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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화의 디자인 저술에 나타난 서구 디자인사의 영향
The Influence of the History of Western Design on the Literary Works of Siwha Chung
  • Hyeon Joo Kang : Department of Design Convergence, Inha University, Incheon, Korea
  • 강 현주 : 인하대학교 디자인융합학과, 인천, 대한민국

연구배경 독일 바우하우스(1919~1934)가 100주년을 맞으면서 한국에서도 관련 책이 출간되고 전시회와 심포지엄이 개최되며 재조명되었다. 1966년에 국내 디자이너로는 처음으로 디자인 담론 차원에서 바우하우스를 고찰한 글을 발표했던 정시화가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한국 사회의 디자인 현실 때문이었다. 이후 정시화는 40여 년간 디자인 교육자로서 계몽적인 관점을 견지하며 서구 모던 디자인의 여러 흐름들을 탐구하는 글을 써왔다. 본 연구에서는 정시화의 디자인 저술을 고찰함으로써 그가 주목한 서구 디자인사의 흐름은 무엇이고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살펴보았다.

연구방법 본 연구는 문헌연구와 인터뷰 방법으로 진행하였다. 먼저 1966년부터 2007년까지 정시화가 발표한 디자인 역사 및 이론에 관한 개별 원고 99편을 연구 대상으로 하여 시기별 편수, 게재지 유형, 주제 성격 등을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정시화의 디자인 저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서구 디자인사의 흐름을 고찰하였다. 또한 정시화와 대면 인터뷰를 진행하여 디자인 저술 당시 상황과 디자인 인식도 함께 파악하였다.

연구결과 정시화의 디자인 저술 활동을 살펴 본 결과 그가 가장 왕성하게 집필했던 시기는 대학에서 처음 강의를 시작했던 1960년대 후반과 덴마크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국민대학교 교수로 부임했던 1970년대 중반이었다. 이 시기에 정시화는 주로 디자인, 건축, 미술 분야의 전문잡지에 글을 발표했다. 1980년대부터는 국민대학교에서 발간하는 『조형논총』에 정기적으로 논문을 게재하였다. 정시화는 그래픽 디자인뿐만이 아니라 공업 디자인과 공예 분야에 관해서도 글을 썼고 디자인 역사와 디자인 교육, 그리고 디자인 정책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한국 디자인과 서구 디자인에 관한 여러 주제들을 다루었다. 정시화가 지속적으로 연구한 서구 디자인사 주제로는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교육, 허버트 리이드의 디자인 사상, 덴마크의 덴-페르마넨테를 꼽을 수 있다.

결론 정시화가 서구 디자인사의 흐름을 주목한 것은 한국 디자인이 응용미술 차원에서 벗어나 독자성과 자율성을 갖춘 현대 디자인으로 발전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저술은 개인적인 성과인 동시에 초창기 디자이너 세대가 서구 디자인사라는 거울을 통해 당대 한국 디자인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 한국 디자인사 서술을 보다 풍부하게 하는 역사적인 기록으로서 가치가 있다.

Abstract, Translated

Background The 100th anniversary of Bauhaus (1919-1934) in Germany has provided opportunities for books, exhibitions, and symposiums pertaining to the institution. Siwha Chung (born in 1942), who was the first designer in South Korea (hereafter, Korea) to publish literary works in relation to Bauhaus in 1966, started to study the institution's design education in light of the poor quality of design education in Korea in the 1960s. As an educator of design for forty years, Chung studied not only Bauhaus but the themes in the history of Western design. This paper studies Chung's literary works relating to design to learn about the focus of his study of the history of Western design and how it influenced his work.

Methods This research was carried out by reviewing literature and conducting interviews. First, this paper analyzes Chung's 99 articles relating to the design history and theory that were published from 1966 to 2007. The articles have been studied in terms of his periodic works relating to design, types of publications, themes, and characteristics. Such analysis sheds light on the themes in the history of Western design that influenced Chung's literary works. The interviews with Chung also help cast light on the realities of South Korean (hereafter, Korean) design during the time his literary works were published, and his views of that time.

Results This paper shows that most of Chung's literary works on design were completed between the late 1960s, when he first started teaching at universities, and the mid-1970s, when he returned to Korea and worked as a professor at Kookmin University after completing his studies in Denmark. During this time, most of Chung's articles were published in specialized magazines in such fields as design, architecture, and art. Since the 1980s, the dissertations of Chung were published in Kookmin University's Design Review on a regular basis. Chung's papers covered not only graphic design, industrial design and crafts but also addressed Korean design and Western design with a focus on design history, design education, and design policy. Bauhaus's design education, Herbert Read's design theory, and Den Permanente in Denmark are a few examples of Chung's fields of interest in the themes in the history of Western design.

Conclusions Chung believed that by studying the history of Western design, he could contribute to the development of Korean design. He looked forward to seeing Korean design develop from applied arts to independent modern design with a unique identity. His literary works should not only be regarded as an individual achievement, but as a source of valuable insight into the history of Korean design as it provides historical evidence for how the early Korean designers viewed the issues of Korean design in light of the development of Western design.

