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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스타일로 스타일링에서 벗어나기 : 1990년대 초반 금성사의 한국형 가전제품 개발과 디자이너의 역할 및 위상 변화
Changing the Role and Status of Designers in the Development of Goldstar's Korean-style Home Appliances in the Early 1990s
  • Haecheon Park : Department of Design, Dongyang University, Associate Professor, Dongducheon, Korea
  • 박 해천 : 동양대학교 디자인학부, 부교수, 동두천, 대한민국

연구배경 1980년대 후반 이후, 국내 가전업체들은 시장 개방과 임금 인상의 위기 국면에서 빠른 속도로 성장하던 내수시장의 방어를 위해 기존의 수출 중심주의적 전략에서 탈피해 새로운 제품개발의 해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에 등장한 ‘한국형 가전제품’은 바로 이러한 시도 중 하나로, 한국인 특유의 생활문화에 주목해 가전제품의 토착화를 실행에 옮긴 결과였다. 본 연구는 당시 금성사가 주도한 한국형 가전제품의 개발 프로세스를 재구성하고, 그 내부에서 디자이너의 역할과 위상이 변모하는 양상을 분석하고자 한다.

연구방법 본 연구는 디자인 전문 잡지와 주요 일간지의 기사와 인터뷰, 관련 저술과 논문 등을 검토한다. 금성사가 한국형 가전제품으로 출시한 물걸레 청소기, 뚝배기 전자레인지, 김장독 냉장고 등이 사례 연구의 대상이다.

연구결과 1990년대 초반, 금성사가 주도한 한국형 가전 개발의 흐름은 제품의 외형적인 변화를 가시화했을 뿐만 아니라 국내 가전업체 디자이너의 역할과 위상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그 출발점은 물걸레 청소기였고, 뚝배기 전자레인지가 곧바로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 두 제품의 첫 번째 모델이 상업적 성공을 거둔 이후, 후속 모델의 리디자인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은 자연스럽게 부각되었다. 여기에서 디자인은 한국형 가전 개발의 접근법을 통해 시장 반응에 대한 대응 속도를 높이면서 “제품개발의 기동전”을 펼치는 데 꽤 유용한 전술적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실제로 디자이너들은 단순히 제품 외형을 ‘스타일링’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사용자의 개선 요구에 대해 디자인을 통해 해결 방안을 마련하는 데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실증해 보였다. 이후 한국형 가전제품 개발 열기는 김장독 냉장고의 개발로 이어졌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김장독 냉장고의 경우, 단순히 한국형 가전제품의 목록에 이름을 하나 더 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상품개발팀의 신설을 통해 제품개발 프로세스의 운영 체계를 재조직화하는 데까지 나갔다는 점이다.

결론 금성사의 디자인 조직은 한국형 가전 개발 경험을 분기점으로 삼아 디자이너의 역할 범위를 “고객 밀착형 디자인”, 달리 말하자면 ‘소비자 지향적 디자인’이라고 불릴 수 있는 차원으로 확대했다. 한국형 가전 개발의 접근법은 그저 단순히 내수시장 방어를 위한 단기적인 제품개발 방법론으로 활용된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의 역할 확대와 위상 강화 가능성을 모색해볼 수 있는 계기로 전유되었다.

Abstract, Translated

Background Since the late 1980s, South Korean consumer electronics companies had looked for new ways to develop products, breaking away from their previous export-oriented strategies, in order to defend the rapidly growing domestic market during the crisis phase of market opening and wage increases. The “Korean-style home appliances” that emerged in the early 1990s, as one of these attempts, were the result of localization of product features by focusing on the unique Korean lifestyle. This study aims to reconstruct the product development process of Korean home appliances led by Goldstar and to analyze the changing role and status of designers within the process.

Methods This study reviewed articles and interviews from design magazines and major newspapers, as well as related writings and papers. The case studies included a Mulgulrae vacuum cleaner, a Ddukbaegi microwave oven, and a Kimjangdok refrigerator.

Results In the early 1990s, the trend of Korean-style home appliance development led by Goldstar not only produced visible changes in the appearance of products, but also changed the role and status of designers. The starting point was the Mulgulrae vacuum cleaner, which was quickly followed by the Ddukbaegi microwave oven. After the commercial success of the first models of these two products, the importance of design was emphasized during the redesign of subsequent models. Design was seen as a tactical tool that could be quite useful for maneuvering in product development, speeding up responses to market reactions. In fact, designers went beyond simply stylizing the appearance of the product and demonstrated their expertise in designing solutions to users’ needs. The enthusiasm for Korean-style appliances continued with the development of the Kimjangdok refrigerator. It's worth noting that in this case, the company did not just add another name to the list of Korean-style home appliances but went as far as to reorganize the operational system of the product development process.

Conclusions Using the experience of developing Korean-style home appliances as a turning point, the design organization at Goldstar expanded the scope of the designer’s role to what could be called “consumer-oriented design”. The Korean-style home appliance development approach was not simply used as a short-term product development methodology to defend the domestic market, but rather appropriated as an opportunity to explore the possibility of expanding the role and strengthening the position of designers through the reorganization of the product development process.

Keywords:
Korean-style Home Appliances, 1990s, Consumer Society, Design Culture, Korean Design History, 한국형 가전제품, 김장독 냉장고, 물걸레 진공청소기, 뚝배기 전자레인지, 1990년대, 소비사회, 디자인 문화, 디자인사.
pISSN: 1226-8046
eISSN: 2288-2987
Publisher: 한국디자인학회Publisher: Korean Society of Design Science
Received: 01 Jun, 2023
Revised: 01 Jul, 2023
Accepted: 01 Jul, 2023
Printed: 31, Aug, 2023
Volume: 36 Issue: 3
Page: 357 ~ 379
DOI: https://doi.org/10.15187/adr.2023.08.36.3.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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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ding Information ▼
Citation: Park, H. (2023). Changing the Role and Status of Designers in the Development of Goldstar's Korean-style Home Appliances in the Early 1990s. Archives of Design Research, 36(3), 357-379.

Copyright :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educational and non-commercial use,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1. 서론
1. 1. 연구 배경 및 목적

1989년 여름,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의 상품기획부에서 근무하던 김성택은 휴가 중에 급한 연락을 받고 회사로 복귀했다. 그해 취임한 이헌조 사장이 단독 면담을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1932년생인 이헌조 사장은 1957년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락희화학공업사에 입사했고 이듬해에는 금성사의 창립 멤버로 자리를 옮겨 영업 전문가로 활약하다가 최고경영자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한편 김성택은 1949년생으로 일본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1976년에 소니사에 입사한 이후 VTR, 워크맨, 자동차 CD 플레이어 등의 상품기획을 담당하다가 1985년에 금성사로 스카우트된 터였다. 이헌조 사장은 단독 면담 자리에서 김성택에게 LSR(Life Soft Research)연구실이라는 낯선 이름의 신설 조직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이 사장의 설명에 따르면, LSR연구실의 주요 임무는 소비자의 잠재 욕구를 파악해 근미래의 라이프스타일을 예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전제품의 콘셉트를 제안하는 것이었다. 이 사장은 김성택을 설득하기 위해, LSR연구실의 활약상에 금성사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조선일보』, 1990년 8월 13일).

LSR연구실의 부장급 책임자로 부임한 김성택은 사회학, 심리학, 철학, 역사학 등 인문·사회 계열 전공자 8명으로 팀을 꾸렸다. 공대 출신이 주축인 사내 다른 부서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징이었다. 또한 팀원 전원의 평균 입사 연수가 4년 이하였는데, 이는 기성의 틀에 박힌 사고에 물들지 않은 젊은 감각이 상품기획에 필수적이라고 판단한 결과였다. 이들은 신제품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선진국의 각종 자료를 검토하기도 했고 압구정동에 나가 신세대 청춘 남녀가 즐기는 최신 유행을 눈여겨보기도 했다. 또한 직접 아파트에 방문해 주부의 일상생활을 관찰하기도 했다. 신설 이후 1년여의 기간 동안 좌충우돌식의 다소 산만한 활동을 펼친 탓에 신제품 콘셉트와 관련된 구체적인 성과를 내놓지는 못했다. 하지만 “90년대 히트 상품의 조건과 라이프스타일 예측”, “90년대의 대표적인 소비자층과 욕구” 같은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해 사내에서 호평을 받았다. 초기 활동 결과로는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조선일보』, 1990년 8월 13일).

당시로서는 완전히 새로웠던 LSR연구실의 등장은 거대한 변화의 전조와 같은 것이었다. 실제로 LSR연구실이 문을 열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89년 12월, 금성사는 그룹 차원에서 진행된 ‘21세기 비전 계획’의 일환으로 이헌조 사장 주도 아래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우선 전사 조직을 사업부제를 골자로 하여 영업, 제조, 경영지원, 경영촉진의 4개 그룹으로 편성하되, 제조 그룹에는 텔레비전, 오디오, 비디오, 냉장고 등 가전제품별로 사업부를 배정했다. 제조 그룹의 사업부는 해당 제품의 생산뿐만 아니라 판매 전략까지 담당하도록 했다. 이와 같은 ‘제판일체’의 사업부 개편은 “제품의 특성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제조 그룹의 사업부에서 판매 전략을 세워야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이전과 비교해 개별 사업부의 자율성은 크게 강화되었고 의사결정 단계는 대폭 축소되었다(『조선일보』, 1989년 12월 28일).1)

디자인종합연구소 역시 이러한 변화와 보조를 맞춰 내부 조직을 9개 그룹으로 개편했다. 기획·관리 그룹과 R&D 그룹 이외의 나머지 7개 그룹은 개별 사업부와 협력 아래 제품별로 디자인 실무를 담당하는 조직으로, 텔레비전 그룹, A/V 그룹, 냉기 그룹, 조리기기 그룹, 회전기 그룹, 공조/가스기기 그룹, OEM 그룹으로 구성되었다. 디자인종합연구소에서 씽크탱크 역할을 담당하는 R&D 그룹은 신상품제안팀, 컬러디자인팀, CAD팀 등 3개의 팀으로 이뤄져 있었다(Wang, 1991).

