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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ity of Signboard Desig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일제강점기 간판디자인의 시각성
  • Joo Eun Oh : Design Studies, Graduate School of Techno Design, Kookmin University
  • 오 주은 :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디자인학, 서울, 대한민국

Background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visual characteristics of signboards related to the formation of modern commercial district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By doing so, it traces back the origin of commercial visuality found in signboards, which are one of the major visual media that form the cityscape of South Korea.

Methods As for the research method, this study considered magazine and newspaper articles published during the relevant period, and preceding researches related to commercial activity in the Gyeongseong district in the 1920s to 1930s to look into socio-cultural factors which served to the appearance of a sign of modern function. Also, based on literature research like this, this study analyzed the visual characteristics inherent in sign design of the Gyeongseong district during the period of Japanese Occupation(1920s to 1930s).

Results The research, results show that the commercial area expansion by the Japanese during the period of the Japanese Occupation caused modern signs to be placed in Korea. Also, modern signs were found to represent a visuality distinct from that of traditional commercial signs from the aspect of its constituting method & outdoor installation scale. Such a phenomenon was found to be the result of the spread of the visual constituting method imported from Japanese merchants, in addition to the emergence of a hybrid modeling occurring in this process when an imported material culture from the outside is tied to the existing indigenous culture.

Conclusions If we define a traditional sign board as "a letter-centered notice board placed below the roof", a modern sign can be defined as "an image-centered notice board" placed on the exterior wall of a store. A modern sign, which came to assume a stereoscopic shape as it was placed on an exterior wall of a building, had utility as a visual selling slogan on a street in at concentrated shopping area. At this point, the formative corporeality given off by a modern sign connoted extrinsic value as a symbol of civilization itself, and it functioned as a visual guide which directed and ushered in the modern times as a place for stimulating and meeting people’s curiosity about new products of civilization which they had never experienced before.

Abstract, Translated

연구배경 본 연구의 목적은 일제강점기 근대적 상권형성과 관련된 간판디자인의 시각적 특징을 고찰하는데 있다. 이는 현재 한국의 도시 경관을 형성하는 주요 시각매체인 간판디자인에 내재된 상업적 시각성의 기원(基源)을 역사적이고 사회문화적인 관점에서 추적한다는 의의를 갖는다.

연구방법 근대적 기능의 간판을 출현시킨 사회문화적 요인을 살펴보기 위해 해당 시기에 발행된 잡지와 신문기사, 1920,30년대 경성지역의 상업 활동과 관련된 선행연구들을 고찰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문헌 연구에 기반하여 일제강점기(1920-30년대) 경성지역의 간판디자인이 내재한 시각적 특징을 분석하였다.

연구결과 근대적 간판은 구성방식 및 옥외설치 규모면에서 전통의 상업용 현판과는 다른 시각성을 나타냈다. 이는 일본상인들로부터 유입된 간판의 시각적 구성방식이 이입된 결과로, 차용과 모방에 의한 시각적 변주를 거치면서 근대 간판의 상업적 시각성이 내재화된 결과였다.

결론 종래의 현판이 '지붕 아래에 위치한 문자중심의 알림판'이었다면 근대 간판은 '점포 외벽에 위치한 이미지 중심의 알림판'이었다. 건물 외벽에 위치함으로써 입체적 형상을 띄게 된 근대 간판은 상가밀집 지역을 가득 메운 거리의 시각적 판매 구호로서의 효용성을 내재한 것이자, 도심의 거대한 상업 지구를 구획하는 시각적 표식이었던 것이다. 즉 일제강점기 경성에 자리한 간판디자인의 시각성은 변화된 상업적 지형에서의 판매상술을 위한 도구로서 시각적 특징을 내재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신문물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충족시키는 곳'으로서의 근대를 지향한 것이었다.

Keywords:
Japanese Colonial Era, Modern Commerciality, Modern Sign, Commercial Visuality, Formal Internalization, 일제강점기, 근대적 상업성, 근대 간판, 상업적 시각성, 조형적 내재화.
pISSN: 1226-8046
eISSN: 2288-2987
Publisher: Korean Society of Design Science
Received: 23 Feb, 2017
Revised: 27 Mar, 2017
Accepted: 13 Apr, 2017
Printed: 31, May, 2017
Volume: 30 Issue: 2
Page: 183 ~ 195
DOI: https://doi.org/10.15187/adr.2017.05.30.2.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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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ation : Oh, J. (2017). Visuality of Signboard Desig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Archives of Design Research, 30(2), 183-195.

Copyright :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educational and non-commercial use,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1. 서론

이 연구의 목적은 일제강점기 근대적 상권형성과 관련된 간판디자인의 시각적 특징을 고찰하는데 있다. 이는 현재 한국의 도시경관을 형성하는 주요 시각매체인 간판디자인에 내재된 상업적 시각성의 기원(基源)을 추적하는 것으로, 현재와 맞닿아 있는 역사적 시각물을 조형적 범위에 국한된 분석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관점에서 고찰한다는 의의를 갖는다.

