영갑작가가 생애의 마지막 시간까지 손수 만들어 2005년 개관시킨 작업장이자 갤러리인데 2015년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된 제주도 11곳 가운데 유일한 건축공간이자 관광객들이 가장 만족해하는 공간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작지만 묵직한 시간성이 느껴지는 코르텐강의 정문을 통해 진입하면 작가가 직접 만든 ‘비밀의 정원’이 드러나는데 구불구불한 올레와도 같은 돌담들과 나무들 사이로 어프로치(approach)하는 과정은 관람자들에게 제주의 자연과 문화를 다시 환기시킨다.

이용구와 고동우(2013)에 의하면 5번의 공사 과정을 거치면서 폐교된 초등학교를 조금씩 천천히 변화시켜 온 두모악은 기존 건물의 입구 위치만 우측으로 옮기고 벽을 허무는 작업 이외에 큰 공간변화가 없었다. 따라서 이 버나큘러(vernacular)적 공간만으로도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며 감수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전시공간은 본격적으로 작가의 생애와 작업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림 23에 나타난 것처럼 작게 분절된 내부는 시각적으로 통제된 사적인 느낌의 공간이자 미로와 같이 신체가 점유하는 공간이다. 또한 전시된 사진 아래 놓인 제주석들은 공간의 영역을 구분시켜주는 역할을 하면서 제주라는 지역성의 경계를, 작가의 유골이 묻힌 정원과 전시는 작가 현전의 경계를, 초등학교의 이미지와 작은 스케일의 공간은 개인적 추억의 경계를 상징하며 그림 3과 같이 여러 켜로 중첩된 장소성의 지표로 작용한다.


Figure 2 Space program of Domoak

Figure 3 Layering of raum & Visual intimacy of Dumoak

경계가 뚜렷한 곳에서 장소성을 형성된다는 프램프톤의 말처럼 (Frampton, 1983) 두모악은 다양한 연상체들이 서로 연계되어 풍부해진 인지적 경험으로 감성이 자극되는 장소이자 ‘랜드마크(landmark)는 스케일이 아니라 장소의 인지’라고 강조했던 케빈 린치(Kevin Lynch, 1960)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작지만 뚜렷한 경계를 지닌 제주의 랜드마크라 하겠다.

장소형성의 두 번째 사례로는 2010년 완공된 승효상 건축가의 추사관이라 하겠다. 앞서 언급되었던 두모악이 제주도에 대한 사적인 경험의 인지적 장소성을 지니고 있다면 추사관은 이와 반대로 보다 역사적인 사실의 인지적 장소성을 보이고 있다. 유홍준(Yoo, 2012)에 의하면 세한도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추사관은 추사가 처음 위리 안치되었던 강순옥의 집터 위에 추사체를 완성시켰던 귤중옥이라는 당호의 송계순 집을 복원해 놓은 것이라 한다. 추사관은 크게 세 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첫 번째는 당시 추사가 그렸었던 신화적 공간(mythical space)을 재현해 놓은 새한도의 집이다. 두 번째는 기능적의 공간인 지하의 전시장인데 입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자연채광이 모든 공간에 유입되도록 설계되어 끊임없이 외부의 현실공간과 연결되어 있음을 주지시키고 있다. 추사가 그렸던 신화적 공간과 전시를 위해 건축가가 그린 기능적 공간은 십자가 형태로 관입되어 있으며 전시 동선을 따라 두 개의 공간은 계속 교차되면서 나타나며 준2층에 올라서야 비로소 두 개의 공간이 하나로 인식된다. 마지막으로는 지하의 전시공간을 지나 다시 지상의 후원으로 나오면 추사가 9년 간 유배생활의 대부분을 보냈던 거처가 재현되어 있다.


Figure 4 Saehando, Exterior & Interior space of Chusa Gallery

두모악이 다양한 은유들을 중첩시켜 장소성을 인지시켰다면 추사관은 이상적 공간인 관념의 축, 기능적 공간인의 실재의 축을 교차시키고 빛을 통한 시간의 축을 세로로 관입시켜 직접적인 재현과 상징의 수법으로 장소성을 인지시키고 있다.