좀 더 거시적인 맥락으로 시선을 옮기자면, 이러한 사업부 중심의 조직 체계 고도화는 국내 가전업체들을 둘러싼 국내외 경제 환경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한국 경제는 1985년 플라자 합의를 기점으로 1980년대 중후반의 3저 호황을 거치면서 ‘체제 전환’이라고 부를 만한 지각 변동을 경험하고 있었다. 1960년대 후반 이후 “조국 근대화”라는 구호 아래 정부 주도로 추진되었던 수출중심주의적 체제가 더는 지속되기 어려운 국면에 진입하고 있었다(Park, 2018). 특히 87년 민주화 이후 노동 운동의 급성장과 임금 인상으로 인해 저임금에 기반한 수출 중심의 기업 운영이 어려워졌고, 이전까지 국내 업체들이 독주하다시피 한 내수시장 역시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선진국의 수입 상품에 문을 열어줘야 하는 처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 성장에 힘입은 내수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세와 구매력을 갖춘 중산층의 증가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주는 듯 보였다. 국내 가전업체들은 이러한 변화에 조응하기 위해 시장 세분화 전략과 라이프스타일 연구와 같이 당시로서는 새로운 시장 접근법2)을 동원해 소비자와의 접촉면을 확대하면서,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의 실질적인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Park, 2019). 앞서 살펴본 LSR연구실은 바로 그 모색의 산물 중 하나였다. 흥미롭게도 수입 제품과의 기술력 경쟁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우회로 역할을 한 것은 라이프스타일 연구와 결합한 ‘한국형 가전제품 개발’이었다. 국내 업체들은 외국 기업이 미처 고려하지 못한 한국인의 일상생활에 내재한 의식주 문화의 특수성을 신제품 개발의 핵심 변수로 활용함으로써 내수시장의 경쟁에서 상대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실제로 한국형 가전제품 개발은 1991년에 금성사의 물걸레 진공청소기가 큰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내구소비재 시장에서 유행의 큰 흐름을 견인해냈다.

본 연구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1990년대 초반 당시 대표적인 국내 가전업체였던 금성사가 위기 국면을 벗어나기 위해 출시한 한국형 가전제품의 개발 사례를 검토하면서, 그러한 사례가 ‘제품 기능의 한국적 갱신’을 실현하기 위해 제품개발 프로세스를 재조직화하는 과정, 그리고 디자이너의 역할을 소비자 지향적 형태로 재정의하고 그 위상을 강화하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3)

1. 2. 연구 방법 및 범위

본 연구는 문헌 연구 중심으로 진행된다. 먼저 디자인 전문지와 주요 일간지의 기사와 인터뷰, 그리고 관련 저술과 논문을 중심으로 1990년대 초반 당시 가전 시장의 지형을 조망하면서 금성사의 주요 한국형 가전제품의 개발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4) 본 연구가 사례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것은 각각 1991년부터 1993년까지 금성사가 매년 차례대로 출시한 물걸레 청소기, 뚝배기 전자레인지, 김장독 냉장고이다. 1980년대에도 ‘한국형’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출시된 가전제품이 있었지만, 시장 영향력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이 제품들 대부분은 한국인의 생활방식을 고려해 기존 제품의 표준 기능에 부가 기능을 절충적인 형태로 덧붙이는 식이었다.5) 하지만 본 연구에서 다루려는 금성사의 한국형 가전제품 시리즈는 그와는 달랐다. 단순히 차별화의 대상이 국내 경쟁업체의 제품에서 선진국의 수입 제품으로 바뀐 것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금성사의 한국형 시리즈는 한국인 특유의 의식주 문화와의 접목을 통해 ‘표준 기능의 형질 전환’을 실현함으로써 ‘가전제품의 토착화’에 성공한 결과였다. 당시 디자인종합연구소 관계자의 표현을 빌려 달리 표현하자면, 그것은 혼종적 기능(hybrid of function), 문화적 조건, 테크놀로지, 이 세 가지 제품개발 요소에 바탕을 둔 “제품의 재구성”(figure 1)의 결과였다(Shin, 1991). 금성사가 출시 직후의 광고에서 물걸레 청소기를 “유통시장 개방 대응책으로 내놓은 전략 상품 1호”라고 자신 있게 천명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였다.


Figure 1 A diagram conceptualizing the product development elements for “product recomposition” (Shin, 1991)

본 연구는 위 세 가지 사례를 대상으로 삼되, 물걸레 청소기와 뚝배기 전자레인지의 경우에는 첫 모델 출시 이후 진행된 후속 모델의 리디자인 프로세스에서 소비자의 개선 요구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디자인의 중요성이 부상하는 상황, 그리고 김장독 냉장고의 경우에는 제품개발 프로세스의 독특한 운영방식을 통해 디자이너의 역할과 위상이 이전과는 다르게 변모하는 과정에 주목하고자 한다.

2. 물걸레 진공청소기, 가마솥 보온밥솥, 뚝배기 전자레인지의 경우
2. 1. 한국형 가전의 새로운 물꼬 트기, 물걸레 청소기

1991년 10월 말 출시된 ‘물걸레 진공청소기’(모델명 V-773KI)는 금성사가 주도한 1990년대 초반 한국형 가전제품 유행의 첫 물꼬를 튼 제품이다. 먼저 물걸레 청소기가 ‘한국형’이라는 수식어의 보조를 받으며 등장할 수 있었던 맥락부터 살펴보자. 1980년대 이후 대규모 단지형 아파트가 도시 중산층의 현대적인 주거 모델로 각광받기 시작했지만, 아파트 거주 가정을 포함한 상당수의 가정은 좌식과 입식이 절충된 형태로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여기에 온돌방 중심의 장판 문화 역시 장기 지속의 상태로 유지되고 있었다.6)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 재래적인 것과 새로운 것이 뒤섞인 혼종적인 주거 문화로 인해 가정주부 대다수는 실내 공간을 청소할 경우 빗자루로 먼지를 쓸고 난 후 물걸레로 바닥을 닦아 마무리했다. 이러한 독특한 청소 습관은 진공청소기의 보급 확산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청소가 가사노동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가정주부는 진공청소기가 청소 부담을 확연히 줄여줄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했다. 진공청소기가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했지만, 구석의 먼지를 전부 제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고 무엇보다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혀야 하는 걸레질을 따로 해야 했기 때문이다(Yoon, 2004). 물걸레 청소기는 바로 이런 번거로움을 덜기 위한 제품이었다(Figure 2). 그것은 탈착 가능한 물걸레를 청소기 흡입구에 장착해 한 번의 바닥 청소로 먼지 제거와 걸레질, 즉 쓸기와 닦기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고자 했다(Oh, 2017).


Figure 2 A newspaper advertisement for a Mulgulrae vacuum cleaner (1991)

국산 가정용 진공청소기가 시장에 처음 출시된 1978년7)부터 물걸레 청소기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국내 진공청소기 시장은 어느 업체가 먼저 해외 최신 제품을 벤치마킹하여 신제품을 출시하느냐가 관건인 모방 경쟁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었다(No, 1998). 이러한 답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시기 금성사 회전기 사업부 내부에서는 한국인의 청소 습관에 적합한 신제품 개발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실제로 중앙연구소가 주도해 “물청소가 가능한 진공청소기” 개발을 목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술적인 이유로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전환점은 1989년, 사업부 상품기획팀이 일본 청소기 시장 동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마련되었다. 1980년대 후반, 일본 청소기 시장은 성숙기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연간 20% 이상 성장했는데, 여기에서 중요한 변화의 계기를 제공한 것이 일본의 ‘다다미’ 주거 문화에 특화된 신제품 진공청소기의 출시였다. 이 제품은 다다미 틈새의 먼지나 벌레를 제거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상품기획팀은 이 제품의 콘셉트에 착안해 신제품 아이디어 발굴에 나섰다. 1989년 후반, 표본 집단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에 착수했고 주부 모니터 요원과의 그룹 토의도 진행했다. 예비 소비자들의 의견은 ‘물걸레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진공청소기가 필요하다는 데 모아졌다(Office of Marketing Strategy, 1994).