이와 같은 목적을 위해 본 논문은 1920,30년대 경성지역에 설치된 한글 상호 간판을 연구대상으로 하였다. 1920,30년대 경성지역이라는 범위설정은 경성이 한일합방 이후, 일본에 의해 근대 도시로 정비되는 과정에서 집중적인 식민정책과 자본주의가 뿌리내린 곳이라는데 기인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920,30년대는 경성 내 일본인들의 상권이 비약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상품판매 수단으로서 간판에 대한 인식과 논의가 언론매체를 통해 표면화된 시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편 연구대상인 '한글 상호 간판'은 한글로만 표기된 간판에 국한하지 않으며, 근대 간판의 구성 요소인 삽화 및 기하학적인 장식, 외래어로 표기된 상호가 동일한 공간 내에 조합된 한글 간판을 포괄한다. 이는 외부로부터 유입된 근대 간판의 시각적 특징이 내재화된 양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요 연구대상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연구방법은 특정한 문화양식이 지닌 의미를 다양한 텍스트에 근거하여 해석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근대적 기능의 간판을 확산시킨 사회문화적인 요인을 살펴보기 위해 해당 시기에 발행된 잡지와 신문기사, 1920-30년대 경성지역의 상업 활동과 관련된 선행연구들을 고찰하였으며, 이러한 문헌연구를 바탕으로 연구대상인 일제강점기 한글 상호 간판디자인이 내재한 상업적 시각성의 양상과 그 특징을 분석하였다.

2. 1920, 30년대 경성지역의 상권 양상
2. 1. 절대 소비지로 규정된 경성

1905년 러일전쟁에서의 승리를 계기로 조선에 대한 독점적 권력을 행사하던 일본은 1910년 한일합방을 기점으로 정치적, 경제적 침투를 더욱 가속화했다. 이 과정에서 식민자본의 막대한 투입으로 금융 및 철도 통신기관의 거점으로 자리한 경성은 대표적 개항장인 부산과 인천에 맞먹는 무역량을 흡수하며 거대 소비 도시로 변모했다. 1910년부터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던 경성의 전체 무역규모가 1920,30년대에 이르러서는 이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른 신장세를 보이면서 수입량이 수출량을 초과했다. 일본전보통신사 경성지국의 자료에 따르면 일본은 이 시기의 경성을 '절대 소비지'로 규정했고, 이는 일본인 상회사(商會社)와 상설 점포수의 두드러진 증가세로 나타났다.(김태웅,2000) 전통의 공립상가인 시전(市廛)과 영세한 개인이 운영하던 가가(假家)점포 대신, 근대식 상가 건물들이 새로운 모습의 상업지구를 형성했다.

일본상인들은 간판을 내건 상회사를 통해 각지의 산물을 집산하여 수출하고 외국의 다양한 물품들을 수입하여 전국의 소매상들에게 공급했다. 동시에 상설 점포를 통해서는 도매로 공급한 수출입 물품들을 직접 소매하기도 했다. 이는 일본에 의해 단행된 화폐개혁(1905)과 상표법(1908), 회사령(1911)등과 같은 정치경제적 제도 아래, 일본상인들을 중심으로 전통의 도소매업 유통체계가 재편된 것에 따른 결과였다. 결국 전국 최대 집산지이자 외부로부터 유입된 근대적 물품의 절대 소비지로 탈바꿈한 경성은, 일본상인들의 대형 잡화점 및 소매점이 기존의 유통시장을 장악한 가운데 그들로부터 공급받은 물품을 판매하는 조선인 점포와 전통의 재래시장인 장시(場市)가 혼재하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 식민지적 근대 상업도시로서의 전형적인 모습을 띄게 된 것이다.

2. 2. 남촌을 거점으로 한 소매업의 활성

근대 소비도시로 탈바꿈한 경성에서도 상업 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곳은 1880년대 이후 일본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기 시작한 남촌이었다.(전우용,2003) 남촌은 조선총독부가 추진한 도시정비사업에 따라 주요 공공재들이 집중적으로 배치되면서 경성 내 소매상업의 거점지역으로 자리하게 된다. 일본상인들은 경성의 대표적 상업 지구로 자리한 남촌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진고개 전체(현 충무로 일대), 서쪽으로는 남대문로 1~5가에서 남산, 회현, 소공동에 이르기까지 세력을 확대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1920년대에 이르면 더욱 심화되어 조선상인들의 오래된 상업지구인 북촌의 종로 일대까지 일본인 상점들이 침투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때, 이러한 경제적 침투의 가속화는 일본상인들이 내건 간판을 통해 가시화되고 체감되는 현상이었다. 조선인 상업지구에 지속적으로 출현하기 시작한 일본인 상회(商會) 간판은 그 자체로 일본상권의 확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당시 언론매체에는 이러한 상황을 엿볼 수 있는 기사가 자주 게재되었는데 다음은 1926년 7월호 <개벽지>에 실린 관련 내용이다.

