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Vol. 37, No. 5
- Chang Sup Oh : Department of Industrial Design, Professor, Konkuk University, Seoul, Korea
- 오 창섭 : 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서울, 대한민국
연구배경 한국형 제품의 유행은 1990년대 가전제품 영역에 나타난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였다. 이 시기에 한국인의 생활문화에 맞춰 디자인되었다는 점을 내세운 물걸레 청소기, 김치 냉장고, 삶아 빠는 세탁기, 압력솥 전자레인지, 뚝배기 전자레인지 등이 등장하며 인기를 끌었다. 그중 한국형 전자레인지는 한국 음식을 요리할 수 있다는 점을 제품의 핵심 정체성으로 내세웠다. 한국형 전자레인지가 처음 출현한 건 1980년대 후반이었다. 하지만 대표적인 한국형 전자레인지는 1991년과 1992년에 등장했다. 한동안 유행하던 한국형 전자레인지는 1994년 무렵에 이르러 빠르게 쇠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본 논문은 역사적 맥락에서 그 과정과 흐름을 다루고 있다. 즉, 1990년대 초중반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발전과 쇠락의 과정을 밝히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연구방법 본 논문은 관련 문헌과 광고, 일간지 기사 등을 기호학과 담론 분석의 방법론을 활용해 분석하고, 그 결과로 도출된 내용을 비평적 서술의 방법을 통해 구조화함으로써 연구 목적에 이르고 있다.
연구결과 연구 결과 해당 시기 한국형 전자레인지는 크게 3단계를 거쳤음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한식과 양식의 기능적 절충 단계였다. 이러한 절충적 모습의 전자레인지들은 식생활에 있어 서구화 경향을 따르고 있던 젊은 신세대 가구의 취향을 충족시키기 위한 목적, 가족 내에서 한식을 찾는 기성세대와 양식을 좋아하는 아이들 간의 충돌하는 취향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 그리고 양식 중심의 전자레인지 전용 식품 개발이라는 흐름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현하였다. 두 번째는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고도화 단계였는데, 이 단계의 대표적 제품은 ‘삼성 압력솥 전자레인지’와 ‘금성 뚝배기 전자레인지’였다. 두 제품은 단순히 한국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내세웠던 이전 한국형 전자레인지들과 달리, 디자인과 기능에 있어 고도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변화하는 소비자의 생활문화, 라이프스타일 연구에 토대를 둔 제품 개발, UI 디자인 개념, 새로운 디자인 생산 주체의 등장이 결합된 산물이었다. 세 번째는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퇴조 단계였다. 건강에 관한 관심이 팽창하는 가운데 나온 전자파 논란은 전자레인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만들어 내는 계기가 되었다. 이 과정에 오븐과 고급형 가스레인지 소비가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났고, 전자레인지는 해동이나 데우기에 사용되는 보조적 조리기구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열기도 점차 식어갔다.
결론 1990년대 초중반 한국형 전자레인지는 한식과 양식의 기능적 절충을 통한 모색 단계, 변화하는 사용자의 라이프스타일 연구와 UI 디자인이 토대가 된 고도화 단계, 전자파 논란으로 촉발된 쇠퇴 단계라는 성쇠(盛衰)의 흐름을 나타냈다.
Background The Korean-style trend was one of the most prominent phenomena in home appliances in the 1990s. The mop vacuum, the kimchi fridge, the boiling washing machine, the pressure cooker microwave, and the ttukbaegi microwave became popular because they were designed to fit into the Korean lifestyle. Among them, Korean-style microwaves were claimed to cook Korean food as their core identity. Korean-style microwaves first appeared in the late 1980s. However, the typical Korean-style microwave oven appeared in 1991 and 1992. After a brief period of popularity, Korean-style microwave ovens were in rapid decline by 1994. This paper aims to shed light on the development and decline of Korean-style microwave ovens in the early to mid-1990s in a historical context.
Methods This paper analyzed related literature, advertisement, and daily newspaper articles using the methodology of semiotics and discourse analysis and structured the resulting contents through the method of critical narrative to reach the research purpose.
Results The research revealed that Korean-style microwaves went through three main phases during this period. The first phase was an eclectic mix of Korean and Western food. These eclectic microwaves emerged to meet the tastes of a new generation of younger households that were following the trend of westernization in their diets, to resolve the conflicting tastes between older generations who sought Korean food in their families and children who preferred western food, and to respond to the trend of developing western-oriented microwave-only foods. The second phase was the sophistication of Korean-style microwaves, and the representative products of this phase were the Samsung pressure cooker microwave and the GoldStar ttukbaegi microwave. Unlike previous Korean-style microwaves that simply touted the fact that they could cook Korean food, these two products showed sophistication in design and function. They were the result of a combination of product development and user interface (UI) design concepts based on lifestyle research and the changing lifestyle of consumers. The third phase was the decline of the Korean-style microwave. The electromagnetic controversy, which came from expanding health concerns, created a negative perception of microwaves. In the process, consumption of ovens and high-end gas stoves increased, relegating the microwave to a secondary cooking appliance used for defrosting and warming. As a result, the popularity of the Korean-style microwave gradually cooled down.
Conclusions In the early to mid-1990s, Korean-style microwave ovens went through three phases of growth and decline: an exploratory phase with a compromise between Korean and Western food cooking functions, a sophisticated phase based on user lifestyle research and UI design, and a decline triggered by the microwave controversy.
Copyright :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educational and non-commercial use,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한국형 제품의 유행은 1990년대 한국 가전(家電)제품 역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해당 시기에 물걸레 청소기는 물론이고 빨래판 세탁기, 삶아 빠는 세탁기, 김장독 냉장고, 뚝배기 전자레인지 등이 등장하여 인기를 끌었다. 이 한국형 제품들은 생산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제품 생산 패러다임이 이동하는 시기에 나타난 현상으로, 1990년대 한국의 디자인은 물론이고 디자인문화의 고도화를 견인하는 동력이었다.
오창섭(Oh, 2022)에 따르면 가전제품에서 ‘한국형’을 내세우는 움직임은 1980년대 초 한국형 냉장고를 통해 처음 나타났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형’이라는 표현은 군사 분야에서 우리 고유 기술로 개발한 무기류의 이름에 주로 사용되었다. 한국형 냉장고의 출현은 이 용어의 의미 목록에 “한국 생활문화에 적합하도록 디자인된”이라는 뜻을 추가했다. 이는 ‘한국형’이라는 용어가 가전제품을 매개로 일상생활 영역에서 유통되기 시작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초기 한국형 제품들의 경우는 한국의 생활문화를 반영한 정도가 미미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들어 한국형 제품들은 이름값을 하는 실천으로 발전하였다.