당시 회전기 사업부장이던 김쌍수8) 상무는 상품기획팀의 보고 내용을 검토한 후, 물걸레 기능을 갖춘 진공청소기를 ‘한국형 가전’으로 명명하고 곧바로 제품개발에 나설 것을 지시했다. 사업부 설계실은 중앙연구소와의 공조 아래 기술 개발을 진행하며 제품개발 프로세스 전반을 주도했다. 사전 조사 이후의 제품개발 프로세스는 기존에 통용되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Office of Marketing Strategy, 1994). 설계 단계에서 가장 큰 기술적 난제는 걸레용 특수 스펀지 개발이었다. 설계실은 다양한 재료들을 시험해본 후, 반도체 제작 공정에서 칩을 닦는 용도로 쓰이는 PVA 스펀지를 걸레용 재료로 선택했다. 수분 흡수력이 매우 높은 데다가 바닥과의 밀착력이 뛰어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동아일보』, 1991년 11월 16일). 한편, 디자인종합연구소 회전기 그룹의 서남철과 이형준, 두 명의 디자이너가 참여한 디자인 작업은 타 부서와의 협조 아래 물걸레 착탈 방식의 고안에 중점을 두고 진행되었다(No, 1998). 출시 전에는 제26회 대한민국 산업디자인전에 제품 시안을 출품해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조선일보』, 1991년 5월 11일),

물걸레 청소기는 출시 이후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당시 24%의 보급률에 그쳤던 진공청소기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9) 특히 걸레질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소비자의 제품 구매에 장애물로 작용하던 진공청소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완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시장이 상승기류에 올라탈 기미를 보이자, 경쟁업체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며 신제품을 시장에 내놓았다. 삼성전자는 1992년 6월에 금성사 제품과 유사한 물걸레 청소기를 판매하기 시작했고, 9월에는 세척수 보관통이 부착된 ‘물걸레 자동세척 청소기’를 내놓았다. 대우전자는 10월에 모터 소음을 종전보다 3분의 1로 줄인 ‘저소음 청소기’를 출시했다(『조선일보』, 1992년 9월 28일). 그런데 경쟁업체들의 반격이 본격화되기 이전, 금성사는 그보다 한발 앞서 한국형 가전 개발을 “제품개발 추진의 기동화를 위한 전술”(Shin, 1991)로 간주하면서, 이 전술을 공세적으로 실행에 옮기기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나섰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소비자의 개선 요구 사항을 반영해 곧바로 물걸레 청소기를 리디자인하는 것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형 가전 개발의 접근법을 타 사업부, 타 품목의 신제품 개발에도 확대 적용하는 것이었다. 일회성 이벤트로 그칠 수도 있었던 한국형 가전 개발은 물걸레 청소기의 성공으로 인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먼저 물걸레 청소기의 리디자인부터 살펴보자. 금성사는 첫 번째 모델 출시 이후 불과 10개월 만에 두 차례에 걸쳐 후속 모델을 내놓았다. 1992년 6월에 물걸레를 회전식으로 개선한 두 번째 모델(모델명 V-968BK2)이, 그리고 1992년 9월에는 ‘동글이’라는 애칭을 브랜드명으로 내세운 세 번째 모델(모델명 V-123X1)이 출시되었다.10) 당시로서는 예외적으로 짧은 모델 교체 주기였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설문조사와 통계 분석을 통해 수집된 소비자의 제품 개선 요구 사항에 대한 정보를 즉각적으로 피드백해 리디자인 프로세스의 출발점으로 삼은 덕분이었다. 두 번째 모델의 경우, 상품기획팀은 1991년 11월부터 2개월간 진행된 물걸레 청소기 사용자 600명 대상의 설문조사를 통해, “잘 밀리지 않아 힘이 많이 든다”, “물걸레의 착탈이 불편하다”, “구석진 곳은 따로 손걸레질이 필요하다” 등의 불편 사항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한 개선안으로는, 회전이 가능한 원통형 물걸레(Figure 3), 가구 틈새나 창문틀을 청소할 수 있는 칼형 흡입구, 커튼이나 소파 청소에 용이한 원형 흡입구 등이 제시되었다(Office of Marketing Strategy, 1994).


Figure 3 A newspaper advertisement for the second model of a Mulgulrae vacuum cleaner (1992)

세 번째 모델은 두 번째 모델 출시 이후 불과 3개월 만에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여기에도 물걸레 청소기 사용자 2천 명 대상의 대규모 설문조사 결과가 반영되었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 주택 특유의 문지방에 바퀴가 걸리는 점, 각 방 청소 때마다 전깃줄을 다시 연결해야 하는 점, 본체가 무거워서 옮길 때 힘든 점, 벽이나 천장 등 높은 장소를 청소하기 어려운 점 등”이 대표적인 불편 사항이었다(『한겨레 신문』, 1992년 10월 4일).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선 다음과 같은 해결안이 제시되었다. 일단 기술적 차원에서 흡입력을 높이고 소음을 줄이기 위해 전기 모터의 성능을 한층 더 강화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여기에 문지방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도록 바퀴 지름을 24cm로 이전 모델보다 2배 이상 크게 제작했고, 기동성을 높이기 위해 청소기의 전깃줄을 본체와 분리해 본체 중량을 줄였으며, 청소 반경을 늘리기 위해 줄의 길이도 종전 5m에서 9.2m로 늘렸다(『한겨레신문』, 1992년 9월 20일). 이처럼 사용자의 개선 요구 사항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은 자연스럽게 부각되었다. 이를테면 대형 바퀴는 이동의 편리성 향상을 위한 해결안일 뿐만 아니라 형태 구성의 핵심 요소로서, 위아래 구분 없는 유선형의 골격으로 제품의 외형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데 활용되었다. 신문 광고의 표현을 빌리자면, 경쟁사 제품과 분명하게 차별화되는 “우주선 같은” 모양의 “미래형 디자인”이었다(Figure 4).


Figure 4 A newspaper advertisement for the third model of a Mulgulrae vacuum cleaner (1992)

이후 1993년 8월, 네 번째 모델(모델명 V-125A)이 출시되었다. 물걸레 청소기 시리즈의 완결판이라고 할 만한 이 모델은 전기 구동 바퀴를 채용한 것이었다. 이렇게 1991년 물걸레 청소기 출시를 계기로 가전업체 간 경쟁의 본격화와 함께 신제품 모델 교체 주기가 짧아졌고, 진공청소기의 보급률도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다. 1990년에 24%였던 보급률은 불과 3년 사이 2배 가까이 증가해 1993년에는 47%에 도달했다.

2. 2. 한국형 가전의 후속 시리즈, 가마솥 보온밥솥과 뚝배기 전자레인지

1992년 초, 물걸레 청소기의 성공에 고무된 금성사는 ‘가마솥 보온밥솥’(모델명 RJ-F18)과 ‘뚝배기 전자레인지’(모델명 MR-283SF)를 시장에 내놓았다. 조리기기 사업부의 주도로 개발된 이 두 제품은 한국형 가전 개발의 접근법을 적용한 결과물로, 전자는 “불림에서부터 가열, 뜸들이기, 보온까지” 가마솥의 원리를 응용해 “찰지고 구수한 고유의 밥맛”을 제공하는 제품이었고, 후자는 사용자가 김치찌개, 된장찌개, 해물찌개, 3종류의 찌개를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도록 개발된 제품이었다.11) 금성사는 광고(Figure 5)에서 두 제품이 물걸레 청소기의 바통을 이어받은 한국형 가전제품으로, 자사 기술력을 통해 한식 조리의 최적화를 이뤄냈다는 점을 강조했다. 광고 문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고객을 위한 가치 창조라는 자세로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제품”을 만들어온 금성사가 물걸레 청소기에 이어 한국형 가전제품 시리즈로 이 두 신제품을 선보였던 것이다.


Figure 5 A newspaper advertisement for Korean-style home appliance series (1992)