Keywords:
Siwha Chung, Design History, Bauhaus, Herbert Read, Den Permanente, 정시화, 디자인사, 바우하우스, 허버트 리이드, 덴-페르마넨테.
pISSN: 1226-8046
eISSN: 2288-2987
Publisher: 한국디자인학회Publisher: Korean Society of Design Science
Received: 02 Aug, 2019
Revised: 19 Aug, 2019
Accepted: 19 Aug, 2019
Printed: 31, Aug, 2019
Volume: 32 Issue: 3
Page: 167 ~ 179
DOI: https://doi.org/10.15187/adr.2019.08.32.3.167
Corresponding Author: Hyeon Joo Kang (joos@in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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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ding Information ▼
Citation: Kang, H. J. (2019). The Influence of the History of Western Design on the Literary Works of Siwha Chung. Archives of Design Research, 32(3), 167-179.

Copyright :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educational and non-commercial use,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1. 서론
1. 1. 연구 배경 및 목적

2019년은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이다. 디자인 분야에서는 20세기 현대 디자인의 이념 및 조형 양식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실험적 디자인 교육기관인 바우하우스가 개교 10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독일에서는 2016년에 설립된 바우하우스 어소시에이션 2019 (The Bauhaus Association 2019)이 정부 부처와 관련 박물관의 후원을 받으며 각종 전시회 및 심포지엄 개최, 책 출판, 교육 프로젝트 진행 등을 하고 있다. 독일뿐 아니라 미국, 일본, 네덜란드 등에서도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그동안 주목 받지 못했던 여성 디자이너들의 바우하우스 활동 관련 책, 사진, 포스터 등을 모아 소개하는 <BAUHAUS 100: invisible> 전시회가 열렸고, 국내 연구자 18명이 참여하여 만든 『바우하우스』 앤솔로지가 출간되었으며 <바우하우스를 넘어서> 강연회가 개최되었다. 2019서울국제핸드메이드페어에서는 <모던 디자인의 산실, 바우하우스의 공방>이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이 개최되어 바우하우스 디자인 교육의 실험과 성과를 재조명하고 우리의 디자인 교육 현실과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도 마련되었다.

1919년부터 1933년까지 바이마르, 뎃사우, 베를린 등 독일의 세 도시로 옮겨 다니며 14년간 존속하다 나치의 집권으로 폐교한 바우하우스가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은 무엇보다 이 학교 출신 교수와 학생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교육 프로그램과 이념을 이어나갔고 그것이 다시 유럽과 아시아로 전파되며 널리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바우하우스의 3대 교장이었던 미스 반 데어 로에는 “바우하우스는 하나의 이념이며, 그것이 하나의 이념이었다는 사실이, 바우하우스가 지구상의 모든 진보적인 학교에 끼친 지대한 영향의 원인이었으며 조직이나 선전이 아니라 이념만이 그처럼 넓게 파급될 수 있었다” (Wingler, 2001)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교육 담론으로서 바우하우스에 대한 고찰이 처음 이루어진 것은 정시화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의 『미대학보』 창간호에 「Bauhaus의 예술교육」(1966)이라는 글을 발표하면서이다. 그는 1960년대 열악한 한국 경제 상황과 디자인 교육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방향을 서구 디자인사의 사례를 통해 찾고자 했다. 첫 디자인 저술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는 바우하우스 원고 발표 이후 정시화는 2007년에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시각디자인학과 교수로 정년퇴임할 때까지 디자인 교육자로서 디자인 역사 및 이론에 관한 저술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본 연구에서는 196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정시화가 쓴 글의 주제와 특징을 살펴보면서 그가 주목한 서구 디자인사의 흐름은 무엇이며 이로부터 그는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고찰해 보고자 한다. 정시화의 디자인 저술은 한 개인의 글쓰기 산물이지만 동시에 초창기 디자이너 세대가 인식한 한국 디자인의 문제는 무엇인지, 그리고 당시 서구 디자인사에 대한 이해는 어떠했는지 짚어볼 수 있는 자료이다. 그동안 국내 디자인계는 산업과 연계된 현장 중심의 디자인 실무를 중요시 해왔기 때문에 대학 교수라 하더라도 초창기 세대에서는 정시화처럼 디자인 저술 활동을 지속해온 경우가 거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시화의 디자인 저술은 한국 디자인사 서술을 보다 깊이 있고 풍부하게 하는 역사적인 기록으로서 고찰할 가치가 있다.

1. 2. 연구 방법 및 범위

본 연구는 문헌연구와 인터뷰 방법으로 진행이 되었다. 먼저 문헌연구의 범위는 정시화가 1966년 첫 디자인 저술을 한 이래 2007년 정년퇴임 때까지 40여 년간 디자인 역사 및 이론에 관해 쓴 99편의 원고들이다. 이 글을 연구 대상으로 하여 각 시기별로 어떤 주제가 다루어졌으며, 그의 디자인 저술 활동에 나타난 특징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가 서구 디자인사의 흐름을 주목한 이유는 무엇이고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 살펴보았다. 이와 함께 정시화와의 대면 인터뷰를 진행하여 문헌에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은 저술 당시 한국 사회와 디자인계 상황 및 이에 대한 그의 인식을 알아보았다. 연구자는 「정시화를 통해 살펴본 한국 대학에서의 바우하우스 수용」이라는 선행연구를 진행한 바 있는데 본 논문은 연구 범위와 연구 대상을 확장하여 정시화가 주목한 서구 디자인사의 흐름을 그의 디자인 저술들과의 관계로 고찰한 후속연구이다.