한국형 전자레인지는 이런 일련의 상황 속에 등장하여 1990년대 한국형 가전제품의 유행을 이끌었다. 여기서 한국형 전자레인지는 한국 음식을 요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핵심으로 내세우는 전자레인지를 말한다. 1990년대 대표적인 한국형 전자레인지로는 삼성전자의 압력솥 전자레인지와 금성사의 뚝배기 전자레인지를 들 수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한국 음식을 요리할 수 있는 한국형 전자레인지가 생산되었다. 하지만 이 두 제품은 디자인과 기능을 크게 변화시킴으로써 1990년대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런데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전성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이 채 되기도 전에 한국형 전자레인지 현상은 빠르게 식어갔다. 무엇이 이런 급격한 변화를 만들어 낸 것일까? 본 연구는 1990년대 초 한국형 전자레인지가 발전하는 양상과 함께 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한국형 전자레인지 관련 연구로는 오창섭(Oh, 2015)의 “90년대 한국형 가전제품의 풍경”과 고선정(Ko, 2021)의 “1980~90년대 ‘한국형’ 가전제품의 소비와 물질문화 연구”, 그리고 오창섭(Oh, 2023)의 최근 연구인 “1980년대 후반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출현과 확산”이 있다. 오창섭의 “90년대 한국형 가전제품의 풍경”은 디자인문화의 맥락에서 한국형 가전 현상을 처음으로 주목한 연구였다. 하지만 거시적 차원에서 한국형 가전 현상을 다루다 보니 한국형 전자레인지에 대한 논의는 깊이 있게 다루어지지 못했다. 고선정의 “1980~90년대 ‘한국형’ 가전제품의 소비와 물질문화 연구” 역시 4장 1절에서 한국형 전자레인지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몇 가지 한국형 전자레인지 사례를 언급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오창섭의 “1980년대 후반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출현과 확산”은 한국형 전자레인지를 대상으로 그것의 등장과 변화 과정을 다룬 논문이다. 그런데 이 연구는 시기적으로 1980년대 후반의 움직임에 국한하고 있을 뿐 1990년 이후의 상황은 다루지 않았다. 따라서 그 이후, 즉 1990년대 한국형 전자레인지가 어떠한 모습으로 전개되어 나갔는지에 관한 연구는 현재 없는 상황이다.
본 논문은 1990년대 초중반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발전과 쇠락의 과정을 밝히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2장에서는 1990년대 초반의 움직임을 다루었다. 이 시기는 1980년대 후반의 연장선에서 기능적 절충을 통해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정체성을 모색하던 때였다. 3장에서는 압력솥 전자레인지와 뚝배기 전자레인지로 대표되는 삼성전자와 금성사의 한국형 전자레인지 고도화 움직임을 다루었다. 이 장에서는 특히 그런 움직임과 제품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밝히고 있다. 이어서 4장에서는 한국형 전자레인지 현상이 쇠락하던 시기를 다루었다. 무엇보다 퇴조의 원인을 밝히고, 그에 대해 제조사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대응해 나갔는지를 밝히는 데 초점을 두었다.
본 논문은 1990년부터 1994년까지 약 5년의 기간을 시간적 범위로 취하고 있다. 하지만 논의 전개상 필요한 경우에는 그 이전과 이후 시기의 내용도 포함하였다.
본 연구는 관련 문헌과 광고, 일간지 기사 등을 대상으로 기호학과 담론 분석의 방법론을 활용해 내용을 분석하고, 그렇게 도출된 내용을 비평적 서술의 방법을 통해 구조화함으로써 연구 목적에 이르고 있다.
특히 대상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광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이는 해당 시기 광고가 한국형 전자레인지들의 제품 정보를 상세하게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구점(訴求點)을 구체화하는 과정에 제품이 놓인 사회·문화적 맥락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제품의 변화와 그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호비교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광고에 나타난 각 제품의 정보량과 내용이 어느 정도 균질하여 비교에 효과적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본 연구가 광고를 통해서만 내용에 접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광고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사실을 확인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관련 문헌과 일간지 기사 등과 상호비교를 통해 내용의 객관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1987년에 최초의 한국형 전자레인지를 출시한 삼성전자는 한국 음식을 요리할 수 있다는 점을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고유한 특징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그 이듬해에 한국형 전자레인지 생산에 뛰어든 금성사는 삼성전자와는 다르게 한식(韓食)뿐만 아니라 케이크, 피자, 쿠키와 같은 양식(洋食)도 요리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1988년에 금성사가 출시한 ‘한국형 금성 전자레인지 원터치’ ER-615HSB 모델이 바로 그 제품이었다. 물론 ER-615HSB 모델은 금성사가 한국형 전자레인지라는 이름으로 선보인 최초의 제품이었기 때문에, 한식을 요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는 했다. 하지만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777BR 모델처럼 그러한 기능만을 내세우지는 않았다.
금성사는 왜 한국형 전자레인지로 요리할 수 있는 음식의 폭을 양식으로까지 확대한 것이었을까? 다시 말해 금성사는 왜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정체성을 흐리게 만들 수도 있는 방향으로 제품을 개발하고 홍보했던 것일까? 가능한 답들을 떠올려 보면, 우선 삼성전자가 열어놓은 한국형 전자레인지 시장이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다는 판단에서 그런 선택을 했을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금성사는 한국형 전자레인지로 요리할 수 있는 음식의 폭을 양식(洋食)으로 확대한 것이 아니라, 기존 전자레인지로 요리할 수 있는 음식의 폭을 한식(韓食)으로 확대하고, 거기에 한국형 전자레인지라는 이름을 부여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당시는 한국형 가전제품의 유행이 본격화되었다기보다는 이제 막 시작되려는 시기였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할 때, 위의 해석은 일정한 타당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금성사의 움직임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 음식만을 강조했던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777BR 모델과 차별화하기 위한 전략적 움직임이었을 가능성을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 가능성을 긍정한다면 금성사는 한국형 시장에 후발 주자로 참여하게 된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양식과 한식을 동시에 조리할 수 있는 절충형 제품을 내세웠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전자레인지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던 삼성전자가 한국 음식을 요리할 수 있는 제품을 이미 출시한 상태였기 때문에 후발 주자로서 시장에 뛰어든 금성사가 차별화를 고려하며 움직였을 것이라는 상상은 논리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데 금성사의 한국형 전자레인지가 기능적으로 양식과 한식의 절충을 보인 것에 대한 보다 설득력 있는 해석은 소비자의 변화와 그에 대한 생산 주체의 반응이라는 구도에서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금성사의 절충형 제품은 변화하는 소비자와 그들의 생활문화, 그리고 그 변화를 파악하고 거기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었던 기업이 서로 결합하여 만들어 낸 합작품이라는 말이다. 사실 당시 금성사는 전자레인지의 주된 소비 주체가 젊은 세대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고, 그런 토대 속에서 그들의 요구에 맞는 제품을 출시한 것이었다. 해당 전자레인지 광고에 제품을 사용하는 인물로 젊은 신세대 주부를 등장시켰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오창섭(Oh, 2023)의 연구에서 밝힌 바와 같이 당시 외국산 전자레인지를 의식하며 한국인 가구 일반을 소비 주체로 설정하고 있었던 삼성전자와 달리, 금성사는 식생활에 있어 서구화 흐름에 개방적인 신세대 가구나 신혼부부를 제품의 소비자로 설정하고, 그들의 복합적인 요구를 기능적 절충을 통해 충족시키려고 했던 것이었다.
1990년대 들어 이러한 절충의 움직임, 즉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핵심 기능에 한식 조리만 아니라 양식 조리까지 포함하려는 움직임은 더욱 뚜렷해졌다. 1987년 한국 음식을 요리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며 한국형 전자레인지를 처음 출시했던 삼성전자마저 그러한 움직임을 따르기 시작했다. 1990년에 삼성전자가 선보인 ‘삼성 제빵 겸용 한국형 전자레인지’ RE-390BM 모델(Figure 1)은 이런 맥락 속에 자리하는 대표적 제품이었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금성사와 같은 이유에서 한식만 아니라 양식까지 요리할 수 있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서구적 식생활에 개방적인 젊은 신세대 가구를 소비 주체로 호명하기 위해 당시의 삼성전자가 그런 선택을 한 게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시기 삼성전자는 왜 한식과 양식을 절충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일까?