여기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대상은 뚝배기 전자레인지이다. 이 제품의 경우 물걸레 청소기와 마찬가지로 두 차례에 걸친 리디자인을 통해 한층 더 향상된 기능의 후속 모델을 내놓았다. 1992년 9월에 출시된 뚝배기 전자레인지의 두 번째 모델(모델명 MR-285SF)은 한국 전통의 곡선미를 가미한 외형 디자인으로, 찌개 조리 기능뿐만 아니라 밥 짓기와 국 데우기 기능이 부가된 12가지 한식 메뉴 조리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1993년 8월에 출시된 세 번째 모델(모델명 MR-287SF)은 다기능 다이얼을 채용해 기존 모델의 15개 버튼을 7개로 줄였다. 사용자가 다이얼 조작만으로 한식, 양식, 분식의 다양한 메뉴를 선택하고 요리 시간을 조정할 수 있게끔 한 것이었다. 이 두 제품의 개발 역시 소비자의 의견을 청취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전자의 경우, 가정주부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설문조사를 토대로 한식 조리 메뉴와 기능을 결정했고, 후자의 경우, 소비자 사용 실태 조사를 바탕으로 사용성에 중점을 두고 제어 패널을 리디자인했다. 당시 일부 가전제품들은 “인공지능”이나 “뉴로 퍼지”라는 이름 아래 IC 반도체를 핵심부품으로 사용함으로써 기능 조작이 복잡해지는 경향을 보였고, 이 과정에서 계기판과 버튼 등으로 구성된 제어 패널의 디자인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12) 전자레인지의 경우, 주방 가전으로서 지닌 특수한 성격으로 인해 제어 패널의 디자인이 특히 중요했다. 주지하다시피 음식 조리는 본래 가정주부의 숙련 가사노동에 속하는 것이었지만, 전자레인지의 등장으로 인해 점차 탈숙련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전까지 가정주부가 가족의 식사 준비를 위해 직접 음식을 준비해야 했던 반면, 이제는 전자레인지의 도움으로 가족 구성원 누구나 자신의 필요에 따라 미리 만들어놓은 반찬이나 국을 식탁 위에 올릴 수 있었다(Ueno, 2009). 따라서 전자레인지의 제어 패널은 온 가족 누구나 주부의 도움 없이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뚝배기 전자레인지의 세 번째 모델(Figure 6)은 바로 이런 요구를 반영한 제품이었다. 이전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모델은 한식 메뉴가 늘어나면 그만큼 조리 버튼도 추가되는 식이었다. 반면 세 번째 모델은 다이얼을 중심으로 제어 패널 자체를 재배치했다. 이 세 번째 모델의 제어 패널은 사실상 상호작용성(interactivity)의 차원에서 행위자와 사물 사이에 매끄러운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한 ‘사용자 인터페이스(user interface)’로 디자인된 것이었다. 이러한 방식의 접근은 뚝배기 전자레인지의 사례에만 국한되었던 것은 아니다. 금성사는 거의 동일한 시기에 ‘아베스트’ AV 시스템을 출시하면서 “인공지능” 기능과 마우스바 버튼을 채용한 대화형 통합 리모컨을 선보인 바 있었다(Park, 2022).13) 확실히 이 두 제품은 초보적인 수준이긴 하지만 “사용자 친화적(user-friendly)”이라고 불리던 상호작용성의 접근법을 적용한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도입 초기 사례였다.14) 흥미롭게도 뚝배기 전자레인지의 TV 광고는 이러한 변화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배우 유지인을 내세운 1992년의 TV 광고는 기업 회의실에서 주부들이 제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말하는 장면을 연출하며 고객의 의견을 제품개발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반면, 배우 원미경이 등장한 1993년의 TV 광고는 다이얼 중심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버튼 위주의 경쟁 제품과의 차별화를 분명히 했다(figure 7). 신문 광고가 전면에 내건 문구에 따르면, 이제 버튼을 일일이 누르지 않고 가족 누구나 “다이얼 하나로 편하게 요리”할 수 있는 제품이 등장했던 것이다. 이 두 광고를 연결해서 해석하자면,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대한 주목은 다양한 경로로 수집된 사용의 편리성에 대한 가정주부의 의견을 세심하게 반영한 결과이기도 했다.


Figure 6 A newspaper advertisement for the third model of a Ddukbaegi microwave oven (1993)

Figure 7 A TV advertisement for the third model of a Ddukbaegi microwave oven (1993)

한국형 가전제품의 출시가 본격화되기 이전인 1990년, 전자레인지의 보급률은 24%로, 진공청소기와 동일한 수치였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1993년, 진공청소기와 전자레인지의 보급률은 각각 47%와 45%였다. 두 품목 모두 1980년대 도입기를 거친 1990년대 초반 가전업체 간 치열한 경쟁 속에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다. 확실히 이 시기에 본격 성장기에 진입한 이 두 품목에 있어서 한국형 가전 개발의 접근법은, 제품 구매의 진입 문턱을 낮춰 중상류층에서 중산층 일반 가정으로 소비자층의 확대를 꾀하는 제품개발의 방법론으로 그 나름의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한편, 제품개발 프로세스의 차원에서 보자면, 앞서 살펴봤듯이 물걸레 청소기와 뚝배기 전자레인지의 첫 번째 모델은 정교한 사전 조사 과정을 거친 결과물은 아니었다. 그래서 첫 번째 모델 출시 이후, 미비점을 보완하는 데 리디자인 프로세스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모델 교체는 빠르게 이루어졌고, 그때마다 다양한 형태의 사용자·소비자 조사가 진행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디자인의 대상 범위 역시 확대되었다. 디자인의 측면에서 한국형의 의미가 ‘가전제품의 토착화’라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소비자 지향적 디자인’이라는 지평으로 그 외연을 넓혀갔던 것은 바로 소비자 요구에 대한 정보의 피드백, 그리고 그에 기초한 리디자인 프로세스를 통해서였다.

한편, 이러한 사례들과는 달리, 초기 단계부터 체계적인 접근으로 제품개발을 진행한 한국형 가전의 사례도 등장했다. 당시 단일 가전제품 품목으로는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던 냉장고 시장에 선보인 ‘김장독 냉장고’가 바로 그것이었다.

3. 김장독 냉장고의 경우
3. 1. 김장독 냉장고 출시의 배경과 성과

1990년대 초반, 냉장고 시장은 포화 상태에 도달하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1991년과 1992년, 냉장고 보급률은 각각 110%와 109%를 기록했다. 시장은 신혼부부가 주도하는 신규 수요 중심에서 보유 제품 노후화에 따른 대체 수요 중심으로 점차 재편되는 양상을 보였다. 가전업체들도 이런 변화에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나섰다(『동아일보』, 1992년 4월 11일). 신제품 상당수의 경우, 주요 소구 집단을 기존 보유 냉장고의 교체를 고려하고 있는 30~40대 가정주부로 설정했고, 제품개발의 방향도 대형화와 고급화로 옮겨갔다. 400리터 이상의 냉장고가 개별 업체의 주력 기종으로 주목받았는데, 이런 대형화 추세는 소구 집단의 소득 증가와 자녀 성장에 따라 그들이 보유한 냉장고 용량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고급화 역시 먹거리의 신선 보관이라는 기능적 측면에 초점을 맞춰 빠른 속도로 전개되었다. 1992년, 총 7천억 원대 규모의 시장을 각각 3천억 원대의 매출로 양분하던 금성사와 삼성전자가 각각 ‘싱싱냉장고 그린그린’과 ‘바이오냉장고 청’을 출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이 신제품의 홍보 과정에서 금성사는 채소와 과일의 신선도 유지 기능을, 삼성전자는 자외선 살균 탈취 기능을 강조했다. 양강 구도에서 추격전을 펼치던 대우전자는 채소 보관 기간을 두 배로 늘린 ‘대우냉장고 셀프’를 내놓았다. 이렇게 가전 3사가 치열하게 시장 쟁탈전을 벌이는 가운데, 언론은 1993년 냉장고 시장이 175만 대, 8천억 원대의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제품 노후화에 따른 대체 수요가 110만 대, 결혼 등에 따른 신규 수요는 65만 대 수준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매일경제신문』, 1993년 3월 9일).

1993년 1월, 금성사의 ‘김장독 냉장고’는 바로 이런 경쟁의 한복판에 뛰어들면서, ‘신선 보관’이라는 당시 고급화의 프레임과 구별되는 새로운 콘셉트를 내놓았다. 이 제품이 내세운 콘셉트는 광고 문구에서 드러나듯이 “보관만 하는 냉장고”가 아니라 “맛까지 내는 냉장고”였다. 여기에서 맛의 대상은 제품명대로 한국인의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김치였다. 김장독 냉장고의 콘셉트가 의미하는 바를 더욱 명확히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당시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부들 상당수가 김치 보관을 위해 사용했던 개량형 김칫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보관 용기는 김치가 빨리 익거나 쉽게 시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소재의 단열재를 사용했고, 크기에 따라 10~20포기의 김치를 넣을 수 있었다. 뚜껑을 여닫는 식으로 원통이나 박스 형태로 디자인되었고 주로 아파트의 베란다에 놓였다(『경향신문』, 1991년 11월 11일). 이처럼 개량형 김칫독은 장독대가 없는 아파트에서 재래식 항아리를 대신하는 것이었다. 반면 김장독 냉장고는 단순히 개량형 김칫독의 대체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주로 실외 공간에 배정되었던 김치 보관 기능을 실내의 주방 시스템 내부로 편입시켰을 뿐만 아니라, 냉장고의 콘셉트를 신선식품의 보관 기기에서 김치 맛 숙성 기능을 갖춘 주방 기기로 전환했다. 금성사가 냉장고 출시와 함께 신문 전면에 발표한 광고(Figure 8)에서 “1993년 냉장고의 신역사가 시작됩니다”라는 자신만만한 문구를 내건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광고에 따르면, 1993년 김장독 냉장고의 출시는 1965년 한국 최초 냉장고 개발, 1975년 간냉식 눈표 냉장고 개발, 1983년 절전형 전천후 냉장고 개발, 1986년 얼듯말듯 싱싱고 개발, 1991년 원적외선 냉장고 개발, 1992년 그린시스템 냉장고 개발에 뒤이은, 금성사가 선도한 국산 냉장고 역사의 일곱 번째 혁신의 산물이었다.