2. 정시화의 생애와 디자인 저술 활동
2. 1. 정시화의 생애와 주요 활동

정시화는 1942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1년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에 입학하였다. 1965년 대학 졸업 후 한국화약주식회사(현 ㈜한화) 디자인실에 재직하면서 교육대학원에 진학하여 「아동의 조형활동과 그 지도에 관한 연구」(1966)라는 졸업논문을 썼다. 서라벌예술대학(중앙대학교 미술대학의 전신) 공예과 교수였던 백태원은 1968년에 국내 대학에서는 처음으로 <디자인론> 강의를 신설하였는데 유근준의 추천으로 정시화가 이 수업을 담당하였다. 이때 그는 바우하우스에 관한 내용을 중심으로 강의를 했다. 1969년에 정시화는 서울대학교 부설 한국디자인센터(한국디자인진흥원의 전신)에서 발간하는 『계간 디자인』지의 편집연구원으로 참여하였고, 그 이듬해에 대학원에 다시 진학하여 「콤뮤니케이션 디자인의 방법론에 대한 연구」(1972)라는 졸업논문을 썼다.

1972년 3월에 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학교) 응용미술과 조교수로 부임하였고 서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에도 출강하였다.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된 정시화는 1973년 8월부터 1974년 6월까지 덴마크 그래픽대학(The Graphic Arts Institute of Denmark)에 다녀온 후 복직했다가 1975년에 대학 사정으로 사임했다. 이후 1976년에 국민대학교 조형학부 장식미술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한국시각디자인협회(KSVD) 설립 초기부터 참여해온 그는 세계그래픽디자인단체협의회(ICOGRADA) 가입을 위해 국제 담당 부회장으로서 협회를 대표하여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개최된 1983년 정기총회에 참석하였고 프랑스 니스(1985), 네덜란드 암스테르담(1987), 이스라엘 텔아비브(1989) 등에서 열린 정기총회에도 참석하였다. 일본의 『인더스트리얼 디자인』(1978)과 『그래픽 디자인』(1981), 독일의 『노붐Novum』(1983), 스위스의 『그래픽 디자이너 연감Who’s Who in Graphic Design』(1994) 등 외국 디자인 잡지와 연감에 한국 디자인과 디자이너를 소개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연구년 기간이던 1989년에는 일 년 동안 영국 런던에 위치한 센트럴 스쿨 오브 아트 앤드 디자인(Central School of Art & Design, 현 Central Saint Martins College of Arts and Design의 전신)에 다녀왔다. 1992년부터 1995년까지 ㈜한샘에서 추진한 서울디자인박물관 설립기획에 참여하여 초대 박물관장을 지냈으며, 계원조형예술대학 설립(1993) 때에는 이 학교의 디자인 교육 프로그램 창안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정시화가 출간한 번역서로 허버트 리이드의 『디자인론』(1971)과 존 버니콧의 『포스터 디자인사』(1979)가 있고 저서로는 『현대 디자인 연구: 현대 디자인의 이론적 배경』(1975), 『한국의 현대 디자인』(1976), 『산업디자인 150년』(1991) 등이 있다.

2. 2. 정시화의 디자인 저술 활동

디자인 역사 및 이론에 관한 정시화의 개별 원고를 발표 시기와 게재지 유형, 그리고 주제 성격으로 구분하여 그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시기별 편수

1966년부터 2007년까지 40여 년간 정시화가 발표한 99편의 글을 시기 별로 살펴보면 1960년대 중·후반(1966~1969) 13편, 1970년대(1970~ 1979) 41편, 1980년대(1980~1989) 18편, 1990년대(1990~1999) 16편, 2000년대(2000~2007) 11편이다. 이 중 1969년에는 한 해 동안 10편의 글을 썼고, 1977년에는 12편의 글을 발표하는 등 디자인 저술 활동이 매우 활발했다.


Figure 1 Periodic literary works of Siwha Chung (1966~2007)

Figure 1에 나타난 것처럼 정시화가 왕성하게 저술 활동을 했던 때는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중반이다. 1960년대 후반에 정시화는 대학원을 마치고 대학 강의를 시작했고 한국디자인센터 편집연구원으로서 잡지 창간에 참여하였으며, 1970년대 중반에는 덴마크 유학을 다녀와 국민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였다.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의 젊은 나이에 정시화는 공모전이나 협회전 출품 등 디자인 창작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동년배 디자이너들과 달리 책읽기와 글쓰기를 통해 디자인 역사와 이론에 대한 지식을 쌓으며 디자인 교육자이자 연구자로서 자기정체성을 확립해나갔다.