Figure 1 Advertisement for Samsung’s Korean-style microwave oven RE-390BM model for baking bread (Samsung Electronics, 1990)
1990년 7월 11일 자 <경향신문>에 등장한 ‘삼성 제빵 겸용 한국형 전자레인지’ RE-390BM 모델 광고(Figure 1)는 당시 삼성전자가 어떤 이유로 기능적 절충주의를 표방하는 제품을 선보였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광고를 보면 주인공이 엄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은 특정 분야의 전문 경영인을 연상시킨다. 하얀 테이블 위에 펼쳐진 책과 들고 있는 펜, 그리고 그녀의 자세가 그런 이해를 만들어 내고 있다. 엄마가 두르고 있는 앞치마는 그녀의 전문 영역이 가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가정을 운영하는 전문가로서 엄마는 “아빠 식성 다르고 아이들 식성 달라 고민”이다. 모두를 만족시킬 방법을 찾고 있는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찌개를 먹는 아빠와 빵을 먹는 아이들의 모습이 자리하고 있다. 찌개를 먹고 있는 아빠는 “우리 입맛엔 역시 얼큰한 찌개가 있어야 제격!”이라고 말하면서 웃고 있고, 빵을 먹고 있는 아이들은 “우리한테는 고소한 빵이 아침 식사로 최고!”라고 말하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엄마의 표정은 가족의 서로 다른 식성을 어떻게 만족시킬까 하는 고민이 ‘삼성 제빵 겸용 한국형 전자레인지’ RE-390BM 모델을 통해 해결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광고에 등장하는 가구(家口)는 부부와 자녀 2인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중산층 핵가족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광고하는 제품의 소비 주체로 그런 가구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광고를 보면 해당 제품의 정체성을 구체화하는 데 아이들의 존재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삼성 제빵 겸용 한국형 전자레인지’ RE-390BM 모델이 한식만 아니라 양식까지 요리해야 하는 이유는 아이들의 입맛 때문이었다. 물론 2년 전인 1988년에 금성사가 출시한 ‘한국형 금성 전자레인지 원터치’ ER-615HSB 모델의 광고에도 아이가 등장한다. 하지만 거기에서 아이는 제품의 정체성을 구체화하는 데 특별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 더욱이 요리할 수 있는 음식 종류에 있어 그 제품이 절충주의를 채택한 이유는 서구 음식을 즐기기 시작한 젊은 신세대 가구의 변화 중인 취향을 충족시키기 위함으로, 한국 음식만 찾는 기성세대와 서구식을 찾는 아이들 간의 충돌하는 취향을 해소하려는 ‘삼성 제빵 겸용 한국형 전자레인지’ RE-390BM 모델의 그것과 달랐다.
당시 제빵 겸용 전자레인지를 삼성전자만 생산했던 것은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에 금성사가 내놓은 ‘한국형 금성 전자레인지 원터치’ ER-900MHB 모델도 같은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1990년 9월 2일 자 <조선일보>에 등장한 해당 제품의 광고(Figure 2)를 보면, ‘한국형 금성 전자레인지 원터치’라는 제품 이름을 “밥, 찌개는 물론 바비큐, 제빵 기능까지 한 대로”라는 표현이 수식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수식어는 해당 제품의 기능이 ‘삼성 제빵 겸용 한국형 전자레인지’ RE-390BM 모델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삼성 제빵 겸용 한국형 전자레인지’ RE-390BM 모델 광고가 ‘아빠의 찌개’와 ‘아이들의 빵’이라는 서로 다른 취향에 토대를 둔 모순적 요구를 강조하며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절충주의를 취했다면, ‘한국형 금성 전자레인지 원터치’ ER-900MHB 모델 광고에는 그런 모습이 적극적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이 광고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제품의 오븐 기능, 다시 말해 노릇노릇하게 구울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삼성전자와 금성사가 다른 상황, 다른 소비자에 대한 이해, 다른 접근 방식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기능적으로 유사한 절충주의적 한국형 전자레인지를 내놓았다는 점은 흥미롭다. 그런데 1990년 전후 한국형 전자레인지가 한국 음식만을 강조하지 않았던 이유가 생산의 차원에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다른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한국형 전자레인지는 ‘한국형’에 앞서 기본적으로 ‘전자레인지’였다. 즉, 아무리 한국형 전자레인지라 할지라도 요리되기를 원하는 식품, 다시 말해 전자레인지와 연결되려는 식품들이 무엇인가에 따라 존재 방식에 있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당시 급격히 증가하고 있던 전자레인지 전용 식품의 종류와 내용이 어떠했는지를 확인해 보는 것은 중요하다.
전자레인지 전용 식품은 전자레인지에 돌리기만 하면 요리가 되도록 특별하게 가공된 제품으로, 간편함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전자레인지 전용 식품은 1980년대 말부터 쏟아지기 시작했다. <경향신문> 기사(“Food development boom,” 1989)에 따르면 그 종류에는 죽도 있었지만, 케이크, 스파게티, 피자, 비프스튜, 그라탱, 햄버거 등 양식 패스트푸드가 주를 이루었다. 당시 양식 패스트푸드가 전자레인지 전용 식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이유는 전자레인지를 처음 개발한 것도, 활발히 사용하고 있었던 것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사회였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한식보다 양식 가공 기술이 발전할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전자레인지 전용 식품의 내용도 양식을 중심으로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그랬기 때문에 전자레인지 제조사 입장에서도 전자레인지 전용 식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피자, 케이크와 같은 양식의 요리 기능을 배제할 수 없었다. 즉, 당시의 전자레인지 전용 식품의 내용과 구성이 한국형 전자레인지 기능에 한식만 아니라 양식까지 포함하도록 만든 또 다른 이유였던 것이다.
1991년 8월 10일 자 <경향신문>에는 “압력솥 통째로 조리, 삼성 새 전자레인지”라는 제목의 기사(“Samsung's new microwave oven,” 1991)가 등장한다. ‘삼성 압력조리 전자레인지’ RE-2755 모델의 출시를 알리는 기사였는데, 이 제품은 전자레인지 안에 별도의 압력솥을 넣어 솥째 조리할 수 있는 게 특징이었다.
그런데 해당 기사가 나가기 2달 전인 1991년 6월에 삼성전자는 이미 조리실에 압력솥을 넣어 요리할 수 있는 ‘삼성 압력조리 전자레인지’ RE-790BP 모델을 선보인 상태였다. 1991년 6월 10일 자 <동아일보> 광고(Figure 3)에서 해당 제품을 확인할 수 있는데, 조작부의 모습이 두 달 후에 나온 ‘삼성 압력조리 전자레인지’ RE-2755 모델과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조리실 안에 압력솥이 들어있는 점은 다르지 않았다.
Figure 3 Advertisement for Samsung pressure cooker microwave RE-790BP model (Samsung Electronics, 1991)
삼성전자의 RE-790BP 모델 광고 상단에는 된장찌개를 담은 뚝배기와 밥이 들어있는 압력밥솥을 반씩 잘라 이어 붙인 커다란 이미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두 개의 음식 이미지를 크게 배치하여 제품의 특징을 표현하고 있는 모습은 1990년 9월 2일 금성사가 <조선일보>에 게재했던 ‘한국형 금성 전자레인지 원터치’ ER-900MHB 모델 광고(Figure 2)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두 광고에서 사용하고 있는 음식의 내용은 다르다. ‘한국형 금성 전자레인지 원터치’ ER-900MHB 모델 광고는 바비큐와 빵의 이미지를, ‘삼성 압력조리 전자레인지’ RE-790BP 모델 광고는 찌개와 밥의 이미지를 각각 사용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두 제품 모두 한국형 전자레인지임을 내세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얼핏 한국 음식문화와 관련이 있는 압력솥과 뚝배기를 등장시키면서 한국형 전자레인지라고 주장하는 ‘삼성 압력조리 전자레인지’ RE-790BP 모델 광고의 경우가 논리적으로 합당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형 금성 전자레인지 원터치’ ER-900MHB 모델 광고에 바비큐와 빵의 이미지를 등장시킨 게 불합리하다는 말은 아니다. 둘의 차이는 어디에 방점을 두고 있는가의 차이라고 보아야 한다. 즉, ‘삼성 압력조리 전자레인지’ RE-790BP 모델이 압력조리가 가능하다는 점에 방점을 두었다면, 금성사는 노랗게 구운 빵과 바비큐의 이미지를 등장시키면서 ‘한국형 금성 전자레인지 원터치’ ER-900MHB 모델의 오븐 기능에 방점을 두었던 것이었다.