Figure 8 A newspaper advertisement for a Kimjangdok refrigerator (1993)

Figure 9 A newspaper advertisement for a Kimjangdok refrigerator (1993)

김장독 냉장고는 490리터급(모델명 GR49-2CK)을 주축으로 용량에 따라 총 5개 모델로 출시되었다. 금성사는 이 제품을 “창사 35주년 기념 기획상품 시리즈 1호”로 부르며, 한국형 가전의 계보를 잇는 대표 주자로 홍보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 냉장고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시판 이후 2개월 만에 7만 대 이상 판매되면서 용량에 따라 8개 모델로 다양화되었고, 이후 11월 말까지 약 10개월 동안 약 40만 대가 팔려나가 금성사 냉장고 판매량의 47%를 차지했다. 사실상 김장독 냉장고는 해당 제품군의 주력 기종으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었다. 금성사는 이 냉장고가 매출 증가의 견인차 구실을 톡톡히 해준 덕분에 1989년의 극심한 노사분규 이후 경쟁사에 넘겨줬던 냉장고 시장의 점유율 1위 자리를 4년 만에 되찾아올 수 있었다(『동아일보』, 1993년 4월 26일; 『경향신문』, 1993년 12월 29일).15) 삼성전자도 1993년 연초에 김치 냉장고(모델명 SR-1570)를 시판한 바 있었다. 이 냉장고는 154리터 용량으로 김치만을 보관하는 2도어 형태의 전용 냉장고였다. 하지만 이 냉장고는 김장독 냉장고의 인기에 밀려 시장에서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한 채 이내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Oh, 2022).

3. 2. 김장독 냉장고의 제품개발 프로세스와 디자인

그렇다면 상업적 성공을 거둔 김장독 냉장고는 어떤 프로세스를 거쳐 개발되었던 것일까? 앞서 살펴본 한국형 가전의 제품개발 프로세스와 달랐다면, 어떤 측면에서 구별되었던 것일까? 제품 디자인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대목은, 김장독 냉장고가 김치 숙성과 관련된 기술 개발을 통해 한국형 가전제품의 콘셉트를 하나 더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콘셉트를 실체화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제품개발 프로세스의 재조직화라는 근본적인 변화까지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금성사는 1983년 이후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김치 관련 냉장고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실제로 1984년에 김치전용 냉장고가, 그리고 1988년에 별도의 김치 보관실을 갖춘 3도어형 냉장고가 출시되기도 했으나(Oh, 2022), 시장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김치를 냉장고에서 숙성시키는 방법, 그리고 김치 냄새를 제거하는 방법을 기술적으로 고안하지 못한 것이 실패의 주요 이유였다. 1991년 7월, 금성사의 냉기 사업부는 과거의 전철을 되밟지 않겠다고 각오를 다지면서 당시에는 낯설었던 태스크 포스(task force) 형태의 조직으로 상품개발팀을 출범시켰다. 내부적으로 ‘고요 팀’16)으로 불리던 상품개발팀은 제품개발 프로세스의 각 단계를 담당하는 주요 부서의 직원들로 편성되었다. 냉기 사업부 설계실의 이수엽과 이칭호, 상품기획팀의 박은석, 생활시스템연구소의 고용덕, 디자인종합연구소의 안규성이 그들이었다. 이전까지 시장 조사를 바탕으로 제품 콘셉트를 제안하는 것은 영업·마케팅 전문가로 구성된 상품기획부서의 전담 업무였다. 앞서 살펴본 한국형 가전의 사례를 포함해 당시 가전업체의 일반적인 제품개발 프로세스는 상품기획부서가 제품 콘셉트를 제안하면 디자인종합연구소의 담당 그룹이 그에 따라 디자인을 진행하고 그 이후 각 사업부 설계실에서 제품을 설계하는 방식, 그러니까 단계별로 이어달리기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런 방식의 프로세스가 지닌 문제는 부서 간 칸막이 효과로 인해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서 업무의 흐름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고객의 요구를 반영한 제품의 초기 콘셉트가 이후 단계를 거치면서 변형되거나 왜곡되곤 했다. 제품 설계도 자주 변경되었고, 개발 일정 역시 빈번하게 지연되었다(Office of Marketing Strategy, 1994; Cho et al., 1995).

상품개발팀의 신설과 운영은 이런 문제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상품개발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장에서 직면하는 문제들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 제품개발 프로세스를 한층 더 유연한 형태로 재조직화했다. 그 방법은 ‘상품기획-디자인-기술 개발·설계’라는 기본 단계는 유지하면서, 상품개발팀을 구심점으로 삼아 전체 프로세스를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상품개발팀은 당시로서는 꽤 독특한 운영방식을 취했다. 팀 구성원들은 특별한 위계 없이 의사결정의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되, 제품개발 프로세스의 단계별로 업무 내용을 함께 협의하고 냉기 사업부장의 승인을 거친 후 각 부서에 복귀해 부서 팀원들과 담당 업무를 수행했다(Office of Marketing Strategy, 1994). 상품개발팀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범위에서 설계실의 이수엽이 실무팀장을 맡았고, 부장급의 총괄팀장이 일정 관리와 진행 방향과 관련해 전체 지휘를 담당했다. 그리고 팀원 간, 부서 간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서류 양식도 통일했다(Cho et al., 1995). 흥미롭게도 이 시점에 김장독 냉장고의 상품개발팀을 강력하게 지원하고 나선 냉기 사업부장은 1년여 전 회전기 사업부장으로 물걸레 진공청소기 개발을 독려하며 ‘한국형 가전’이라는 표제어를 제시했던 김쌍수 상무였다.

먼저 신제품 콘셉트 도출을 위해 4개월여간 진행된 사전 조사 단계를 살펴보자. 이 단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디자인종합연구소의 냉기 그룹과 생활시스템연구소의 식생활소프트팀17)이었다. 전자는 300~400리터급 냉장고를 사용하고 있는 20~40대 주부를 대상으로 포커스 그룹 인터뷰(FGI)를, 후자는 부산, 경남, 대구 지역의 주부를 대상으로 면담 형식의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들이 조사한 내용은 연령대별 주거 형태, 장보기 패턴, 구입 식자재 보관 장소 및 방법, 냉장고 사용방식, 김치 담그는 과정, 김치 보관 패턴, 김치 맛 선호도 등 김치와 관련된 식생활 라이프스타일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내용은 제품 콘셉트를 정의하는 데 가이드라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보로 전환되었다. 냉장고 보관 식품의 유형별 비중과 불편성(보관 식품 중 김치의 비중이 높으나 보관에 많은 불편을 느낀다는 점), 김치의 숙성 및 보관량(평균 3포기 보관), 김치 보관 기간 및 최상의 맛을 내는 시점(냉장고 보관 기간은 평균 16일이며, 최상의 맛을 내는 시점은 김치를 담근 뒤 평균 7일이 지난 시점), 김치 보관 장소(김장김치는 베란다나 실외, 일반 김치는 일정 기간 외부 보관 후 냉장고 보관), 냉장고 김치 전용칸의 필요성(67.5% 이상 필요하다고 응답), 김치 취식 빈도 및 선호하는 맛, 선호하는 숙성 방식 등이 그것이었다(Cho et al., 1995).

물걸레 청소기의 첫 모델이 출시된 시점인 1991년 10월, 상품개발팀은 사전 조사를 통해 김치 보관 기능을 갖춘 한국형 냉장고에 대한 잠재 수요를 확인하면서, 본격적인 제품개발에 나서기 위해 핵심 소구 집단을 설정하고 신제품 콘셉트를 정의했다. 핵심 소구 집단은 기존에 보유한 냉장고를 교체해야 하는 시점에 도달한 이들로서, “김치를 한 번에 2~3포기 정도 소량으로 담가 먹는 30~40대 아파트 생활자”였고, 제품 콘셉트는 “계절에 상관없이 한겨울 땅속 김장독에서 익힌 김장김치의 맛을 재현할 수 있는 냉장고”였다(Cho et al., 1995). 이 냉장고는 김치를 시지 않게 장기간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김장김치 특유의 감칠맛이 나도록 김치를 숙성시키는 것을 주기능으로 설정했다.

김장독 냉장고의 제품 콘셉트가 결정된 직후, 생활시스템연구소의 식생활소프트팀은 사전 조사의 뒤를 이어 곧바로 김치박물관, 김치공장, 식품연구소 등과 접촉해 김치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나섰다. 이와 함께 영남대학교와 경상대학교와 산학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김치 숙성과 맛의 원리에 관한 조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이들은 보통 사람들이 선호하는 김치 맛에 대한 객관적 지표, 즉 pH 값, 유산균 수, 조직감에 대한 표준 수치를 확보하고, 유산균의 번식 패턴, 맛과 냄새에 영향을 미치는 균의 식별과 번식 억제 방법, 숙성 적정 온도와 발효 수준, 김장독의 누름돌 효과 등과 같은 김치와 관련된 과학적 지식을 정리했다. 그에 따르면, “김치는 24.5℃에서 담가 5℃에서 2주간 저장했다가 먹으면 맛이 좋”고, “김치를 담근 뒤 20시간 이상 실내에 방치하면 바로 시어”지며, “22℃에서 16시간 숙성시킨 뒤 영하 1℃에서 보관하면 pH 값에 변화가 거의 없”었다(Office of Marketing Strategy, 1994; Cho et al., 1995).