(2) 게재지 유형

정시화가 쓴 99편의 저술이 실린 게재지 유형을 살펴보면 심포지엄 및 세미나 발표 7편, 협회도록 5편, 전문잡지 40편, 연감 및 사전 9편, 대학학보 및 대학신문 8편, 대학논문집 25편, 일간신문 1편, 해외 학술논문집 및 연감 2편, 기타 2편 등이다.


Figure 2 Types of publications of Siwha Chung's literary works

1980년대 이전에는 국내에 대학원 졸업논문 외에는 지금과 같이 연구 논문을 발표할 학회나 대학연구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1960, 70년대에 정시화가 쓴 대부분의 글은 『계간 디자인』 『디자인·포장』 『월간 디자인』등 디자인 분야 전문잡지나 『공간』 『꾸밈』 『계간 미술』 등 미술 및 건축 분야 전문잡지에 발표되었다. 그러다가 1981년에 국민대학교 환경디자인연구소에서 대학논문집인 『조형논총』을 창간하면서 정시화는 제1집에 실린 「덴마크 디자인의 정수」 논문을 시작으로 2007년 정년퇴임 때까지 총 25편의 논문을 『조형논총』에 게재하였다. 한편 1970, 80년대에 정시화는 『문예연감』 『미술연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에 실릴 디자인 관련 원고를 집필하였고, 한국인더스트리얼디자이너협회(KSID)와 한국시각디자인협회(KSVD)의 협회전 도록에도 글을 썼다.

(3) 주제 구분

정시화의 디자인 저술의 주제를 살펴보면 한국 디자인과 서구 디자인의 역사와 현황, 디자인 교육과 디자인 개론, 그리고 그래픽 디자인, 공업 디자인, 공예 등 세부 디자인 분야에 관한 것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이 주제 유형을 키워드로 관련성을 교차해서 파악해보면 한국 디자인 역사와 현황이 41편, 서구 디자인 역사와 현황이 20편이다. 디자인 개론 성격이 18편, 디자인 교육을 다룬 글이 11편이다. 디자인 세부 영역에서는 그래픽 디자인 17편, 공업 디자인 15편, 공예 9편이다. 한국 디자인을 다룬 경우 개론적 성격 2편, 공모전 관련 5편, 공업 디자인의 역사와 현황 4편, 공업 디자인 분야 협회 관련 4편, 공예의 역사와 현황 6편, 한국의 디자인 교육 3편, 그래픽 디자인 5편, 한국 디자인사 11편, 한국과 외국의 디자인 현황 비교가 1편이다.


Figure 3 Main themes of Siwha Chung's literary works

서구 디자인에 대한 20편의 글 중 바우하우스와 스칸디나비아에 대한 글이 각각 5편, 영국에 관한 글이 4편 있고 스위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호주에 관한 글과 타계한 빅터 파파넥을 추모하는 글이 각각 1편씩이다. 정시화의 디자인 저술의 첫 번째 주제가 바우하우스였던 것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가 한국 대학의 디자인 교육 현실에 대해 비판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생활에 만족하지 못한 그는 학부 시절부터 명동 근처 외국서적 전문 책방에서 어렵게 구한 책들을 독학해가면서 서구 디자인사의 흐름을 익혔고 디자인 교육자로서의 장래 희망을 가지고 디자인 교수법을 연구하고자 했다.

시각디자인학과 교수인 정시화가 그래픽 디자인뿐 아니라 공업 디자인과 공예 분야에 대한 저술을 계속 해온 것 역시 그의 교육 배경과 연관이 있다. 1946년에 도안과로 출발한 서울미대 응용미술과는 세부 전공 구분 없이 커리큘럼이 운영되다가 1964년부터 학생들이 3학년에 올라갈 때 공예미술과 상업미술 중 하나를 전공으로 선택하게 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정시화는 이때 공예미술을 선택했다. 공예미술에서는 공예와 공업디자인을 함께 가르쳤고, 상업미술에서는 시각디자인 관련 교과목에 집중했다. 대학 졸업 후 정시화는 한국화약 디자인실에 근무하면서 광고와 편집디자인 등 시각디자인 관련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 경험을 토대로 1970년에 응용미술과 대학원에 진학할 때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3. 정시화가 주목한 서구 디자인사의 흐름과 그 영향

1977년 『월간 디자인』 8월호에는 정시화가 추천한 외국 디자인 서적 38권을 소개하는 「디자인 참고서적 추천」 기사가 게재되었다. 이 시기는 정시화가 36세의 나이로 왕성하게 저술 활동을 하던 때이다. 목록 앞에는 ‘다음은 국민대학 정시화 교수가 추천하는 디자인 참고서적이다. 서적류의 빈곤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디자이너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적혀 있다. 여기에는 니콜라우스 펩스너, 레이너 벤험, 길리언 네일러 등이 쓴 디자인사 책들과 허버트 리이드와 존 & 애브릴 블레이크의 디자인 이론서, 발터 그로피우스와 모홀리 나기 그리고 요하네스 잇텐의 저서와 한스 M. 빙글러의 바우하우스 책, 얀 치홀트의 타이포그래피 책, 루돌프 아른하임의 게슈탈트 조형심리학 책 등 디자인, 미술, 건축, 미학 분야를 아우르는 다양한 책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목록이 흥미로운 것은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약 십 여 년 간 정시화가 독학하며 읽은 책들이 서구 모던 디자인의 역사와 이론 분야에서 고전으로 알려진 책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기 때문이다.