진고개는 경성상업의 중심지이다. 구미 직수입이니 일본특약이니 무엇이니 하는 물품도 대개 진고개 일본상으로부터 넘겨 오는 것이다. (중략) 그런데 얼마 전까지 일본상인의 직접 세력만은 진고개, 남대문통을 벗어나지 못하더니 근년에는 어느덧 황금정을 쑥 넘어서 근일에는 종로통에도 일본상인의 새 간판을 보게 된다.『개벽』1926년 7월호

물론 조선의 대표적 상업지구였던 북촌 역시, 1896년 황도건설사업으로 도로가 정비되고 근대적 건축물이 들어서는 등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전우용,2000) 그렇지만 정치적, 경제적 수혜를 바탕으로 근대 문명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상업지구로의 변신을 거듭한 남촌의 막강한 자본력을 극복하기는 어려웠다. 따라서 당시 북촌의 미약한 경쟁력을 한탄하며 일본상권에 맞서기 위해 조선인들에게 북촌시장으로 향할 것을 선도하고(조형근,2006,p339) 판매증진을 위한 '친절한 상행위 및 상품 진열법,(동광 14호,1927)간판 제작 시 요구되는 사항'(별건곤 제2권 1호, 1927)등이 언론매체를 통해 논의되었다.

그러나 북촌지역의 상권 활성화를 위한 자구책에도 불구하고 남촌은 고층 건물의 스카이라인 아래 인공의 별천지를 형성하며 사람들을 끌어 들었다. 거대한 네온 간판을 설치한 대형 잡화점들이 출현하여 랜드마크를 형성했고, 문화시설 등을 갖춘 신식 건물과 각종 유흥주점 및 최신의 수입 잡화점들이 등장하여 화려한 소비 도시로서의 면모를 일신했다. 특히 의류나 모자, 구두와 같은 패션용품 및 만병통치를 선전하고 나선 각종 약품, 서구식 생활 가구와 가전제품, 술, 담배 등과 같은 기호품, 근대 기계 문명의 아이콘으로 등장한 자동차 등을 판매하는 최신식 상가들이 즐비한 거리는, 실제와 가상을 넘나들며 근대적 소비에 대한 욕망을 일상에서 체험할 수 있는 상징적 공간으로서의 이미지를 더욱 구체화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상업적 지형에서의 근대 간판은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기 위한 알림판이 아니라, 최신의 상품들이 발산하는 근대적 삶의 물질적 구체성을 매개하는 시각적 표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실질적인 구매력을 가진 소비자들과 구경꾼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시각적 길잡이로 감각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3. 근대적 간판의 출현과 수용 과정

이처럼, 1920,30년대 일제강점기 경성지역을 중심으로 한 상업 활동의 전개양상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일본인 상권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근대 간판이 출현했고 판매증진을 위한 효용성이 인식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장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는 1차 문헌자료들을 살펴봄으로써 일제강점기 근대 간판의 수용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전통의 상업용 현판을 대체한 1) 간판이라는 용어의 유입과 2)낯선 시각매체로 경험된 간판에 대한 인식, 3) 신문매체를 통한 '서구식' 간판에 대한 계몽활동 등을 살펴보는 것으로, 당대의 간판디자인이 표출한 시각적 특징을 분석할 수 있는 주요 맥락을 제공한다.

3. 1. 현판을 대체한 근대 간판

간판(看板)이라는 용어는 일제강점기 일본으로부터 유입된 상업 용어이다. 이는 조선총독부가 1925년 한국인의 상업에 대해 조사한『조선인의 상업, 조선인의 상업용어』편에서 '조선의 현판은 일본어 간판에 해당한다'는 조사결과를 통해 확인된다.(조선총독부,1939)여기서 '조선의 현판'은 상업용 편액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에 대한 기록은 세종11년『조선왕조실록』제46권에서 찾을 수 있다.(곽명희,2012,p26)

1429년 12월 3일 일본을 시찰하고 돌아온 통신사가 일본의 상점가와 비교하여 위생적인 상품 진열방식을 위한 '널빤지 층루 설치'를 건의하고 이와 함께 '무슨 물건을 둔 곳'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방편으로 '편액을 달아야 함을 고(告)'하는 내용이다. 이는 '글자나 그림을 새겨 문 위나 벽에 다는 널조각'이라는 현판(懸板)의 사전적 의미 그대로의 기능이 적용된 것으로 특정한 물건을 파는 장소를 알리기 위한 옥외 설치물로서 현판의 활용에 대한 인식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1898년 10월『제국신문』에는 성공적인 상업활동을 위해 '신문 광고와 함께 행인들이 보기 쉽게 현판을 걸 것'을 권유하고 있다.(박은숙,2012,p240-241)이는 개항 이후 대중적으로 고무되었던 '상업을 발전시켜 부국강병을 이룬다는 상무흥왕(商務興旺)의 이념'과 관련하여 기존의 상거래 풍습에 대한 개선방안이 제기되면서 언급된 기사 내용이었다.