‘삼성 압력조리 전자레인지’ RE-790BP 모델은 한국 음식을 요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접근 방식에 있어서는 이전까지의 한국형 전자레인지들과 달랐다. 이전까지의 한국형 전자레인지들은 기능이나 형태에 있어서 일반적 전자레인지의 틀 속에서, 그 틀을 유지하면서 한국 음식을 요리할 수 있도록 했다. 혹은, 기존 전자레인지의 틀 안에서 요리할 수 있는 한국 음식의 종류와 수를 늘리고, 그렇게 늘어난 음식들과 연결된 기능 버튼들에 이름을 붙여 보기 좋게 배치하는 방식을 취했다. 하지만 ‘삼성 압력조리 전자레인지’ RE-790BP 모델은 조리실 안에 별도의 압력솥을 둘 수 있게 함으로써 기존 전자레인지로는 구현할 수 없었던 압력조리를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조리실에 압력솥을 넣고 요리한다는 아이디어는 새롭다. 그런데 이것을 전자레인지 조리실에 보조도구를 넣고 요리한다는 것으로 추상화하면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삼성 압력조리 전자레인지’ RE-790BP 모델이 만들어지기 1년 전에 나온 ‘한국형 금성 전자레인지 원터치’ ER-900MHB 모델도 조리실 안에 별도의 용기를 두어 음식을 만들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형 금성 전자레인지 원터치’ ER-900MHB 모델은 빵 통이라는 보조도구를 통해 빵을 만들 수 있게 하였고, ‘삼성 압력조리 전자레인지’ RE-790BP 모델은 압력밥솥을 두어 압력 요리를 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만 말이다.
삼성전자는 ‘삼성 압력조리 전자레인지’ RE-790BP 모델을 출시한 지 불과 2개월 후에 ‘삼성 압력조리 전자레인지’ RE-2755 모델을 선보였다. RE-2755 모델은 RE-790BP 모델보다 폭이 좁고 문에 달린 창도 작았다. 가격은 300,000원이었던 RE-790BP 모델보다 조금 비싼 325,000원이었다. 두 모델은 모두 압력조리를 특징으로 내세웠다. 그래서인지 모델명만 다를 뿐, 두 모델 모두 제품 이름으로 ‘삼성 압력조리 전자레인지’를 사용했다. 그런데 1992년 중엽에 삼성전자는 RE-2755 모델의 제품 이름을 ‘삼성 압력조리 전자레인지’에서 ‘삼성 압력솥 전자레인지’로 바꿔 판매하기 시작했다. 1992년 8월 20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RE-2755 모델 광고(Figure 4)를 보면 ‘삼성 압력솥 전자레인지’라는 달라진 제품 이름이 사용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삼성전자는 RE-2755 모델의 제품 이름을 ‘삼성 압력솥 전자레인지’로 바꾼 것일까?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경쟁사인 금성사의 움직임을 우선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금성사는 1991년 말에 ‘금성 물걸레 청소기’ V-773K1 모델과 ‘금성 가마솥 보온밥솥’ RJ-F18 모델을 출시했고, 이어 1992년 초에는 ‘금성 뚝배기 전자레인지’ MR-283SF 모델을 내놓으면서 한국형 시장에서 치고 나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에서 금성사가 가마솥, 물걸레, 뚝배기와 같이 전통적 사물들을 자사의 한국형 제품의 이름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흐름은 이후 ‘김장독 냉장고’(1993)로 이어졌다. 반면 삼성전자는 전통적 사물들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사용하기보다 ‘제빵 겸용’이나 ‘압력조리’와 같이 기능이나 방법을 표현하는 쪽을 택하고 있었다. 1992년 6월에 출시한 세탁기 SEW-7588 모델의 제품 이름을 ‘삶아 빠는 세탁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이런 방식은 점잖아 보이기는 했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평상시라면 모르겠지만, 어떤 정동(情動)이 강력하게 작동할 때는, 그래서 사람들이 뭔가에 휩쓸리듯 움직일 때는 잘 인지되지 않고 묻혀버릴 가능성이 컸다. 삼성전자가 RE-2755 모델의 제품 이름을 바꾼 1992년 중반은 바로 그런 때였다. 1992년에 접어들어 한국형 가전제품의 유행 현상은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을 <매일경제>는 “한국형 가전제품 각광”이라는 제목의 기사(“Korean-style home appliances,” 1992)로 담아냈고, <한겨레>는 “가전제품 ‘한국형’이라야 팔린다”라는 제목의 기사(“Home appliances,” 1992)로 알렸다. 그렇게 상황은 1년 만에 크게 바뀌었다. 바로 이렇게 갑작스럽게 바뀐 상황이 삼성전자로 하여금 제품 이름을 정하는 기존 방식을 버리도록 한 것이었다. 제품이 유통되고 있던 중간에 제품명을 바꾼 것은 그 자체로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이는 금성사의 ‘뚝배기 전자레인지’가 그만큼 위협적이었음을 보여주는 징후적 현상이기 때문이었다. 이름을 바꾸며 돌을 솥뚜껑 위에 올려놓은 전통 가마솥의 이미지를 광고에 등장시키는 모습 역시 당시 삼성전자의 위기의식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조리실에 압력솥을 넣어 요리할 수 있는 ‘삼성 압력조리 전자레인지’ RE-790BP 모델과 RE-2755 모델은 한국형 전자레인지로 개발되었다. 그 모델이 출시된 직후인 1991년 11월 5일 <경향신문>은 “한국형 가전품 개발붐”이라는 제목의 기사(“Korean-style home appliance,” 1991)를 내보냈다. 기사는 삼성전자가 “한국형 제품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생활소프트웨어팀’을 구성, 각종 제품 개발에 열을 쏟고 있”고, “압력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는 전자레인지 제품”이 그 결과로 출시된 사례라고 소개했다.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조리실에 압력솥을 넣어 요리할 수 있는 ‘삼성 압력조리 전자레인지’는 특별하게 마련된 팀에 의해 기획되었다.
사실 이 무렵 한국 가전제품 제조사들의 제품 개발 방식은 변화하고 있었다. 변화는 1980년대 후반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변화하고 있던 내용의 핵심은 제품의 소비 대상을 분명히 하는 것이었다. 신혼부부, 젊은 여성, 맞벌이 부부 등으로 나누는 식이었는데, 각각의 그룹은 고유한 특징을 가진 것으로 이해되었다. 물론 접근 방식에 있어 당시의 변화는 소비자들의 가치관과 소비 행태의 변화와 공명하는 현상이었다.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거대서사에 기반한 보편적인 삶의 방식이 지배적이었다면, 1987년 민주항쟁과 1988년의 올림픽을 거치면서 사회는 점차 세대와 취향 등을 매개로 다양한 삶의 방식을 드러내는 부분 집단으로 분화되어 갔다. 1990년대 들어 그러한 경향은 더욱 뚜렷해졌다. 제조사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일반적인 요구에 따라 제품을 만드는 것으로는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고 경쟁에서도 이길 수 없음을 뜻했다.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분화하는 소비자들과 그들의 요구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기업들이 소비자와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연구하는 조직을 새롭게 만들기 시작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삼성전자가 ‘생활소프트웨어팀’을 구성한 것도 물론 그래서였다.