Figure 4 Siwha Chung's list of recommended books for studying design history & theory (Monthly Design, August 1977)

정시화는 이처럼 서구 디자인사의 주요 흐름을 탐구하며 강의 교재를 만들고 디자인 저술 활동을 이어 나갔는데 특히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교육, 허버트 리이드의 디자인 사상과 영국의 디자인 정책, 덴마크를 중심으로 한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연구 했다.

3. 1. 정시화의 바우하우스 관련 저술

바우하우스에 관한 정시화의 글로는 「BAUHAUS의 예술교육」(1966), 「붤터 그로피우스」(1969), 「모홀리 나기」(1969), 「바우하우스 디자인 교육의 현대적 재조명」(1988), 「데사우 바우하우스를 찾아서」(1995) 등이 있다. 「BAUHAUS의 예술교육」에서 정시화는 1960년대 한국 대학에서 디자인 교육이 체계적인 교과과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무계획적인 그리기 중심, 꾸미기 중심, 표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구멍을 가진 종이의 구성’이라든가 ‘종이가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구성’처럼 제한된 설정의 과제가 명확하게 주어진 바우하우스 예비과정의 형태공작교육 사례를 들어 비교하였다.

1969년 7월에 발터 그로피우스가 타계하자 정시화는 추모하는 의미에서 그해 11월에 발간된 『계간 디자인』 제2호에 편집실 이름으로 「붤터 그로피우스」라는 원고를 썼다. 이어 제3호에는 모홀리 나기의 저서인 『뉴 비전The New Vision』과 『비전 인 모션Vision in Motion』의 내용을 중심으로 모홀리 나기의 실험적 디자인 사상과 디자인 교육방법을 소개하였다. 바우하우스 개교 70주년을 앞두고 쓴 「바우하우스 디자인 교육의 현대적 재조명」(1988)에서는 디자인 교육의 이념과 실천 방식을 두고 갈등을 빚었던 그로피우스와 잇텐의 입장 차이에 주목하며 바우하우스를 재조명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오늘날 우리들이 바우하우스의 교육 이념과 내용, 방법을 조금이나마 재조명해 보는 의의는 바우하우스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겪었던 갈등은 단순한 미술대학이나 또는 예술집단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그 시대가 당면하고 있었던 국가적이고, 산업적이며, 일상생활의 갈등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갈등을 새로운 진보적인 예술, 다시 말해서 디자인방법으로 해결하려 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디자인의 문제를 단순히 인습적인 예술, 문화 분야의 창작으로 보는 차원에서 국가, 경제, 사회적인 절실한 현실의 문제로 볼 수 있는 이론과 교육, 그리고 실천이 있어야 함을 이해하게 해준다. 사실 역사적으로, 디자인의 문제는 그 발생부터 미술의 문제로서 제기가 되었다기보다 산업경제의 문제로서 제기되었던 점을 인식할 수 있다면, 바우하우스 교육 역시 이러한 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Chung, 1986)

1989년에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동서냉전시대가 종식되어 뎃사우 방문이 가능해지자 정시화는 1994년에 바우하우스를 방문하고 『월간 디자인』에 게재한 「데사우 바우하우스를 찾아서」(1995)라는 글을 통해 그 소회를 밝혔다. 이때 정시화는 바우하우스 개교 75주년 회고전과 오스카 슐레머 회고전을 둘러보고, 베를린에 있는 바우하우스 아카이브도 방문하였다. 이 밖에 바우하우스를 주제로 하지는 않았지만 디자인 교육 문제를 다룬 글로는 「대학 디자인 교육」(1971), 「디자인 교육의 현황과 전망」(1972), 「21세기를 위한 디자인 교육」(1987), 「한국 디자인 교육의 전망」(2004) 등이 있다.

대면 인터뷰에서 정시화는 자신이 1960년대 중반부터 바우하우스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지만 그렇다고 한국의 디자인 교육이 바우하우스를 모델로 그대로 따라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과거의 바우하우스 커리큘럼을 그대로 도입하자는 것이 아니라 20세기 초반 독일이 처한 국가적인 상황에서 당대 최첨단 기술과 창의성을 접목한 디자인 교육을 시도한 바우하우스를 일종의 디자인 교육 프로토타입으로 삼아 우리도 한국적인 맥락에 맞추어 디자인 교육의 이념과 방향성을 보다 분명히 하고 구체화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3. 2. 정시화의 허버트 리이드 관련 저술