Figure 5 Axis & Space program of Chusa Gallery
4. 3. 텍토닉 기반 미술관(Tectonic-oriented Museum)

에이드리언 포티(Forty, 2009)는 자연에 대한 미메시스(mimesis) 혹은 보완은 건축을 단순한 집짓기와 구분시키는 중요한 원리이자 기본 속성이라 하였고 생물학적 은유야말로 진정한 건축의 구조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프램프톤(Frampton, 1983)은 자연환경과 건축가가 보다 긴밀하고 실질적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현대 도시와 건축은 자연을 단순히 조형적 측면에서 차용할 뿐이라고 비판하면서 추상화되고 이미지화된 자연으로서의 건축 개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지형이나 주변 환경에 대한 적극적인 건축적 해석이 수반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에게 건축의 구조란 그 지역의 지형, 빛 등 건축 환경이 기초가 되어 미학적으로 드러나는 텍토닉의 개념이어야 하는 것이다.

지역성을 텍토닉적으로 구축한 대표 사례 가운데 하나가 현무암을 사용한 김석윤 건축가의 제주현대 미술관(JMCA)이다. 제주의 지역성을 전달하기 위해 흔히 사용되는 것이 제주 현무암이지만, ‘현무암을 직조한 옷’이라는 이재정(Lee, 2015)의 표현처럼 현대미술관의 경우 이미지만 아니라 그 속성을 켜쌓기 방식의 벽체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즉, 바람을 막아주는 동시에 미세한 구멍으로 통과시킴으로써 강한 바람에도 굳건하게 버틸 수 있는 제주 현무암과 돌담의 특성을 재해석하여 프램프톤이 주장했었던 것처럼 지역의 소재를 공간 구축요소로 활용하였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따라서 제주도의 돌담과 같이 공간의 분리와 연결을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제주의 벽들로 인해 매스 보다는 볼륨감이 강조되고 있는 곳이 제주현대미술관이다.


Figure 6 Tectonic approach of Jeju traditional walls

그 외에도 그림 7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3개의 독립된 전시장들은 또 다시 작은 공간들로 연결되어 하나의 작은 마을과 같이 군락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좁고 긴 램프를 통해 진입하는 동선은 올레를 상징하고 있으며 매개공간마다 외부의 조각공원으로 연결되어 관람자로 하여금 자유롭게 실내외공간을 산책하며 공간을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재료구축, 공간의 스케일과 구성 등의 방법으로 제주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Figure 7 Section of Wall, Space configuration & Program of JMCA

제주도의 자연환경을 공간으로 구축한 또 하나의 사례는 제공건축에서 설계한 조랑말 박물관이다. 리립(里立)박물관이기에 저예산으로 지어질 수밖에 없었으며 접근성도 떨어지는 등 불리한 조건들 속에서도 지역사회의 자발적 참여로 시작되었다는 점, 그리고 인공의 건축과 주변의 자연환경과의 관계가 다양하게 맺어져 있는 의미있는 공간이다. 주차장에서부터 얕은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가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원통형의 콘크리트 외형을 보면 오름을 기하학적으로 단순화하였음을, 진입하여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오름을 오르는 경험을 공간구조로 표현하였음을 알게 된다. 단순하고 정직하게 오름 형태를 담백하게 그 구조와 일치시킨 점이 이 작은 박물관의 첫 번째 텍토닉적 특징이라 하겠다.

세 개의 링(ring)으로 구성된 미술관의 첫 번째 공간은 전시를 담당하고 있는 메인공간인 외부 링(outer ring)이고 두 번째는 전시공간 안쪽의 마당에 면해 있어서 외부공간이면서 복도의 역할을 하는 내부 링(inner ring)이며 마지막은 안쪽의 마당 공간(courtyard)이라 하겠다.


Figure 8 Darangshi Orum and Plan of Jeju Horse Museum

외부에서 바로 진입하게 되는 안마당에 놓인 계단을 따라 2층의 내부 링으로 올라가면 전시장으로 진입하는 할 수도 있으나 그대로 내부 링을 따라 좌측으로 돌아가면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연결된다. 이 모든 동선이 외부로 열려있는 링형 구조의 공간에서 이뤄지기에 자연을 그대로 몸으로 느끼며 옥상가지 올라가게 된다. 마침내 옥상이자 외부 링 위에 올라가면, 정상부분이 움푹 들어가 있어서 그 주변을 산책할 수 있는 다랑쉬오름의 공간적 경험을 구축해 놓았다는 건축가의 이야기처럼 탁 트인 전망을 한 바퀴 돌아보며 주변의 오름들과 일체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경험이야 말로 이 박물관의 가장 큰 매력이자 두 번째 텍토닉적 해석이라 하겠다. 즉, 제주도의 대표적 자연지형이자 박물관의 주변환경을 구성하고 있는 오름을 공간의 구조와 신체적 경험을 통해 효율적으로 구축해 놓은 것이다.