그런데 그런 움직임에서 금성사는 삼성전자보다 앞서가는 모습을 보였다. <매일경제> 기사(“Eyes on the Women's Planning Team,” 1993)에 따르면 금성사는 이미 1989년에 소비자의 “생활문화 연구를 통한 신상품 제안을 목적”으로 LSR(Life Soft Research)실이라는 연구팀을 만들어 운영하기 시작했다. LSR실은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 만들어졌다. 우치다 시게루가 자신의 책(Uchida, 2023)에서 밝히고 있듯이 1947년~1949년 사이에 태어난 800만 명 전후의 단카이 세대가 본격적인 소비 주체로 등장하기 시작했던 1970년대부터 일본은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 연구를 통해 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샤프사의 ‘Creative Lifestyle Focus Center’의 설립(1985)에서 알 수 있듯이 1980년대에 들어서 그 움직임은 더욱 정교화되고 있었다. 이러한 일본 기업의 움직임은 당시 한국 기업들의 주된 참조 대상이었다.
1992년 4월 24일 자 <매일경제> 기사(“Expanding strategies,” 1992)에 따르면 “LSR실은 (일반 가정집처럼 꾸며놓은) 테크노팬션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여성기획팀과 본사에서 근무하며 표본 여론 조사 방식으로 소비자 생활 패턴을 조사하는 생활조사팀, 이로부터 나온 아이디어의 기술적 타당성을 검토하고 신상품 개념을 기획하는 상품추진팀, 중장기적 상품 기획을 담당하는 상품제안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LSR실이라는 이름은 당시 금성사 사장이었던 이헌조가 직접 작명한 것이었는데, 이는 그만큼 LSR실이 금성사에서 비중이 있는 조직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LSR실은 1990년대 들어 금성사가 한국형 제품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92년에 출시된 ‘금성 뚝배기 전자레인지’ MR-283SF 모델도 그 흐름의 연장선에 있었다.
‘금성 뚝배기 전자레인지’ MR-283SF 모델(Figure 5)은 1991년 6월에 출시된 ‘삼성 압력조리 전자레인지’ RE-790BP 모델(Figure 3)과 유사한 부분이 많았다. 전면에서 보았을 때, 두 제품 모두 조작부 좌측을 전자레인지 문의 재질과 동일하게 처리하여 이미지상으로 하나로 연결되도록 했고, 나머지 조작부와 연결된 테두리로 문 부분을 감싸도록 디자인했다. 그뿐만 아니라 두 제품 모두 당시 유행하던 인공지능과 퍼지 기술을 적용해 제품이 음식 상태를 자동으로 확인하며 요리할 수 있게 하였다. 더 나아가 특정 한국 음식을 강조하며 기능을 특화하고 있는 점도 닮았다.
1992년 2월 25일 자 <동아일보>에 ‘금성 뚝배기 전자레인지’ MR-283SF 모델의 광고(Figure 5)가 등장했다. 광고는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윗부분에 자리한 광고를 보면 “금성이 한발 앞서 개발해 온 한국형 가전제품 시리즈”라는 제목으로 금성사의 대표적 한국형 가전제품 3개를 소개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중앙에는 ‘신라의 미소’로 알려진 얼굴 무늬 수막새 이미지를 배치했고, 그 왼쪽에는 “한국형 신제품으로 뜨거운 찬사를 받았던 물걸레 청소기와 가마솥 밥솥에 이어 금성 뚝배기 전자레인지를 선보입니다.”라는 문구를 달아 놓았다. 이를 통해 금성사가 ‘금성 뚝배기 전자레인지’ MR-283SF 모델을 ‘금성 물걸레 청소기’, ‘금성 가마솥 보온밥솥’과 함께 자사의 대표적 한국형 제품군에 배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93년 들어 ‘금성 김장독 냉장고’ GR49-2CK 모델이 출시되면서 금성사는 대표적 한국형 제품군을 ‘금성 김장독 냉장고’, ‘금성 물걸레 청소기’, ‘금성 뚝배기 전자레인지’로 바꾸었다. 이때에도 ‘금성 뚝배기 전자레인지’는 금성사의 대표적인 한국형 제품이었다. 아랫부분에 자리한 광고에서는 ‘금성 뚝배기 전자레인지’ MR-283SF 모델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내용의 요지는 한국인이 주로 먹는 찌개, 즉 된장찌개, 김치찌개, 해물찌개를 특성에 따라 조리 방식을 달리해 끓여준다는 것이었다. 화면 상단에는 3가지 종류의 찌개가 서로 다른 형태의 뚝배기에 담겨 있는 모습을 크게 배치하였다. 화면 아랫부분에는 제품 이미지를 배치했는데, 오른쪽에 버튼 부분을 설명하면서 각 찌개에 따른 조리 방법의 차이를 자세히 제시하고 있다. ‘뚝배기 전자레인지’라는 이름은 MR-283SF 모델 이후에도 한동안 계속 사용되었다. 하지만 1994년부터는 사용하지 않았다.
삼성전자의 압력조리(압력솥) 전자레인지와 금성사의 뚝배기 전자레인지는 단순히 한국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조리도구와 방법을 새롭게 불러들여 적용함으로써 이전과 다른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고도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두 제품은 모두 사용자의 라이프스타일 연구에 토대를 두고 만들어졌다. 그런데 라이프스타일 연구를 통해 소비자의 특성과 요구를 파악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게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연구된 내용을 제품으로 구체화하는 일이었다.
1992년 11월 16일 자 <조선일보> 기사(“Easy Home Appliances,” 1992)는 “이지 가전품 잘 팔린다”라는 제목으로 “사용하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는 20~30개의 버튼을 10개 미만으로 줄이려는 노력과 그런 압축 기술을 경쟁 요체로 삼는 경향”에 대해 다루었다. 그러면서 삼성전자의 간단 조작 전자레인지가 4개의 조작 버튼만을 둔 것과 “한국형 요리 버튼을 붙여 다음에 작동해야 할 순서를 액정 표지판에 나타나게 하고, 사용 빈도에 따라 조리 버튼의 크기와 색상을 달리 한” 금성사의 뚝배기 전자레인지를 사례로 들었다. 기사는 그 용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부상하던 UI 디자인 개념과 적용 사례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 시기에 이르러 UI 디자인이 중요하게 부상하였는데, 그것은 전자적으로 작동하는 사물들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전자적으로 작동하는 사물들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기 어려웠고, 사용자가 사용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크기와 모양의 버튼들 사이에서 특정 버튼들을 찾아 정해진 순서에 따라 눌러야 했다. 그 때문에 도날드 A. 노먼(Norman, 1988)이 자신의 책에서 밝혔듯이 의도한 행위와 실제 조작이 잘 대응하도록 디자인하지 않으면 사용자가 사용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UI 디자인은 이러한 문제를 인간의 보편적 심리와 인지 구조에 대한 이해에 기반해 해결하려고 했다.