1960년대 후반 명동 근처의 한 외국서적 전문 책방에서 우연히 허버트 리이드(1893~1963)의 『디자인론』 원서를 발견한 정시화는 이 책을 번역하여 1971년에 문왕사에서 비매품으로 자비 출판했다가 1979년에 미진사에서 정식 출간하였다. 정시화가 이 책을 번역하게 된 것은 1960년대 산업 근대화 과정에 있던 한국 사회에서 디자인의 필요성과 디자이너의 역할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당시로서는 생소했을 리이드의 주장에 정시화가 쉽게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바우하우스에 대한 사전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리이드는 이 책의 ‘제1부 역사적인 측면과 이론적인 측면의 문제’의 결론 부분에서 그로피우스의 이상에 대한 지지를 밝히고 ‘제4부 산업시대의 미술교육’ 에서는 영국 디자인 교육의 새 방향을 찾기 위해 바우하우스를 사례로 제시하며 책을 마무리했다. 허버트 리이드의 원서 제목은 Art and Industry: The Principle of Industrial Design인데 정시화는 이 책이 디자인을 미술 관점에서 다룬 디자인 정책을 비판하고자 하는 동기에서 저술된 것이라 그 취지를 살려 원래 제목을 다는 대신에 부제를 책 제목으로 삼았다. 이 책을 통해 리이드는 영국 사회의 디자인 상황과 문제점을 전면적으로 언급하면서 디자인과 미술이 어떻게 다른지, 왜 디자인을 응용미술의 차원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바라봐야 하며 산업사회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였다.

디자인의 문제는 근대사회 문명구조의 근본적인 변혁에 따른 문제이고 수공예와 기계에 의한 생산과의 대결에서 산업 가운데 그 생산의 가장 핵심적인 디자인이라는 부분을 담당하는 ‘디자이너’ 라는 새로운 타입의 조형예술가가 생기지 않으면 안 되며, 모든 것의 키포인트는 여기에 있다. 따라서 미술이라는 본질이 변혁되고 한편에 있어서는 실험적인 미술가가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공학자와 엔지니어와 같이 산업에 밀착한 다수의 디자이너가 있는 것이다. (Read, 1979)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 미술관에서 십여 년간(1922~31) 근무하면서 미술과 디자인에 관한 전문적 식견을 갖게 된 리이드가 이 책의 초판을 발간한 것은 1934년인데 정시화가 번역한 책은 1956년 제4판(개정판)이었다. 이 책에는 부록으로 고렐보고서(Gorell Report)와 산업디자인협의회(CoID)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1931년에 영국 정부는 고렐 경을 위원장으로 하는 위원회를 구성하여 굿 디자인의 상설 전시와 기획 전시, 그리고 이러한 활동을 담당할 기관의 설치와 예산 등에 관해 검토하도록 했는데 고렐보고서 작성에 영향력을 행사한 미술평론가 로저 프라이(Roger Fry)는 기성 미술가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여 디자인을 전통적인 미술을 산업에 응용하는 수준으로 보았고, 리이드는 이러한 관점을 비판하기 위해 『디자인론』을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업디자인협의회(CoID)는 1972년에 디자인 카운실(Design Council)로 개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이 기관은 리이드가 제안한 디자인 정책 방향에 기초하여 설립이 되었다. CoID가 설립되기 전 영국에는 독일 베르크분트가 1914년에 개최했던 쾰른 전시회로부터 자극 받아 1915년에 설립된 민간 차원 기구인 디자인/산업협회(DIA)가 있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이던 1944년에 처칠 정부는 영국 산업제품의 디자인을 개선하기 위해 모든 실질적 수단을 동원하여 산업 디자인을 진흥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국가 차원의 디자인진흥기관으로 CoID를 설립하였다. (Chung, 1991)

정시화는 리이드의 『디자인론』을 번역하기에 앞서 『계간 디자인』 창간호(1969)에 「윌리엄 모리스」와 「영국 산업디자인협의회(CoID)」를 소개하는 기사를 썼는데 이를 위해 그는 런던디자인센터에 연락하여 관련 자료를 직접 받았다. 정시화의 영국 디자인 정책에 대한 관심은 『디자인론』 출간 이후로도 이어져 수업에서도 관련 내용이 다루어졌다. 한국디자인진흥원(KIDP)이 설립된 후 디자이너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원장에 취임한 정경원 카이스트 명예교수는 1984년에 존 & 애브릴 블레이크가 쓴 『현대 디자인의 현실과 이상』을 번역하여 출판하면서 옮긴이의 말을 통해 정시화로부터 받은 영향을 밝혔다.

이 한 권의 책만큼 역자에게 커다란 감동을 준 책은 없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재학 시절 <현대디자인론> 강좌의 교재로 처음 대했던 이 책은 역자의 진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 특히 이 책에서 처음 대했던 디자인 매니지먼트(Design Management)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은 역자가 미국 시라큐스 대학원에서 이 분야를 전공하며 이론과 실제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데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 끝으로 이 책을 처음 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고, 원본을 빌려 주셨으며, 역자의 디자인관 형성에 기틀을 마련해주신 정시화 교수님께 감사드리며 아울러 출판을 해주신 미진사의 김현표 사장님께 감사를 보낸다. (Blake, 1984)