한편, 본격적인 제품 디자인 작업은 식생활소프트팀의 조사 작업과 동시에 1991년 10월부터 1992년 2월까지 약 5개월 동안 진행되었다. ‘아이디어 스케치-러프 목업-품평-도면 제작-풀 목업-품평-제품 명세서 확정’(figure 10)의 순서로 이루어진 디자인 프로세스에는 상품개발팀의 일원이었던 안규성을 비롯해 노창호18), 장순필, 박성규 등 디자인종합연구소 냉기 그룹의 디자이너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2개의 팀을 구성하고 각 팀이 냉장고의 외형과 내부를 따로 맡아 디자인 실무를 진행했다. 노창호의 표현을 빌리자면, 외형 디자인에는 감성적인 접근이, 내부 디자인에는 이성적인 접근이 요구되었으며, 디자인팀의 목표는 양자 간의 조화를 성취하는 것이었다(Office of Marketing Strategy, 1994). 먼저 외형 디자인부터 살펴보면, 디자인팀은 일단 냉장고가 아파트의 주방 공간에 배치될 것이라고 전제하고, 주변의 주방 가구들과 조화를 이루도록 냉장고 이미지를 연출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기계 특유의 차가운 분위기를 덜어내면서 백색가전의 정형화된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했다. 디자인팀이 이를 위해 선택한 방안은 전통 건축의 조형적 요소를 디자인 모티프로 활용하는 것이었다(figure 11).19) 디자인팀은 특히 도어의 디자인에 주목했는데, 도어야말로 냉장고 외형을 좌우하는 핵심적인 디자인 요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도어는 납작한 평면이 아니라 볼륨감을 지닌 입체적 대상으로 다뤄졌고, 연결부 힌지는 도어 내부로 감추고 둥글게 마감 처리되었다. 그리고 각각은 한옥의 지붕 기와와 나무 기둥의 이미지를 디자인 모티프로 삼아 형상화되었다. 냉장고의 전체 스타일을 마무리하는 것은 주춧돌 모양을 본뜬 밑받침의 몫이었다. 디자인팀은 한국적 조형미를 단정하게 구현한 외형 디자인에서 사용자가 안정감과 신뢰감을 느낄 수 있기를 기대했다. 한편, 내부 디자인은 수납공간 배치를 중심으로 진행하되, 사용자에게 더욱 편리한 쓰임새를 제공하는 것에 집중했다. 수납공간의 위치와 크기는 인간공학적 관점에서 사용의 효율성과 편리성을 고려해 결정되었다. 가정주부들의 식품 보관 패턴과 수납 자세 등을 면밀하게 분석했고, 신장 157cm의 한국 여성 표준 체형을 기준으로 사용성 테스트도 거쳤다(figure 12, 13). 이에 따라 배추 모양을 추상화한 5리터 크기의 김치 보관 용기는 냉장고 하단에 배치되었다(『산업디자인』, 130호).


Figure 10 The design process for a Kimjangdok refrigerator (Office of Marketing Strategy, 1994)

Figure 11 Design concept of a Kimjangdok refrigerator (『산업디자인』, 1993)

Figure 12, 13 Scenes from usability tests of refrigerator compartments (『산업디자인』, 1993)

냉기사업부 설계실이 주도한 기술 개발·설계는 사업부 차원에서 풀 목업 형태의 디자인안을 승인하고 제품 명세서를 확정한 1992년 2월 이후에 본격화되었다. 먼저 설계실의 연구진은 사전 조사 단계에서 진행된 가정주부 대상의 조사 내용, 그리고 생활시스템연구소에 정리한 김치 관련 세부 지식 등을 바탕으로 설계실이 기술 개발을 통해 충족시켜야 할 냉장고 기능에 대한 7가지 요구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그것은 ①균일한 숙성 조건을 유지할 것, ②숙성 정도를 조절할 수 있을 것, ③24시간 이내에 숙성시킬 수 있을 것, ④숙성에서 보관까지 자동으로 작동할 것, ⑤냄새를 풍기지 말아야 할 것, ⑥용기는 배추 3포기를 담을 수 있을 것, ⑦김치 맛을 15일간 유지할 것 등이었다(Cho et al., 1995). 이러한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는 제품 프로토타입은 얼마간의 시행착오를 거친 후 실체화될 수 있었다. 먼저 설계실은 핵심 해결안으로 퍼지 제어의 저온 숙성 방식을 제안했는데, 그것은 김치의 숙성 시간과 온도를 자동 조절해 유산균의 생장을 촉진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단열 구조로 설계된 김치 전용실, 그리고 김장독의 누름돌 원리가 적용된 원적외선 세라믹 재질의 김치 보관 용기가 덧붙여졌다. 이런 해결안 덕분에 이제 냉장고 사용자는 취향이나 선호도에 따라 “풋맛, 김장맛, 익은맛” 등 세 가지 숙성 코스를 선택할 수 있었고, 숙성 시간은 최단 16시간에서 최장 36시간으로, 김치를 담근 바로 다음 날부터 그 맛을 볼 수 있었다.

이처럼 상품개발팀이 주도한 김장독 냉장고의 제품개발 프로세스에서 디자이너의 역할과 위상은 이전과는 분명하게 달라져 있었다. 이전까지 일반적으로 디자이너는 제품개발 프로세스에서 상품기획자와 엔지니어 사이에 낀 주변부의 존재에 가까웠고, 그래서 부서 간의 수직적 위계에서 제일 마지막 자리를 배정받곤 했다. 냉장고 디자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냉장고 디자인이라야 외관 색채와 그래픽 디자인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고 어쩌다가 핸들 디자인이 전부인 것”으로 치부되곤 했다(『월간 디자인』, 1988년 4월호). 1980년대 후반 이후 냉장고 디자인의 초점이 ‘외관의 심미성’에서 ‘사용의 편리성’으로 옮겨갔지만, 사정이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사용 실태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더라도 체계적인 접근보다는 임기응변식 방법이 주를 이뤘다. 1990년에 출시된 금성사의 싱싱냉장고 액센트의 디자인을 주도한 바 있는 홍정표20)는 1980년대 후반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냉장고 사용 실태를 조사한다고 카메라를 들고 식품 시장에 들어가 사진을 찍다가 나를 기자인 줄로 착각한 점원한테 혼이 난 적도 있었고, 사용자 조사를 위해 여사원 집을 방문하여 ‘예비 사위(?)’라는 오해를 받은 적도 있다(『월간 디자인』, 1988년 4월호).”

1988년에 금성사 디자인종합연구소의 김철호 소장21)은 사내 디자인 조직이 추구하는 목표가 “기술 부문과 마케팅 부문을 상호 연계하는 조정과 융합의 역할”을 해내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었다(Kim, 1988). 달리 말하자면, 부서 간 힘겨루기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디자이너는 뒷줄로 밀리지 말고 조정자로서 균형 감각을 발휘하면서 그 나름의 발언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후에 개시된 김장독 냉장고의 제품개발 프로세스는 김철호 소장이 내세운 목표에 비춰볼 때 적지 않은 변화를 끌어냈다. 거기에서 디자이너는 더는 주변부의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상품개발팀의 구성원으로서, 제품개발 프로세스 전 단계에 걸쳐 상품기획자와 엔지니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참모진의 일원이었다(Park, 2021). 달리 말하자면 그는 지원군이 아니라 주력군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거둔 성과는 분명했다. 김장독 냉장고는 한국능률협회가 발표한 1993년 8대 히트 상품에 이름을 올렸을 뿐만 아니라,22) 그해 우수디자인(GD) 상품 선정에서도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받았다. 판매량뿐만 아니라 디자인의 측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은 결과였다(『경향신문』, 1993년 12월 29일).

4. 결론

1994년 말, 코다스디자인 대표였던 산업디자이너 이유섭은 그해 출시된 제품들의 디자인을 리뷰하는 『월간 디자인』의 지면에서 상당수의 국산 제품이 고객 중심의 제품개발 전략을 통해 독자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며 “탈일본 디자인”의 경향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에 따르면, 백화점 매장에 진열된 제품들 일부는 여전히 ‘일본풍’의 분위기를 풍기며 “포스트모더니즘을 단편적으로 차용한 듯한 제품들”도 “드문드문 눈에 띄”긴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원색적인 모방성 논쟁을 벌일 만큼 낯부끄러운 디자인이 시장에 나도는 그런 단계”에서는 벗어나 있었다(Lee, 1994). 한편, 1993년 하반기에는 닛산 Be-1 자동차와 올림푸스 O-Product의 디자인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바 있는 일본의 제품 디자이너 사카이 나오키가 금성사 디자인종합연구소의 강연에서 한일 양국의 전자제품을 비교해보면 소비시장 성숙도 측면에서 약 3~5년의 시간 격차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월간 디자인』, 1993년 11월호). 국내에 초청받은 일본 디자이너의 지적이라 인사치레로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지만, 한일 간의 격차가 이전에 비해 많이 줄어든 것만큼은 분명했다. 이유섭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국 디자인의 제 얼굴 찾기”가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결과였다. 한일 양국의 디자이너가 진단한 1990년대 초반의 변화에는 확실히 한국형 가전 개발의 흐름이 기여한 바가 적지 않았다. 실제로 이 시기 한국형 가전 개발은 금성사에만 머무르지 않고 업계 전반으로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삼성전자는 스팀 압력 전자레인지, 삶는 세탁기, 찬장형 식기 건조기를, 대우전자는 초간편 VTR, 공기방울 세탁기, 저소음 청소기 등을 출시하면서 “한국형”이라는 수식어를 내걸었다.