구체화와 관련하여 또 하나 주목해 보아야 하는 것은 이 시기에 새로운 디자인 이해와 감각을 가진 인력들이 기업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 하나의 예를 1988년에 출시된 금성사 최초의 한국형 전자레인지 ‘한국형 금성 전자레인지 원터치’ ER-615HSB 모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산업디자인> 97호(“1988 Good design products,” 1988)에 따르면 이 제품은 한경하(1962년생)가 디자인하였는데, 한국디자인포장센터가 주관하는 행사에서 1988년 우수상품디자인(Good Design)에 선정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한경하가 미술의 맥락에서 공예에 기반한 디자인이 아닌, 산업적 생산에 기반한 디자인 교육을 받은 세대에 해당한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디자인 생산 주체라 할 수 있는 이들 디자이너 세대는 새로운 이해와 감각으로 기업에서 라이프스타일 연구 내용을 효과적으로 구현하는 데 역할을 했다.
1992년 12월 4일 금성사는 ‘한국형 금성 뚝배기 전자레인지’ MR-285SF 모델 광고(“Different methods,” 1992)에서 “방식이 다르면 맛도 다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이 슬로건은 당시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변화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 잘 보여준다. 그것은 단순히 한국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는 데에 머물지 않고, 전통적인 고유의 음식 맛을 낼 수 있도록 요리 방식 개선에 초점을 두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 ‘개선’의 움직임이 ‘제품의 재해석’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당시 사람들의 삶 속에서 전자레인지가 무엇인지를 묻고, 거기에서부터 출발하는 새로운 접근 방식을 요구했다. ‘삼성 압력솥 전자레인지’와 ‘한국형 금성 뚝배기 전자레인지’는 그러한 요구에 대한 응답이었다. 당시 출현한 다른 한국형 제품들도 그랬지만, 이 제품들은 제품 개발 방식이나 디자인에 있어 이전과 단절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한국의 고유한 문화에 토대를 두고 개발되었다는 사실을 넘어 새롭게 문화를 만들어 가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것은 미래를 예고하는 특별하고 가치 있는 움직임이었다.
부뤼노 라투르(Latour, 1991)는 근대성을 세상을 반으로 나누고 한쪽이 다른 한쪽을 정복함으로써 정화하려는 시도라고 정의했다. 그는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하는 근대의 움직임을 비판하기 위해 그러한 이야기를 한 것이었지만, 둘을 나누고 다른 한쪽을 적대하는 것은 근대의 일반적인 구도라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구도 속에서 건강은 건강을 방해하는 무엇과 대립 구조를 형성한다. 건강을 방해하는 무엇의 위치에는 세균이 자리할 수도 있고, 나쁜 공기나 스트레스가 자리할 수도 있다. 근대의 시공간에서 건강은 바로 이 무엇을 없애거나 피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상태로 이해되었고, 또 이해되고 있다. 그런데 이 무엇의 자리에 놓이게 되는 대상과 그것을 피하려는 움직임은 그것이 이야기되는 특정 시대나 사회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이런 맥락에서 1990년대 초중반 한국 사회를 고찰할 때, 주목해 보아야 하는 대상 중 하나가 전자파다.
1992년 초 미국 머시재단암관리센터 연구원이었던 이규학의 암예방강좌가 국내에서 인기를 끌었다. <경향신문> 기사(“Kyu-Hak Lee Syndrome,” 1992)에 따르면 그는 가공식품이나 화학섬유는 물론이고 전자파가 암을 발생시킬 위험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그의 주장이 과장되었다고 지적했지만,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침실의 TV를 거실로 옮기거나 전자파 중화 제품을 사용하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1993년에는 전자파를 선인장이 흡수한다고 알려지면서 선인장 키우기가 사회적으로 유행하기도 했다.(“Absorption of electromagnetic waves,” 1993)
매체들은 전자파 관련 내용을 꾸준히 다루었다. 1993년 7월 22일 자 <조선일보>의 “생활 속의 환경 운동 - 전자파 가전 기구 사용 절제를”이라는 기사(“Environmental Movement in Daily Life,” 1993)는 그중 하나였다. 그 기사는 미국에서는 전자파 문제 때문에 전자레인지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전하며, 전자파에 시달리는 인물의 모습을 담은 삽화를 함께 실었다. 이 기사가 나간 지 4일 후, 삼성전자 전자레인지 연구실에 근무하는 정경한(Jeong, 1993)은 “레인지 전자파 차단 관리 엄격”이라는 반박문을 냈다. 반박문의 내용은 문을 여는 순간 전자파 작동이 멈추도록 전자레인지를 만들기 때문에 주부들이 음식물을 넣고 뺄 때마다 전자파에 잠시나마 노출된다는 앞의 기사 내용이 옳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런 그릇된 내용의 기사는 주부들에게 전자레인지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만 줄 뿐 아니라, 전자레인지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에게 허탈감을 안겨줄 뿐이라고 비판했다.
1993년 후반의 전자파 논란은 그 진위와 관계없이 전자파에 대한 두려움을 만들어 냈다. 전자파는 감각으로 지각할 수 없는 대상이었는데, 이런 지각 불가능성이 당시 그것에 대한 공포를 더욱 증폭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사실 전자파를 발생시키는 모든 전기전자제품이 이 논란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전자레인지는 전자파로 요리를 한다는 특성 때문에 가장 강하면서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위의 정경한의 주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제조사들은 전자파 논란을 제품 존재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그 위협에 맞서 제조사들은 크게 3가지 방향에서 탈출구를 찾으려고 했다. 자연의 환기, 편리의 추구, 그릴 기능 강조가 그것이었다.
‘삼성 바이오 전자레인지 간단큐’ RE-410B 모델은 자연의 환기를 통한 극복 노력을 대표하는 제품이었다. 1994년 초 삼성전자(“Development of ‘Bio Microwave Oven’,” 1994)는 “식품개발연구원, 제일제당 종합연구소 등과 공동으로 음식물이 가지고 있는 자연 상태의 맛과 영양을 살려 조리할 수 있는 바이오 전자레인지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여기서 삼성전자가 개발했다는 제품이 바로 ‘삼성 바이오 전자레인지 간단큐’ RE-410B 모델이었다. 1994년 3월 19일 자 <경향신문>에 등장하는 ‘삼성 바이오 전자레인지 간단큐’ RE-410B 모델의 광고(Figure 6)를 보면 “바이오 코팅으로 속 색깔이 다르다. 조리실 5면에서 원적외선이 나온다.”라는 표현을 전면에 내걸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조리실에 바이오 세라믹 코팅을 했기 때문에 원적외선 효과를 낼 수 있고, 그것은 비타민 보존율로 입증되었으며, 따라서 맛과 영양을 지켜준다는 게 해당 전자레인지 광고가 주장하는 내용의 핵심이었다.