존 & 애브릴 블레이크가 1969년에 런던에서 출간한 이 책의 원서 제목은 The Practical Idealists: Twenty-Five Years of Designing for Industry 이다. 이 책은 허버트 리이드가 초대 책임자를 지냈던 디자인 전문회사인 DRU(Design Research Group)의 창설 25주년을 맞아 기획된 것으로 산업혁명 이후 영국에서의 산업디자인의 흐름, 디자인 실무 방법론, 디자인 교육과 미래 등의 주제를 사례와 도판을 가지고 설명한 책이었다. CoID보다 일 년 앞서 1943년에 설립된 DRU는 디자인 파트너쉽의 중요성을 강조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며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영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디자인 전문회사로 성장한 펜타그램의 등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3. 3. 정시화의 덴마크 디자인 관련 저술

독일과 영국의 디자인에 관한 책을 주로 읽고 연구하던 정시화가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을 직접 경험하게 된 것은 덴마크 정부가 지원하는 국비유학 프로그램에 선발되었기 때문이었다. 귀국 후 정시화는 「에세이적 디자인론: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현장」(1974), 「스칸디나비아 유학 잡기」(1975), 「덴-페르마넨테: 디자인의 기본적인 사명」(1976), 「세계의 디자인 센터, 한국의 디자인 센터」(1978), 「덴마크 디자인의 정수」(1981) 등의 글을 통해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역사적인 배경과 특성을 한국 디자인계에 알리고자 했다. 정시화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간결성, 실용성, 우아함 등을 높이 평가하면서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성공요인으로 초창기 디자인 선구자들의 신념과 사회적 디자인 인식의 조화와 균형을 꼽았다. (Chung, 1981) 그는 산업화와 근대화의 과제를 안고 있는 한국 사회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처럼 굿 디자인을 생활화하여 일상문화의 수준을 높이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디자인 관련 분야가 실질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특히 1930년대 덴마크 디자인의 현대화를 이끈 덴-페르마넨터의 활동을 주목했다.

디자이너인 카이 보예센(Kay Bojesen, 1881~1958)이 주창하여 설립된 덴-페르마넨터의 정식 명칭은 덴마크 공예와 산업디자인을 위한 상설 전시장(The Permanent Exhibition for Danish Crafts and Industrial Design)이다. 이곳은 디자이너와 공예가, 그리고 생산기업인들의 협동관계를 바탕으로 디자인 센터와 같은 기능을 하는 일종의 전문가 공동체였다. 홀메가르드 유리회사 사장인 크리스티안 그라우벨레(Chistian Graubelle)는 카이 보예센의 제안을 받아들여 상점을 직접 경영하기 어려운 공예가와 디자이너들이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했다. 덴-페르마넨터는 1931년에 발기 회의를 개최하여 크리스티안 그라우벨레가 회장, 카이 보예센이 홍보 담당, 야콥 뱅이 전시 담당을 맡아 코펜하겐에 전시장을 열었다. 덴마크에서 공예품이나 디자인 제품을 생산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었는데 다만 우수한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제품사정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했다. 또한 외무부 및 디자인협회와 협력하여 디자인전을 기획하여 해외에 스칸디나비아의 문화를 소개하고 덴마크 디자인을 수출하여 판매할 수 있는 계기도 만들었다. (Chung, 1991)

한국디자인센터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었던 정시화에게 유학 기간 중 접하게 된 덴-페르마넨테는 한국 디자인계가 참고할만한 디자인진흥의 성공적인 역할모델로 받아들여졌다. 한국디자인센터의 전신인 한국공예디자인연구소는 1965년 청와대 수출확대회의에서 디자인진흥기관의 설치가 결정되어 만들어진 기관이었다. 과거의 전통적 예술관에서 탈피해 디자인을 경제적이고 산업적인 발전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보고 “미술 수출”이라는 이념을 실천하는 것이 이 기관의 설립 목적이었다. 한국디자인센터는 상공부의 지원을 받아 국가 주도로 만들어진 반면에 덴-페르마넨테는 민간기구로 출발했지만 개장 당시 덴마크 왕자와 수상 그리고 상공부장관 등이 참석할 만큼 국가적인 차원에서 기대와 관심을 모았다. (Chung, 1991) 정시화는 1978년에 쓴 「세계의 디자인 센터, 한국의 디자인 센터」라는 글에서 디자인 센터는 디자이너, 공예가, 사회, 기업, 산업, 수출 등을 연결하는 교량으로서 디자인의 사회적 기능을 다하게 하는 디자인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덴-페르마넨테를 소개하였다. 정시화는 덴마크뿐만이 아니라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베르크분트와 바우하우스로 대표되는 독일의 기능주의 모더니즘을 자신들의 수공예 전통과 잘 융합하여 온화하고 인간적인 감성을 지닌 스칸디나비아 특유의 모던 디자인으로 형상화해내는데 성공했다고 평가하였다. (Chung, 2003) 그리고 그 바탕에는 사회가 산업화하고 근대화함에 따라 일상생활에서의 미적 경험 역시 민주화되어야 한다는 디자인 이념이 바탕이 되었다고 보았다.