Figure 9 Jeju Horse Museum
4. 4. 촉각성(Tactile Museum)

촉각이란 팔싸스마(Palssasmma, 2013) 말처럼 반드시 만진다는 직접적 의미보다는 운동감, 재질감, 빛, 색, 향 등을 다양한 감각기관을 통해 공간을 몸으로 인지하고 경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메를로 퐁티(Merleau Ponty)가 주장했던 ‘몸의 기억’이며 온몸의 감각을 통한 공간의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그 동안 '원경(scenography) 중심의 시대에 잃어버렸던 근접성(loss of nearness)의 회복'이라고 프램프톤(Frampton, 1983)은 설명한다. 비판적 지역주의 관점에서 제주도의 자연특성을 공감각적 경험으로 구현하고자 노력했었던 대표적 건축가 가운데 한 명이 포도호텔의 설계자인 유동룡이라 하겠다. 이희라와 유이화(Lee, Yoo 2014)에 의하면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 경계에서 살다가 이제 고인이 된 그는 글로벌(global)이라는 이유로 균질화되는 현대사회에서 '진정한 인터내셔널 오리지널리티(international originality)란 지역 고유문화에서 발현되는 상상에 기반해야 한다'는 디자인 철학을 지니고 있었다. 이는 프램프턴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며 특히, 유동룡 건축가는 인터넷이나 휴대폰이 만든 무경계의 사회에서 옅어지고 있는 신체적 감각을 경계하며 손을 통한 신체성을 고집하던 작가이기도 하다.


Figure 10 Water, Wind & Stone Museum

이러한 그 다운 수풍석박물관(Water, wind, stone museum)은 세 개의 작은 상자 안에 제주의 3다(多)인 바람, 돌 그리고 여자(해녀)를 촉각적 경험으로 구현해냈다. 우선 ‘수 박물관’은 가장 단단한 인공의 재료 가운데 하나이자 땅을 상징하는 사각의 콘크리트 박스 안에 가장 유연한 자연의 재료인 물을 담고 그 위로 제주 섬을 의미하는 타원형의 열린 천창을 뚫어 제주의 하늘을 강조하고 있다. 변화무쌍한 제주의 하늘이 물과 하나로 중첩되어 시간과 날씨에 따라 변하면서 시각과 촉각의 경계가 흐려지는 모호한 감각의 명상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목재 패널들로 이뤄진 좁고 긴 직사각형의 ‘바람 박물관’은 좁은 틈 사이로 바람이 들어오고 나가게 설계되어 있는데 특히 한쪽 벽면을 호처럼 휘어서 바람을 적극적으로 공간 내부로 유입시키고자 하였다. 강력한 감각기관인 시각에 묻혀있던 청각과 촉각을 통해 제주의 가장 큰 특성인 바람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김수일(Kim, 2013)에 의하면 ‘석 박물관’은 전시의 대상인 돌을 미술관 외부에 전시하여 외부에서 보면 코르텐 강의 프레임 속에서, 내부에서 보면 제주의 자연풍경의 프레임 속에서 대상체를 바라보게 되는 독특한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직사각형의 단단한 코르텐 강 공간 안에서는 어둠 속에서 오로지 한 줄기 제주의 빛만이 강조되고 있는데 이는 돌이라는 강하고 부동의 대상적 특성에 가장 부드럽고 동적인 빛의 특성을 대비시킴으로써 이희라와 유이화(Lee, Yoo 2014)이 언급했던 것처럼 유동룡건축가가 2000년대 이후 주목했던 관계항적 탐구를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제주의 자연에 대한 촉각적 경험은 휘닉스 아일랜드 안에 위치한 안도다다오 지니어스 로사이(Genius Loci)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안도 다다오는 젊은 시절 토로네 사원(Le Thoronet)에서 받았던 빛과 돌의 극한적 경험, 알함브라의 궁전(Alhambra)에서의 시각과 청각, 자연과 기하학의 대비를 통한 유토피아적 공간의 충격들을 도형과 배경의 (figure–ground) 게슈탈트(Gestalt)적 관계로 대비시켜 사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한 안도 다다오를 프램프톤(Frampton, 1983)은 ‘단순보편의 수법에 의존하지만 그곳에서만 만들 수밖에 없는 장소’를 만드는 비판적 지역주의 건축가 가운데 하나로 소개하고 있다.