이처럼 문헌에 기록된 내용이 반증하는 것은, 일본인들의 시각에서든 조선인들의 시각에서든 근대 간판은 기존의 현판과 동일시되었다는 것이다. 일본 상인들의 주도로 유입된 근대 간판은 기존의 조선내 상업용 현판과 시각적 특징에 있어서 차이점을 보였지만 옥외에 거는 상업적 시각물로서 '보는 판 혹은 보이는 판'(곽명희,2004)과 같은 공통된 기능을 내재한 시각적 대응물로 인식, 수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3. 2. 근대적 간판에 대한 인식

개항기 일본 상인들에 의해 대거 유입된 근대 간판은 조선상인들이 오래 전부터 사용해 온 점포용 현판과는 달랐다.(Figure 1) 일본상인들이 내건 간판의 대부분은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물품과 함께 수입된 서구식 간판과 일본식 간판이었다.(Figure 2,3) 서구식 간판은 상호명과 삽화, 장식적인 괘선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특징을 나타낸 것이었고, 일본식 간판은 일본 전통의 가케 간판(세로형)과 야네 간판(가로형)의 형식을 유지한 채, 주목되는 크기의 상호명과 판매 상품의 이미지 등이 나열된 것이었다.(곽명희, 2004)


Figure 1 Chinese character traditional signboar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Figure 2 Outdoor advertising signboard in Europe in the 1920s

Figure 3 Outdoor advertising signboard of a Japanese store in Chungmuro in the 1920s

조선상인들에게 바로 이러한 특징을 지닌 일본식 간판과 서구식 간판은 전통의 상업용 현판과 비교할 때 이질적이고 낯선 것이었다. 상호를 쓴 문자 크기와 간판의 구성요소 및 규모뿐만 아니라, 옥외에 거는 방식 등에서 전혀 다른 특징을 지닌 시각매체로 인식되었다. 1916년 2월 26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상호명의 글씨와 간판의 크기가 상점의 크기에 맞먹고 간판의 이름에 방(方), 전(傳)이 아니라 판매소(板賣所)라는 명칭이 씌여진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면서 종래의 현판과 비교하여 '옛날에는 그저 알아볼 만큼만 문 앞에다 써 붙였지, (중략) 이전에는 누가 이런 짓 하였나'(매일신보,1916)라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이는 근대 간판의 시각적 형식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낯선 이미지라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미술가 안석영은 1928년 9월 8일자 조선일보 만문 만화에서 '박람회 기간 동안 조선인의 상점에 간판 치장을 하게 한 모양인데, 난장이가 큰 갓을 쓴다고 해서 큰 키로 보이지 않듯이, 점체보다 큰 간판을 걸어 쇠푼이나 모이면 다행'이라는 풍자를 하고 있다.(조선일보,1929)(Figure 4)


Figure 4 <Signboard three to five times larger than the store> satirical cartoon by the artist Ahn Seokyeong published in Chosun Ilbo, September 8, 1929

그러나 이러한 시각에도 불구하고 근대 간판은 조선인 상가 밀집지역에 확산되었다. 종로거리에 베란다가 딸린 신식 건물을 세운 조선상인들은 종래의 현판식 간판 대신, 근대식 대형 간판을 설치했다. 물론 기존의 현판을 사용한 점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기와집이건 새로 지은 상설 점포든지 간에 거대한 간판을 이고 있는 모습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이는 일본상인들의 선진상술과 비교하여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시장의 분위기에 따른 것으로, 이러한 인식은 언론매체를 통해서도 표면화되었다. 효과적인 상술을 위한 도구로서 '서구식' 간판을 어떻게 디자인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된 것이다. 간판의 시각적 기능과 관련하여 점포 규모와 간판 크기와의 관계, 주변 경관과의 어울림, 1차적 알림의 기능에 더한 장식성에 이르기까지 이전과는 다른 보다 전문적인 수준의 논의가 전개되었다.

3. 3. 근대적 간판 형식의 계몽

1927년 1월 1일자 별건곤 제 2권에 실린 '경성상점 간판품평회' 제목의 기사는 대표적인 예로 총 10페이지에 걸쳐 품평회 내용을 대담 형식으로 싣고 있다.(Figure 5,6,7) 품평대상이 된 간판은 총 20여점이었으며 품평 위원들은 실제 종로거리를 걸으며 간판을 평가하였다. 이 때 근대 간판은 '서구식 간판'으로 명명되었고 주목성, 명시성, 친화성, 주변 환경과의 조화라는 맥락에서 논의되었다.


Figure 5 Article title of 'Kyungsung Store Signboard Fair' published in Byeolgeongon 2, January 1, 1927

Figure 6 Article on Jongno Street Signboard Fair

Figure 7 Article on Jongno Street Signboard Fair

1) 주목성은 원거리에서의 식별력을 강조하면서, 상점의 위치가 좋지 않을 때 주목성이 큰 간판의 활용을 제안하고 있다. 2) 명시성은 상호명을 표기하는데 있어서 '가독성이 높은 흥미있는 서체와 간결한 색채의 사용, 판매되는 물품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인지시켜 주는 도안이미지의 적용'등을 권장하고 있다. 3) 친화성은 '종로는 주로 조선인 '손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설시장이니 무조건적으로 '서구식 간판'만을 따라 할 것이 아니라' 고객층의 '구미'에 맞는 간판제작을 강조하고 있다. 더욱이 이 친화성과 관련해서는 서구적 이미지의 무분별한 모방으로 인한 정서적 이질감이 오히려 간판의 기능을 저해한다는 의견을 강하게 제기 하고 '조선풍 이미지를 표현함으로써 친절해 보이는 인상을 주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4) 주변 환경과의 조화라는 측면에서는 '건물에 비해 지나치게 큰 간판과 현판형식의 오래된 간판을 고집하는 것은 종로상가 전체 이미지를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에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별건곤 영인본 제2권, 1977, p114-123)