4. 결론

디자인 평론가인 최범은 정시화를 우리나라 최초의 디자인 이론가로 평가 하였고 (Choi, 2016) 대학 재학시절 정시화의 디자인론 강의를 들었던 김상규는 네이버캐스트 디자이너 열전에서 그를 디자인 본색을 ‘가르치는 디자이너’로 소개하였다. (Kim, 2014) 1980년대에 『월간 디자인』지 편집장을 지낸 박수호는 정시화의 『현대 디자인 연구』가 디자인이 응용미술이나 산업미술로 불리던 시기에 디자인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며 디자인 교과서로서 오랜 기간 스테디셀러 자리를 지킨 본격 디자인 입문서라고 말하였다. (Park, 2014) 이 책은 정시화가 강의 교재로만 사용하다가 미진사에서 정식 출간하면서 널리 읽히게 되었는데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까지 자신의 교육 및 연구 성과를 종합한 것이었다. 1975년 초판에도 한국 디자인에 관한 내용이 있었고, 1980년 증보개정판에는 한국의 현대 디자인이 별도 장으로 구성되기는 했지만 이 책의 내용은 대부분 정시화가 그동안 읽고 이해한 서구 디자인의 역사와 이론을 주제별로 정리한 것이었다. 이후 정시화는 1991년에 『산업디자인 150년』을 출간하였는데 디자인사에 초점을 두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으나 책의 기본적인 성격은 『현대 디자인 연구』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정시화의 대표 저서인 이 두 권의 책만 읽게 되면 그가 왜 평생 서구 디자인의 역사와 이론을 이처럼 적극적으로 학습하고 또 그 내용을 널리 알리려고 했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두 책의 기초가 되었던 그의 개별 원고들을 시기별로 살펴보고 그 주제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이와 같은 서구 디자인 학습이 그가 젊은 시절 경험했던 한국 디자인 현실에 대한 비판적 문제인식에 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본 연구를 통해 고찰한 정시화의 디자인 저술 활동의 특징과 서구 디자인의 영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시화가 가장 활발하게 디자인 저술 활동을 했던 시기는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중후반으로 이 시기 한국 사회는 산업화, 근대화가 본격화되던 때로 디자인 역시 응용미술의 차원을 벗어나 현대 디자인의 개념이 자리 잡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는 일찌감치 디자인 교육자라는 장래 희망을 가지고 서구 디자인의 역사와 이론을 독학으로 공부해가며 저술 활동을 해나갔다.

둘째, 정시화는 1980년대 이전에는 주로 『계간디자인』 『디자인·포장』 『월간디자인』 『공간』 『꾸밈』 『계간미술』 등 디자인, 미술, 건축 분야의 전문잡지에 글을 쓰다가 1980년대부터는 『조형논총』에 정기적으로 논문을 게재하였다. 대학논문집으로 게재 유형이 바뀌게 된 것은 학회 및 연구소 중심의 학술 활동이 시작되던 당시 디자인학계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정시화가 디자인 저술에서 다룬 중심 주제는 한국 디자인, 서구 디자인, 디자인 교육, 디자인 개론, 그래픽 디자인, 공업 디자인, 공예 등인데 이 키워드들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 디자인계에 모던 디자인을 이해시키고 사회적으로도 널리 확산시키겠다는 계몽적 목적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넷째, 정시화는 평생 서구 디자인의 역사와 이론을 충실히 학습해 왔고 자신이 이해한 내용을 개별 저술이나 저서로 발표했다. 특히 그가 지속적으로 탐구했던 주제로는 독일의 바우하우스, 영국의 허버트 리이드, 덴마크의 덴-페르마넨테 등을 꼽을 수 있다. 정시화가 이들 사례를 주목한 이유는 한국 디자인의 현실 때문으로 바우하우스는 디자인 교육 문제에, 허버트 리이드의 디자인 사상은 미술로부터 벗어나 디자인의 독자성과 자율성을 확보하고 디자이너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 문제에, 그리고 덴-페르마넨테에 대한 관심은 디자인진흥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정시화는 덴마크에서 유학생활을 했고 영국에서 연구년을 보냈으며 독일 바우하우스 아카이브 방문을 통해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 문헌 연구만이 아니라 현장 연구도 병행하였다.

디자인 창작과 실무 중심으로 발전해온 20세기 한국 디자인의 역사에서 예외적으로 디자인 저술 활동을 꾸준히 이어온 정시화의 사례는 한국 디자인의 역사 및 이론 서술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특히 그의 저술은 196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약 40여 년간 한국 디자인계가 서구 디자인의 흐름을 어떻게 인식하고 수용했는지 엿볼 수 있게 하는 단서이자 한국 디자인 담론의 지형 변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역사적인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정시화의 디자인 저술 활동은 크게 두 시기로 구분해볼 수 있는데 먼저 1960, 70년대의 저술은 그가 서구 디자인의 교육 및 실천 모델을 수용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1980, 90년대에 『조형논총』에 게재한 논문과 미간행 강의교재 들은 모더니스트인 정시화가 서구 디자인의 영향 하에 어떻게 국부론적인 관점에서 디자인 산업을 중시하며 디자인 역사와 이론을 한국적인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정교화 하여 디자인 교육에 체계적으로 반영하려 했는가를 보여준다. 디자인 교육자로서 정시화의 이러한 노력과 실천이 20세기 한국 디자인의 발전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향후 후속연구를 통해 다루고자 한다.

Acknowledgments

This work was supported by INHA UNIVERSITY Research Gr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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