이 제품은 ‘한국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직전까지만 해도 삼성전자가 한국형의 맥락에서 제품 개발에 매진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 이것은 갑작스럽고도 큰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당시는 건강을 해친다는 이유로 전자레인지에 대한 거부감이 빠르게 확산하던 상황이었다. 따라서 전자레인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는 게 무엇보다 우선이었다. 이러한 다급함이 ‘한국형’을 벗어나 자연을 주목하게 하였다. ‘전자레인지→전자파→건강에 나쁨’이라는 인식의 흐름을 ‘전자레인지→자연→건강에 좋음’으로 바꾸려는 의도 속에서 제품이 만들어졌고, 제품 광고(Figure 6) 역시 그에 걸맞게 자연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을 많이 등장시켰다. 조리실 안에서 놓여 있는 야채도 그렇지만, 광고 문구나 모델의 의상을 녹색으로 표현한 점도 친환경적인 자연의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광고의 표현뿐 아니라, 전자레인지 이름에 ‘바이오’를 사용한 점, 맛과 영양을 자연 상태에 가깝게 지켜준다는 제품 기능에 관한 설명 등에서도 그런 의도를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삼성 바이오 전자레인지 간단큐’ RE-410B 모델에서 이름에 ‘간단큐’를 사용한 점도 주목해 볼 만하다. 왜냐하면 앞장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간단큐’는 UI 디자인을 통한 사용의 편리성을 환기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자레인지→편리→좋음’이라는 흐름으로 시선을 돌리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나 원터치를 강조하는 이 시기 다른 제품들의 모습도 모두 편리를 강조하는 움직임에 해당한다. 편리는 전자레인지가 등장한 초기부터 늘 강조되어 왔던 가치였지만, 이 시기에는 특히 더 강조되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조작상의 편리도 편리지만 데우기나 해동하기 기능을 활용한 편리야말로 더더욱 중요했다. 제조사들은 이 부분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다양한 음식을 간단하고 빠르게’라는 전자레인지가 생활공간에서 구현하고 있던 정신과 어울리는 것이었다. 물론 이 정신은 전자레인지만으로 실현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양한 냉동식품이나 전자레인지용 즉석식품들이 지원군의 역할을 했다. 특히 이 시기에 등장한 가정식 반찬 판매점은 전자레인지와 결합하여 그 정신을 더욱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1994년 4월 28일 자 <경향신문>의 한 기사(“Home-style meal,” 1994)는 맞벌이 부부나 독신자들이 늘면서 그들을 대상으로 한 가정식 밥과 반찬을 판매하는 체인점이 등장하고 있다고 알렸다. 이런 가게들의 등장으로 누구든 가정식 밥과 반찬을 조금씩 구입하여 “전자레인지에 데워 집에서 한 상 푸짐하게 차려 먹을 수 있게 된 것”이었는데, 그 이면에는 편리를 추구하는 강한 움직임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움직임은 전자파 논란에도 불구하고 전자레인지를 소비하고 사용하도록 했던, 그래서 전자레인지 보급률을 상승시켰던 핵심 동력이었다.
전자파 논란에 대한 또 다른 움직임으로는 그릴이나 오븐 기능의 강화를 들 수 있다. 1993년 6월 금성사가 출시한 ‘금성 뚝배기 전자레인지’ MH-617S 모델은 이런 맥락 속에 자리하는 제품이었다. 1993년 6월 25일 자 <동아일보>에 등장한 해당 제품의 광고(Figure 7)를 보면, 생선이 조리실에서 요리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금성 뚝배기 전자레인지’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도 숯불 그릴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뚝배기 요리가 아닌 구이 요리를 내세우는 모습은 전자파로 요리하는 게 아님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와 함께 해당 제품의 광고는 복합 기능, 경제성, 편리함 등을 강조하고 있다. 다다익선의 태도로 다양한 장점들을 동원하고 있는 제품 광고는 전자파 논란에서 벗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 역시 의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994년에 들어서도 금성사는 구이 기능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1994년 3월 금성사가 선보인 ‘금성 전자레인지 다이얼’ MH-630H 모델에서도 그런 내용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1994년 3월 13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해당 제품의 광고(GoldStar, 1994)에서 금성사는 생선을 그릴에 굽고 있는 모습을 등장시켰다. 이런 움직임은 1994년 9월에 출시된 ‘금성 숯불구이 전자레인지’ MH-720C 모델로 이어졌다. 1994년 9월 18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MH-720C 모델의 광고(Figure 8)를 보면, “숯불구이 참맛을 살렸다!”라는 표현과 함께 숯불갈비를 굽고 있는 이미지를 크게 내걸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점에 금성사가 제품 이름에서 ‘뚝배기’라는 표현 대신에 ‘숯불구이’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릴과 오븐 기능을 통해 제품을 정의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나타낸 것이었다.
그런데 전자레인지는 마그네트론을 통해 전자파를 만들고, 그 전자파의 작용으로 음식을 익히는 제품이었다. 따라서 엄밀히 보면 구이 요리를 하는 것과 전자레인지는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할 수 없었다. 구이는 전자레인지에 추가된 그릴이나 오븐 기능 장치를 활용해야 가능한 요리로, 전자레인지 고유의 조리 매체인 전자파에 의한 요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전자파가 아닌 열을 만들어 내는 별도의 장치를 통해 요리가 이루어지는 구이 기능을 강조하면 할수록 전자레인지의 정체성은 흐려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구이 요리에 적합한 기기는 그릴이 달린 가스레인지나 오븐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전자파 논란이 본격화한 시기부터 가스오븐레인지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물론 그 현상이 전적으로 전자파 논란 때문에 나타났다고는 할 수 없다. “가스오븐레인지 수요 크게 늘어”라는 제목의 <매일경제> 기사(“Significantly Increased Demand,” 1992)에서 알 수 있듯이 시스템키친의 한 요소로 인식되며 고품격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획득한 가스오븐레인지는 식생활의 서구화로 로스트비프나 스테이크, 피자 등의 양식을 즐기는 가정이 늘어나면서, 그리고 저렴한 모델들이 등장하면서 실용 가전으로서의 자리를 굳혀갔기 때문이다. “가스오븐레인지 한국형 개발 - 가격 경쟁 치열”이라는 제목의 <조선일보> 기사(“Developing Korean Style,” 1995)에 따르면 1995년 무렵에는 가스오븐레인지 시장에서의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기부터 한국형 가스오븐레인지가 개발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전자레인지에서 이루어지던 ‘한국형’ 경쟁이 가스오븐레인지로 이동한 것이었다.
가스레인지의 경우는 이미 포화상태였다. 하지만 2개의 화구로 구성된 기존 모델을 바꾸려는 대체 수요가 꾸준히 나타나고 있었다. 이 시기에는 식생활의 서구화와 전자파 영향 등으로 그릴이 달린 고급형 모델에 대한 수요가 컸다(“Gas Range,” 1993). 당시 가스레인지는 가정의 핵심 조리기구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오븐과 그릴 달린 고급형 가스레인지가 추가되면서 전자레인지는 해동이나 데우기에 사용되는 보조적 조리기구로 전락해 갔다. 그런데 이것은 1991년과 1992년에 한국형 전자레인지가 보여주었던 방향과 다른 것이었다. 앞서 보았듯이 고도화된 한국형 전자레인지는 해동이나 데우기 수준이 아닌 요리를 만드는 어엿한 조리도구로 자리하길 원했고,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삼성 압력솥 전자레인지’나 ‘한국형 금성 뚝배기 전자레인지’와 같은 모델들이 개발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그 자리는 그릴 달린 고급 가스레인지나 오븐의 것이 되었다. 이것은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퇴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퇴조가 곧 전자레인지의 쇠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1990년대 초중반 전자레인지는 제품수명 주기상 도입기를 벗어나 성장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실제로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Table 1)에 따르면 전자레인지 보급률은 1990년에 24%, 1991년에 32%, 1992년에 39%, 1993년에 45%, 1994년에 51%로 꾸준히 확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 바탕으로 1993년 전후에 본격화한 전자파 논란이 판매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Trends in Microwave Oven Penetration over the Years, 1988~1997 (“Microwave Oven Penetration Rate,” 2023)
보급률(%) | 12 | 15 | 24 | 32 | 39 | 45 | 51 | 53 | 60 | 67 |
전년 대비 증감률(%) | 4 | 3 | 9 | 8 | 7 | 6 | 6 | 2 | 7 | 7 |
하지만 같은 데이터를 당시 제조사들이 위기에 적절히 대처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성장기에 접어든 전자레인지를 요구하는 사회·문화적 요구들, 예를 들면 생활공간의 아파트화, 편의점의 확산, 냉동식품이나 간편식품의 일반화, 필수품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제품의 관성, 편리를 추구하는 심리적 힘 등이 전자파 논란을 상대적으로 미미한 것으로 만들 만큼 강하게 작동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게다가 보급률 수치 변화를 자세히 보면 전자파의 영향이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 없는 변화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전년 대비 증감률을 주목할 때 드러나는데, 1990년대 들어 보급률 상승세가 점점 둔해지다가 1995년에 2%로 상당히 무디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제품수명 주기상 본격적인 성장기에 접어든 1990년부터 1997년 사이에 전자레인지 보급률이 전년 대비 매년 7% 이상의 상승률을 보였다고 할 때, 전자파 관련 논란이 심하게 일었던 1993, 1994, 1995년의 수치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수치 변화는 전자파 논란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전자레인지 확산 움직임과는 별개로 전자파 논란을 거치면서 한국형 전자레인지 현상이 쇠락의 상태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이다.