4. 근대적 간판의 시각성
4. 1. 시각적 판매 구호로서의 상업적 표식

지금까지의 고찰 내용을 볼 때, 일제강점기 경성에 자리한 근대 간판은 시각적인 측면과 사회적인 측면에서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함의한다. 시각적인 측면에서는 개항기 현판 형식의 간판과 비교할 때 단순히 특정한 물건을 파는 장소로서 '알림'에만 충실한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구매욕을 자극하기 위한 이미지들을 명료하게 구성하는 방식을 내포한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식민자본의 유입으로 기존의 관(官)이 주도하는 상업체제가 해체되고 유통구조가 자유시장체제로 변화됨에 따라 판매경쟁을 위한 상술(商術)로서 간판에 대한 효용성이 새롭게 인식되었음을 의미한다.

일제강점기 간판디자인이 표출한 시각성은 이러한 외재적 요인을 내포한 것으로 근대 간판의 상업적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하거나 모방하는 조형적 변주를 통해 근대 간판의 시각적 물질성을 내재화했다. 차용의 경우, 수입 물품과 함께 유입된 간판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으로 일부 이미지를 삭제시킨 자리에 한글 상호를 삽입하거나 외래어 상호를 한글로 표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Figure 8,9) 모방의 경우에는 근대 간판의 구성요소 및 조형방식 등이 적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Figure 10,11) 차용과 모방에 의한 조형적 변주가 일어남으로써 전체적으로 근대 간판의 상업적 이미지가 이입된 특징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Figure 8 'Seungripyo'the Korean brand included in the advertising signboard for SOCONY, US

Figure 9 'Jogyepyo Gas Oil' written in Korean in the advertising signboard for Shell Power Oil, UK

Figure 10 Signboard for a alcohol in the 1920s

Figure 11 Signboard for a tobacco in the 1920s

따라서 이 장에서는 이러한 양상에 근거하여 근대 간판의 특징을 형성한 주요 시각인자(因子)인 서체, 삽화, 색채, 레이아웃, 옥외구성 방식 등을 고찰하고 있다. 이는 이와 같은 시각인자들의 조합에 의해 표면화된 조형 적 특징에 국한된 분석이 아니라 종래의 현판식 간판과 비교할 때 조선인 소비자들을 타겟으로 재구성된 근대 간판의 조형적 특징과 이로 인해 발생된 새로운 상업적 시각 환경에 대한 고찰을 의미한다.

분석대상이 된 간판은 조선인과 일본인 상업지구를 기록한 근대 사진 자료집 및 전시도록에 인쇄된 간판 이미지로, 점포명을 한글로 표기한 간판을 주요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범위 설정은 한글 상호가 조선 인 상회 간판에 국한되지 않고 일본인 상회 간판에도 비중있게 표기되었다는 점에 근거한다. 즉 한글 상호 간판은 상품 판매 주체의 국적에 상관없이 일제강점기 경성이라는 특정한 시공간에 근대적 소비의 장(場)을 시각적으로 구축하고 새로운 소비주체로 상정된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동일한 연구대상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4. 2. 조형적 변주에 의해 내재화된 상업적 이미지
4. 2. 1. 레이아웃

간판디자인에 있어서 레이아웃의 기능은 전달하고자 하는 상호의 명시성과 주목성을 높이는데 있다. 이는 간판을 구성하는 시각요소들을 특정한 조형 방식으로 집약시키는 것과 관련된다. 일제강점기 한글 상호 간판 디자인의 레이아웃은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근대 간판의 구성방식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기존의 근대 간판에 내재된 상업적 시각성을 모방하기 위한 조형적 차원의 시도가 정형화된 결과로 볼 수 있으며, 근대 간판의 특징적인 레이아웃이 규범화된 조형 공식처럼 수용된 양상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

종래의 현판식 간판은 한글 또는 한자로만 표기되었지만(Figure 12) 근대 간판의 경우에는 상호 이외에도 삽화 및 장식적인 표현 요소들이 동일한 공간 내에 조합되는 특징으로 인해 근대식 간판의 구성방식을 나타낸다. 대표적인 예로 네모난 방형(方形)의 가로형 간판과 세로형 입간판의 경우 삽화나 심볼 이미지가 함께 구성될 때에 도안의 위치를 중심으로 상호를 상하, 좌우로 나누어 배치하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Figure 13 ,14,15,16)


Figure 12 Restaurant signboar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Figure 13 Signboard for Japanese Jintan

Figure 14 Korean signboard for 'Hwalpyo' in the 1920s

Figure 15 Signboard for a threshing machine manufactured by a factory in Hyogo, Japan

Figure 16 Korean signboard of a dental clinic, meaning 'Tooth implanting house'

이러한 레이아웃은 상호를 표기한 문자와 문자 사이에 상점의 심볼을 삽입함으로써 보는 즉시 식별되는 주목성을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전통의 현판식 간판과 대별되는 특성을 나타낸다. 문자이미지 중심의 현판식 간판이 '읽는' 간판으로서의 특징을 지닌 것이었다면 여러 시각 요소들이 조합된 근대식 간판은 '보는' 간판으로서의 이미지를 발산한 새로운 상업적 표식이었던 것이다.