이러한 흐름은 제품의 외형적인 변화를 가시화했을 뿐만 아니라 국내 가전업체 디자이너의 역할과 위상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그 출발점은 물걸레 청소기였고, 뚝배기 전자레인지가 곧바로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 두 사례에서 첫 번째 모델의 제품개발 프로세스는 개별 사업부의 상품기획부서와 설계실이 주도했고 디자인팀은 그 뒤를 따르는 식이었다. 하지만 두 제품이 상업적 성공을 거둔 이후, 후속 모델을 리디자인하는 과정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은 자연스럽게 부각되었다. 당시 진공청소기와 전자레인지 모두 제품 라이프사이클에서 본격 성장기 진입을 모색하고 있던 품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디자인은 한국형 가전 개발의 접근법을 통해 시장 반응에 대한 대응 속도를 높이면서 “제품개발의 기동전”을 펼치는 데 꽤 유용한 전술적 수단이었다. 실제로 디자이너들은 단순히 제품 외형을 ‘스타일링’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디자인을 통해 사용자의 개선 요구 사항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데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실증해 보였다.

한편, 한국형 가전 개발 열기는 시장 포화 상태에 도달한 품목인 냉장고로 옮겨붙어, 김장독 냉장고 개발로 이어졌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김장독 냉장고의 경우, 단순히 한국형 가전제품의 목록에 이름을 하나 더 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상품개발팀의 신설을 통해 제품개발 프로세스의 운영 체계를 혁신하는 데까지 나갔다는 점이다. 상품개발팀은 이전까지 제품개발 프로세스에 단계별로 참여하던 상품기획자, 엔지니어, 디자이너, 시장 조사 전문가 등을 일종의 태스크 포스로 구성한 것으로, 부서 간 칸막이 효과를 최소화하고 제품개발 프로세스를 유기적으로 통합하기 위한 것이었다. 디자이너는 제품 디자인 실무를 주도적으로 진행하되, 상품개발팀의 일원으로서 제품개발 프로세스 전반에 걸쳐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해 의견을 개진하고 입장을 조율했다.

본격 소비사회로의 이행이 뚜렷하게 가시화되던 1990년대 초반, 금성사의 디자인 조직은 한국형 가전 개발 경험을 전환점으로 삼아 소비자 요구 분석과 그에 관한 정보 처리, 라이프스타일 연구 기반의 제품 콘셉트 개발, 사용자 인터페이스 연구와 사용성 테스트 등 소비자의 일상 공간에 접근하기 위한 체계적인 방법들을 도입하고, 디자이너의 활동 반경을 “고객 밀착형 디자인”, 달리 말하자면 ‘소비자 지향적 디자인’이라고 불릴 수 있는 좀 더 열린 지평으로 넓혀 나갔다. 이제 디자이너는 상품기획부서의 마케팅 전문가와 설계실의 엔지니어 사이에 낀 수동적 존재가 아니었다. 그의 자리는 더 이상 아이디어 스케치나 도면 렌더링을 그리기 위한 제도판 앞자리에 한정되지 않았다. 그는 소비자를 동반자로 삼아 그들이 요구하는 바를 가장 잘 이해하는 그들의 대변인으로,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바를 제품의 물리적 형태로 번역해낼 줄 아는 문제해결의 전문가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디자인에 있어서 한국형 가전 개발의 접근법은 단순히 내수시장 방어를 위한 단기적인 제품개발 방법론으로 동원되었던 것에 그치지 않고, 비록 과도기적인 형태이긴 하지만 제품개발 프로세스의 재조직화를 통해 디자이너의 역할 확대와 위상 강화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로 전유되었던 것이다. 금성사가 LG전자로 사명을 바꾼 1995년, 디자인종합연구소의 김철호 소장이 『월간 디자인』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제품으로 물걸레 청소기, 뚝배기 전자레인지, 김장독 냉장고를 언급했던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였을 것이다(『월간 디자인』, 1995년 6월호).23) 한국형 가전제품의 인기가 정점으로 향하던 1993년, 금성사는 기업 광고에서 “기술의 시작은 고객”이라는 문구를 자신 있게 내세운 바 있었다(figure 14). 그런데 한국형 가전 개발 사례가 분명하게 증명해 보인 바는 고객의 요구를 출발점으로 삼는 기술이 상품화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디자이너의 개입은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중추적이라는 것이었다.24)


Figure 14 A corporate advertisement for Goldstar (1993)

마지막으로 두 가지 후속 연구과제를 정리하는 것으로 본 논문을 마무리하겠다. 첫 번째 연구과제는 한국형 가전 개발에 참여했던 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나 구술 채록을 진행하는 것이다. 본 연구는 문헌 자료, 잡지와 신문의 기사를 중심으로 관련 논문과 저술을 참고해 진행되었다. 자료 해석에 근거해 당시 제품개발 프로세스를 재구성하는 데 초점을 맞춘 연구이기 때문에 사실 확인의 엄밀성이라는 측면에서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따라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후에 위와 같은 연구과제를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두 번째 연구과제는 본 연구의 범위를 넘어서는 까닭에 본문에서 다루지 못했던 것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요약될 수 있다. 우루과이라운드를 통한 수입 개방이라는 위기 국면에 대한 대응책으로 등장했던 한국형 가전이 대중적 인기를 누리면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 방식의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여기에서는 한국형 가전제품을 정말로 필요로 했던 소비자들이 이 시기에 집단적으로 등장했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들은 바로 베이비붐 세대의 중산층이었다. 이들은 1980년대 중후반의 ‘3저 호황’을 경유해 1990년대 초반에는 30대 초중반의 연령대에 중산층으로 사회적 이동에 성공하면서 내구소비재 시장에서 왕성한 구매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들 상당수는 노태우 정권의 “수도권 신도시 개발과 주택 200만 호 건설” 정책과 보조를 맞추며 ‘내 집 마련’을 위해 아파트를 새로운 삶의 거처로 선택했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이 세대 중산층 상당수가 비도시 출신으로 농경사회의 촌락공동체에서 성장기를 보낸 후 일자리를 찾거나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이촌향도의 흐름에 올라탄 이들이었다는 점이다. 도시화 과정을 통해 일상생활의 현대화가 빠른 속도로 진척되긴 했지만, 이들에게 유소년기에 경험한 전근대적인 의식주 문화는 습속의 일부로 강하게 체화되어 있었다(Park, 2019). 문제는 이들이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발생했다. 이들이 체화하고 있는 전근대적인 의식주 문화가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이 강제하는 현대적인 일상 질서와 충돌하며 마찰을 빚어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사실 한국형 가전제품이란 바로 이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한 완충재로서 개발되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Park, 2021). 이를테면 물걸레 청소기는 온돌방 문화의 청소 습관과 아파트의 입식 문화 간의 간극을 메우고자 했고, 김장독 냉장고는 장독대의 김치 보관 방식과 아파트의 주방 문화 사이의 불일치를 줄이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다음과 같이 정리하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경제 호황에 따른 소득 증가, 베이비붐 세대 중산층의 등장, 신도시 아파트의 대규모 건설, 이 세 가지 요인이 중층적으로 결합한 1990년대 초반의 역사적 국면은 한국형 가전제품이 내수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며 일상 공간에서 제 자리를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의 조건을 제공했다고 말이다. 물론 이는 아직은 가설 수준에 머물러 있는 주장으로, 이후에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성숙기 소비사회 진입이라는 사회경제적 맥락과의 연계 하에 좀 더 심도 있게 논의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19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9S1A5A8041088).

This work was supported by the Ministry of Educa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 (NRF-2019S1A5A8041088).

Notes

1) 금성사가 다시 대대적인 조직 개편에 나선 것은 1992년 10월이었다. 금성사는 기존의 영업과 제조 그룹의 사업부를 폐지하고, 제품별로 9개의 사업부(전략 업무 단위), 29개의 소사업부(경영 업무 단위)로 편성했다. 제품별로 세분화된 소사업부는 해당 제품의 생산과 판매뿐만 아니라 신제품 개발까지 맡도록 했고, 소사업부의 상위 조직인 사업부는 사업 전체의 방향을 책임지는 형태였다(『동아일보』, 1992년 10월 29일). 1990년의 조직 개편을 한층 더 강화한 것으로, 제품개발, 생산, 유통의 전 과정을 고객 중심과 현장 기반으로 재편하고자 하는 최고경영자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다.

2) 이러한 접근법들은 197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의 기업과 광고기획사가 발전시킨 것이었다.

3) 참고로 선행 연구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980~90년대에 등장했던 한국형 가전제품은 최근 들어 주목받기 시작한 역사적 연구 대상으로, 디자인 관련 학술지에 총 네 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고선정은 1980~90년대 ‘한국형’이라는 단어가 나오게 된 사회 경제 문화적 배경을 살펴보면서 신문 광고 분석을 통해 ‘한국형 가전제품’이 중산층의 생활문화 속에서 의미하던 바를 분석했다(Ko, 2021). 한편 오창섭은 세 편의 논문에서 1980년대 초반과 1980년대 후반에 각각 등장한 한국형 냉장고와 한국형 전자레인지라는 개별 품목에 주목했다. 그는 당시의 신문 광고와 기사를 분석 대상으로 삼아 이들 한국형 가전제품의 등장과 특성 변화, 그리고 그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맥락을 분석했다(Oh, 2021; Oh, 2022; Oh, 2023). 본 논문은 이 네 편의 논문과는 방향을 달리하여, 금성사의 한국형 가전제품 사례들을 중심으로 제품개발 프로세스와 디자인의 역할에 주목한다.