Figure 11 Various scales of textures in Genius Loci

지니어스 로사이는 명상공간을 표방하고 있으나 2개의 전시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 내부공간은 물론 외부의 공간도 제주도의 다양한 이미지들을 담아내기 위해 설계되어 있어서 뮤지엄의 한 유형으로 분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촉각적 지역성은 실내공간으로 진입하기 위해 지나치는 어프로치 공간 장치들로 주로 나타난다. 우선 억새정원을 통과하면서 청각과 촉각을 통해 제주도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수벽 사이를 지나서 명상공간까지 길게 회유하는 동선은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게 설계되어 있는데 현무암으로 구축된 높은 벽은 부딪힐 것 같이 몸을 압박한다. 이는 에드워드 홀(Edward Hall, 1967) 이 언급했던 시각보다는 후각과 촉각으로 정보가 전달되는 ‘친밀한 지대(intimate zone)’로 소재를 끌어들임으로써 거친 현무암의 텍스처(texture)에 대한 촉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물과 노출콘크리트의 사용은 안도 다다오의 상징과 같이 다른 공간에서도 사용되고 있으나 여기에 다양한 결을 지닌 제주도의 자연소재들을 혼합하여 우리의 감각들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시키는 수법을 사용하였다.

5. 결론 및 제언

본 연구는 획일화되는 거대도시화에 유연하고 개방적인 지역주의를 통해 대항해야 함을 강조하였던 프램프톤의 비판적 지역주의를 이해하고 그가 주장했었던 3가지의 대안을 근거로 제주도의 뮤지엄들을 살펴보았으며 그 결론은 다음과 같다.

우선 프램프톤이 가장 중요시했었던 지역에 대한 명확한 경계를 지닌 장소형성의 뮤지엄으로는 두모악과 추사관을 들 수 있었다. 두 공간 모두 제주도의 사회적 특성에 기초하고 있는데 역사적, 문화적 인물들의 실존적 공간 위에 삶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덧입히는 인지적 방식을 취하고 있다. 두모악은 버나큘러적 공간으로서 다양한 연상체들의 은유적 중첩을 통해 기존의 장소성을 강화시키고 있는 반면 추사관은 상징성이 강한 공간의 교차와 관입을 통해 장소성을 새롭게 재현해 내었다.

다음으로 환경의 특성이 공간의 구축과 관계를 맺는 텍토닉적 뮤지엄으로는 제주현대미술관과 조랑말박물관이 있다. 현대미술관은 제주의 자연특성인 강한 바람에 대응하기 위해 발달된 돌담과 올레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매스의 분절, 연결을 통해 제주의 공간감을 경험하도록 설계되었다. 반면, 조랑말 박물관은 오름을 단순화시킨 도상적 형태(iconic form)와 더불어 더 나아가 순환적 동선과 시선의 구성을 통해 오름을 오르는 신체적 경험을 재현해냈다는데 의미가 있다.

마지막 촉각적 공간으로는 수풍석박물관과 지니어스 로사이를 들 수 있는데 그 동안 시각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감각들을 일깨우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제주도의 장소성을 공감각적으로 지각시키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이는 김영갑 갤러리나 추사관처럼 개인의 경험과 지식에 따라 달라지는 인지적 경험보다는 피부를 통해 느껴지는 가장 원초적이고도 감각적인 경험이다.

이상으로 제주도의 미술관에 나타난 지역성을 살펴보았는데 여섯 개의 사례만으로는 그 결과를 일반화시키는데 한계가 있으나 연구를 통해서 개발의 열풍 속에서 있는 제주도의 지역성과 건축적 해석에 대한 고민과 창의적 표현방법들에 대해 더욱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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