또한 건물 외벽에 설치된 원형 입간판의 경우에는 네모난 방형의 다른 간판과 구별되는 레이아웃으로 주목성을 나타낸다. 대부분 상표를 중앙에 놓고 그 주위를 상호로 배치하는 형식을 보이는데 이러한 레이아웃은 중심에 위치한 도안이미지에 시선을 집중하게 함으로써, 간판 자체를 하나의 입체적인 심볼로 인식하게 하는 효과를 발생시키고 있다.(Figure 17,18) 더욱이 이러한 시각적 특징은 건물 측면에 면하여 수직으로 위치하는 입간판의 형식을 취함으로써 상가밀집 지역을 들어서는 행인들에게 즉각적으로 접촉되는 효과를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Figure 19)


Figure 17 Signboard for Shell Power Oil, UK

Figure 18 Korean signboard for 'Byeolpyo Haengbokpyo' Petroleum agency of Texaco, US, in the 1920s

Figure 19 Korean signboard for a Korean-run record shop installed outside the building
4. 2. 2. 서체

간판디자인을 구성하는 시각요소 중 상호를 표기한 서체는 '눈에 잘 띄어야'하는 조형적인 목적을 갖는다. 이는 판매되는 상품에 대한 신뢰도와 호감도를 생성시키기 위한 조형적 특징이 부여된 주목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한글 간판의 서체는 이러한 기능에 충실하기보다는 기존의 현판식 간판에 표기되어 온 서체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외래어 상호를 표기한 서체의 특징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통의 붓글씨체 상호가 근대 간판의 구조 속에 삽입되고 있으며(Figure 20) 기존의 손글씨체 느낌이 삭제된 도안된 이미지의 한글 상호가 근대식 간판의 레이아웃에 따라 구성되고 있다.(Figure 21)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이 과정에서 종래의 현판식 간판을 벗어난 한글 상호가 근대 간판의 형식과 섞이면서 시각적으로 두드러지거나 잠식되는 양상을 나타낸다는 점이다. 외부로부터 유입된 물질문화가 토착화될 때 발생하는 현상인 혼종적 시각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피터 버크, 2012)


Figure 20 'Seungripyo'the Korean brand included in the advertising signboard for SOCONY, US

Figure 21 'Morigana Powder Milk' written in Korean in the advertising signboard for a Japanese confectionery company

한글 상호가 시각적으로 두드러지는 현상은 오랫동안 보아온 익숙한 '낱말 - 이미지' (요스트 호올리 2016, p9)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이미 특정한 조형적 의도로 레이아웃된 근대 간판의 형식과 결합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이질적인 이미지에 근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Figure 20) 반면 한글 상호가 잠식되는 양상은 기존의 영어와 일본어 상호 서체에 적용된 획(劃)의 특징이 한글 상호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가운데 나타나고 있다. 일본어 상호와 결합된 경우, 일본어 상호 서체의 조형적 특징이 한글 상호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자형(字形)의 구성 및 표기가 왜곡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가독성과 관련된 명시성이 일본어 상호에 잠식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Figure 21) 영어 상호와 함께 구성된 경우에도 기존의 영어 상호를 표기한 서체의 특징이 한글 상호에 적용됨으로써 통일된 조형적 패턴을 가진 서체의 특징을 나타낸다.(Figure 22)


Figure 22 Korean signboard for 'Byeolpyo Haengbokpyo' Petroleum, agency of Texaco, US

이처럼, 기존의 붓글씨체를 벗어난 한글 상호는 읽는 글자로서의 이미지를 탈각하고 '도안된 문자'로서의 이미지가 강화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한글 상호가 강조된 간판의 경우 기하학적인 직선과 곡선, 장식적인 도형과 결합된 서체의 특징을 나타냄으로써(Figure 23,24) 이미지 문자로서의 기능을 극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이 시기 한글 상호 서체가 나타낸 주목성은 서체 자체에 부여된 의도된 조형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근대식 간판의 구성방식 내에서, 또는 외래어 상호 서체와 동일한 시각적 특징을 공유하는 가운데 발산된 것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Figure 23 Korean signboard for a jewelry store in the 1930s

Figure 24 Korean signboard for a pharmacist in the 1920s
4. 2. 3. 삽화

1896년 이후 가속화된 도시정비사업으로 근대식 상가들이 들어서면서 길거리 좌판에 널렸던 상품들과 처마에 달렸던 각양각색의 점포용 표식들은 근대식 간판으로 대체되었다. 특히 일본 상인들을 위시한 외국 상인들이 본국에서 들여온 간판을 조선의 실정에 맞게 재구성한 형식은 문자 중심의 현판식 간판에서 삽화가 결합된 이미지 중심의 근대식 간판으로의 이동을 추동했다고 볼 수 있다. 앞 장에서 살펴본 '경성상점 간판품평회'기사에서도 드러나듯이 근대 간판의 삽화는 소비자들에게 상품에 대한 정보를 '친절하게 전달'하는 유용한 시각이미지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친절한' 삽화에 대한 인식은 상품 관련 정보를 수용하는데 있어서 이전과는 다른 감각을 내포한 것이었다. 이는 간판이라는 근대적 시각 형식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인 삽화의 기능에 주목한 것으로 촉각적 인지 대상이었던 상가 앞 거리의 상품들이 시각에 국한하여 감각되는, 평면적 이미지 정보의 형태로 제공되었다는 것에 기인한다.