본 논문은 1990년대 초중반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발전과 쇠퇴의 과정을 밝히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연구 결과 해당 시기 한국형 전자레인지는 크게 3단계의 내용적 변화를 나타냈다. 한식과 양식의 기능적 절충을 통한 정체성 확보 단계, 조리 방법의 개선을 통한 고도화 단계, 전자파 논란과 그에 따른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퇴조 단계가 그것인데, 이를 도식화하면 Table 2와 같다.
Major Korean-style microwave ovens in the early and mid-1990s and their characteristics
한식과 양식의 절충을 통한 정체성 확보 |
삼성 제빵 겸용 한국형 전자레인지 RE-390BM |
- 한식을 선호하는 기성세대와 양식을 찾는 아이들 간의 충돌하는 취향을 해소 | 1990 | 삼성전자 |
한국형 금성 전자레인지 원터치 ER-900MHB |
- 오븐 기능 강조 | 1990 | 금성사 | |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고도화 |
삼성 압력조리 전자레인지 RE-790BP |
- 최초의 압력솥 전자레인지 | 1991 | 삼성전자 |
삼성 압력조리 전자레인지 RE-2755 |
- RE-790BP 모델의 후속 모델 - 1992년에 ‘삼성 압력솥 전자레인지’로 이름을 바꿔 판매 |
1991 | 삼성전자 | |
금성 뚝배기 전자레인지 MR-283SF |
- 된장찌개, 김치찌개, 해물찌개를 각각 특성에 따라 조리 가능 | 1992 | 금성사 | |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퇴조 |
금성 뚝배기 전자레인지 MH-617S |
- 구이 기능 강조 | 1993 | 금성사 |
삼성 바이오 전자레인지 간단큐 RE-410B |
- 조리실 세라믹 코팅을 통한 원적외선 효과 - 친환경 강조 - 한국형을 내세우지 않는 움직임 본격화 |
1994 | 삼성전자 | |
금성 숯불구이 전자레인지 MH-720C |
- 숯불구이 기능 | 1994 | 금성사 |
여기서 단계는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존재 방식과 특징에 의해 구분한 것이다. 각 단계의 특징은 한국형 전자레인지를 둘러싼 다양한 힘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만들어 낸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연구를 통해 그 힘의 자리에는 소비자와 그들의 변화하는 생활, 사회·문화적 상황, 기술의 발달 정도, 제조사 사이의 관계와 상태 등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도출된 각 단계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식 조리기능과 양식 조리기능의 절충을 통한 정체성 확보의 움직임은 1990년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 움직임은 1980년대 후반 최초의 한국형 전자레인지였던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777BR 모델과의 차별화를 위해 금성사에 의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후 사용자 라이프스타일 연구에 토대를 두고 소구 대상을 세분화하는 제품 개발 경향이 자리 잡으면서 금성사만 아니라 삼성전자도 그 흐름에 동참했다. 기업들은 식생활에 있어 서구화 경향을 따르고 있던 젊은 신세대 가구의 취향을 충족시키기 위해, 한국 음식을 찾는 기성세대와 양식을 찾는 아이들 간의 충돌하는 취향을 해소하기 위해, 그리고 양식 중심의 전자레인지 전용 식품 개발의 움직임에 호응하기 위해 한식과 양식의 기능적 절충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형 전자레인지 현상을 만들어 냈다.
둘째, 1991년과 1992년에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고도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 단계의 대표적 제품으로는 ‘삼성 압력솥 전자레인지’ RE-2755 모델과 ‘금성 뚝배기 전자레인지’ MR-283SF 모델을 들 수 있다. ‘삼성 압력솥 전자레인지’는 조리실에 압력솥을 두어 압력 요리를 할 수 있도록 만든 제품으로, 1991년에 출시된 ‘삼성 압력조리 전자레인지’ RE-790BP 모델이 그 시작이었다. 1992년에 출시된 ‘금성 뚝배기 전자레인지’ MR-283SF 모델은 한국인이 주로 먹는 찌개들을 각 찌개의 특성에 맞게 조리할 수 있도록 만든 제품으로, UI 디자인 개념을 적용해 사용성을 높임으로써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삼성전자의 압력솥 전자레인지와 금성사의 뚝배기 전자레인지는 단순히 한국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내세웠던 이전 한국형 전자레인지들과 달리 고도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압력솥이나 뚝배기와 같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특정 기능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도 그렇지만, 사용자의 라이프스타일 연구에 토대를 두고 도출한 내용을 바탕으로 음식의 조리 방법과 디자인을 발전시켰다는 점, 그리고 UI 디자인을 적용해 사용성을 향상시켰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했다. 고도화된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제품 해석 방식과 디자인은 이전과 단절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새로운 시대를 예비하는 움직임이었다.
셋째, 1993년부터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퇴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해 1994년에 본격화되었다. 건강에 관한 관심 속에서 전자파 논란이 일었던 게 계기였다. 전자파 논란이 만들어 낸 상황의 변화가 오븐과 그릴 달린 고급형 가스레인지 소비 확대로 이어졌고, 그에 따라 전자레인지는 주방의 보조적인 조리도구로 전락하게 되었다. 전자레인지 자체적으로도 자연을 환기하는 제품, 편리함을 강조하는 제품, 그리고 그릴 기능 중심의 제품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는 제품의 생사가 걸린 위기 상황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달아오르던 한국형 전자레인지 개발의 열기는 빠른 속도로 식어갔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퇴조는 전자파 논란을 대처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형 전자레인지는 1980년대 말에 시작되어 1990년대 중반까지 진행된 현상이었다. 그 움직임의 정점은 1992년 전후였다. 1990년대 중반이 채 되기 전에 발생한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퇴조 현상은 다른 한국형 제품과 비교할 때 이른 것이었다. 게다가 전자레인지의 경우 쇠락의 움직임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물론 그것은 느닷없이 찾아온 전자파 논란이 계기가 되었다. 만일 전자파 논란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소멸의 시간이 조금 뒤로 늦춰지기는 했겠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1990년대 중반을 넘어 후기로 접어들면서 대부분의 한국형 제품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제 한국의 고유한 생활문화를 매개로 제품의 차별성을 확보하는 시대가 끝났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한국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IMF라는 위기를 넘기고 2000년대에 접어들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제품들을 하나둘 내놓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국형 전자레인지와 같은 한국형 제품을 통한 실험과 수련의 과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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