4) 특히 금성사의 마케팅 전략실이 1994년에 사내 교육용으로 출간한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히트 상품 탄생의 비밀』, 금성사 디자인종합연구소의 디자이너들이 1991년과 1993년에 각각 디자인 전문지 『산업디자인』에 게재한 “한국형 제품개발에 정면승부를 건다”와 “우수디자인 선정전 대통령상 수상작, 금성 김장독 냉장고”, 그리고 1995년 『마케팅 연구』에 경영학 연구자들이 사례 연구로 게재한 “금성사 김장독 냉장고” 등의 문헌 자료는 디자이너를 포함한 제품개발의 실무자들이 한국형 가전 개발의 접근법을 구체화하는 과정의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중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히트 상품 탄생의 비밀』은 금성사 제품 수집가인 김기진 님(@kijinapple)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 존재를 알게 되었다. 지면을 통해 감사드린다.

5) 이를테면, 금성사는 1980년대 초반에 두 가지 유형의 ‘한국형’ 냉장고를 출시했다. 하나는 대부분의 한국 가정에서 냉동실의 활용도가 낮은 점을 고려해 냉장실의 크기를 키운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3도어 형태로 냉장실과 냉동실 이외에 별도로 야채 보관실을 마련한 것이었다(Oh, 2021; Kim, 2022). 한편 삼성전자는 1987년에 신형 전자레인지를 출시하면서 ‘한국형’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밥과 찌개 등이 조리 가능한 모델이었다(Oh, 2023).

6) 1994년 제일기획이 진행한 라이프스타일 조사에 따르면, 당시 한국인의 3명 중 2명(63%)이 침대보다는 온돌을 선호했다. 흥미롭게도 침대 선호도는 소득 수준, 주거 형태, 연령대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단독주택(34%)보다는 아파트 거주자(42%)가 높았고,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100만 원 이하 34%, 201만 원 이상 40%), 그리고 연령대가 낮을수록(20대 44%, 30대 35%, 40대 22%) 높았다(Cheil Planing Marketing Research Institute, 1995).

7) 최초의 국산 가정용 진공청소기는 금성사가 1978년에 시판한 제품으로 모델명은 V-6080이었다.

8) 김쌍수는 1945년 경북 김천 출생으로, 한양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후 1969년 금성사에 입사했다. 2003년 LG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에 올랐으며, 2008년 8월 한국전력공사 사장에 취임했다.

9) 한편 금성사는 물걸레 청소기의 출시를 알리는 신문 전면 광고에 "한국형 제품 아이디어 공모전" 개최를 함께 홍보하기도 했다. 이 공모전에는 1,500여 건의 제안이 접수되었다(『경향신문』, 1992년 1월 16일).

10) 이 시기 금성사는 소비자들에게 선명한 인상을 주려고 의도적으로 한국형 가전제품에 우리말 애칭을 붙이기 시작했는데, "동글이"는 그 출발점이었다. 이후에는 "뚝배기", "가마솥" 등이 그 뒤를 이었다(『매일경제신문』, 1993년 6월 9일).

11) '한국형'이라는 수식어를 단 전자레인지를 처음 출시한 것은 금성사가 아니라 전자레인지 수출을 주도하던 삼성전자였다. 1987년 6월에 출시한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모델명 RE-777BR)로는 밥, 찌개, 조림, 찜 등을 조리할 수 있었다(Oh, 2023).

12) 당시 제어 패널이 지나치게 많은 조작 버튼들로 구성되는 경향을 두고 “전자제품의 바로크 현상”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1990년대 초반, 일본 업체를 중심으로 국내외 가전업체들은 당시 유행하던 첨단 기술의 다기능 제품들이 조작이 복잡해 사용하기에 불편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리모컨이나 제어 패널을 단순화한 제품의 개발에 나섰다. 이 제품들은 “이지 제품”으로 불렸다(『조선일보』, 1992년 11월 16일).

13) ‘아베스트’ AV 시스템은 텔레비전, 오디오, 비디오 플레이어가 통합된 제품으로, 사용자는 리모컨을 통해 텔레비전 화면에 표시된 메뉴를 선택해 개별 기기를 자유롭게 제어할 수 있었다.

14) 실제로 뚝배기 전자레인지 출시 전후였던 1990년대 초중반, 전자레인지의 제어 패널은 다양한 형태의 사용자 친화적 접근법이 집중적으로 실험되던 장소였다. 이러한 접근법의 흐름은 1990년대 후반 이후 휴대폰과 웹디자인 등 디지털 기기의 인터페이스로 확산되었고, 2000년대에는 '사용자 경험 디자인' 담론으로 진화했다.

15) 1993년 7월에 발생한 경쟁업체의 산업스파이 사건은 김장독 냉장고의 인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삼성전자의 연구원들이 금성사의 창원 공장에 부품업체 직원으로 가장해 잠입했다가 이들을 수상하게 여긴 금성사 직원들에게 붙잡힌 것이었다. 이들이 노린 정보는 김장독 냉장고의 숙성 기술과 단열 기술에 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당시 “질 중심 경영”을 표방하고 기업 혁신 운동에 나서던 삼성그룹의 기업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히기도 했다(『조선일보』, 1993년 7월 29일).

16) ‘고요 팀’은 “고객이 요구하는 기능을 개발하는 팀”의 약자였다.

17) 창원의 생활시스템 연구소에는 당시 주부 사원을 포함한 8명의 식생활소프트팀이 주방의 가전제품을 실제로 사용하면서 다양한 테스트를 진행하며 소비자 행동을 조사했다(Cho et al., 1995).

18) 노창호는 1963년 충북 옥천 출생으로,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과를 졸업한 1984년에 금성사에 입사해 냉장고 디자인팀과 세탁기 디자인팀 등을 두루 거쳤다. 2015년에는 디자인경영센터장에 취임했고, 2017년 전무로 승진했다. 디자인경영센터장 재임 당시, 프리미엄 통합브랜드인 ‘LG 시그니처(LG SIGNATURE)’의 디자인을 주도했다.

19) 1980년대 후반 이후, 제품 디자인에서 전통적 조형 요소를 활용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있어왔고, 김장독 냉장고 역시 그런 시도 중 하나였다. 참고로 일본의 주요 가전업체들의 경우, 사회학자 요시미 순야의 지적대로 1960년대 중반 이후 미국 제품에 대한 모방 디자인 전략에서 탈피하기 위해 ‘일본풍’의 가전제품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의 외형 디자인에 일본 고대 건축의 제작 방식을 적용하거나, 냉장고의 외장을 주방 가구의 분위기에 맞춰 목재로 꾸미는 식이었다. 당시 이 제품들은 일본 특유의 장인 기술이나 자연관이 현대의 가전 기술과 결합한 결과이자, 디자인을 통해 전통적인 미의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산물로 간주되곤 했다. 1966년 마쓰시타 텔레비전 광고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일본풍의 가전제품들은 “서구의 메커니즘을 받아들여 소화”한 뒤 일본 민족 특유의 “독자적인 섬세한 정서로 탈바꿈시”켜 “닛폰만의 색채”를 가시화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흐름이 1964년 동경올림픽 개최 이후 본격화된 것도 주목할 만하다(Yoshimi, 2008). 한국 역시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이후, 제품 디자인에서 전통미의 재해석을 통한 조형적 실험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후반의 일본 디자인에게는 탈미국이,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의 한국 디자인에게는 탈일본이 이와 같은 실험의 화두였다.

20) 홍정표는 1953년 충남 광천 출생으로, 중앙대학교 공예과에서 공업디자인을 전공한 후 1978년에 금성사에 입사했다. 1980년대 전반에 걸쳐 금성사의 냉장고 디자인을 주도했다. 이후에는 전북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2013~2014년에는 한국디자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21) 김철호는 1947년 경남 충무 출생으로, 1974년 홍익대학교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한 후 금성사에 입사했다. 1987년에 금성사 디자인종합연구소의 소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디자이너 출신 국내 최초로 임원으로 승진했으며, 부사장직까지 올랐다. 2003년 이후 한국디자인진흥원장, 서울디자인센터 대표, 홍익대학교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IDAS) 원장, 한국디자인단체총연합회 회장 등을 거쳐 2011년에는 계원예술대학교 총장에 취임했다. 2019년에 지병으로 별세했다.

22) 1993년 히트 상품으로는 하이트맥주, 현대차 쏘나타 II, 에이스 침대, 죽염 치약, 머드팩 등이 선정되었다. 한국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대중문화 차원에서 환기한 바 있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도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23) 김철호는 이 제품들을 선택한 이유를 “한국인의 생활문화에 맞는 제품”으로 “외국 제품과의 차별화는 물론 국내 시장 판매에도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24) 한편 기술사 연구자 김태호는 1980년대 후반 이후 내수시장의 성장과 함께 ‘김장독 냉장고’를 비롯해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 한국형 냉장고 기술이 “기술 발전의 보편성과 특수성의 변증법”을 보여준다면서, 이 시기에 제품개발 과정에서 축적된 기술적 역량이 “한국 업체들이 2000년대 이후 세계 냉장고 시장을 선도할 수 있도록 하는 밑바탕이 되었다”고 지적했다(Kim,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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