예를 들어 정육점 좌판의 소머리는 소이미지 삽화로, 장날 좌판을 메운 짚신은 신발이미지로 감각되는 새로운 상업적 시각환경이 제공된 것이다.(Figure 25,26,27,28) 언제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설 점포의 경우에도, 특정한 날에만 대규모의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장날에도, 좌판에 놓인 상품은 그 자체가 곧 문자 중심의 현판과 동일한 기능을 가진 상점을 알리는 표식이었다. 그러나 근대적 상가 건물과 결합된 간판이 출현한 이후 종래의 길거리 상품이 발산한 이러한 기능은 판매 물품의 특징적인 면모를 압축적으로 묘사한 다양한 형태의 시각이미지로 대체되었다.


Figure 25 Cow's head placed on a display stand of a butcher shop during the modernization era

Figure 26 Illustration of a cow image in a butcher shop signboard in the 1920s

Figure 27 Display stand of a straw sandal store during the modernization era

Figure 28 Advertising signboard for the construction site work shoes 'Asahi Jigadabi’

근대 간판의 삽화는 이러한 측면에서 간판의 근대적 시각성을 각인시키는 시각요소였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한글 이외에도 다양한 언어의 상호가 함께 구성되는 상황에서 삽화에 내재된 이러한 특성은, 특정한 언어에 대한 이해 없이도 판매상품을 즉각적으로 인지하게 한다는 점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간판의 근대적 효용성을 높이는 시각적 장치로 기능한 것이었다.

4. 2. 4. 색채

근대 간판의 색채는 간판재질의 특성과 관련하여 살펴볼 수 있다. 기존의 현판은 뿜무질을 하거나 철제 압인으로 상호명을 새긴 나무재질이 대부분이었지만.(Figure 29) 1910년 이후에는 함석과 같은 얇은 철판으로 제작된 간판이 주종을 이루기 시작했다.(Figure 30,31,32) 이러한 함석 간판의 증가는 일본의 함석 제조업이 1906년을 기점으로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일본 내 함석재질 간판제작이 성황을 이룬 것과 관계한다.(윤상길,2010,p148)


Figure 29 Advertising signboard for a Solpyo petroleum made by pressing with a heated iron stamp. Wood

Figure 30 Advertising signboard for Japanese Jindan. Porcelain enamel. Yellow, red, and blue

Figure 31 'Morigana Powder Milk' written in Korean in the advertising signboard. Yellow and blue

Figure 32 Advertising signboard for a tobacco in the 1920s. Porcelain enamel. Red and white

함석 간판은 색이 있는 유약을 철판에 발라 구워낸 것으로 법랑 간판으로도 불렸는데 비용은 많이 들지만 화려한 색감을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는 장점으로 인해 상인들이 선호했던 간판이었다.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한 석유, 술, 담배, 인단(仁丹)등은 대부분 함석재질의 법랑 간판으로 제작되었다. 특히 인단 간판의 경우 거대한 광고탑에서 다양한 형식의 입간판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제작되었는데 이 때 적용된 빨강, 파랑, 노랑의 배색은 서구 대례복을 입은 남성의 이미지를 독특하게 형상화하여 높은 주목도를 나타냈다.(Figure 30)(권보드래,2009)

이처럼 법랑 간판에 주로 적용된 색상은 빨강, 노랑, 초록, 파랑, 검정, 흰색 등으로 이러한 색들은 명도대비와 보색대비를 이루며 간판이미지 전체의 주목성과 명시성을 생성하는 조형요소로 작용했다. 더욱이 이러한 색채의 적용은 근대적 신소재인 함석에 표현된 간판 구성요소들을 돋보이게 함으로써 전통의 목조 간판과 대조를 이루며 신문명을 상징하는 간판의 근대적 물질성을 발산했다고 볼 수 있다.

4. 2. 5. 옥외 구성방식

개항기 일본인 집단 거류지에 등장하기 시작한 근대식 간판은 건물 외벽에 설치되는 특성을 나타냈다. 이는 상업용 현판은 '처마 밑에 거는 것'이라는 관습에 익숙해져 있었던 조선인 상가 밀집지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과도기적인 현상으로 초가집 처마 밑에 입간판이 설치되었고.(Figure 33) '알아 볼 만큼만 써서 문 앞에다 붙이는 방식'에서 '눈에 띄는 크기로 건물 외벽에 거는 방식'이 확산되었다. 기존의 현판이 지붕 아래에 위치했던 것과는 달리, 근대식 간판은 처마를 벗어나 지붕 위와 건물 외벽에 눈에 띄는 규모로 설치된 것이었다.(Figure 34,35)


Figure 33 Eaves and Korean signboard found in <Korea>, a travel log written by Angus Hamilton, England

Figure 34 34 Large signboard for a rubber shoe store photographed in Namdaemun Street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Figure 35 Korean signboard for a Korean record stor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이처럼 일제강점기 동안 옥외에 설치된 간판은 대부분 상점 건물에 비례하여 크게 제작되었는데 이는 일본인 상업지구와 조선인 상가 밀집지역 모두에서 두드러진 현상이었다. 옥외에 거는 상업용 시각물로 인식된 간판은 건물과의 조화보다는 동종업계의 다른 간판에 비해, 혹은 수많은 간판이 걸린 상가밀집 거리에서 눈에 띄는 주목성을 위해 '더 크게 더 화려하게'를 지향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더욱 돋보이기 위한 경쟁은 '두드러져 보이는 상업적 주목성'이라는 개별적 시각성을 목표로 한 것이었지만, 오히려 그 결과는 유사한 형식의 집단적 시각성을 뚜렷이 각인시키는 양상을 표출한 것이었다. '이 곳'이 혹은 ‘저 곳'이 상업지구임을 구획하고 나타내는 상징적 표식으로 자리한 것이었다. 옥외에 설치됨으로써 점포 외관과 결합된 근대식 간판은 그 자체로 소리없는 거리의 시각적 판매 구호로 작용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이러한 옥외 광고물로서의 특성은 양적이고 질적인 측면에서 도시경관을 형성하는 시각적 공공재로서의 물질성을 싹 틔게 하는 단초를 제공한 것이기도 했다.

5. 결론

1920, 30년대 일본인들에 의한 상권 확장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의미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일본인 상점 간판을 통해 체험되는 일상의 현실이었다. 그 속에서 유통구조의 기반을 상실한 채 상업활동을 이어 온 조선 상인들이 취할 수 있었던 판매전략 중 하나는 일본인 상업지구를 빼곡히 장식하고 구매를 유혹하는 근대적인 모양새를 가진 간판을 거는 일이었다. 일제강점기 간판디자인이 표출한 시각성은 이러한 외재적 요인을 내포한 것으로 근대 간판이 발산한 상업적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하거나 모방하는 조형적 변주를 통해 근대 간판의 시각적 물질성을 내재화했다.

수입물품의 본국으로부터 들여온 간판에 종래의 붓글씨체 점포명이 그대로 삽입되거나, 기존의 외래어 상호 표기에 적용된 서체의 특징이 적용된 한글 글자체 상호명이 기존 간판의 레이아웃에 따라 배치되었다. 근대 간판에 표현된 삽화는 종래의 문자중심의 간판보다 시각적 주목도를 높일 수 있는 구성 요소로 인식되어 점포명과 관련된 상품의 특징을 간략하게 도안한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또한 법랑재질의 선명하고 화려한 색채의 함석 간판이 출현하여 나무재질의 현판식 간판과 대조를 이루었다. 옥외 설치 방식에서는 이전의 현판식 간판이 지붕 아래에 위치했던 것과는 달리 거대한 규모로 지붕 위, 건물 외벽 등에 설치됨으로써 점포와 결합된 입체적인 형상의 시각적 특징을 띄게 되었다.

이처럼, 종래의 현판이 '지붕 아래에 위치한 문자중심의 알림판'이었다면 근대 간판은 '점포 외벽에 위치한 이미지 중심의 알림판'이었다. 건물 외벽에 위치함으로써 입체적 형상을 띄게 된 근대 간판은 상가밀집 지역을 가득 메운 거리의 시각적 판매 구호로서의 효용성을 내재한 것이자, 도심의 거대한 상업지구를 구획하는 시각적 표식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일제강점기 경성에 자리한 간판디자인의 시각성은 변화된 상업적 지형에서의 판매상술을 위한 도구로서 시각적 특징을 내재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신문물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충족시키는 곳‘으로서의 근대를 지향한 것이었다.

본 연구의 이러한 결과는 한국의 근대 시각디자인에 관한 최근까지의 연구 경향에 비추어 볼 때,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연구가 신문, 잡지, 엽서, 상표 등 다양한 인쇄매체에 대한 자료 축적 및 해석을 통해 한국적 근대 시각디자인의 지형을 그리는데 집중하고 있다면, 본 연구는 전통의 상업적 시각문화와는 대별되는 근대적 상업성을 유포한 간판디자인을 통해 한국의 근대디자인을 규명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층을 제시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연구의 단초를 제공하는데 한정된 것으로, 고찰의 중심에 있었던 근대적 상업성이 보다 더 의미있는 디자인의 외적 요인으로 자리하기 위해서는 당대의 일상적 소비문화 및 한국적 근대를 성찰하는 다양한 담론과의 관계 속에서 서술의 밀도를 더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본 연구에서는 도시라는 근대적 공간에 뿌리내린 소비문화의 상징적 디자인 지표로 일제강점기 간판디자인을 주목하였지만, 동시대에 일상을 점령한 여타의 광고물 역시 근대적 상업성에 기인한 시각성을 표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구범위의 확장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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